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kimji > [잠시쉬는동안]식자우환

H의 홈피에 갔다가 이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다.
재미있는 건, 화일명이 '식자우환'이었다.
여하튼, 서재 정도라면 이 정도는 되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11일 마감인 알라딘 서재 사진 공개 이벤트는 이제 포기해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더랬다.
중요한 건
내 책장의 정리다.

비가 오고, 새 책이 도착되었고, 몸은 자꾸 늘어지고, 이 '식자우환' 사진을 발견해서 조금 더 무기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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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퍼온글] 움직이는 이모티콘- 복사해서 붙이셔도 움직입니다. ^^

담배 피는 사나이

요요 잘하지?

롤러브레이드도 잘타지..


응? 응!

응원전.. 파도타기!!

숙제 중

숙제 중

숙제 중


박수~~

안경쓰고 공부 중~

바둥바둥~

너 잠깐 나 좀 봐..

달리는 로보트

달리는 로보트

모기를 잡아라~~

저요~~

울다가 눈물 닦기

권투선수

권투선수

권투선수

하품~ 졸려~

하품~ 졸려~

하품~ 졸려~

어지러워~

긁적긁적~

긁적긁적~

물건 나르기

이건 필요 없어~

..

꽃게

 

키스

승리의 V~~

승리의 V~~

테크노댄스

테크노댄스

테크노댄스

윙크

윙크

윙크

만세~~

만세~~

하이~~

하이~~

우왕좌왕

두근두근~~

두근두근~~

담배 피는 사나이

ON/OFF

공 굴리기

폭탄

고양이

고양이

달팽이

오토바이 타기

밥상 집어 던져~

얼굴 꼬집기

토끼의 엉덩이 춤

눈치보기

후~ 입냄새 나니? 흐음~

후~ 입냄새 나니? 흐음~

인사

드리블

공기놀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잠잔다..

홈페이지 아이콘(new)

홈페이지 아이콘(up)

홈페이지 아이콘(cool)

홈페이지 아이콘(look!)

홈페이지 아이콘(what's new)

케케케케~~

도장 찍어

얼굴

얼굴

얼굴

얼굴

얼굴

얼굴

얼굴

얼굴

얼굴

얼굴

얼굴

나 닭?

나 닭?

나 닭?

나 닭?

수영 중~

모두 행복하세요~

죄송~ 공사중입니다..

천사의 화살

나팔

마법의 봉~

마법의 봉~

 

치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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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annerist > [퍼온글] 20040430_1

 

똘스또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오로지 아버지를 위해서 산 책이다.

지난 주, 서점에 다녀왔다고 하니 아버지가 이 책 이야기를 꺼내셨다. 때마침 나도 서점에서 이 책을 자세히 보고 왔던 터에 두어시간을 톨스토이에 대해서, 그리고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 책은 당신에게 선물하라고 하셨다. 나는 어버이날 선물로 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샀다.

내 유년 속의 아버지는 늘 읽을 거리를 들고 계신 분이셨다. 책, 신문, 하다못해 어린 내가 읽는 동화책이라도, 내 일기장이라도 읽고 계셨다. 손에 읽을 것이 없을 때는 펜을 들고 계셨다. 신문이나, 노트에 어린 내가 알아볼 수 없는 어려운 한자로 낙서를 하시거나, 그림을 그리시거나 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그 습관은 지금도 똑같다.

아버지는 토목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었고, 그랬으므로 늘 지방 근무를 하셨고,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주말에나 집에 계시는 분이셨다. 그 덕분에 나는 아버지와 필담을 나누는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는 집으로, 가끔 학교로도 편지를 띄우셨고, 언젠가는 회사로 보내신 적도 있으셨다. 지금도 아버지의 서랍 속에는 어린 내가 보낸 편지 뭉치가 있듯이 내 서랍에는 아버지가 지금까지 보내신 편지가 쌓여있다. 30여년동안 바뀌지 않은 아버지의 필체, 그리고 아버지의 만연체 문장, 늘 편지의 말미에는 더디더라도 제 길을 잃지 말아라,라는 경구가 적혀 있던.

