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명 사이코패스 -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이상인격자
로버트 D. 헤어 지음, 조은경.황정하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12.07.01
[2012년 여름방학 논픽션 11선 中 제 2권]

 

 

  영화 <악마를 보았다(2010)>의 여러 장면들이 머릿속에 각인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장경철(배우 최민식氏)의 무덤덤한 표정으로부터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이라는 형용사구의 함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로 (한편으로는 우리에게는 저 영화 속의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맹신하면서) 새삼 깨닫게 된다. 잊을 수 없을 만한 종류의 근원적인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그것은 무고한 죽음과 닿아 있다.

  <진단명 : 사이코패스(원제 : Without Conscience : The Disturbing World of the Psychopaths Among Us)>의 저자 로버트 D. 헤어는 “누구나 사이코패스를 만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 책의 살벌한 전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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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코패스는 겉보기에 흉측스럽기 그지없는, 혹 뒤러의 <용과 싸우는 성 미카엘(1498년 작품)> 속에서 창에 찔린 고통을 온 몸을 뒤틀며 표현하는 용들처럼 혐오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대개 멀쩡하다. 지적인데다가 달변이기까지 한 경우도 많다. 그들에게 속는 순간 우리는 그가 손으로 눌러 죽이는 벌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선정적인 표현이 우리가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예외’들을 과장하려는 수사법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피상적 감정을 가진 사이코패스들에게 선처를 호소해봤자,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희미하게나마 돌아온 의식으로 한 피해자 여성이 장경철에게 “아저씨, 살려주세요.”라고 힘없이 호소했어도 결국 장경철은 그녀를 잔인하게 죽였다. 인간에게는 측은지심이 있다고 흔히 알려져 있다. 측은지심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우리의 신체는 생리적 변화를 겪는다. 전달물질을 통해 감정이 발생하고, 우리의 몸 어딘가는 분명한 자극을 받는다. 하지만 로버트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들에게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생리적 불안이나 특징을 찾아볼 수 없(96쪽)”다.


  이 책은 사이코패스들의 ‘기막힌’ 사례를 시작으로 그들의 특징에 대해서 언급한다. 사이코패스들과 로버트가 직접 나눈 대담의 채록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잠깐 짚고 넘어갈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나의 ‘비정상적’이라는 단어 사용이 그다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로버트는 사이코패스를 정의내리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다고 강조한다. 우리들 중 “저 사람은 정신이상자이다.”와 “저 사람은 사이코패스이다.”, 이 두 문장의 정확한 차이를 알고 있는 이는 몇 안 될 것이다. 정신이상자는 분별력이 없다. 반면 “교도소나 구치소에 있는 사이코패스는 상당한 사교술을 발휘하여 판사가 자신을 정신병원으로 보내도록 설득할 수 있다.(55쪽)” 그들도 이미지 관리를 한다.


  로버트는 65쪽을 빌어 사이코패스의 증상들을 열거해뒀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중 일부는 우리들 중 누군가에게는 하나쯤 속할 만한 것이다. 가령, “자기중심적이며 과장이 심하다.”라든가, “책임감이 없다.”라든가, 혹은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하다.”라든가, 등등. 다행이도 그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로버트와 같은 전문가들은 각 항목별 사이코패스의 특징과 일반적인 ‘우리’들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 그 예들은 3장에 길게 제시되어 있다.


  물론 로버트도 그가 제시한 진단법이 매우 신중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일반인들에게 잘못 적용하면 자칫 성격이 단순히 모날 뿐인 누군가에게 ‘사이코패스’라는 꼬리표를 붙일 수 있고, 반대로 진짜 사이코패스의 교묘한 수법에 속아 그를 다시 사회로 돌려보낼 수도 있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악당은 키스하면서도 당신의 이빨 개수를 세고 있다.(117쪽)”라는 유대인들의 소름끼치는 속담은 우리에게 사랑마저 의심할 것을 명심하도록 한다. 우리가 악당을 만날 확률은 (우스갯소리로) 만화 <명탐정 코난>에서 코난 일행이 있는 곳이라면 거의 매번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확률보다는 적겠지마는.


  우리는 대체로 ‘괜찮은’ 사회화를 겪는다. 로버트는 사회화의 조건으로 합리적 판단, 철학·종교적 신념, 협력과 조화의 필요, 그리고 공감 능력을 든다. 사이코패스는 이들을 모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할 수 없다. 로버트는 이를 “내면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 않(126쪽)”기 때문이라고 표현한다. 만약 우리가 사회화를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면 사이코패스들은 대대적인 ‘마녀사냥’의 여파로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구별해내기 힘들다. 게다가 오히려 사이코패스를 매력적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일탈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사이코패스가 일종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사이코패스는 개인의 특징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사회적 양상으로까지 보일 것이다.


  로버트는 정신분석학자 린드너가 1944년에 펴낸 <이유 없는 반항>의 구절을 소개하며 당시에도 사이코패스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사회적 문제였다고 말한다. 강산이 수차례도 더 변했을 지금에도 그 증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영화가 나오면 비평가들은 영화의 재미를 분석하고, 정신분석학자들은 작중 인물을 실제 사례와 대비하여 진단하는데, 사실 대다수의 영화팬들은 그저 보고 즐긴다. 그것은 차라리 쾌감이다. 감정이입이 되기 힘든 그런 영화 속 인물들에게는 제 3자적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잔상은 남겠지만 충격은 금방 잊힌다.


