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만화 열린책들 세계문학 7
이탈로 칼비노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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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7

 

 

  지금 내 옆에는 톨킨의 『실마릴리온』이라는 두꺼운 소장본이 한 권 있다. 이 책과 제목의 의미는 톨킨의 신화를 모르는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톨킨의 신화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신화’라 부르는 부류의 것도 아니다. 유수의 비평가들과 언론에서 극찬하는 바대로 톨킨은 하나의 민족이 수 세기에 걸쳐 만들기도 벅찰 만한 자신만의 신화를 만드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신화는 ‘인공(人工)신화’이다. 톨킨이 강조하는 것처럼 그의 모든 이야기는 순수한 인공물이다.


  우리 시대에 톨킨은 롤링, 루이스, 르귄 등과 함께 소위 ‘환상(판타지)’이라 불리는 문학 장르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정평이 나 있다. 서양에서는 이미 문학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사랑했고, 우리나라에서는 근 10년 정도에 두 편의 영화 시리즈 『반지의 제왕』과 『호빗』으로 적잖은 팬이 형성되었다. 환상문학을 쫓는 우리나라의 아마추어 작가들에게 그가 끼친 영향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환상의 역할을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그들과 환상문학 팬들의 대결은, 거칠게 묶자면 한 마디로 ‘리얼리즘 대 판타지’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논쟁하기 좋아하는 ‘문학의 효용’과 관련해서 이 대결은 문학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더 넓게 보자면 이것은 인간의 사고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가치 있는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내가 칼비노를 근래 접하면서 한편으로 환상문학의 가능성을 나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제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다. 톨킨과 롤링의 경우,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말하곤 하는 “심각할 필요 없잖아? 즐겨!”라는 (카르페디엠을 모방한) 시대적인 문구처럼 환상문학의 일면에는 현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환상의 비중 자체를 늘리는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든 간에 환상문학은 그 자체로의 순수성을 고수해야 한다는 일종의 ‘정통주의’의 특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톨킨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반지의 제왕』의 서문에서 자신의 작품은 순수한 창작에서 기인한 것이라 선언했다. 당대 평론가들은 그가 제 1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아 작품 속 전쟁 구도를 만들었을 것이라 주장했지만 톨킨은 “이야기가 경험의 토양을 사용하는 방식들은 매우 복잡하다(the ways in which a story-germ uses the soil of experience are extremely complex).”며 작품과 작가의 영향 사이에 단순한 구도를 연결하지 말 것을 넌지시 강조했다.


  나는 열렬한 톨킨의 팬이고, 환상문학의 창조성과 상상력을 지지하며, 나름의 방식대로 그러한 것을 추구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강조하는 순수성 이외의 무언가를 더 찾고 싶은 욕심이 들기도 했다. 실제 신화나 역사, 종교, 철학 등에 기반을 둬서 철저하게 과거와 지금의 우리들에게 호소력 있는 가치를 전달하는 세계적인 작품들을 읽을 때면 한편으로는 환상문학이 왜 그리도 초라하게 보이는지 주눅이 들곤 했었다. 환상문학이 상업화되기 용이한 까닭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고 있고, 세계 문학의 대세 중 하나로도 서구에서는 일찍이 자리 잡았지만 솔직히 나는 ‘실제에 기반을 둔 거짓말’에서 더 많은 감동을 받아 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길게 에둘렀는데, 아마 지난 방학 때부터 내가 한동안 칼비노에게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러한 갈등을 그가 해소시켜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아니, 그런 확신을 갖고 있다. 근래 접한 그의 네 번째 작품 『우주만화(원제 : Le cosmicomiche)』는 팩트, 즉 과학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 현실에의 고민이 빚어낸 그야말로 ‘최고의 거짓말’ 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에 빠지다보면 어느새 “어떻게 이렇게 이어붙일 수 있지?”라는 감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 작품은 칼비노의 정수이다.


