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흑자를 많이 냈다는 것은 그들이 그 만큼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전 세계에 돌아다니는 달러가 계속 미국으로 흡수됐다는 의미기도 하다. 달러가 미국으로 흡수될수록 세계시장에 유통되는 달러의 양은 점점 줄어든다.
(...)
그래서 미국은 달러의 기축통화 key currency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역 흑자를 내서는 안 되는 묘한 운명에 놓여 있다. 기축통화를 보유하면 경제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무역에서 매년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는 것이다. 
- P80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후 미국이 거의 세계 모든 나라를 상대로 무역 분쟁을 일으키는 것도 ‘왕좌를 지키는 미국‘보다 ‘당장 돈을 더 버는 미국‘에 관심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미국은 이제 세계의 아틀라스 역할을 포기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 P85

원래 신용은 인격의 문제였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인가, 혹은 책임감 있는 사람인가 하는 도덕적 평가였다. 하지만 신용카드가 보편화되면서 신용이 숫자로 환원되기 시작했다. 신용점수는 한 개인의 삶을 압축한 데이터가 되었다. 얼마를 벌었는지, 언제 돈을 갚았는지, 연체는 몇 번 있었는지, 이 모든 기록이 점수로 환산된다. 이 점수는 단순한 참고 자료가 아니다. 집을 살 수 있는지, 사업 자금을 빌릴 수 있는지, 심지어 어떤 직장을 얻을 수 있는지까지 좌우한다.
- P115

신용 등급 기관은 이미 우리의 점수를 모두 계산해 놓았다. 보험회사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가격도 액수로 환산한다. 내가 얼마짜리 인간인지 알아보려면 단 10분을 들여 신용 등급을 조회해 보면된다. 산출된 점수에 따라 어떤 자동차를 타고 어떤 집에서 살자격이 있는지, 즉 내가 얼마짜리 인간인지가 결정된다.
- P117

기독교 헌금인 십일조가 소득의 10분의 1을 헌금으로 내게 했던 반면, 이슬람의 헌금은 소득의 2.5퍼센트 수준이었다. 가난한 민중들에게 이 차이는 매우 컸다.
이슬람을 믿으면 기독교를 믿을 때에 비해 돈을 4분의 1만 내면 되었던 것이다.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 이슬람이 기독교에 비해 우위를 점했던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 P152

이슬람의 헌금을 자카트Zakat라고 부른다. (...) 자카트는 단순한 헌금이 아니라 이슬람의 다섯 가지 기본 의무 Five Pillars of Islam 중 하나기 때문이다. 이슬람 신자라면 재산이 일정한 기준선을 넘을 경우 누구나 매년 재산의 2.5퍼센트를 자카트로 내야 한다.
중요한 점은 자카트가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부금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과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한 의무적 분배 제도라는 사실이다. 코란에는 자카트의 사용처가 비교적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가난한 자, 고아, 빚진 자, 여행 중 곤경에처한 자,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사람 등이 그 대상이다.
즉 자카트는 신에게 바치는 헌금이기 이전에, 공동체 안에서 부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설계된 종교적 세금이자 사회 안전망이었다. 
- P152

이슬람 제국은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성서의 민족‘으로 인정했다. 그래서 폭력적으로 개종을 강요하는 대신 선택지를 제시했다.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자카트만 내면 되고, 개종하지 않으면 지즈야jizya라는 인두세를 내도록 했다. 
(...)
문제는 개종을 하지 않고 기독교인으로 살면 지즈야도 내고 교회에 십일조도 내야 하니 돈을 이중으로 납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
결국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 기독교가 아닌 이슬람을 받아들인 이유는 그들에게 종교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생계의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믿을래? 죽을래?"라는 협박이 아니라 "믿을래? 세금 더 낼래?"라는 현실적인 생계의 압박이 이슬람의 확산을 가속화했다.
(...)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이슬람 확산의 원인을 폭력에서 찾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계산적인 구조가 작동했다. 헌금의 세율은 단순히 종교적 차이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 경쟁이었다. 결국 개종은대대로 믿어 왔던 신앙을 저버리는 일이 아니라, 어떤 경제 질서에 편입될지를 선택하는 중대한 문제였다. 
- P154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Bad money drives out good if their exchange rate is set by law.
- 그레셤의 법칙

