역시나 결국 여당과 독재자에게 그 이익이 돌아간다 해도 그해 가을을 살았던 사람들 중 누구보다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랑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가장... 큰 이익이었다. 천문학적 이익이란 아마도 이런 걸 뜻하는 게 아닐까.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그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작은 씨앗과 같은 것이었고, 납득할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내면에 스며든 것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던 느낌... 자라던 줄기와 피어나던 색색의 꽃을 잊을 수 없다. 길을 거닐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가상의 나무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가 키워 올린 나무였고 이미 뿌리를 내리고 선 나무였다.

나는 여전했지만 여전하지 않았고, 예전과 달리 누가 누구와 헤어졌대, 누가 누구를 버렸다... 주변의 속삭임에도 마음을 아파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났다는 말은, 누군가의 몸전체에 즉 손끝 발끝의 모세혈관에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통째로 흔들어 뽑아버렸다는 말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뿌리에 붙은 흙처럼

딸려, 떨어져나가는 마음 같은 것... 무엇보다 나무가 서 있던 그 자리의 뻥 뚫린 구멍과... 텅 빈 화분처럼 껍데기만 남아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아프고 참담한 것이었다. 그런 나무를 키워본 인간만이 인생의 천문학적 손실과 이익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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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내면(內面)은 코끼리보다 훨씬 큰 것이고, 인간은 결국 서로의 일부를 더듬는 소경일 뿐이다.
- P49

인간의 안목(眼目)은 그런 것이다. 죽음이 닥치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다. 아, 그것이 사라졌구나. 사라져가는구나... 느낀 후에야 그 텅 빈 공백을 바라보며 비로소 중얼거릴 뿐이다. 
- P56

결국, 세상의 매듭을 푸는 것은 시간이다.
- P156

그리고 인간은

실패작과 성공작을 떠나, 다만 <작품>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형은 작품이에요... 그리고 나도 작품이에요. 인간은... 작품이에요. 못다 쓴 메모를 적듯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 P160

이상하네요? 아니, 당연한 거야. 인간은 대부분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인 거야. 하지만 좀처럼 자아(自我)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끝없이 가지려 드는 거야. 끝없이 오래 살려 하고... 그래서 끝끝내 행복할 수 없는 거지.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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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 P16

인간은 누구나 <루돌프의 코>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놀려대고 웃어도 산타는 오지 않는다. 
- P26

그것은 모리스 라벨의 곡모음이었고, 상단의 타이틀엔 커다란 필기체의 불어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가 적혀 있었다. 개봉된 나의 스무 살이 보이지 않는 운명의 턴테이블 위에서 막 회전을 시작하던 순간이었다.
- P27

좀더 많은 표현을 알았더라면... 모든 순간의 의미와 다가올 일들을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나의 이십 대는 전혀 다른 음(音)들을 쏟아내며 또 다른 인생의 테이블을 돌고 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 P28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었다.
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였다.
그리고 영혼이 곁에 왔다 싶으면
그제서야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

그때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언젠가는 말을 세우고 자신이 달려온 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에겐 결국 영혼이 필요하고, 영혼은 인디언만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이기때문이다.

이제서야

나는 말을 세우고 땅 위에 발을 내려선 기분이다. 그리고 자신이 달려온 쪽을 바라보는 인디언처럼 한동안 그 시절을 돌아보려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두고 온 한 줌의 <영혼>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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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과 체념이 애정을 송두리째 뽑아준다면 차라리 얼마나 편할까. 그러나 사랑은 끈질긴 잡초처럼 가슴에 뿌리내려서 아무리 뽑고 또 뽑아도 아주 조금 내린 비만으로도 이렇게 숨을 되찾는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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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들은 기능이 없고, 쓸모가 없고,
그저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존재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것이다.
- P5

쓸모없는 것은
정말로 쓸모없는 것일까?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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