  영화 속의 사이코패스들이 그러한 것처럼 (물론 연출 때문에 가감한 것은 있겠지만 대체로 증언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에 거의 사실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그들은 범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수행할 수 있다. 로버트는 경찰들도 ‘정서적 플래시백 현상’, 즉 일종의 트라우마 때문에 범인에게 총을 쏘고 난 후부터 심각한 고통을 겪는다고 말한다. 범인이 총에 맞는 충격적 상황이 계속 떠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들은 너무 태연해서 그들의 증언을 듣는 ‘오랜 경험으로 단련된 상담전문가(147쪽)’들마저 기겁하게 만든다. 150쪽에 나온 한 사이코패스의 증언은 그 장면을 상상하는 우리들의 속을 뒤집어놓기에 충분하다.


  이 쯤 되면 우리는 그들이 혹시 교화(敎化)될 수 있는지,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하지만 전자에 대한 질문에 로버트는 긍정적인 답을 내놓지 않다. 한 여성은 35세에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았고 엄청난 전과기록을 갖고 있었다. 42세에 석방되자, 그녀는 바른 삶을 살았다. 심리학 학사증도 받고, 좋은 일들도 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속임수와 거짓말에 능수능란하다. 그녀의 진심을 판독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녀가 그저 잠시 법에 위배되지 않는 삶을 ‘연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게 된다. 그녀의 사례는 1970년대 미국사회를 가히 엄청난 충격에 빠뜨렸던 존 게이시와 꼭 닮았다.


  ‘화이트칼라 범죄’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사람을 녹여버릴 듯한 미소를 띠고, 믿음직한 목소리로 먹잇감에 접근하며, 목에 그 어떤 방울도 달고 있지 않(169쪽)”은. 점잖은 신사나 숙녀가 사이코패스라면 우리는 쉽게 믿을 수 없을 것이고, 이윽고 정신적 비탄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곧 자신의 판단능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것과 같다. 최근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멘붕(mental collapse, 물론 이런 영단어는 없다.)’을 유발한다. 그들의 수법과 언어사용, 혹은 발화(發話)시의 자세 등 로버트가 예로 든 특징들을 우리가 자세히 관찰한다고 해도 사실 사이코패스들은 우리의 약점은 잘 알고 있으니, 그들을 이길 방법은 거의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로버트로부터 두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듣진 못했다. 구별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은 그가 전문가이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태도이지, 우리가 실제로 삶에 적용할 수 있다는 확신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이코패스가 왜 만들어지는지 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생물학적 요인과 환경적 영향이 결합된(260쪽)” 것이 사이코패시적 태도와 행동이라고 결론짓지만 이는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이 동시에 작용할 것이라는 흔한 추론이다.


  여하튼 이렇게 ‘형성’된, 혹은 ‘유발’된 사이코패스들은 심리치료로도 교화가 불가능하다. 그들은 스스로의 심리에 만족한다. 그런 이들은 치료될 수 없다. 혹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시늉(305쪽)에 지나지 않을 수가 있다. 이 책은 1993년에 처음 나왔고, 우리나라에는 2005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로버트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과학적 진단과 치료가 부재한 상황을 개탄하면서 결국 우리 자신이 사이코패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며 책을 마무리한다. 방법들은 대개 피상적이다.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이코패스, 아니, 우리가 흔히 ‘사이코’라 부르는 인물들에게 많은 관심이 쏟아지면서 사회 전반의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향상된 듯도 하다. 그래도 우리가 그것을 사회의 문제요인이라 인식하기에는 피해 사례가 지극히 개별적(동시다발적이고 광범위한 환경문제도 등한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이지 않은가.)이라는 특징이 한계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피해가 더 많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범죄적 발언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이해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더 확고해질 필요가 있다. 로버트의 이 책은 ‘행동과학’과 심리학이라는 난해한 분야의 충격적 사례를 알기 쉽게 풀어 썼다는 점에서 사회에 큰 공헌을 한 저서라고 할 수 있다. 로버트의 말처럼 “연구는 계속되어야” 하며, 우리는 연구자들의 주장과 경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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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7-02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학 첫 책이 사이코패스라니ㅜㅜ 엉엉ㅜㅜ
물론 저도 좋아하는? 관심있는 분야고 리뷰는 여전히 멋지지만요.

11선 좀 공개해봐요, 탕기님.(저는 왜 이런 게 궁금할까요?)

탕기 2012-07-03 08:26   좋아요 0 | URL
제가 오래 전부터 '광기'에 관심 있는 건 아이리님도 알고 계셨잖아요.ㅎㅎ

지금은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멜라니 킹)>을 읽고 있어요. (아이리님도 좋아할 만한 책!)
11선 중 나머지 8권은 오늘 책 도착하는데로 '바이북' 페이퍼 쓸 때 같이 소개할게요.^^
읽고 싶은 책 중에 반값 할인하는 것들이 의외로 많아서 마일리지 다 쏟아부었거든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