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퍼온글] 20040430_1

 

똘스또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오로지 아버지를 위해서 산 책이다.

지난 주, 서점에 다녀왔다고 하니 아버지가 이 책 이야기를 꺼내셨다. 때마침 나도 서점에서 이 책을 자세히 보고 왔던 터에 두어시간을 톨스토이에 대해서, 그리고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 책은 당신에게 선물하라고 하셨다. 나는 어버이날 선물로 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샀다.

내 유년 속의 아버지는 늘 읽을 거리를 들고 계신 분이셨다. 책, 신문, 하다못해 어린 내가 읽는 동화책이라도, 내 일기장이라도 읽고 계셨다. 손에 읽을 것이 없을 때는 펜을 들고 계셨다. 신문이나, 노트에 어린 내가 알아볼 수 없는 어려운 한자로 낙서를 하시거나, 그림을 그리시거나 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그 습관은 지금도 똑같다.

아버지는 토목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었고, 그랬으므로 늘 지방 근무를 하셨고,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주말에나 집에 계시는 분이셨다. 그 덕분에 나는 아버지와 필담을 나누는 유년기를 보냈다. 아버지는 집으로, 가끔 학교로도 편지를 띄우셨고, 언젠가는 회사로 보내신 적도 있으셨다. 지금도 아버지의 서랍 속에는 어린 내가 보낸 편지 뭉치가 있듯이 내 서랍에는 아버지가 지금까지 보내신 편지가 쌓여있다. 30여년동안 바뀌지 않은 아버지의 필체, 그리고 아버지의 만연체 문장, 늘 편지의 말미에는 더디더라도 제 길을 잃지 말아라,라는 경구가 적혀 있던.

짧은 스물아홉해 동안 내가 몸소 겪은 실패는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대학입시였고, 또 한 번은 최근의 일이다. 나는 두 개의 학번을 가지고 있는데, 그 첫 학교를 아버지가 무척 탐탁치 않게 여기셨다. 나중에야 편지에 쓰셨지만, 그건 자신의 컴플렉스에 대한 열등감이었다고 고백하셨다. 여하튼, 두 번째 학교에 들어가야 했는데, 그 학교마저도 아버지의 기대치를 만족시키는 학교가 아니었다. 나는 그 때 장문의 편지와 함께 [좀머씨이야기]를 소포로 보내드렸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정말 솔직한 고백과 함께, 실망을 드렸지만 이것밖에는 안되는 자식을 인정해달라는, 스물둘의 치기어린 감정들의 나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그 후로 나에게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묵묵히 바라봐주시는 협조자가 되어 주셨다. 가끔은 너무 혹독하게 객관적 입장을 보여주시기도 하고, 가끔은 연민으로 내 길에 대해서 말해주시기도 하지만, 그런 이해의 시작을 만들어준 계기가 그 책이었다고 나는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책은 이제 다시 내 책장에 꽂혀 있다. 어쩌면 두번째 학교도 내 인생의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슬프거나 억울하지 않다. 후회도 없다. 그건 아마도 아버지로부터 받은 얼마간의 인정(認定)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눈물을 본 것은, 아버지의 통곡을 본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숨이 넘어가도록 우는 나를 안아주시던 아버지의 뜨거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자식의 실패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 그 깊이에 대해서 나는 아직 알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대신 아프고 싶으신 마음, 감내해야 한다면 당신이 그 값을 치루고 싶어하시는 마음, 목숨이라도, 혹은 그 어떤 것이라도 당신이 자식대신 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읽었을 때, 그 깊이를 보았을 때, 나의 실패따위는 아무 것도 아닌 가벼움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극복했다. 아니, 극복하려고 한다. 그것은 사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아버지의 눈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모가 되어보지 못한 내가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 가늠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오늘 아버지 생각을 조금 많이 했다.

딸아이에게 깜짝선물을 하시기를 좋아하는 낭만적인 아버지, 그 덕에 나의 모든 액세서리는 모두 아버지가 선물해주신 것들이어서 엄마의 질투를 받으시는 아버지, 딸아이에게 책을 사주시기를 좋아하는 아버지, 그래도 딸아이가 건넨 책을 읽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밤을 새워 책을 읽으시는 아버지, 가끔은 딸아이를 약올려 밤새 치열하게 문학관에 대한 이견을 내세우는 대화를 즐기시는 아버지, 딸아이가 밤새 써 놓은 글의 파지들을 몰래 모아두고 읽으시는 아버지, 역사와 지리에 대해서 당신보다 모른다고 딸아이를 구박하기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평생 이공계일을 하셨어도 문학적 감수성이 탁월하셔서 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아버지, 작가나 학자가 되었으면 더 훌륭한 인생을 꾸리셨을지도 모르는 아버지, 정년퇴직을 하시면 다시 대학에 들어가 철학공부를 하고 싶어하시는 아버지, 자신의 아비를 닮지 않으려고 평생을 이 악물고 자신과의 싸움을 하시는 아버지, 한 남자로서의 아버지,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아버지, 두 자식의 아버지, 쉰다섯의 아버지, 이제 늙으신 아버지, 나를 만든 아버지.

책을 사들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아버지. 얼굴 못 뵈고 나선다고 말하니, 아버지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엄마 걱정하지 않게 하라고 짐짓 밝은 목소리로 말씀 하신다. 나는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가 그만 말았다. 조심해서 올라오시라고, 저도 잘 다녀올게요, 나도 밝은 목소리를 전했다.

오늘밤은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얼마전부터 시작한 일에 대한 이야기, 그곳에서 내가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서른 생일을 앞둔 딸아이의 응석과 정리되지 않는 두서없는 일상들이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건강하게 잘 아물고 있다고, 그러니 조금 안도하셔도 된다고. 아버지가 늘 말씀하신대로, 더딘 걸음에 너무 많이 흔들리지 않겠다는 말도 건네야 겠다.  어쩌면 어줍잖게나마 이제서야 인생의 한 걸음을 디디고 있는 중이라고, 그 걸음을 올곧이 응시하게 되었다고도 적을지 모르겠다. 이제는 예전보다 조금 큰 글씨로, 조금 더 또박또박하게 쓴 글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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