>> 악화가 양화를 몰아낸다. 단, 교환 비율이 법으로 일정하게 정해져 있을 때.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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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적어도 변기에 앉아서 보낸 시간보다는, 사랑한 시간이 더 많은 인생이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변기에 앉은 자신의 엉덩이가 낸 소리보다는, 더 크게... 더 많이 <사랑해>를 외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몇 줌의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있는 자판들을 어루만지며, 나는 다시 그녀를 생각한다. 생각해

본다.
- P203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 P240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모르던 나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알고 있다 여기던 시절이었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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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결국 여당과 독재자에게 그 이익이 돌아간다 해도 그해 가을을 살았던 사람들 중 누구보다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랑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가장... 큰 이익이었다. 천문학적 이익이란 아마도 이런 걸 뜻하는 게 아닐까.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그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작은 씨앗과 같은 것이었고, 납득할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내면에 스며든 것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던 느낌... 자라던 줄기와 피어나던 색색의 꽃을 잊을 수 없다. 길을 거닐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가상의 나무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가 키워 올린 나무였고 이미 뿌리를 내리고 선 나무였다.

나는 여전했지만 여전하지 않았고, 예전과 달리 누가 누구와 헤어졌대, 누가 누구를 버렸다... 주변의 속삭임에도 마음을 아파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났다는 말은, 누군가의 몸전체에 즉 손끝 발끝의 모세혈관에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통째로 흔들어 뽑아버렸다는 말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뿌리에 붙은 흙처럼

딸려, 떨어져나가는 마음 같은 것... 무엇보다 나무가 서 있던 그 자리의 뻥 뚫린 구멍과... 텅 빈 화분처럼 껍데기만 남아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아프고 참담한 것이었다. 그런 나무를 키워본 인간만이 인생의 천문학적 손실과 이익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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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내면(內面)은 코끼리보다 훨씬 큰 것이고, 인간은 결국 서로의 일부를 더듬는 소경일 뿐이다.
- P49

인간의 안목(眼目)은 그런 것이다. 죽음이 닥치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다. 아, 그것이 사라졌구나. 사라져가는구나... 느낀 후에야 그 텅 빈 공백을 바라보며 비로소 중얼거릴 뿐이다. 
- P56

결국, 세상의 매듭을 푸는 것은 시간이다.
- P156

그리고 인간은

실패작과 성공작을 떠나, 다만 <작품>으로서도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형은 작품이에요... 그리고 나도 작품이에요. 인간은... 작품이에요. 못다 쓴 메모를 적듯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 P160

이상하네요? 아니, 당연한 거야. 인간은 대부분 자기(自己)와, 자신(自身)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익과 건강이 최고인 거야. 하지만 좀처럼 자아(自我)는 가지려 들지 않아. 그렇게 견고한 자기 자신을 가지고서도 늘 남과 비교를 하는 이유는 자아가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끝없이 가지려 드는 거야. 끝없이 오래 살려 하고... 그래서 끝끝내 행복할 수 없는 거지.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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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 P16

인간은 누구나 <루돌프의 코>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놀려대고 웃어도 산타는 오지 않는다. 
- P26

그것은 모리스 라벨의 곡모음이었고, 상단의 타이틀엔 커다란 필기체의 불어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가 적혀 있었다. 개봉된 나의 스무 살이 보이지 않는 운명의 턴테이블 위에서 막 회전을 시작하던 순간이었다.
- P27

좀더 많은 표현을 알았더라면... 모든 순간의 의미와 다가올 일들을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나의 이십 대는 전혀 다른 음(音)들을 쏟아내며 또 다른 인생의 테이블을 돌고 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 P28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었다.
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였다.
그리고 영혼이 곁에 왔다 싶으면
그제서야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

그때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언젠가는 말을 세우고 자신이 달려온 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에겐 결국 영혼이 필요하고, 영혼은 인디언만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이기때문이다.

이제서야

나는 말을 세우고 땅 위에 발을 내려선 기분이다. 그리고 자신이 달려온 쪽을 바라보는 인디언처럼 한동안 그 시절을 돌아보려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두고 온 한 줌의 <영혼>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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