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6년 1월 28일





    세 장의 사진으로 열린, 그리고 마담의 증언으로 닫힌 한 남자의 삶이다. 눈이 사방으로 돌아가고 수많은 회로들이 끊임없이 그의, 요조의 몸 안에서 공포의 물질들을 옮기는 기이한 장면이 보인다. 언제부터 그가 그런 아이였는지는 알 수 없다. 갖가지 추측이 있지만 상관없다. 사실 ‘언제부터’라는 말도 상관없다. 수기는 불분명하게 시작한다.


    집에서는 익살로, 학교에서는 장난꾸러기이자 그럭저럭 공부 잘 하는 아이로 인기를 얻는다. 순전히 인간의 분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타인에게 웃음을 주는 것은 곧 속이는 것. 나 역시 인간이 두렵다. 일상에서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인간군(群)을 생각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공포에 가깝다. 아니면 무시무시한 상상 즈음이려나? 그런데 요조는 그게 자기 자신을 극도로 해치는 지경까지 나아갔다. 화학 물질의 비정상적 활성화.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는 요조의 여러 고백으로 판단하기 어려워지지만 그가 유독 예민한 것은 사실이다. 그 예민함이 때론 진실을 보게 한다.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량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27쪽)


    그걸 보고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하는 아이다. 그런 면이 훗날 여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였을 거라 말하지만, 그 주장은 다소 의심스럽다. 심지어 그가 잘 생겼다는 말조차 의심스럽다. 아니, 잘 생기긴 했지만 사진 속 그는 인간처럼 생기지 않았다니까. 여하튼 인간 사이를 오고 가는 미묘한 기류와 그것의 망각과, 이런 것들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그의 병증은 수시로 드러나고, 이 사람을 신뢰해도 되는가, 하는 질문 탓에 나는 수기를 읽는 내내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   *   *




    타향에 오니 연기가 더욱 쉬워졌지만 문제는 그 연기를 눈치 채는 인간들이 있더라는 것이었다. 다케이치. “부러 그랬지?”라는 그의 말 이후로 불안과 공포가 밀려왔다. 다행이도 요조는 소심하다. 죽이진 못하고 친구가 되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첫 목표가 생겼다. 고흐의 그림을 보더니 “나도 그릴 거야. 도깨비 그림을 그릴 거야. 지옥의 말을 그릴 거야.”(40쪽)라고 선언한다. 인간군상을 그리겠다는 어린 의지가 완성한 그림은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다른 의미에서 어린왕자가 스쳤다. 어른은 요조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림의 인연이 술, 담배, 창녀, 전당포, 좌익 사상으로 이어졌다. 요조가 도쿄의 바다에 잠겨버렸다. 화방에서 알게 된 여섯 살 연상의 호리키가 트렌드라며 이곳저곳을 데리고 가 거들먹거리며 소개해준다. 요조는 창녀에게서 ‘여자수행’이란 걸 한 탓에 여자들이 꼬이는 남자가 되고, 공산주의 독서회에 출입하다가 농담이 진담이 된 꼴이라더니 정말 행동대 대장이 되어 학업을 소홀히 하기까지 한다. 돈에 쪼들린다. 운동권에서 도망친 그에게 호의를 가져준 여자들은 여럿 있었다. 둘에게는 적당히 비위를 맞췄지만 긴자 카페의 여급 쓰네코는 다르다.


   쓰네코. 연상으로, 남편은 형무소에 있다. “주위에서 차가운 삭풍이 불고 낙엽만이 휘날리는 듯한, 완전히 고립된 느낌의 여자였습니다.”(61쪽) 그녀는 동류다. 불안함이 사라진다. 해방의 밤이다. 하지만 이것도 사라질 것이 아닌가. 상처 입기 전에 먼저 헤어지기로 한 요조, 이 남자는 그런 남자다. 만나지 않기로 작심 이후에도 속으로 혼자 부담스러워하고 그녀가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호리키를 대동한 만남을 계기로 (호리키가 그녀를 궁상맞은 여자로 취급했으므로) 그녀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연 그는 어떻게 했을까? 동류끼리 죽기로 한다. 놀이 수준에 지나지 않았던 그 말이 실행으로 옮겨진 결과는 참담하다. 가마쿠라 바다에서 요조는 살고, 그녀는 죽는다. (다자이의 경험과 같다.) 그녀를 위해서는 눈물을 흘리지만 차라리 죄인으로 포박 당한 기분이 좋다. 그러나 검찰청 취조 때에 한 말끔한 검사가 “진짜야?”라고 묻는 바람에 모든 것이 다시 비참해진다. 다케이치가 떠오른다.



*   *   *



    넙치(시부타)네 2층 삼 첩 짜리 방에 칩거하면서 이제는 하찮은 무명 만화가가 됐다. 갱생하라는 넙치의 말에 호리키 네로 간다고 거짓말을 해놓고 가출을 한다. 하지만 정말 호리키 네로 갈 수밖에 없다. 갈 곳이 아무 데도 없던 것이다. 그런 요조를 호리키는 한심하게 취급한다. 마침 호리키와 관계된 잡지사의 여자가 오고, 요조는 그 여자, 시즈코의 집에서 정부 같이 산다. 다섯 살 된 딸은 그를 ‘아빠’라 불러준다.