짧은 스물아홉해 동안 내가 몸소 겪은 실패는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대학입시였고, 또 한 번은 최근의 일이다. 나는 두 개의 학번을 가지고 있는데, 그 첫 학교를 아버지가 무척 탐탁치 않게 여기셨다. 나중에야 편지에 쓰셨지만, 그건 자신의 컴플렉스에 대한 열등감이었다고 고백하셨다. 여하튼, 두 번째 학교에 들어가야 했는데, 그 학교마저도 아버지의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학교가 아니었다. 나는 그 때 장문의 편지와 함께 [좀머씨이야기]를 소포로 보내드렸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정말 솔직한 고백과 함께, 실망을 드렸지만 이것밖에는 안되는 자식을 인정해달라는, 스물둘의 치기어린 감정들의 나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 후로 나에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묵묵히 바라봐주시는 협조자가 되어 주셨다. 가끔은 너무 혹독하게 객관적 입장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가끔은 연민으로 내 길에 대해서 말해주시기도 하지만, 그런 이해의 시작을 만들어준 계기가 그 책이었다고 나는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책은 이제 다시 내 책장에 꽂혀 있다. 어쩌면 두번째 학교도 내 인생의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슬프거나 억울하지 않다. 후회도 없다. 그건 아마도 아버지로부터 받은 얼마간의 인정(認定)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눈물을 본 것은, 아버지의 통곡을 본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숨이 넘어가도록 우는 나를 안아주시던 아버지의 뜨거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식의 실패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그 깊이에 대해서 나는 아직 알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대신 아프고 싶으신 마음, 감내해야 한다면 당신이 그 값을 치루고 싶어하시는 마음, 목숨이라도, 혹은 그 어떤 것이라도 당신이 자식대신 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읽었을 때, 그 깊이를 보았을 때, 나의 실패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가벼움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극복했다. 아니, 극복하려고 한다. 그것은 사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아버지의 눈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내가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 가늠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오늘 아버지 생각을 조금 많이 했다.

딸아이에게 깜짝선물을 하시기를 좋아하는 낭만적인 아버지, 그 덕에 나의 모든 액세서리는 모두 아버지가 선물해주신 것들이어서 엄마의 질투를 받으시는 아버지, 딸아이에게 책을 사주시기를 좋아하는 아버지, 그래도 딸아이가 건넨 책을 읽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밤을 새워 책을 읽으시는 아버지, 가끔은 딸아이를 약올려 밤새 치열하게 문학관에 대한 이견을 내세우는 대화를 즐기시는 아버지, 딸아이가 밤새 써 놓은 글의 파지들을 몰래 모아두고 읽으시는 아버지, 역사와 지리에 대해서 당신보다 모른다고 딸아이를 구박하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평생 이공계일을 하셨어도 문학적 감수성이 탁월하셔서 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아버지, 작가나 학자가 되었으면 더 훌륭한 인생을 꾸리셨을지도 모르는 아버지, 정년퇴직을 하시면 다시 대학에 들어가 철학공부를 하고 싶어하시는 아버지, 자신의 아비를 닮지 않으려고 평생을 이 악물고 자신과의 싸움을 하시는 아버지, 한 남자로서의 아버지,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아버지, 두 자식의 아버지, 쉰다섯의 아버지, 이제 늙으신 아버지, 나를 만든 아버지.

책을 사들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아버지. 얼굴 못 뵈고 나선다고 말하니, 아버지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엄마 걱정하지 않게 하라고 짐짓 밝은 목소리로 말씀 하신다. 나는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가 그만 말았다. 조심해서 올라오시라고, 저도 잘 다녀올게요, 나도 밝은 목소리를 전했다.

