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즘, 누군가의 해방 투쟁 한겨레지식문고 5
찰스 타운센드 지음, 심승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2012.07.11
[2012년 여름방학 논픽션 11선 中 제 6권]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작년 여름, 나는 3주 정도를 ‘체첸(Chechen)’에 빠져 있었다.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리주의 운동이 이슬람-러시아 정교회, 혹은 이슬람-서구의 대결에서 강력한 종교의 힘을 빌리고 있는 까닭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검은 미망인(black widow)’이라 불리는 여성 테러리스트들이었다. 그녀들은 러시아와의 전쟁(혹은 이미 구소련과의 전쟁)에서 남편을 잃고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극빈층에 지금도 속해 있다. 체첸 반군은 그녀들을 선동해서 모스크바의 병원과 지하철역에서 폭탄테러와 인질극을 실행하도록 했다. 놀랍게도 임무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체첸을 잠시 공부하며 느꼈던 묵직한 충격은 각종 매체를 통해 볼 수 있는 중동의 테러관련 소식들로도 충분히 상기된다. 솔직한 표현으로, 10명 남짓한 사상자가 발생한 테러사건을 뉴스로 보면 나는 100여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사건을 떠올리며 “저건 테러도 아니다.”라는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으나, 자오신산의 ‘전쟁호르몬’은 끊이지 않는 테러와 그에 대한 보복을 훌륭하게 설명한 개념인 듯도 하다. 기나긴 휴전의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우리에게 ‘저’들의 폭력적인 ‘정력’의 원천은 공감할 수 없는 어떤 비밀의 장소에서 붉은 핏물들을 계속 솟구치게 하는 중일 것이다.


  오랜 독서였다. 정치학이나 테러리즘 관련 학문에 입문하려고 구입한 책 아니었기 때문에 찰스 타운센드가 들어준 수많은 사례들 중 대부분을 일일이 검색해봐야 했다. Google이나 Wikipedia로도 검색되지 않는 사례들이 있을 정도로 저자의 예는 대단히 풍부하다. 그것들을 통해 찰스는 학설과 정치적 태도들을 비판하고, 명백한 현상을 도출하는 작업을 이어간다. 시오니즘, IRA, 무자헤딘, 알카에다 등을 이미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은 테러리즘을 바라보는 이상적인 시각을 다듬어가기에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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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 나름 도출한 두 개의 명제가 있다. 일반인인 독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아마 정책 결정자들에게는 “잊고 싶은” 명제가 될 것이다. 첫 번째 것이 특히 그러하다. 찰스도 이 경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테러리스트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유의 투사이다.” 우리나라에서 윤봉길 義士의 (사실 ‘물통 폭탄’이라고 불러야 맞지만) ‘도시락 폭탄’사건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민족항쟁의 상징이다. 장제스의 극찬은 우리나라의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회자할 만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제의 입장에서 윤봉길은 (개인의 행위로 일단의 목적을 달성한) 근대적 테러리스트에 해당했다. 유사한 예로 저자도 언급한 바, 프랑스에서는 나치에 대항한 드골의 투쟁을 일컬어 ‘반군(反軍)’이라 부르지 않는다.


  두 번째 명제는 옮긴이 심승우氏의 인용으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민주주의적 레토릭(rhetoric)이 오히려 호전적인 여론을 강화하는 포퓰리즘의 기제로서 더욱 강력한 동원 수단이 될 수 있다.(241쪽)
  어려우니 풀이해보자. 테러리즘의 공격으로부터 국가는 위협을 받는다. 정부는 두 가지 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 하나는 보완을 강화하는 소극적 대응이고, 다른 하나는 보복이나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하는 적극적 대응이다. 둘 모두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대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대응은 대중들이 원하며, 가속화시킨다. 크레린스턴의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기꺼이 자신의 자유를 포기한다.(239쪽)


  특별법이나 특별군이 정부의 대응책으로 등장하게 되면 국민들은 일정 수준 자유의 침해를 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들도 테러리즘의 위협 앞에서는 정부의 (때론 기약을 알 수 없는) 무력 사용을 옹호한다. 문제는 국가적 대응, 혹은 국제적 대응의 비용 대비 효과가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때론 테러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이 광기 어린 보복을 감행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단독 군사행동을 해서, 일례로 이탈리아와 사이가 나빠질 뻔도 했었다.

