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 이광수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9
이광수 지음, 김철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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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3

 

  독서는 선입견으로부터 시작한다. 독자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책의 디자인, 작가의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 제목의 뉘앙스, 출판사, 혹은 책날개에 있는 작가의 사진, 뒤표지의 추천사 따위에서 아무런 선입견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일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선입견은 자연스레 해소된다. 때론 끝까지 남아있기도 하고, 굳이 그것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다. 분명한 것은, 선입견이 독서의 엔진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선입견이 인식과 이해의 근본적인 지평이라는 가다머의 말에 동의한다.


  <무정>을 읽기 전, 나는 나의 심리가 대체 어떤 상태인지 거의 알지 못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것은 마음속이 온통 뒤죽박죽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문학계에서는,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작품을 이탈리아 미술계가 조토를 사랑하듯, 혹은 영문학계가 초서와 셰익스피어를 사랑하듯 다룬다.


  대학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혹 교양으로 들어본 바가 있는 이라면 사회과학계든 인문학계든 우리나라의 대학풍토가 1970년대부터 거의 맹목적으로 ‘근대’에 집착했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근대’는 가히 지적 굴레요, 팜므파탈이라 할 수 있다. 근대의 덫에 빠져 거의 모든 과거의 작품들에서 근대로 소급되는 것인 양 혼동되는 인물, 서술방식, 혹은 구절 등을 발표 주제로 삼았다가 교수에게 퇴짜를 맞는 학생들을 나는 여럿 보았다.


  사정이 이러하니, 근대를 논하기 온당한 주제는 아무래도 이해조(李海朝), 이인직(李人稙), 이광수(李光洙) 등과 문예 동인지 <창조>를 시원(始原)으로 하는 1910년대 무렵의 작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근대’에 목말라하는 듯하며, 이광수의 <무정>과 같은 선구적 작품들은 사상과 역사적 노선의 차이를 뛰어넘는 초월적 평가를 받아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 문학사가 마련한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다.


  매국노. 하필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일본 정부의 강경 대응, 그리고 올림픽 세리모니 등으로 온 TV에서 곧 다가올 광복절의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키고 있는 때에, 공교롭다고나 할까, 나는 <무정>을 읽었다. 매국노. 그것이 나의 선입견이었다. 큰 깨우침을 위해 타 문화를 숭상하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나만 하더라도 한국미술보다는 서양미술을 훨씬 많이 알고 있고, 유불도의 사상보다 서양의 근현대철학에 더 심취해 있으니), 나는 지식인들의 한계를 대단한 역사의 핑계인 양 소개하는 것을 종종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그보다 나을 점이 없었겠느냐는 심리가 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가다머를 믿어보고자 했다. 그에게 동의했으니, 나는 선입견에서 멈춰 설 수 없었다. 책을 펼쳐들기 전, 일종의 기합을 뜻할지 모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싫은 것을 하기에 앞서 반사적으로 솟구치는 소름도 없진 않았다.

 

 

 

*   *   *

 

 

 

  <무정>은 1917년 새해 벽두부터 <대한매일신보>에 약 6개월 간 126회를 연재한 소설이다. 당시 그는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의 철학과에 진학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고, 바로 작년까지는 같은 학교에서 고등예과를 수학했었다. 학벌만 보더라도 그가 월등한 지식인이었음을 부인할 길은 없다. 그것도 ‘골방철학’하는 이가 아닌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다채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는 분명 배울 점이 있었고, 왕성한 집필은 내가 그를 마음 한 구석으로는 몹시 시기했던 그의 뛰어난 역량이었다. 소설 <무정> 속에도 이광수의 박학다식한 흔적이 그대로 담겨 있다. 톨스토이를 좋아하고, 진화론과 우주에 관심이 많았던 그다. 이제 막 도킨스, 카쿠, 세이건, 최재천, 리들리 등에게서 그것을 배우고 있는 나로서는 적잖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주인공 이형식이 두 여인인 김선형과 박영채 사이에서 남모를 고민을 하며 애정소설과 비슷한 갈등이 전면에 드러나 있음에도 이 소설은 종종 이형식의 독백을 빌려 이광수의 심오한 사상들을 거리낌 없이 독자들에게 내던진다. 마치 독자를 계몽시키려는 것 같은 공격적인 태도이므로, 그렇다, “내던진다.”는 나의 표현은 퍽 적절하다. 그가 조선의 사람들에게 그토록 강조코자 했던 것은 교육이었다. 나는 대사 뒤에, 아니 때론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이광수의 엘리트 의식이 상당히 신경 쓰였다. 솔직한 마음으로, 나는 교육과 개화를 외치며 조선이 잘 살 길을 모색하던 그를 친일로 기울도록 만든 시대를 탓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를 위선자로 봐야 하는지 갈필을 잡지 못했던 탓에 결국 쉬운 방법을 택해 그를 아니꼽게 본 것이었다.


