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빼앗긴 사람들 - 생체 리듬을 무시하고 사는 현대인에 대한 경고
틸 뢰네베르크 지음, 유영미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2012.08.16

[2012년 여름방학 논픽션 11선 中 제 7권]

 

 

  저번 학기, 아직 추위가 제법 있던 어느 날에 나는 아침부터 K문고로 가 김선우 시인의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라는 시집을 하나 사들고 학교로 갔다. 두고두고 읽었는데, 마지막 시가 유독 울림이 컸다. <아직>이라는 시이다. 시의 긴 부제로 놓고 보면 이 시는 ‘사랑 때문에 죽는 이’가 없는 세상을 향한 슬픈 탄식이다.


  그런데 내게 울림을 준 구절은 따로 있었다. “여러 번 태어나도 매번 처음인 / 매번 연습이 모자라는 생”. 쉼보르스카가 떠올랐다. 새삼 나는 “왜 나는 벤자민 버튼처럼 거꾸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라는 아쉬운 생각을 했다. 미치오 카쿠 박사가 출연한 BBC 다큐멘터리


  그러나 만족스러운 적은 없었다. 미련이 있었다. 시간에 대해 미련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미련이 남을 잘못을 일정 수준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개운하게 일어나고, 나에게 맞는 시간대로 활동하고, 조금씩 무언가를 거둬드리고, 어두워지면 가벼운 피곤함을 거부하지 않으며 잠이 드는 하루라면, 그렇다, 시간에의 미련은 애당초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리드미컬한 삶이 건강하다는 건 당연지사. 나의 생활은 아무런 조(調)도 없고, 아무런 박(拍)도 없는 실험적 음악과 비슷하다.


  틸 뢰네베르크의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원제 : Wie Wir Ticken)>은 정확히 ‘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 책이 나에게 반성과 자책, 그리고 위로를 줄 것은 제목에서부터 짐작했다. 이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   *   *

 

 

  뢰네베르크는 대뜸 시간 앞에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위로부터 한다. 아침형 인간에 대한 예찬은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새벽 4~5시에 기상하는 심한 종달새들은 극소수인 데 반해 그 시간까지 잠들지 않는 올빼미들은 그보다 더 많다. 그리하여 일찍 일어난 종달새들이 숲에 나타나기 전에 아직 잠들지 않은 올빼미들이 버섯을 모두 가로채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조금 극단적인 듯하나, 다시 말해 ‘새벽잠 없는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있는 역설적인 상황을 빗댄 것이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말은 시간에 순서가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한 말이다. 그러나 시간에 순서가 있을까? 새벽 1시와 밤 11시 사이에는 과연 어떤 ‘순서’가 있을까? 시간은 순환한다. 따라서 순서는 없다.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저자는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에는 서로 다른 관념이 있다는 새삼스러운 설명으로 ‘아침형 인간에 대한 예찬’을 거부한다.


  이어지는 여러 실험들은 주의 깊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생소한 용어들을 차치한다면 뢰네베르크의 설명은 쉽고 친절한 편이다. 각 장마다 반복되는 설명들도 있어 그의 말마따나 이 책을 중간 정도까지 읽으면 이미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흥미로운 사례들도 이 책의 무게를 한층 덜어준다.


  수면박탈, 수면금지구역(각성유지구역), 동시진행, 체내시계, SCN, 서캐디안 리듬체계, 동조의 원칙 등의 용어들을 통해 “무엇이 우리를 잠들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면, 독자들은 이어지는 글에서 현대산업사회의 ‘사회적 시차증’ 문제를 접해야 한다. 이 개념은 현대인의 대다수가 충분히 경험하고 있는 부분이라 우리에게 마치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에 따르면 중부유럽인의 40%가 약 2시간 정도의 사회적 시차증을 갖고 있으며, 이는 체내시간과 외부시간 간 3시간 정도의 차이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중부유럽 사람들은 서로 다른 시간 체계에 따라 사는 동안 동쪽으로 2~3시간 떨어져 있는 회사에 출근했다가 퇴근하는 ‘무리’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만성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온갖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대표적인 것이 흡연)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인간도 동물과 같아서 체내시계가 태양에 맞춰져 있다. 뢰네베르크는 “태양이 문화에 선행한다.”는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은 태양을 따라 살지 않는다. 동물은 분명 빛과 어둠이 체내시계의 모든 부분을 관장한다. 반면 인간은 자명종이 체내시계를 대신한다. 일어나지 않아도 될 때에 일어나고, 자야 할 때에 깨어 있다. 동물들 중 대부분이 간헐적으로 잠을 자며, 특히 태양이 높게 떠 땅이 뜨거워졌을 때에는 거의 예외 없이 잠을 잔다. 뇌가 뜨거우면 잠이 오고, 하품이 난다는 가설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뜨거울 때에도 나가서 일을 한다. 지중해의 농부들이 만든 ‘시에스타’라는 낮잠 문화는 인간에게 유익하지만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낮잠을 꾸준히 자는 사람들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아이들이다.


