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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인문/과학/사회 신간 추천














1. 『혐오에서 인류애로』 - 마사 C. 누스바움 / 강동혁 옮김 / 뿌리와이파리


    『혐오와 수치심(원제 : Hiding from Humanity)』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마사는 마이클 샌델을 배우다가 미국 법철학에 관심이 생겨 찾아보던 차에 알게 됐다. 마사의 그 책은 미국에서 2004년에 출간됐는데, 찾아보니 국내에는 작년에 번역 소개됐다. 10년이 넘었으니, 그녀의 영향력에 비하면 굉장히 늦은 거다. 생각해봤다. 우리 사회의 보수적 장막을 출판계가 의식하고 있던 건 아닐까? 어쨌든 그쪽은 책을 '파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뭔가 주저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근 몇 년 사이에 소수와 혐오라는 단어의 멀어지고 가까움, 지그문트 바우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개념의 '유동'이 유난했다. SNS로 논의들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소수의 복권은 여태 한 번도 없던 일이지만, 희망을 갖는 소수들이 있다. 나는 나를 소수라 생각하지 않는다. 요컨대 소수와 다수의 구별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이게 나의 함정이다. 감정의 결여. 마사는 그걸 경계한다. 법학자로서 감정에 주목한다. 그 감정이 없으면 그녀가 말하는 인류애로 나아갈 수 없다. 『혐오에서 인류애로(원제 : From Disgust to Humanity, 미국 2010년 출간 / 옥스포드 대학교)』는 가장 날이 선 책이라 한다. 그것도 김영란 前대법관이 그런 추천을 했다. 한참 사사키를 읽으며, 르장드르와 푸코를 읽으며 언어인 법이 지닌 힘을 수많은 사례들로 확인했다.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말. 그것의 감정을 생각해봐야 한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마사의 입문서로 읽어보고 싶다. 누구에게 추천하기에는, 부끄러워지는 책이다.

















2. 『덕후감』 - 김성윤 / 북인더갭


    그렇다. 나는 덕후다. 톨킨 덕후다. Banjion.com이라는 LOTRO(The Lord of the Rings Online) 국내유저 사이트에 가면 내가 번역해놓은 게임 스토리들이 있다. 게시물은 1천여 개가 넘는다. 덕후심에 한 번 자랑해본다. 그런 '덕질'을 한 사람은 우리나라 온라인 상에 나밖에 없다. 톨킨 원서들은 스무 권 가량 있다. 앞으로 네 권을 더 사야 한다. 영화 《호빗》 3부작이 끝나자 한동안 우울했다. '중간계' 6부작 확장판 영화를 다 번역해 가족들과 한동안 계속 돌려봤다. 언젠가 톨킨이 그리지 않은 중간계의 다른 이야기를 2차 창작으로 한 편 멋지게 쓰고 싶다는 생각에 청사진을 짜놓기도 했다. 단어 암기는 최악인 내가 톨킨 세계관에 나오는 수많은 단어들을 암기한다. 어느 정도 번역을 마치면 요정어(신다린)를 공부할 생각이다... 이런 사람을, 나 같은 사람을 덕후라 한다. 그리고 나는 덕후가 창조의 토양을 다져간다고 생각한다. 문학과 철학, 인문학, 과학, 미술 등을 공부하면서 한편으로는 고급과 대중 사이의 거리를 줄이는 작업을 꾸준히 한다. 덕질로 연마한다. 덕후들에게 오해를 갖지 않는 나는,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얼마나 축복 받은 사람이란 말인가! 나는 흔히 '구조'라 부르며 쉽게 가르곤 하는 두 '구조' 사이의 혼탁한 지점을 안다. 그래도 이 덕질을 10년은 훨씬 넘게 해왔으니, 뭔가가 보일 때도 됐고. 대중문화를 두고 비생산적이라 일축하는 고고한 이들의 논리는 사절이다. 서재 한 구석에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원제 : The Dictionary of Imaginary Places)』이라는 대단히 두꺼운 책이 한 권 있다. 그곳이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나는 분명 어슐러 르귄파다. 『덕후감』이라니! 나를 위한 책이 아닌가!



