  그는 확정적인 선언조로 소설을 연재하며 근대의 ‘열린 태도’에 대해 예찬한다. 나는 단적인 예로 작중 인물 박영채의 의식변화를 들고 싶다. 그녀는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형식을 거둬 가르친 은사 박응진의 여식인데, 박응진의 교세가 기울고 도적질을 했다는 죄명으로 가문이 거의 파탄나자 친가를 전전한다. 어디에서도 반가운 손님이 아니었기에 영채는 일단 조금이라도 거처가 정해지면 옥에 갇힌 아버지를 찾아가 따뜻한 밥 한 공기라도 대접해드리고자 한다. 그러나 아무 것도 녹록치 않았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되고자 한다. 여기서부터 ‘정절’의 아이러니가 시작된다. 효가 기생을 낳은 셈이었고, 그 기생은 “기생이 아닌 정절”로 아버지를 향한 사랑과 형식에게 오래 전부터 가져왔던 사랑을 모두 지키고자 한다. 의식이 깨어 있는 또 다른 기생인 월화가 영채의 절반이 되어 도와줬기에 망정이지, 영채는 정절에 목을 매 훨씬 이전에 대동강에 뛰어들었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정말로 ‘여차저차’하여 형식을 찾은 영채가 한탄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둘은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다. 정절 때문이다. 뒤에서는 자유연애를 말하는 지식인인 형식이 정절, 기생 등을 논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분명 자가당착이다. 그는 단지 영채가 더렵혀졌는지 더렵혀지지 않았는지를 놓고 고민하여 그녀에 대한 연민의 정을 거뒀다가 들였다가 한다. 그가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독자라면 그가 결국 영채에게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장면에서 구역질 날 정도의 위선을 목격했노라고 분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영채도 정절과 기생의 울타리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해방되는 순간은 또 다른 절묘한 사건에서 찾아온다. 평양 가는 기차에서 유학파 여인인 ‘신여성’ 김병욱과 만난 것이다. 영채는 이미 죽을 목숨이었다. 죽으러 가는 중이었다. 그녀가 믿고 의지했던 월화가 그랬듯 대동강에 뛰어들고자 모든 결단을 내린 후였다. 그녀의 눈에 석탄가루가 들어간 것이 사람 하나를 살렸다. 병욱은 영채의 눈에 들어간 먼지들을 닦아주며 그녀에게 정을 느꼈고, 영채는 병욱으로부터 삼종지도는 그른 제도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그것에 목숨을 걸어왔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자신의 울타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애당초 차버리고 ‘자유여인’이 된 이가 있었던 것이다. 영채는 그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았다.


  영채가 그러할 적에 형식은 선형과 약혼을 한 사이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선형과의 미국 유학생활을 꿈꾸면서도, 아마도 죽었을 영채가 눈에 밟히는 것은 그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떤 강력한 콤플렉스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눈앞에 있는 여인”이 그의 취향에 맞는 여인이라면 너무나도 솔직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평양에 가서 영채의 시신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면서도 그는 ‘계향’이라는 기생을 옆에 끼고서 ‘쾌미에의 지각’이 일어났다며 무슨 심오한 깨달음이라도 얻은 듯 상황을 서술한다. 그러나 실은 그의 말마따나 그것은 조화이기도 하고 혼돈이기도 해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상태였다.