  낮에 빛을 많이 보고, 밤에 빛을 적게 보면 ‘빠른’ 시간유형의 사람이 된다. 이는 일찍 자고,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는 건강한 생활의 기본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일과시간을 보통 실내에서 지내기 때문에 낮에 빛을 적게 보고, 밤에 빛을 많이 본다. 이것이 때때로 우리가 아주 피곤하더라도 잠이 오지 않는 이상한 현상을 낳는다. 여기에 열대야나 불면증까지 더해지면 그 날의 피로는 다음 주까지도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렇듯 그의 설명을 읽다보면 우리가 시간에 대해 거스르는 것이 생각보다 많고, 그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뢰네베르크가 이 책을 통해 사회적 문제라 지적하는 두 가지는 이른 등교시간과 서머타임이다. 그는 일명 ‘덴마크 프로젝트’라는 것을 소개하는데, 이 생소한 프로젝트는 학생을 고객으로 여기며, 그들이 마음대로 등교하고 하교하도록 하는 실험적인 교육시스템을 일컫는다. 뢰네베르크는 ‘젊음’과 ‘야행성’의 연관관계를 실험적으로 밝힌 뒤, “10대들은 야행성이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는 10대들에게는 새벽 늦게까지 공부하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아침 늦게 등교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권장될 수 있다는 말이다. 덴마크는 그 점을 알았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운영한 바 있다.


  서머타임에 저자가 반대하는 까닭은 앞서 언급한 사회적 시차증 때문이다. 서머타임은 “계절적 변화를 3주 정도 거스르는” 시스템이라서 “하루아침에 서쪽으로 15도 정도 여행해 그곳에 체류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서머타임이 “1시간 더 일찍 출근하겠다는 집단적인 결정”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뢰네베르크가 이 책에서 하고자 했던 작업은 시간생물학의 연구사례, 개념, 그리고 결론을 쉽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결론’이란 연구결과가 사회적으로 올바르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그는 마지막 장에서 “체내시계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체내시계란  외부시간을 나에게 맞게끔 리모델링한 시간이다. 물론 이것은 유전되는 까닭에 대다수의 사람들과 달라 (사람 살피는데 부주의한 면이 있는) 누군가에게는 병으로 여겨질 법한 점도 있다.


  하지만 뢰네베르크는 우리에게 “다양한 시간유형”이 있음을 강조한다. 체내시계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시간을 다스리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옮긴이도 그 점을 다시금 짚고 넘어간다. 아들이 어느 날 와서 그(옮긴이)에게 한다는 말이, 친한 친구 한 명은 아침에는 무반응이고 오후부터 웃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는 뢰네베르크의 책에서 얻은 지혜를 아들에게 들려줬다. 오해하지 말라고.


  이 책은 어쩌면 수많은 카운슬링 책들에 앞서 읽어야 하는 가장 기초적인 ‘자기이해서’가 아닐까 싶다. 또한 시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단순한 효율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근사한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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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8-19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 다큐멘터리가 '시간'에 대한 다큐..제가 봤던 그걸까요?

[벤자민-]을 영화도 책도 아직이라서 잘 모르겠고, 이 리뷰는 좀 어려운 걸요. 시간생물학도 생소하고요. 그나저나 모르면 댓글을 말던가 뭐하는 건지........( '')

미안요!

탕기 2012-08-20 00:09   좋아요 0 | URL
영생의 물약 먹을거냐고 카쿠 박사가 물어보던 그 다큐에요. 아마 맞지 않을까요?ㅎ
저도 이 책은 이해는 되는데 뭐라 리뷰 쓰기 참 어려웠어요. 사실 그다지 감명이 있다거나 한 편은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