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내면(內面)은 코끼리보다 훨씬 큰 것이고, 인간은 결국 서로의 일부를 더듬는 소경일 뿐이다.
- P49

인간의 안목(眼目)은 그런 것이다. 죽음이 닥치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다. 아, 그것이 사라졌구나. 사라져가는구나... 느낀 후에야 그 텅 빈 공백을 바라보며 비로소 중얼거릴 뿐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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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랑은 오해다. 그를 사랑한다는 오해, 그는 이렇게 다르다는 오해, 그녀는 이런 여자란 오해, 그에겐 내가 전부란 오해, 그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오해, 그녀가 더없이 아름답다는 오해, 그는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오해, 그에게 내가 필요할 거란 오해, 그가 지금 외로울 거란 오해, 그런 그녀를 영원히 사랑할 거라는 오해... 그런 사실을 모른 채
- P16

인간은 누구나 <루돌프의 코>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놀려대고 웃어도 산타는 오지 않는다. 
- P26

그것은 모리스 라벨의 곡모음이었고, 상단의 타이틀엔 커다란 필기체의 불어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가 적혀 있었다. 개봉된 나의 스무 살이 보이지 않는 운명의 턴테이블 위에서 막 회전을 시작하던 순간이었다.
- P27

좀더 많은 표현을 알았더라면... 모든 순간의 의미와 다가올 일들을 내가 미리 알았더라면... 나의 이십 대는 전혀 다른 음(音)들을 쏟아내며 또 다른 인생의 테이블을 돌고 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 P28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었다.
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였다.
그리고 영혼이 곁에 왔다 싶으면
그제서야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

그때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언젠가는 말을 세우고 자신이 달려온 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에겐 결국 영혼이 필요하고, 영혼은 인디언만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이기때문이다.

이제서야

나는 말을 세우고 땅 위에 발을 내려선 기분이다. 그리고 자신이 달려온 쪽을 바라보는 인디언처럼 한동안 그 시절을 돌아보려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두고 온 한 줌의 <영혼>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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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과 체념이 애정을 송두리째 뽑아준다면 차라리 얼마나 편할까. 그러나 사랑은 끈질긴 잡초처럼 가슴에 뿌리내려서 아무리 뽑고 또 뽑아도 아주 조금 내린 비만으로도 이렇게 숨을 되찾는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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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들은 기능이 없고, 쓸모가 없고,
그저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존재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것이다.
- P5

쓸모없는 것은
정말로 쓸모없는 것일까?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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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가 책을 쓴다는 소문도 있어요.
미라 아주머니는 그 말에 눈을 조금 크게 뜨더니, 깔깔 웃었다. 방금 한 질문을 나는 후회했다. 책이라니,
-책이 뭔지는 아니?
-종이로 된 거요. 직사각형이고요. 넘길 수 있고, 금지됐어요.
-금지된 적은 없어. 책을 금지할 필요는 없었지.
(...)
-그럼 왜 사라진 거죠?
-다들 못 견뎌했거든. 그게 요구하는 시간을 말야.
(...)
-그런데 너 잘못 알고 있구나.
-뭐가요?
-책은 종이가 아니야.
-그러면요?
-직사각형이 아닐 수도 있지. 심지어 어떤 책은 못 넘겨.
읽을 수도 있고 넘길 수도 있지만 들을 때도 있지. 그저 놓여만 있기도 하지. 형태를 갖춘 물질일 때도 있지만, 그냥 데이터 조각일 때도 있지. 그렇다면 그걸 뭐라고 해야 할까? 잘 구성된 하나의 생각?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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