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주의는 본성인가 - 인종, 인종주의, 인종주의자에 대한 오랜 역사 한겨레지식문고 9
알리 라탄시 지음, 구정은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2012.03.03

 

  얼마 전이었다. 알리 라탄시의 <인종주의는 본성인가>를 읽는 중 ‘genocide’라는 영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뜻이 가물가물하기에 인터넷 검색을 했다. 집단학살. 예컨대 홀로코스트를 뜻하는 것이다. 머릿속에는 <쉰들러리스트>가 떠올랐다. 속초에서 군복무를 하던 때, 나는 공용업무 차 간부들과 한 달에 한 번은 꼭 시내에 나갔다. 그 때마다 군용 지프는 일본 731부대(ななさんいちぶたい)의 생체실험이 있었다는 오랜 건물 하나를 지나갔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역사는 대개 추상적이기 마련이나, 핏빛의 역사는 몸을 떨게 만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핏빛의 역사’를 굳이 과거로부터 배울 필요는 없다. ‘genocide’를 검색한 뒤, 더 찾아보거나 읽을 만한 자료가 있을까 싶어 드래그를 하던 차에 나는 이 단어를 길드(guild : 온라인게임의 유저들이 다양한 목적을 위해 만든 온/오프라인모임) 이름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실 별로 놀라진 않았다. 온라인게임들의 대부분이 전투를 모티프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제노사이드”라고 발음하는 것도 그럭저럭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genocide’의 일면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집단학살”이라 번역되는, 소름끼치는 저 단어를 길드의 이름으로 사용하고자 했을까. 이는 사소한 문제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무감각이나 무지의 문제이다.


  알리의 이 책을 읽고자 한 이유는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프란츠 파농을 읽기 위해서였다. 프란츠를 알게 된 지 오래된 것은 아니다. ‘로쟈’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이현우氏의 알라딘 서재 <로쟈의 저공비행>에서 우연히 견문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아니, 이유를 더 따져보라면 종교분쟁관련 대학교 강의에서 교수의 참고로 된 한나 아렌트와 홀로코스트를 들 수 있겠다. 독실한 신자는 아니나 늘 종교에 관심을 갖고 있고, 첨예한 갈등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갈등이 분출되는 원리가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던 차라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모여 알리와 프란츠의 글을 읽고 싶어진 것이리라. 혹은 사춘기 때, 먼 타지 호주에서 백호주의(백인호주우월주의)를 직접 겪어봤기에 “왜 내가 차별을 겪어야 했을까?”를 알아내고자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달, 미국 댈러스에서는 한 주유소 업주인 박氏의 발언(다른 주유소보다 휘발유 값이 비싸다 항의한 흑인 목사제프리 무하마드氏에게 “아프리카로 가라.”라고 한 발언)이 화두가 되어 불매운동이 일어났고, 시위대는 아시아계 이주민들의 추방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유대계 여성과 결혼했으면서도 현대 반유대주의의 선교사가 됐던 빌헬름 마르”에 대한 이야기로 알리는 논의를 시작한다. 그가 책의 후반부 논의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인종주의의 정체성’은 사실 이 부분에서 미리 결론된다. 한나 아렌트가 경악을 금치 못한 한 유명한 나치전범재판도 빌헬름 마르와 같은 경우이다. 집에서는 자상한 아버지가 밖에서는 유대인들을 ‘청소’하고 다닌다. 그럴 수 있다. 인간은 다양한 정체성으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종주의자’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 수많은 제약이 있음을 이 도입부에서부터 알게 된다.