  사실 우주과학과 생물학적 지식을 거의 접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 작품은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칼비노의 글쓰기를 유심히 살펴보면 글의 중간마다 독자들을 화자에게 집중시키고 동시에 작품의 몰입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독자를 ‘소환’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서술전략이기도 한데, 이런 방식은 (독자마다 성향적인 차이는 있겠으나) 독자들을 어려운 이야기로부터 구원해주기도 한다. 따라서 어려운 지식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탓에 곧잘 지쳐버릴 독자들도 몇 쪽마다 한 번은 각성하게 된다. 이 각성은 지식들 사이에 칼비노가 숨겨놓은, 혹은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보편적인 가치들과 인간 심리의 묘사를 놓치지 않게끔 도와준다. 따라서 칼비노에게 익숙지 않은 독자들은 우선 상대적으로 덜 어려운 지식들이 있는 제 1부를 차근차근 읽어가는 것이 좋다. 마치 고산적응을 하는 것처럼.


  많은 비평가들과 문인들도 동의하는 것이지만 문학의 전략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시선이다. 우리가 흔히 ‘시점’이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여기서 나는 학교에서 배우는 ‘1인칭’, ‘3인칭’ 이런 걸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화자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화자를 내세우느냐에 따라 작품의 전체가 좌우된다. 그런 면에서 칼비노는 독특한 화자들을 사용하는 걸 좋아했고, 그것이 그의 특이한 문학세계를 구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앞서 ‘우리의 선조들’ 3부작 리뷰들에서도 재차 말했으나, 그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러나 “비범하다”고 하면 너무 평범하기 들릴 것도 같은, 그야말로 “엄청나게 특이한” 화자들을 통해 보편에 대해 말하길 좋아했다. 젊은 시절 ‘네오리얼리즘’이라 불린 사조에서 벗어나면서 그가 찾은 문학적 ‘생존전략’은 독특한 화자를 무기로 삼는 것이었다.


  ‘우리의 선조들’ 3부작보다 특이한 화자가 『우주만화』에 등장한다. 수많은 단편들이 문자 그대로 ‘우주적’으로 엮여 있는 와중에 단 한 존재만 그 모든 것들을 꿰뚫어가며 우리에게 우주를 보여준다. 그의 이름은 QFWFQ이다. 읽으려면 ‘크프우프크’로 해야 한다. 그나마 이 이름은 쉬운 편이다. ‘프(이)느크0’라는 한 부인의 이름을 컴퓨터로 타이핑하려면 ‘0’을 아래첨자로 써야 한다. 앞서 이 소설이 일부 과학적 지식을 요구한다고 했는데, 이름은 하나의 기호처럼 기능할 뿐, 그것 나름의 별다른 의미는 없는 듯하다. (혹시 알레고리가 있을까 나름 나열해서 분석해봤지만 허사였다.)


  이 존재들이 어떤 모습인지는 우리가 감히 상상해볼 수가 없다. 처음에는 공룡이라고 아예 제시가 되지만 제 2부로 넘어가면서부터 소설의 규모는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비약한다. 우주의 물질을 갖고 은하와 함께 이동하거나, 60억년이라는 시간을 무슨 젊은 시절 추억처럼 생각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거나, 지구와 달이 맞닿았던 시기에 두 표면을 장대 하나로 오고 가는 흥미로운 이야기, 까마득한 성운의 형성 등이 주를 이룬다. 제 3부로 가면 규모는 축소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더욱 근본적인 곳으로 깊게 들어간다. 안팎이 나뉜 세계, 죽음, 열망, 욕정 등 종교와 철학이 그동안 심오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인류에게 제시하려고 했던 의미들이 등장한다.


  칼비노는 이 모든 의미들을 과학과 문학의 연결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주는데, 일단 그 의미들이 무엇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 방법 자체가 독자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이미 여러 평론들이 나왔겠지만 그의 소설은 ‘열린 소설’이다. 단편 하나가 하나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여러 이야기가 굳이 단일한 방식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여기서 내가 어떤 의미들을 나름대로 발견했노라고 주구장창 이야기를 해봐야 이 책을 읽은, 그리고 앞으로 읽을 독자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갈래에 지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문학을 접하면서 특정 해석의 고집을 떨쳐내려고 노력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 배워 왔으나, 사실 대부분의 해석들이 일치하는 지점은 늘 있기 마련이다. 많은 이들이 읽으면 무릎을 치며 공감하는 평론은 늘 있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과연 『우주만화』도 그것들과 같은 소설에 속할 수 있을까? 칼비노가 직접 가치를 제시한 문장들을 차치하고도 독자들은 수많은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서투른 독자가 아닌 이상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 커다란 의미를 뽑아내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 때 문제가 발생한다. 소설은 가히 우주적인 규모로 진행이 된다. (단, 한 가지 유의해야 하는 것은 지금 발견된 과학적 사실과 당시 1960년대의 사실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 규모의 의미들이 세부적으로 제시되었을 때, 독자들은 그것을 하나로 묶을 좋은 방법을 갖고 있을까?


