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1일



  당신은 붉은빛과 푸른빛이 멀어지는 광경을 보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당신은 누군가가 이별하는 모습을 보면 머릿속에 무엇이 그려지는가?



  그것이 둑 옆에서의 마지막 키스였소—

  지나간 일.

  Das war ein letzter Kuss am Kai -

  vorbei.


  강에서 떠나 바다로 당신은 가버렸군요.

  Stromabwärts und dem Meere zu fährst du.


  붉은빛과 푸른빛은

  멀어졌습니다……

  Ein rotes und ein grünes Licht

  entfernen sich.



  이것은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별>이라는 시의 전문(번역 김주연)이다. 서로 다른 두 빛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우리의 머릿속에 그려진다. 멀어지는 빛 사이로 상상을 뛰어넘는, 그리하여 우리도 때론 감당하기 힘든 공허가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이별은 (그리고 상실은) 진실로 공허에 가까우리라. 그 안은 아무 것도 없어 어두컴컴하다. 그 안에는 빛이 가득해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때도 있다. 또한 이상하리만치 수많은 것들이 자리를 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상태가 어떻든 간에, 우린 그 어떤 것도 잡을 수가 없다.


  이별은 촉감의 상실이다. 맞잡은 손 사이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과 온기의 세계가 멸망하는 것이고, 상대의 입술을 느낄 수 없어 나의 입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다. 우릴 억울하게 만드는 건,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이 사라지지도, 멸망하지도, 없어지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공허는 우리를 추억 속으로 몰아넣어 무형을 만지게 하며, 이윽고 우리에게 “네가 만진 것은 아무 것도 아님이었다.”라고 선언한다. 우린 낮에도 갑자기 꿈에서 깨며, 그와 반대로 밤에는 한숨도 잘 수가 없다.


  그러나 이토록 강철로 된 바늘과 같은 나날의 감정들이 ‘붉은빛’과 ‘푸른빛’이라는 두 단어를 만나 아름다운 빛의 잔상을 만든다. 아름다움의 세계가 슬픔의 세계보다 훨씬 거대하기에 우리의 상실이 마치 여신과도 같은 저 바깥 세계의 자태 속에 오목하게 들어가 있는 형상이 된다. 당신이 여물은 상실을 한 입 베어 물어 막 울기 시작한 무렵부터 당신이 상실의 그림자 뒷면으로 건너가 조용히 앉을 때까지, 우리는 그 긴 파노라마를 앞뒤로 감아보며 함께 울고, 그리고 아름다움을 찾는다.


  상실을 상실에 그치게 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제 영역 안에서만 머무르게 하지 않는 것. 두 세계 사이의 세포막 사이로 감정의 입자들을 자유로이 왕래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볼프강이 한 일이리라. 상실에서 아름다움으로, 아름다움에서 상실로 이동하는 어떤 작용.


  둑 옆에서, 우리의 마지막 키스는 항상 그 장소를 명확하게 기억하도록 한다. 상실이 돌이킬 수 없다면 더욱 그렇다. 강에서 바다로 떠난 그/그녀는 그 넓디넓은 세계에서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나의 것이, 너의 것이, 혹은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그 누구의 것도 될 수 있고(혹은 그 누구의 것도 될 수 없고), 우리에게 묶여 있던 존재의 탈출은 무한한 자유의 가능성 속에(혹은 단 하나의 필연 속에) 놓이게 된다. 바다는 세계의 크기일 수도, 혹은 상실의 크기일 수도 있다.


  바다는 우주가 되고, 붉은빛(노을)과 푸른빛(바다)이 멀어지며 진짜 우주가 밤하늘로 내려온다. 상실과 밤, 밤과 상실. 이별과 별자리, 별자리와 이별.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그러나 공허 속에서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에 대한 유일한 단서, 실마리. 그렇게 우리는 공허를 실체로 풀어내지 않으면 안 되며, 그렇게 하지 않고는 도무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볼프강의 저 짧은 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우리의 실체가 몇 안 되는 단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별한 자들에게 물어보라. ‘둑 옆’은 유일한 장소, ‘키스’는 유일한 감촉, ‘강’과 ‘바다’는 유일한 배경, ‘당신’은 유일한 존재, ‘붉은빛’은 유일한 해, ‘푸른빛’은 유일한 달, 그리고 ‘멀어짐’은 유일한 척도가 된다.


  그것이 아름답다는 것에, 우리는 위안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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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4-01-27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도 좋고, 캬~ 해설은 더 좋네요. 탕기님 감성은 정말. 예나 지금이나 솔직하고 서정적이에요.
건강해요!

탕기 2014-01-27 20:07   좋아요 0 | URL
어서오세요, 아이리님^^
늘 솔직하게 쓰고자 글 앞에서 분투합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좀 더 어루만져주는 편이에요. 그래도 글이란 게 늘 드러냄이 부족하고, 지우거나 버리긴 아깝습니다. 다행이도 쓰고 지우는 글이 많아졌어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