오늘밤은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얼마전부터 시작한 일에 대한 이야기, 그곳에서 내가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서른 생일을 앞둔 딸아이의 응석과 정리되지 않는 두서없는 일상들이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건강하게 잘 아물고 있다고, 그러니 조금 안도하셔도 된다고. 아버지가 늘 말씀하신대로, 더딘 걸음에 너무 많이 흔들리지 않겠다는 말도 건네야 겠다.  어쩌면 어줍잖게나마 이제서야 인생의 한 걸음을 디디고 있는 중이라고, 그 걸음을 올곧이 응시하게 되었다고도 적을지 모르겠다. 이제는 예전보다 조금 큰 글씨로, 조금 더 또박또박하게 쓴 글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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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의 죽음
원고 쓰고 막 자려다 김선일씨 죽음에 관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착잡함에 오늘도 다시 밤을 새는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희망적 관측이 흘러나와 기대를 걸었으나, 그 희망은 무참히 깨졌습니다. 가장 우려 했던 최악의 사태가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비디오를 생각해 보십시요. 대한민국의 한 국민이 처절한 몸짓으로 절규하며 국가에 자신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 호소에 귀를 막고 국가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추가파병에 변함 없다."

이라크 전쟁은 우리의 '안보'와 아무 상관이 없는 전쟁입니다. 대한민국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지 않는다고 우리의 생명이 더 위험해지는 것도 아니고, 군대를 보낸다고 우리의 생명이 더 안전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 외려 그 반대지요. 군대를 보내서 이미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왔습니다. 이것을 저들은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안보'라고 부릅니다.

김선일씨가 납치된 것은 지난 17일이라고 합니다. 그 전에 납치가 이루어졌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동안 파병 준비에 바빴던 노무현 정권이 자국민이 피납된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답니다. 미국도 이 사실을 한국 정부에 통보를 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니, 통보를 해줬는데 우리 정부가 추가파병을 발표하기 위해 일부러 모른 척 했다는 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게 저들이 말하는 '안보'입니다.  

정권은 김선일씨를 납치한 사람들의 정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약속대로 김선일씨를 잔혹하게 살해함으로써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드러냈습니다. 그 와중에도 정권에서는 무슨 자신감에선지 아주 신속하게(!) 파병 원칙을 재확인하고, 이라크의 서희, 제마 부대가 얼마나 cool하게 활동하는지 홍보할 생각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이라면 미국에 협조하는 한국군이 이라크 사람들 돕는 것을 고운 눈으로 보겠습니까?

2.

김선일씨가 납치당했는데도 어제 광화문에 모인 사람은 고작 2천에 불과했습니다. 선거법 위반 발언하다 탄핵 당한 노무현을 구하자고 수만이 모여든 반면, 국가의 부당한 파병으로 생명에 위험에 처한 김선일씨를 구하는 자리에는 고작 2천이 모였습니다. 그 많던 촛불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요? 노무현이 아니라 이회창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면, 아마 거리는 파병반대의 물결로 넘쳐났을 것입니다. 이게 정치의식입니까? 이게 민주주의입니까?

도대체 이런 전쟁에 반대하고, 파병을 결정한 책임자들을 비판하는 것도 죄가 됩니까? 소위 노빠들의 극성 때문에 파병반대 얘기하는 것도 '모험'이 되어버렸습니다. 파병에는 반대해도, 그 결정을 내린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파병 결정해놓고, 비난도 받기 싫다는 겁니까? 파병을 하되 비난은 받기 싫으면 정권을 한나라당에 넘길 일입니다. 그럼 우리의 비판은 한나라당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저 역시 원칙적인 평화주의자는 아닌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프간 전쟁의 경우 9.11로 3천명의 무고한 시민이 희생당했고, 그 범죄를 저지른 빈 라덴이 아프간에 있었고, 아프간 정부는 그의 신병 인도를 거부했고, 그 전쟁은 유엔의 승인을 받았고, 유럽의 여러 나라를 포함해 다국적군이 참전을 했습니다. 이런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이해를 해 줄 여지가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그 정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다릅니다. 후세인과 알카에다는 아무 연관이 없고,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었고, 그래서 유엔의 승인을 받지 못 했고, 누가 봐도 명백한 침략전쟁입니다. 게다가 무차별한 미군의 사격과 폭격으로 인해 수많은 이라크 민간인들이 희생당했고, 포로로 잡힌 이라크의 군인들은 감옥에서 짐승 취급을 당했습니다. 이런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범죄'입니다. 왜 이런 범죄적인 전쟁에 한국군이 참여를 해야 하는지, 누가 제게 납득할 만한 이유 좀 대 주세요.