  이어 알리는 여러 역사적 근거들을 추적해본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해 동양과 이슬람을 잠깐 거친 뒤, 중세 기독교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대인 차별에서도 그는 인종주의의 생물학적인 차별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가 흑인을 보면서, 혹은 유대인을 보면서, 아니면 중국인을 보면서 갖게 되는 전형화(편견)은 당시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움베르토 에코의 <추의 역사>에 보면 귀족들이 평민을 어떤 방식으로 희화화했는지가 적혀 있다. 도판으로도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다. 동족 내부에 대한 시선도 이러한데, 그들이 적대시할 수밖에 없었던 무슬림들에게 ‘생물학적인 차별’이 과연 없었을까? 내가 문헌을 찾을 만큼의 고도로 정련된 학자가 아닌 만큼 의구심은 잠시 접어둬야 할 듯했다. 그리고 이 궁금증은 알리의 논점을 쫓아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시대는 흘러 소위 ‘이성의 시대’라 불린 18세기에 분류학이 득세하며 인간을 범주화해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Americanus, Europaeus, Asiaticus, Afer 등이 있는데, 고대 그리스에서 발원한 4기질설에 대입된다. 별로 산뜻하진 않다. 하지만 이 시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칸트와 흄이 가졌던 흑인열등주의이다. 물론 그들은 흑인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단, “검다.”는 것이 곧 추(醜)와 연결되는 사상이 철학의 옹호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신고전주의 미술이론의 창시자이자, 아카데미파의 정신적 지주였던 빙켈만의 미의식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서구는 세상을 그렇게 보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영국이 아프리카의 노예시장을 개척한 뒤, 과학적 인종주의가 흑인과 백인을 명백히 구별하면서 이윽고 그 유명한 사라 바트만(Saartje Bartmann) 사건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시민’이라는 모델을 위한 보편주의가 퍼졌을 때에는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19세기, 유럽 열강들은 국가형성프로젝트를 위해 엄청난 자본과 사상을 쏟아 부었다. 유럽뿐만이 아니었다. 1790년 미 의회는 백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권을 포고하기에 이른다. 유럽보다는 미국의 경우가 매우 흥미롭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프랑스, 웨일즈, 독일, 아일랜드, 유대계, 이탈리아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이 나라에서는 자국 국민의 ‘백인됨(whiteness)’이 곧 인종적 규범이 됐다. 그리고 이들을 Caucasian이라고 묶었다. 잡혼이 금지됐고, KKK는 1890년부터 약 10년간 무려 1,100여 건의 린치사건을 일으켰다. Jim Crow 체제가 공고히 되기도 했다. 흑인들은 곧 경멸의 대상이 되었는데, 흑인이 아닌 유색인종 중 ‘백인됨’에 포함되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곳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여실히 드러낸다. 식민지에서도 상황은 같았다. 인도 벵골과 자메이카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영국에서는 카스트 제도를 고착화시키며 오리엔탈리즘이 갖는 잔인함의 진수를 보여줬다.


  곧 우생학이 등장했다. 본래 서구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반유대주의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침체된 경제가 이것과 맞물리면서 홀로코스트의 서막을 열었다. 민족국가가 부상한 뒤, 우생학은 아주 쉽게 정치와 결합했다. 과학은 중립적이다. 도덕의 비호를 받지 못한 이 강력한 이론은 활활 타오르던 나치스의 반유대주의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코스모폴리탄으로 두각을 나타낸 유대인들을 독일인들은 아니꼽게 봤다. 표적이 되기 쉬웠다. 더욱 무서운 것은 나치스의 홀로코스트가 그들 정치의 주요사항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무려 600만 명이 죽었다.