 

  책을 전체적으로 보면 서두에서 찰스는 테러와 테러리즘에 대한 정의가 매우 모호하고, 상대적임을 누차 강조한다. 찬찬히 살펴보면 테러의 종류도 여러 가지인데다가 도리스 레싱의 ‘선한 테러리스트(good terrorist)’라는 개념이 대부분 테러에 관해서는 제 3자적 위치에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혹은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상당한 혼란을 준다. 게다가 노엄 촘스키가 최전선에서 미국 정부의 위선과 이중성을 비판하고 있으니, 속된 말로 “누가 나쁜 놈인지 모를” 아이어니한 상황과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3장에서는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 장 폴 마라 등의 프랑스 혁명정부를 살펴본다. 이 장에서 중요한 것은 폭력이 도덕의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는 별로 놀라울 것도 없는 이 명제가 중요한 까닭은 폭력이 “억압과 폭정에 저항하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천부적인 권리(70쪽)”라는 것이 프랑스 혁명정부의 기조를 통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정부의 폭력(숙청의 정당화)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테러리즘과 다르다면, 그건 바로 ‘국가 테러리즘’이라는 차이 밖에 없다.


  이렇게 형성된 근대적 테러리즘은 ‘개인의 고립화(한나 아렌트)’나 ‘정신적 공황(손튼)’을 통해 개인들이 테러에 의존하도록 하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노사이드(집단학살)와 같은 경우에는 아예 목표 집단을 절멸, 흔한 수사법으로 빌리자면 ‘청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타협은 불가하다. 남미의 경우에는 군부들이 사회주의자들이 사회를 위협한다는 점을 빌미로 좌파를 완전 봉쇄했고, 그렇게 결성된 이른바 ‘반공동맹’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포정치를 펼쳤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와 진배없다.


  ‘혁명적 테러리즘’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4장은 테러와 혁명의 연관성에 대해 설명하는 장이다. 물론 우리는 혁명을 부르짖는 집단들이 테러를 사용하면 정치적인 한계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들이 테러를 도구로 삼게 된 까닭은 순전히 혁명 집단이 다수가 아닌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의견은 (해당 사회의 문맹률이 높을수록) 대중들에게 잘 전달되기 어렵다. 행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행동은 곧잘 저지된다. 이것이 ‘행동하는 자’에게 영웅주의를 심어준다. 피터 라브로프는 “우리는 순교자를 원한다.(101쪽)”고 했다. 그러나 권력이 단기적으로 충격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예컨대 권력자의 암살 같은 것은 또 다른 권력자의 등장 때문에 영구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회의주의에 빠질수록, 하지만 테러를 통한 투쟁은 계속된다. 1970년대가 바로 그런 때였다.


  5장은 4장보다 위력이 강한 민족주의에 할애된 장이다. 민족주의는 좌파보다 크다. 좌파는 집단이지만 민족은 최대의 경우 어느 국가의 전체를 의미하는 개념일 수도 있다. 또한 민족은 자연발생적이기도 하다. 좌파가 할 수 없는 “대서사의 신화를 동원”할 수도 있고, 다원화와 신자유주의의 범람 속에서도 여전히 맹렬한 위세를 과시할 수 있다. (탈종교화가 진행되리라 예상됐던 20세기 후반에 근본주의가 강세였던 것과도 유사하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다양성과 다원성을 잘 참지 못한다. 그 예로 찰스는 아일랜드 공화주의인 혁명형제단, 1959년 창설된 스페인의 바스크 분리주의 ETA, 이스라엘의 시오니즘,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의 ‘검은 9월’ 사건, 알제리 민족해방전선, 키프로스 전사민족단 EOKA 등을 소개한다. 이들은 타집단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무차별 테러’를 감행할 수도 있다.


  우리는 종교와 테러의 상관관계를 이제 눈 감고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가 어떻게 폭력을 정당화하는지는 르네 지라르의 역작을 비롯한 여러 종교사회학자들의 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종교적 테러가 현실·초월적, 혹은 우주적 차원에 호소하는데, 찰스의 질문처럼 상식적으로 이런 것이 실제 가능할까? 수행의 가능성이나 실현 가능성 모두에서 말이다. 이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찰스는 결국 종교적 테러의 밑바탕에는 근대적 테러리즘(행위 주체가 행동을 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광신주의가 깔려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또 다른 문제는 종교와 민족이 서로 상호침투 한다는데 있다. 때문에 우리는 둘을 거의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들 종교적 테러리스트들은 등에는 신을 업고, 손에는 돈을 쥔다. 그들에게 폭력은 “신과의 대화를 증명하거나 상징하는 의미(190쪽)”인 경우가 많다. 비록 상대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7장에는 우리가 어떻게 테러리즘에 대항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우 근본적인 논의가 실려 있다. 테러는 그냥 무시하면 된다. 그것이 합리적이긴 하나,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것에 대한 적절한 정책을 쉽사리 내놓지 못한다. 그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한다면 대응 과정에서 일어나는, 앞서 잠깐 언급했던 피치 못할 억압을 특별한 예외로 다뤄야 한다. 또한 미국이 극명하게 드러낸 것처럼 “국가의 명예와 국가 안보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205쪽)” 있다.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클린턴 前대통령은 아프리카 수단에 강력한 미사일을 발사했었다. 잘 알다시피 부시 前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었다.