  이 소설이 소재로 삼은 것들을 하나의 축으로 보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떤 순환구도를 그릴 수 있다. 칼비노가 어디서부터 소설을 시작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도 잘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편의상 ‘현실직시’라는 축을 기준점으로 삼자면 왼쪽으로 이 순환구도는 회전하기 시작하는데, 그곳에서는 과학적 상상력과 지식을 만나게 된다. 칼비노가 ‘환상’이라는 장르에서 힘을 발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해석 가능한 지평을 거의 무한정 확장시킨다. 이 힘이 순환구도를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크게 회전시켜서 ‘근본적 질문’이라는 곳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칼비노가 얼마나 섬세한 철학자인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이 질문이 다시 우리를 ‘현실직시’의 축으로 돌려놓는다. 이렇게 이 소설은 계속 독자들을 뱅뱅 돌린다.


  칼비노가 단편 몇 개를 나란히 놓고 고민했을 것으로 보이는, 때문에 소재별로 약간 주제들이 중첩되는 것처럼도 보이는 것들을 중심으로 살펴봤을 때, 독자들은 대략 이런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변화의 두려움, 가능성, 기호란 무엇인가, 내부 폭발, 진정한 보편적인 사랑, 글쓰기, 생물의 출현, 욕망, 내부와 외부의 차이, 열망, 눈(目), 죽음. 그 외에도 각 문단마다 마치 아포리아처럼 뽑아낼 수 있는 튼튼하고도 아름다운 문장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이 책은 곁에 끼고 두고두고 읽으면서 칼비노의 고민을 나의 것으로 연장시키기에도 ‘용이’하다. 내가 방금 ‘용이’라는 단어에 작은따옴표 두 개를 붙이면서 어떤 심정이었을지는 위에서부터 이 글을 쭉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것이 ‘칼비노식 환상’이 나에게 준 위안이며, 커다란 확신이었음을 결코 부인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화자 크프우프크를 언급해야만 할 것 같다. 그는 시대를 초월해 있는 존재이다. 공룡이기도 했고, 선장이기도 했고, 오늘날 인류의 문명 이전에 있었던 문명의 사람이기도 했으며, 지구의 내부에서 살던 존재이기도 했다. 어린 우주에서 원자를 갖고 놀기도 했다. 25편의 단편이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사려 깊은 화자 덕분이다.


  빅뱅에서부터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는 크프우프크는 인간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크프우프크는 모든 것을 탐구하고 성찰하고 내다보는 인간에 대한 칼비노의 희망, 그가 ‘우리의 선조들’에서 보여준 인간 유형의 ‘총체’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크프우프크는 독자에게 “여러분은 결코 상상할 수 없을 겁니다.”라며 한계를 정해준다. 그곳에서부터 우리는 상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결코 허황되지 않은 의미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칼비노와 크프우프크가 알려준 환상문학의 가능성은 바로 그런 까닭에 나에게 힘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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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3-03-21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탕기님 안녕? 저도 칼비노 읽어볼게요. 뭐부터 시작하면 좋겠어요?

탕기 2013-03-24 00:23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저는 <나무 위의 남작>이 지금까지는 가장 재미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의 선조들' 3부작은 한 번 읽어보세요. <우주만화>보다는 훨씬 이해하기 쉽거든요.
일단 그렇게 칼비노에 맛 들리면(?) 다른 것들도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이제 막 칼비노의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읽기 시작했습니다. ^^

2013-03-29 1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3-04-26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달이 지났는데, 할 일이 많은가 봐요 :)
그 3부작은 늘 읽어볼까말까 했는데, 탕기님 집중력 끝내준다, 한번에 몰아치기.
저도 그런 능력이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