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04

 

 

  학기가 시작되었다. 강의 하나 들으러 갔으나, 교수가 함흥차사였다. 첫날부터 휴강. 간만에 캠퍼스 소요나 하다 돌아왔다. 신입생들이 ‘애기’처럼 보인다. 어른들은 나를 보며 “그 때가 좋은 거야.”라고 하고, 나는 앳된 새내기들을 보며 “정말 좋은 때야.”한다. 이른 방황을 후회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봄이다. 모든 것이 용서되는 봄이다.


  봄이 얼굴을 보인 때라지만 건물 밖 구석진 곳에는 아직 눈이 쌓여 있다. 지난 겨우내 높다랗게 쌓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하얀 겨울이었다. 눈에 대한 예찬, 눈에 대한 사랑, 눈에 대한 짜증, 눈에 대한 분노 등이 있었다. 생동할 앞으로의 세상을 잠시 물리고, 지난 추위에 나는 무엇을 꿈꿨는지 돌아본다. 정리와 출발을 다짐하기에, 사실 신정은 너무 춥다. 꽃샘추위 물러간 지금이 제격이다.


  분에 넘치지 않게, 소박하게 꾸리는 것. 곁에는 조금씩 두고, 욕심 줄이는 것. 한 해 여러 목표들이 있지만 가지를 쳐내 내가 진정으로 닿고 싶은 도시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 나도 이제 어른들의 현명함을 자연스레 따라할 무언가가 마치 ‘내공’처럼 쌓여가는 것 같다. 부족하다고 채근하면서도 폭식은 삼가는 것. 날마다 쌓여가는 것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덜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잡다하면 별로 건강하지도 못하다. 무거우면 오래 걷지도 못한다. 알았으니, 이제 다짐한데로 한 번 가보는 거다.


  그래도 막연한 욕심이, 마치 아직 녹지 않은 눈처럼 뭉텅이로 남아 있다. 책이다. 많이 읽고 싶은 욕심은 많이 읽지 못했다고 느끼는 결핍감 때문에 쉽사리 떨쳐내기가 어렵다. 생각의 세계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확연하게 체감하는 까닭도 있다. 넓어진 세계에서는 예전에 완독하지 못했던 책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도 얻곤 하지 않은가. 빈곤했던 나의 나라는 떠들썩한 백성들로 가득한 여러 도시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나는 이제 그 도시의 이름만 들어도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대략 알 것만 같다. 그러나 그 미시(微示)의 세계는 직접 발을 담가봐야 또 알 일이다. 큰 눈과 작은 눈을 동시에 갖지 못한다는 것이 나의 고민이기도 하다. 이것도 욕심의 또 다른 까닭이겠다.


  약간 고봉(高峰)으로, 생각보다는 조금 더 푸짐하게 올해 2013년의 책 스물여덟 권을 골라봤다. (고르고 보니, 우연히 내 나이와 같다.) 학기 중에는 한 달에 픽션과 논픽션을 각각 한 권씩, 방학 중에는 매월 각각 두 권씩 꾸준히 읽으면 이 욕심도 하나의 도시가 되리라 생각해본다. 따지고 보면 2주에 한 권인데, 그게 실상 바빠지기 시작하면 고민이 많아 잘 잡히지 않기도 하고, 쉬운 책만 골라 읽는 것도, 대충 읽는 것도 아니니, 넉넉잡아 십 보 정도 양보한다면 많아야 스무 권에서 스물다섯 권 정도 읽지 않겠나 싶지만. 보다 넓은 지평을 기대한다.

 

 

픽션 14선

1. 이탈로 칼비노, 『우주 만화』
2.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3. 친기즈 아이뜨마또프, 『백년보다 긴 하루』
4. 보후밀 흐라발, 『영국왕을 모셨지』
5. 임레 케르테스, 『운명』
6.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7. 미하일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
8. 카렐 차페크, 『도롱뇽과의 전쟁』
9. 알베르 카뮈, 『페스트』
10. 오르한 파묵, 『하얀 성』
11.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12. 모옌, 『열세 걸음』
13. 조지 오웰, 『1984』
14. 페터 한트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논픽션 14선
1. 로렌 아이슬리, 『광대한 여행』
2.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행복의 경제학』
3. 알리스터 맥그래스, 『과학과 종교 과연 무엇이 다른가?』
4. 달라이 라마, 『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
5. 주디스 리치 해리스, 『개성의 탄생』
6. 발레리 줄레조, 『아파트 공화국』
7.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8. 백영경 外, 『프랑켄슈타인의 일상』
9. 에릭 홉스봄, 『폭력의 시대』
10. 월터 카우프만, 『인문학의 미래』
11. 레오 카츠, 『법은 왜 부조리한가』
12. 토마스 프랭크,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13.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14. 제프리. K. 올릭, 『기억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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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16: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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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1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리시스 2013-03-21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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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기 2013-03-24 00:21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아이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