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전 열림원 논술 한국문학 13
염상섭 지음, 손미순 / 열림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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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4

 

  무관심도 하여보고, 꾸지람도 하여보고, 장황한 설명도 하여보고, 화도 내어본다. ‘이인화’ 이 사람이 나와 닮은 점들이 많아 <만세전>을 읽는 내내 나는 차분하게 공감했었다. 그래도 그에게 매번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 고작 몇 달의 신혼생활 끝에 십 년을 유학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아무래도 죽어가는 아내에게 별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은 너무 하다 싶었다. 그러나 이광수의 <무정>에서 본 ‘자유연애’를 생각하며, 그래, 모두가 일편단심일 수는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제대로 된 정을 줘 본 적 없는 그의 싱거운 반응과 생각, 그리고 건넌방에 가 ‘정자(시즈꼬)’니 ‘을라’니 하는 여인들을 머릿속에 그려본 그에게 동정했다.


  얼마 되지 않은 분량을 다 읽고 나니, 나에게 급한 체증이 찾아왔다. 이면지에 빼곡히 적어놓은 메모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다시 희뿌연, 기분 나쁜 안개로 가득 찬다. 이런 안개는 영화나 TV에서 그렇듯 묘지와 어울린다. 아니나 다를까, 횡보(橫步) 염상섭(廉想涉), 그가 1922년 이 작품을 발표했을 적에 원래 제목은 <묘지>이었다.


  아무리 정리하려고 해도 지금의 심리로는 잘 되지가 않기에 별안간 <만세전>에 대한 나의 소고는 쓰지 않으리라 했으나, 마침 비가 내리니 적적함이 마음 밑바닥에 침전되어 고요히 호수를 이뤘다. 어둔 하늘보다 더 짙어 실루엣으로 제 몸집을 가늠케 하는 큰 나무가 창가에 버티어 있고, 집 앞 공원의 모래바닥을 걷는 사람의 자박자박 걸음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나는 다시 메모들을 펼쳐보았다.

 

 

*   *   *

 

 

  돌이켜보니, 그가 현해탄을 건너기 전까지의 여정에 나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메모는 이인화가 대전까지 온 다음부터 많아졌다. 이면지 한 장을 가득 채웠다. 그가 ‘M헌’이란 곳에서 느꼈던 편안함이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작중 담겨 있던 그의 무서우리만치 솔직한 넋두리가 한겨울 바람처럼 느껴졌다. 그러한 대목들에서는 그냥 지나치기 아까워 고쳐 읽기도 해보고, 메모로도 적어보고, 홀로 소리 내어 읽어보기도 하다가 불현듯 나에게서도 북받쳐 오르는 것이 있어 멈칫멈칫하기도 해보았다.


  ‘배운 자’, 아니 ‘배워가는 자’의 입장에서 나는 그렇지 못한 자들과 마주할 때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기에, ‘교육’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마다 이 사회에 존재하는 엄청난 층계의 격차를 소름끼치게 느끼곤 한다. 그래, 저 위에서 떵떵거리는 이들이 뭔가 계몽적인 말을 한다고 치더라도 그 말이 층계를 따라 또로로 굴러 떨어져 저 밑에 있는 자들에게까지 제대로 전달되기라도 했다면 지금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었겠느냐, 하는 역정도 내보곤 했다. <무정>을 읽고 내가 가진 가장 큰 위선의 장면은 대개 이런 것에서 나왔었다. 이인화 그 자도 배운 자의 입장에서 “과학지식이라고는 소댕뚜껑(솥뚜껑)이 무거워야 밥이 잘 무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속으로 나무랐는데, 나는 그가 또 어떤 위선의 궤변들을 늘어놓을까 단박에 째려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않는다. 그 말이 <무정>의 이형식처럼 수직으로, 혹은 수평으로 쭉쭉 뻗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 뿔에 지친 양 툭 떨어지고 만다. 이인화는 세상을 바꿔보려는 적극적인 태도에서 허황된, 언젠가 내가 인용한 김수산(金水山)의 표현대로라면 ‘사상누각’의 세계관을 만들지 않고, 그대로 도망가고자 한다. 자신을 이해 못하는 가족을 두고 집을 ‘여관’이라 하기도 하고, 위생이니 이층집이니 편리이니 하는 것들을 주면 주는 대로 받고, 아니면 빼앗겨도 그대로 내준 뒤 술 한 잔에 화푸념만 하고 마는 조선 사람들을 증오하면서. 이인화의 태도도, 그들보다는 조금 더 안다는 까닭에 여러 정황을 계산도 해보고 자기방어도 해보지만, 결국 같은 줄에 매달린 빨랫감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느냐,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에게 못내 연민의 눈을 내주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는 소설의 말미에 마음을 다 접은 듯 이렇게 말한다. 연민으로는 아무 것도 구할 수 없다. 옳은 말이다.