  형식으로부터 나오는 ‘교육’에의 강조, 그와 함께 후반부의 주를 이루는 것 중 하나인 병욱의 자유로운 사상은 조선의 부족한 현실을 바라보는 연민의 눈과 자연스럽게 닿아 있다. 엘리트 의식, 교육, 연민으로부터 나오는 인도주의는 당대 선각자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또한 느꼈던 책무와 다름없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독자들은 어떤 굵직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형식, 박영채, 그리고 김병욱을 우러러 봤음 직하나 지금의 눈으로 보면 그것에는 구체적이지 못한 장황함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선동조의 계몽 연설문과 같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구체적인 모습으로 각각의 인물들이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가졌다는 서술이 갖는 의도성은 훤히 드러나 있어 지나치게 인공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더군다나 삼랑진 역사(驛舍)에서 ‘게릴라 콘서트’식의 성금모음 연주회를 열고, 그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영채, 병욱, 선형에게 자신의 포부를 말하는 형식의 태도는 쉽게 이해될 법한 것이 아니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다. 희곡작가 김수산(金水山)은 1926년 <조선지광>에 투고한 글로 이광수의 <무정>을 두고 “공중누각의 이상주의”라 했고, 그 유명한 김동인은 <조선일보>를 통해 춘원(春園)의 위선적인 성격과 형식의 위선적 행동(영채를 버리고 선형에게 간 것)을 꼬집었다. <심문(心紋)>의 최명익(崔明翊)은 <무정>의 인물들을 “통속 도덕이라는 관념의 노예”라고 했다. (장석주의 <20세기 한국문학의 탐험> 참조)


  <무정>의 독서는 상처를 남김과 다름없다. 나는 김철이 책임·편집한 책으로 <무정>을 읽어 그 뒤의 소고를 봤는데, 그는 <무정>을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아직 벗어던지지 못한 선입견 때문에 그것이 나는 못내 불편했다. 이 작품을 거울로 삼는다는 것은 적잖은 거부반응을 몰고 왔다. <무정>은 분명 이미 내가 지금껏 듣고 읽고 배워오며 만들어간 나만의 항체에게 거부당하고 공격당할 항원이다. 몇 번은 더 인문서적 접하듯 고쳐 읽고, 몇 번은 더 설득당하는 양 고쳐 읽어야 알러지가 없어질 듯하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무정(無情)’이라는 단어만 보고 있어도 나의 마음은 꼭 그것과 같아진다. 그것이 나에게 "무정하오."라 해도, 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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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8-16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문학사를 국문과에서는 반드시 배우잖아요. 책읽고 글쓰시는 분들 상당수가 문학전공일텐데도 (그런데) 알라딘 서재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전방위적인 리뷰를 처음 봐요. 저만해도 안쓰지만 (처음엔) 그게 너무 의아했어요. 너무 더워서 한동안 드러누워서 딴짓도 엄청하고 손놨던 공부를 다하네요. 책읽는 것도 영화도 보다보다 지겨울만큼 지긋지긋해졌어요..ㅎㅎ

아참, 무정은 정말로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이광수는..음..아니지만.

탕기 2012-08-16 23:06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우리문학 리뷰하는 분들이 별로 없나보군요.
음, 저는 다음 학기에 현대소설론을 듣게 되서 미리 읽는 중이라 책 무진장 많이 사놓고 홀짝홀짝 넘겨보고 있답니다. 이번 학기에는 소설 정말 많이 읽게 될 것 같아요!

저는 소설이 잘 안 읽혀요. 독서태도라고 할까? 인문학이 저에게 더 가깝거든요. 그런데 소설도 자주 읽다보면 저에게 잘 들어맞을 것 같아요. 이 기회에 꾸준히 소설 읽는 버릇 좀 들여서 나중에는 한 달에 4권씩 소설책 읽기에 도전해야 겠어요.^^

아이리시스 2012-08-19 16:51   좋아요 0 | URL
남자들은 아무래도..(라는 건 우스갯 편견이고요) 막상 읽어보면 소설보다 인문학이 더 잘 읽힌다는 게 어떤 말인지 저도 알아요. 소설은 묘사가 있어서 진짜 재미를 느끼지 않으면 좀 더디 읽히는 면이 있고, 그러니까 여자들에게 쉽다는 편견이 있고, 인문학은 지식이라 생각하니까 다가가기 어렵지만, 막상 생각 안하고 넘겨 읽으면 은근 잘 읽힐 때가 많더라고요. 예전에 저는 인문학이 어려운 거, 소설이 쉬운 거라 생각했는데 안 그런 분이 많아서 신기했거든요.(그렇다고 소설읽는 게 대단하다는 건 아니고) 근데 어느 정도 감을 잡고보니까 읽는 건 인문학이 더 빠를 때가 많아요. 그걸 다 습득하는지는 나중 문제고ㅎㅎ

탕기님 말이 저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가지고 길어진 건데, 어쨌든 탕기님 리뷰는 다 좋군요(!) 급 결론^^

2012-08-19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