    자립하고 싶지만 갈 곳도 없다. 이 무렵 그는 ‘세상은 곧 개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인색해지기 시작한다. 자신이 주변 사람들과 조금은 비슷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으리라. 샤를 크로의 시 속 두꺼비처럼. 방해한다면 돌아가리라, 생각하면서 외박도 하고 야비한 술꾼이 된다. 달리는 열차에 석탄을 때려 붓는 기관사. 하지만 그렇게 열차가 1년을 달리고 봄이 되니 두 모녀를 놔줘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가 하느님께 기도한다. 그 요조가! 두 모녀를 행복하게 해주소서. 누가 그를 말종이라 말할 수 있나.


    떠난 그가 다시 정부 행세를 한 것은 이제 당연하게 느껴진다. 필요에 따라 뻔뻔해지고 구색 맞출 수도 있다. “어제까지의 저 자신이 애처로워서 웃고 싶어졌을 만큼 저도 세상이라고 하는 것의 실체를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99쪽) 하지만 이 말에는 거짓이 섞여 있다. 여전히 인간을 두려워하는 그의 궁색한 변명 정도로 들린다. 유일한 낙이 손님에게 술을 얻어 마시는 것, 그리고 술을 마셔야 나오는 달변으로 이야기하는 것 정도다. ‘조시 이키다(情死, 살았다)’라는 필명으로 아동 잡지에서 음란 잡지에 이르는 곳에 만화를 그려 보낸다. 루바이야트의 시구를 붙인 것은 당연하다. 마시자. 그는 마시지 않으면 볼 수 없으며, 마신다 해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대체 그는 어떤 인간의 쓸모를 갖고 있는가. 교바시 마담의 도움으로 여급 요시코와 결혼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진 그가 호리키와 함께 “같은 수준의 개”(108쪽)로 전락해 여기저기 쏘다니는 건, 열차의 석탄이 전혀 식을 기색이 없던 까닭이리라. 한참 붓다보면 자신이 붓는 지도 모르는 것처럼.


    하지만 요조도 목소리는 낸다. 희극명사니 비극명사니 반의어니 이야기를 하다 죄와 법, 선과 악의 이야기가 나오자 그 관계를 논한다. “인간이 멋대로 만들어낸 도덕”(113쪽)이라는 것이다. 그 날은 이상하리만치, 그리고 최초로 노기가 분출되었다. 당연 취기 때문이다. 여기서 눈치를 챌 수 있다.


    요조, 이 남자는 세상을 ‘죄’라는 단어로 본다. 자신의 죄가 있으므로 당당할 수 없다는 의식. 그런데 그가 언제부터 죄를 지니고 있었는가? 쓰네코가 죽고 자신만 살았을 때 팔목을 옥죄고 있던 수갑의 차가운 느낌에 대한 기억 이후로? 인간을 철저하게 속여 왔다는 그 익살의 경험 때문에? 종종 하느님을 소환하는 걸 보니, 혹 자신의 그런 기벽이 원죄와 닿아 있다고까지 생각하는 건 아닐까? 모른다. 죄가 그를 가두고 있는, 감시하고 있는 뭔가라는 건 분명하다. 그래서 요시코와 한 남자(만화 관련으로 집을 찾던 30세 전후의 상인)가 방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걸 보고도 자신은 ‘텍스트 속 남편’들과는 달리 요시코를 용서하고 자시고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 자신의 눈치를 계속 살필 수밖에 없는, 무구한 신뢰심을 지닌 요시코가 불쌍하기만 하다. 그래서 수면제를 털어 넣고 자살 기도를 했을 것이다. 3일 내내 잠만 자는 미수에 그쳤고, 그때 내뱉은 횡설수설이 그를 비극으로 몰고 가긴 했지만.


    여자 없는 곳에 가서 살 거라고? 이자가 드디어 돌았군. 아주 못 쓰게 되었어.




*   *   *





    큰 눈 내리던 날 밤, 도쿄의 어딘가에서 요조는 각혈을 한다. “여기는 어디의 샛길이지?”(123쪽)이라며 우는 그에게서, 빠져 나가고 싶은 욕망이 보인다. 하지만 항의할 수 없다. 이 세상 나의 모든 불행은 나의 죄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방자한 놈인가, 아니면 마음 약한 놈인가. 그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질문을 할 뿐, 여전히 세상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몸을 망치고, 그렇게 산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연민해준 여자는 약국 부인이었다. 다섯 살 때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못 쓰는 그녀는 남편이 술로 죽었고 의대생 아들도 같은 병으로 입원해 있다며 (시아버지도 중풍인데 아마 술 때문이었을까?) 요조에게 술 대신 차라리 모르핀을 주사하라 권한다. 차라리 그게 낫다며. 그렇게 요조는 모르핀 중독에 걸리고, “키스해줄게.”라든지 우는 척을 한다든지 해서 엄청난 빚을 지면서까지 얻어다 쓴다. 그리고 부인과 관계까지 맺는다. 모든 건 뒤늦은 후회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도 답장이 없자, 죽자고 결심한다. 그러나 마지막의 자살 시도는 애초부터 미수에 그치고 만다. 넙치의 “악마의 육감”(129쪽)이 발동했는지 호리키와 함께 둘이 찾아와서는 묻는다. 각혈했냐고. 호리키의 다정한 미소. 소름이 돋는다. 인간. 아, 인간. 둘은 요조를 정신병원에 보낸다. 드디어 돌아버린 그가 “죄인은커녕 미치광이가 되어버린 것.”(131쪽)이다.