  학자들 중 이러한 일련의 대응이 이성적인 판단으로 수행된 것인지 의문을 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찰스는 그걸 우려했다. 영국의 챌폰트 경은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보복은 보복일 수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테러리스트는 다른 사람을 살해할 준비가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꺼이 살해당하기를 원하기 때문(208쪽)”이다. 또 하나 찰스가 우려하는 것은 적극적인 국가 대응으로 만약 보복 국가가 특수군(독일의 GSG9, 미국의 델타포스, 이스라엘의 테러진압특수군 등)을 창설하고, 그것이 만성적이게 되면 자유민주주의가 침범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소극적 대응이라고 해서 자유민주주의의 침범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다. 미국 정부가 공항의 보완수위를 높이자 수많은 사람들이 과잉진압이라며 덩달아 목소리를 높였던 것처럼.


  “물리력에 대한 국가의 배타적 독점에 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광범위한 의미에서 공공의 안전감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테러리즘은 대단히 효과적이다.(201쪽)
  테러리즘이 달성하고자 하는 수많은 목표들 중 실제로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달성된 것은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테러리즘은 끊임없이 국가를 위협한다. 전체적으로 이 책을 놓고 보면 찰스는 테러리즘이 비용 대비 효율성이 매우 큰 반면, 국가와 국제사회의 대응은 미비한 수준임을 꼬집어서 비판한다. 각 국가들이 마치 거미처럼 여러 개의 그물을 쳐놓고 테러리스트들이 걸리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나 더 비유하자면 거미들이 서로 어디에 그물을 쳐야 하는지도 합의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것은 “동의하기 힘든 국제적 의무(221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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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무게중심은 7장으로 분명하게 기울어져 있다. 따라서 역자의 제목(이 책의 원제는 ‘A Very Short Introduction : Terrorism’이다.)과는 달리 나는 7장의 부제를 이 책의 제목으로 오랫동안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근래 읽었던 책 중에서는 가장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던 책이다. 모르는 사례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다가 문득 튀어나와 저자의 결론이나 정리를 따라가기에 벅찬 감이 없지 않았고, 무엇보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사례들이 나를 바다에 빠뜨린 기분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덤벼 검색하고 정리한 까닭은 내가 무언가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글로 정리하며 차분히 생각해보니, 나는 (제목처럼 테러리즘의 상대적 개념에 주목했다기보다는) 테러리즘과 공존하는 국가의 위선, 혹은 테러리즘 자체의 한계와 역설 등을 몹시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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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7-17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어려워서 어려운 책읽듯이 틈틈히 읽었어요. 탕기님은 어려운 걸 나름대로 풀어서 다시 공부해서 참 잘 써요. 그래도 역시 직접 보고 공부해보는 게 더 낫겠죠? 여름 어떻게 지내요, 탕기님?

탕기 2012-07-21 12:46   좋아요 0 | URL
익숙하지 않은 내용을 읽고, 요약하고, 정리하는 게 쉽진 않죠.
그래도 어려운 내용을 직접 공부해보는 것이 남의 요약문 읽는 것보다는 훨씬 도움이 될 거에요.^^

저는, 지금 <탕기의 미술사> 2권을 정리 중입니다. 덕분에(?) 독서를 거의 못 하고 있어요.ㅎ
고딕이 주요 내용일 거 같아요. 건축하고, 회화를 중심으로.
예전에 공부 안 했던 부분도 공부해서 같이 꾸리는데,여간 힘든 일이 아니네요.ㅎ
방학 중에 다 완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완성하면 아이리님께도 보내드릴게요.^^

아이리시스 2012-08-03 16:03   좋아요 0 | URL
응, 막 신나네요! 하고 싶어했던 일이고 재밌는 작업이니 방학을 투자하더라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거기다 저도 보내준다니! (정말 좋아요) 응원하고 있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