3.

김선일씨를 죽인 자들은 해방투사들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들입니다.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다는 점에서 부시와 똑같은 전쟁 범죄자들입니다. 그들은 규탄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파병할 경우 그들이 파병국 국민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파병을 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의 기본임무를 져버리는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무책임한 일을 청와대에 앉은 분들이 '안보'라는 이름으로 져질렀습니다.

파병을 할 경우, 이와 유사한 일은 앞으로 계속 벌어질 것입니다. 적어도 파병 때문에 이라크와 그 주변 아랍국에 사는 우리 교민들, 거기서 활동을 하는 우리 상사원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졌습니다. 이게 현 정권의 '안보' 정책입니다. 그렇게 제 나라 국민을 위험에 빠뜨려놓고,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안전해졌을까요? 김선일씨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기 삶에 더 안정감을 느끼는 분들 계시면 한번 나와 보세요.

김선일씨가 당한 비극은 언제라도 '나'의 불행, 내 가족의 불행, 내 친구의 불행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김선일씨의 부모도 파병에 찬성했다지 않습니까? 설마 자기 자식이 거기에 희생당할 것이라 꿈앤들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저마다 다 그건 남의 일이라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불행은 불행하게도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안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희생자입니다.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김선일입니다.

"한 사람 잡혀간다고 파병철회하는 나라 있냐?" 이게 정부여당의 일반적인 분위기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한나라당 애들이야 원래 그런 애들이라고 치고, '개혁'을 외치는 정부여당까지도 이런 무서운 생각을 서슴없이 내뱉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이런 분들에게, 어떻게 이런 나라에 우리의 생명을 맡겨놓을 수 있습니까? 파쇼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전체주의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납치된 상황에서 버젓이 저런 발언할 수 있는 저 대담함, 저런 끔찍한 발언을 허용하는 우리 사회의 무감함, 그게 전체주의입니다.

4.

미국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극단적인 입장을 배격해야 합니다. 하나는 NL류의 극단적인 반미 전민항쟁론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이익이 곧 우리의 이익이라 강변하는 극단적인 친미주의입니다. '한미동맹'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예, 중요하지요. 하지만 '동맹'이란 무엇일까요? 미국이 하자는 대로 간까지 빼주는 게 과연 '동맹'일까요? 그것은 '동맹'이 아니라 주종관계입니다.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노무현 대통령에게요? 아니지요. 국군통수권은 국군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권한을 누가 갖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권한은 부시가 갖고 있습니다. 부시는 대한민국 국군을 아무 데나 갖다 박을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왜? 노무현 정권이 부시에게 국군통수권을 양도했기 때문입니다. 주권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자기의 기본적 직무를 유기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조차 부시 정권이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해쳤다"는 비난이 나오는 판에, 제 나라 국익을 져버리고 진정한 동맹관계를 해치는 부시의 깽판에 장단 맞춰 춤이나 추는 게 과연 '동맹'입니까? 이것은 한 마디로 무능함과 나태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겁니까? 제 나라 국민이 이국땅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태를 보고도 여전히 부시 눈치나 봐야 합니까? 이 나라에 도대체 외교전략이 있는 겁니까? 안보전략이 있는 겁니까?

파병철회해야 합니다.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라는 한국에서 파병을 거부할 경우, 부시 정권은 막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대선에서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당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우리 역시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한미동맹' 좋다, 하지만 그 방식은 너희들 멋대로 정하게 놔둘 수 없다. 우리도 너희를 날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부시는 미국이 아닙니다. 미국의 절반도 채 안 됩니다.

5.