3. 『글쓰는 여자의 공간』 - 타니아 슐리 / 남기철 옮김 / 이봄


    네이버에서 2~3년 간 미술 블로그를 할 때, 내 공부글과 미술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준 이웃의 대부분이 여자였다. 낯선 경험이었다. 나보다 많은 경험을, 그리고 나는 결코 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할 경험을 지닌 그녀들의 댓글과 반응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새벽이 내리고 목성이 희뿌연 달을 좇아 아파트 머리 위로 떠오를 때면, 옛 미술 공부의 추억이 떠올라 대가들의 그림을 펼쳐볼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여자의 공간'이다. 내게 그것은 새벽과 같다. 기억의 절차고 뭐고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반드시 찾아오는 여명 말이다. 남자인 내게. 위험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여자는 신비하다. 그래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이다. 생각했다. 블로그에 찾아오는 분들과 작은 온라인 카페로 소통하던 차에 현대미술의 여성 작가 100인을 추려 소개해드리면 좋겠다, 싶었다. 반응은 좋았다. "저는 소니아 들로네가 참 멋져 보여요.", "아이더 애플브루그의 작품속의 여인의 모습이 기묘하면서도 왠지 자꾸 시선을 붙드는군요.", "트레이시 에민.. 작품 저거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ㅋㅋ". 그 기획을 연재하는 동안 나는 나에게 익어 있는 남성 위주의 미술사로는, 그 어조로는 도무지 100인의 작품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작가의 사진과 작품 하나, 짤막한 일대기 정도로 마무리했다. 지금 『여성, 미술, 사회』를 읽으면서 반쪽짜리 미술을 배웠구나, 생각한다. 이제 그 생각을 문학으로 가져간다. 얼마간 열심히 읽고 쓰는 중이니, '여자의 공간'을, '글쓰는 여자의 공간'을 들여다보고 싶다. 김애란과의 대담, 오정희와 권지예의 단편들, 여러 기억이 떠오른다. 아, 그렇다. 『글쓰는 남자의 공간』이라는 책이었다면 쳐다도 안 봤겠지. 공간. 그것은 여자와 잘 어울리는 단어다. '품'이라는 뜻이니까.


















4.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 김명남 옮김 / 창비


    동생은 SNS를 한다. 폰보다는 책이라며 그저 읽고 쓸 뿐인, 이 불성실한 오빠는 그래서 사람들이 요즘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른다. 힘들다, 힘들다, 하는 오프라인 말이 아니라, 빅데이터처럼 뭔가 한 단어에 반응해서 뻗어나가는, 헐겁고 즉각적이지만 그 나름의 진실이 묻어나는 온라인 말을 잘 모른다는 뜻이다. 민감한 온라인의 말. 동생은 지금이야말로 페미니스트 선언의 적기라고 보는 듯하다. "오빠가 어딜 가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해본 적도 없고, 아니, 공부해보긴 했는데 그건 대학 1년 차에 어떻게든 학점을 채워야 해서 한 남학우와 쭈삣쭈삣 거리며 들어가 수많은 여학우들 사이에서 낯설게 체험해본 정도고, 그 개념을 생각의 한복판에 세워둔 적이 없다. 그런 사이 얼마나 많은 오해들이 혈관에 쌓여 생각의 흐름을 막고 실핏줄들을 터뜨렸을까. 그녀/그들은 벌써 저어만큼, 저어어만큼 생각을 하고 논의를 펼쳐 행동하고 있었다. SNS에 올라온 글이라며 동생이 보여준 글들을 읽어보다 아찔했던 적이 여럿.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016년이야말로 문학과 경전의 해라고 '선포'까지 해놓은 차에 '소수'와 '여성'이라는 단어가 서재에 들어갈 줄이야. 예상 못했었다. 그만큼 급박하게 찾아온 단어다. 기회를 놓쳐 후회한 적이 많다. 삶은 강물을 주시하는 거라 생각한다. 漢詩를 읽다 유일하게 전율이 돋았던 적도, 그 강물이 흘러가면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구절의 접했을 때였고. 그런 새삼스러움이 위험하고, 나를 망치더라.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아직은 낯선 이름. 나이지리아의 유망한 그녀의 글로 한 번 만나보고 싶다. 호모 페미니우스? 호모 페미니쿠스? 이런 단어가 도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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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6-02-03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탕기님!!! 존경합니다.
요정어를 공부하실 생각이라니요???? 아아아아 요정어!!!!!
님은 진정한 덕후이십니다. ^^
친구신청했습니다. 축생이라고 퇴짜는 아니겠지요??? 호호호

탕기 2016-02-03 16:28   좋아요 0 | URL
숨겨왔던(?) 저의 덕후심을 반가워해주실 분이 알라딘에 계실 줄이야...

미야자키 하야오도 좋아합니다.
덕후까진 못 되겠지만 전편 다 보고 아트북을 사놨지요.
제게 동심이 있다면 그건 동화보다는 미야자키 덕분일 겁니다.

사람보다는 축생을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