  그런 것들과 더불어 또한 여러 이유들로 나는 그의 증오하는 자세를 ‘증오’할 수 없었다. 이형식과 이인화 사이에, 나를 독자의 위치에 세워놓고 분명 나는 분명 이인화에게 한 발 더 가까이에 있는 성향의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괴괴한 거리의 처량한 모습이 조선의 실경이라면 나 같은 부류의 사람은 주변을 탓하기 전에 냅다 도망치고 말 것이다. 그 속에서는 그처럼 이런 말도 하겠지 싶었다. “이게 산다는 꼴인가? 모두 뒈져 버려라!”, “망할 때로 망해버려라.”, “너도 구더기, 나도 구더기이다!” 파울 클레가 나치에게 작품들을 빼앗겨놓고 스위스로 도망갈 적에 뱉었다는 그런 종류의 상스러운, 홧김에 하는 말들 말이다.


  모든 것들을 보고 꾹 참아왔던 그의 마음도 대전 즈음에서는 무방비로 폭발해버렸다. 산다는 것들 중에서도 인간에게 가장 역겨운 취급 받는 것 중 하나가 구더기이다. 무기력한 조선 사람들을 그렇게 절하시켜놓고 끝내 그는 “무엇에 써먹는 인종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이든, ‘김의관’이든, 김의관의 ‘차지(심부름꾼)’이든 간에. 세계대전(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도 조선만은 잔뜩 웅크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의 성격 탓이리라 생각도 해보는 것이, 몇 달 살고 헤어졌다가 십 년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차에 죽어간다는 아내의 소식을 듣고도 동요 한 번 않는 이인화가 조금은 유별난가 싶기도 한 것이다. 서울에 와서도 아내와는 서먹하고, 미음 한 번 떠먹여줬다는 까닭에 뭔가 한 것 같아 뿌듯하여 유쾌하다 느껴보기도 하고, 아이(중기)를 보고 ‘고깃덩어리’라 하질 않나, 서울집에서 사나흘 머물 적에도 이따금 ‘정자’니 ‘을라’니 생각해보며 장례 후 재혼 생각을 한다. 다시 말해 그는 만사에 냉정한 이가 아니라, 그에게 맞지 않는 너트는 N극이 S극을 밀어내듯 거부해버리는 볼트와 다름없다. 면역이라면 면역이랄까.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로 그를 달래 봐도 <만세전>의 모습은 달라질 바가 없을 것이다.


  사회가 병약하여 썩어빠진 잇몸이 무너져 내리듯 사람을 누르고 누르면 애국은 둘째 치고서라도 오기로 일어나고자 할 법 한데, 이인화가 느낀 이 사회는 제목 그대로 묘지이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고, 정 없으면 ‘무정’하면 된다.


  이매망량. 온갖 도깨비란 뜻이다. 귀신에게 정을 줄까, 도깨비에게 봉사할까, 그들 구원받을 길도 없는 ‘백의(白衣)’ 입은 이들을 두고 이인화는 신생(新生)하러 떠나는데 마지막에 피식 웃어봄이 나에게는 결코 웃을 수 없는 장면이다. ‘대만의 생번’ 같은 ‘요보’들을 두고 그는 다시 현해탄을 건너 동경으로 갔을 것이다. 올 때처럼 선박 안에서는 조용히 눌려 있다가 아마 돌아가서는 M헌에서 들르고도 했을 것이다. 그것 말고 또 무엇을 했을지는, 별 관심 없다. ‘묘지’ 보고 돌아오며 “나는 묘지를 봤다.”고 하는 이에게, 그 묘지의 양분 위에 태어나 후손으로 살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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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8-16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만세전은 밑줄 그어가며 분석하면서 읽고 줄거리요약까지 했었는데도 이 생경한 느낌은 뭘까요. 사람의 기억력이란..아니 제 기억력이란..!

탕기님, 지금 N블로그에서 오는 길이에요. 탕기님이 만드신 카페 덕분에 알게 되신 분들께 안부인사 드리고요.ㅎㅎ

탕기 2012-08-16 23:08   좋아요 0 | URL
저도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이면지에다가 뭘 빼곡하게 적어놓긴 했는데, 참 볼 때마다 염상섭의 내공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 저 조금씩 블로그 살려보려고 건드려보는 중이에요. 나중에 저도 카페 이웃분들 한 분 한 분 초대해서 옛날에 블로그 했던 기억으로 좀 다듬어봐야 할 것 같아요. 아직 학교는 1년 정도 더 다녀야 할 것 같지만 틈틈이 만들어서 졸업한 다음에는 직접 이웃분들 찾아뵈야죠.^^

아이리시스 2012-08-19 16:4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그렇잖아도 선샨님이 탕기님이 블러그 접고 가버렸다고 서운해하셔서..조만간 보시게 될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인연은 끊기는 게 아니고 언젠가 만날 사람은 만나는 거라고 하시던데요^^

우리 그때 미술관도 가보기로 하고 그랬었는데..어언..( '')

루브르 산책인가 그 책이 나온 걸 보고 인사드리러 갔는데 그게 개정판이라 그러시더라고요ㅎㅎ 책 안 읽은 거 다 뾰록났죠 뭐.ㅋㅋㅋ

탕기 2012-08-20 00:08   좋아요 0 | URL
그렇네요. 벌써 오래 전 일이군요.
예전의 '탕기'라 하기에 제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했어요.
졸업하면 조금 나아질 수는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간 대학 다니면서 미술공부 소홀해진 것도 있고, 원채 게으르고.ㅎ
나중에 한 분 한 분 초대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