김선일씨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울부짖던 그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는 우리에게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호소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점에 관한 한 우리 모두가 공범입니다. 파병을 결정한 이들은 주범이고, 파병을 묵인한 이들은 종법이고, 파병을 반대하되 힘있게 밀어내지 못한 모든 이들은 넓은 의미의 공범입니다. 앞으로 이런 비극적인 사건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파병반대, 한국군철수를 위한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 나라는 정치가 사람들의 의식을 개발시키는 게 아니라, 외려 사람들의 비판적 의식을 마비시킵니다. 선거를 앞두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중요한 사건이 터져도 사람들이 안 모입니다. 특정 정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면 촛불도 켜지지 않습니다. 이게 그 잘난 인터넷 민주주의의 수준입니다. 어제 모인 2천 명, 그게 이 나라 평화주의 역량의 전부입니다. 바로 그래서 이런 비극적인 일을 막을 수 없는 것이지요.

박노자가 그랬던가요?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서 다행이라고. 그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끔찍할 뻔 했다고. 배울 만큼 배웠다는 지식인이라는 분의 정치의식이 이렇게 나이브합니다. 차라리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한국인 특유의 정치의식이 발동하여 아마 지금쯤 거리가 파병반대의 물결로 차고 넘피고 있을 겁니다. 아무리 정치에 환장을 해도 그렇지, 어떻게 시민들이 저토록 완벽하게 현실의 정당세력에 포섭될 수가 있을까요? 이럴 때는 정말 절망적인 생각이 듭니다.

성급하게 '희망'을 말하는 사람은 아직 절망의 끝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희망이 없어도 저항하기를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쉽게 '열정'에 빠지는 사람은 아직 현실의 냉혹함을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열정에 들떠 어떤 일을 하기는 쉽습니다. 그것은 창조력이 고갈된 가수가 대마초를 피고, 한계에 도달한 운동선수가 약물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진정한 가수는 대마초 없이도 상상력을 가질 수 있고, 진정한 선수는 약물 없이도 체력의 한계를 극복합니다. 진정한 저항은 섣부른 희망이나 뜨거운 열정 없이, 현실의 냉정함을 보고 존재의 밑바닥에서 힘을 끌어올리는 용기에서 시작합니다.

파병반대, 국군철수. 여당과 야당이 동조하고, 조중동의 지원을 받고, 김선일씨의 운명을 제 것으로 느끼지 못하는 수많은 무감함의 덩어리들에 맞서 싸우는 싸움입니다. 엄두가 안 나지요. 어제 MBC 저녁뉴스에 파병반대 움직임은 테러범들에게 놀아나는 것이라는 뉘앙스의 얘기를 하더군요. 그것을 들으며 얼마나 끔찍했던지. 하지만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진보의 전선은 열우당과 한나라당 사이도 아니고, MBC와 조선일보 사이도 아니고, 한겨례와 조선일보 사이도 아니고, 바로 거기에 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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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하루살이 > 나를 만드는 건 기억, 사람을 만드는 건 행동

기억에 대한 영화는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공각기동대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기억의 집합이라는 것. 그래서 기억이 바뀐다면, 또는 조작되어진다면 나 또한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찾아오는 혼돈. 토탈리콜에서도 기억은 나를 구성하는 중심요소다. 이것 뿐이랴. 최근의 영화 메멘토 등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기억에 매달리는 내용의 영화들은 자주 등장한다. 특히 필립 K 딕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내가 나의 기억을 갖고 있는다는 것이 소중한 것 만큼 내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 또한 소중하지 않을까? 기계들, 특히 첨단의 기계 사이보그들 또한 그들만의 기억을 갖고 있다면 비록 그것이 조작되었을지라도 기억을 통째로 지니고 있다면 그와 나 사이에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내가 나 임을 뛰어넘어 내가 사람일 수 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블레이드 러너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나라는 자아, 그 거친 울타리를 뛰어넘어, 사회나 제도 등이 만들어 놓은 높은 담을 뛰어넘어 내가 사람임을 또는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바로 행동이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는 것. 이 세상을 떠나버리거나 또는 변혁을 꿈꾸는 등의 행동을 취했을 때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런 의미에서 기억을 가지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바로 살아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사이보그라 할지라도 말이다. 주어진대로 살아가는, 그리고 인생이라는 궤도에서 만들어지는 추억만을 씹으며 사는 사람들은 비록 자신이 사람이라고 여길지라도 그는 로봇과 다름없는 기억덩어리의 유기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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