    정신병원. 죄인이 아닌 미치광이가 된 것으로 그가 죄를 용서받았다는 느낌을 받았을까? 누구에게? 병동에 들어간 이후로 이어지는 짧은 문장들에는 회한이라든가 억울함이라든가 하는 분위기는 없다. 인간실격.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지도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것은 수기이니까.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난 후에 적은 것이니까. 큰형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려주고는 시골에서 요양할 것을 권한다. 아버지가 죽었다. 고뇌의 항아리가 비었다. 그러므로 고뇌할 능력도 없어졌다. 요조의 삶을 어렸을 때부터 완전히 꼬아버린 그 ‘능력’이 정신병원에 들어오자 사라졌다.


    지명 없는 곳의 허름한 시골집에서 60세 전후된 못 생긴 식모 테쓰와 살면서 그는 행복도 불행도 느끼지 못한다. 나이는 27세. 겉모습은 40이 넘은 듯. 수기의 말미에 이를수록 모든 건 다 지나가더라는 늙은이의 고백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맥이 없다. 그렇게 끝나는 이야기다.



*   *   *



    얼마간 나는 요조에게 깜빡 속아버린 것은 아닌가 싶었다. 후기는 서문에서 언급된 석 장의 사진과 세 권의 공책(요조의 수기)을 입수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나’의 이야기다. 짧다. 이 이야기는 요조를 일컬어 “하느님 같이 착한 아이였어요.”(138쪽)라고 술회하는 마담의 증언으로 끝난다. 첫 사진 속 섬뜩한 아이, 두 번째 사진 속의 ‘미남이나 사람 같지 않은’, 그리하여 “하얀 종이 한 장처럼 그렇게 웃고”(10~11쪽) 있는 남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길하며 특징이 없고 기묘한,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남자. ‘나’가 보기에 그런 요조는 수기 속에서 의외로 사람들에게 연민을 받거나 동정을 얻는다. 여자들뿐만 아니라, 술집 손님들도 그에게 술을 사줬으니까. ‘나’는 수기를 있는 그대로 잡지에 실을 거라면서도 이 수기에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고 살짝 언급하는데, 이 부분을 거듭 읽다가 걸려 넘어진 것이다. 이 수기에 담긴 내용은 과연 사실일까? 이 글도 익살일까? 익살이야말로 과장이니까.


    하지만 다시 읽을까 생각하던 차에 책을 덮었다. 인심 써서 반쯤 속아준다고 하자. 그래도 진실과 허구가 그렇게 정교하게 나뉘진 않겠지만, 요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으니. 소설이 허구고 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소설이 90년까지는 다자이의 유서로 여겨졌다는 이야기와도 역시 아무런 상관없다. 속이는 것과 죄와 비위와 고립과 연민과, 그런 것들이 ‘요조’라는 하나의 쇠꼬챙이에 한 줄로 꽂혀서는 벽에 가서 콱 박히는 모습이 보인 까닭이다.


    다자이는 5월 12일 이 소설을 탈고하고 한 달 후 애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자살시도를 했다. 이번에는 성공적이었다. 사체는 일주일 뒤인 19일, 그의 생일에 발견됐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6-01-29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실격> 영화평은 별론데, 저는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손에 꼽을 명장면이 많죠. 말은 이렇게 하고 보고 안 보고는 탕기님 선택~
이미지도 비슷하고(그 유명한 사진 포즈도 흡사!) 산 시기도 비슷했던 김수영과 다자이 오사무를 어설프게 추적하다가 김수영이 일본 유학 중에 동경에서 그들은 모르는 채 스쳐갔을 수도 있겠구나 했죠.
이상의 수기식 소설, 산문도 다자이 오사무와 비슷하단 생각을 많이 했고요.
일본어와 일본식 교육의 영향도 있었을까요.
무엇보다도 사람은 정말 개인이 아니라 시대를 산다고. 히트텍과 무상급식은 지금 사는 사람의 어떤 기억이 되겠죠. 따뜻한 날들 보내시길 바라며....

탕기 2016-01-29 12:47   좋아요 0 | URL
언제 한 번 봐야겠군요!
다자이의 얼굴을 계속 요조에게 덧씌우며 읽어서,굳이 영화를 봐야겠느냐는 고집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영화는 또 다르니까요. 추천 고맙습니다 ^^
밖에 나가기 꺼려지는 하늘이지만 agalma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2016-02-02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2 1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