  이것을 비이성의 소산이라고 진단했던 이들은 당시 전범재판 소식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치스 패망 후 숨어 지내던 아이히만을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잡았고, 곧 전범재판이 이뤄졌는데, 한나 아렌트가 술회하듯 그는 자신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라고 발을 뺐다. 여기서 “악의 평범함(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유명한 개념이 등장한다. 최근 내가 극우주의의 득세를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잠시 알리의 글을 인용한다. 무지와 태만의 소산이 얼마나 위험한지가 드러나 있다.
  “심리적인 후퇴와 통상적인 무관심이 겹쳐, 독일 시민 대다수는 유대인 등의 운명에 대해 더 알아볼 생각도 않고, 별다른 양심의 가책도 없이 하루하루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과학적 인종주의가 우생학 이후에도 진행됐지만 사람들은 상관관계와 인관관계를 혼동하는 무지를 범하며 인종주의를 더욱 합리화했다. 가령 이런 것이다. 흑인의 대부분은 무식하다. 문명화된 우리가 보기에 그들은 아는 것이 별로 없고, 싸움만 일삼는 ‘족속’으로 보일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의 낙후된 국가에 가면 그것이 현격하게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들이 “흑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사회적 조건은 어떠한가? 혹은 개개인의 특질이 무시되는 것은 아닌가? A라는 사람 하나의 특질이 그가 속한 집단 전체로 비화되는 것은 대단한 비논리이지만 합리를 지향한다는 저 지성의 현대인들에게 그대로 먹혀든다.


  오늘날 홀로코스트는 없고, 아마 제도적 제약 덕분에 발생하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큰 위안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종의 개념 하에 핍박받는 집단들이 있고, 그 수는 매우 많다. 때론 불특정 다수에 대한 맹목적인 공격도 일어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미 애매모호해진 인종의 개념이 마치 19세기 후반에 득세한 그 개념처럼 강력하다는 것이다. 소위 ‘혼혈(mixed)’이 많은 시대이고, 개인의 정체성을 국가나 종교보다는 특정 문화, 혹은 사회적 위치 등에 두는 경향이 강한 오늘날 우리를 인종의 틀 안에 가두는 것은 어려운데도 말이다.


  한창 페이스북을 할 때, 나는 영어회화실력을 높여 보겠다는 심산으로 여러 외국인들과 채팅을 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그들은 모두 중동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 아제르바이잔, 이집트, 그리고 쿠웨이트가 있었다.) 그 중 영국 카디프에서 유학 중이라는 한 이집트 여대생과 이슬람을 주제로 짧은 대화를 나눈 것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그녀는 자신은 유학생임에도 영국인이며, 동시에 이슬람교도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물었다. 국가와 종교는 상당히 밀접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직답을 피하고 대신 테러에 관한 생각을 말해줬다. 모든 이슬람교도들이 테러리스트는 아니며, 그들 대부분이 테러를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는 <내 이름은 칸>이라는 화제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칸은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을 찾아가는 긴 여정을 하게 된다. ‘종교, 폭력, 평화’라는 제목의 대학 강의를 듣고, 한편으로는 이슬람과 관련된 13부작 다큐멘터리를 다 본 후, 나는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개인의 정체성. 알리는 말한다.
  “개인의 정체성과 행동 사이에 언제라도 모순이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개인의 정체성이 위치에 따라 달라지고, 또한 달리 선호되는데, 과연 인종이 ‘전형화’될 수 있을까? 사실 되기 때문에, 아니 만연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전형화가 전면에 부각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알리의 말마따나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겉으로 보이게 행동할 때에는 예의를 갖추게 마련이다. 적대감과 차별은 눈에 덜 띄는 물밑에서 일어난다.” 최근 ‘인종주의적 사건’은 대개 옛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처럼 소위 “대놓고” 행해지진 않는다. 그 은밀한 공격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흑인 불평등을 해소해왔다고 하지만 불평등은 누적되고, ‘악순환’된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고 해서 한 때 미국 시민성의 위대함이 부각되는 듯했지만 그것은 전면에 드러난 가짜일 뿐이었다. 여전히 흑인들은 턱없이 부족한 고용기회 탓에 일자리를 얻기 힘들고, 그들이 고용됐던 제조업이 신흥 산업들에 밀려 패망하면서 쫓겨나고, 또한 열악한 주거지 및 교육 환경으로 인해 불우한 유년을 보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려있다.


  다행이도 교육에 있어서는 1960년대 활발했던 민권운동의 도움을 받아 약간의 개선이 있었다. 그 시절, 미국 연방정부들의 흑인 우대정책은 얼마간 실효를 거뒀고, 지금 흑인들은 사회 각층의 높은 자리에도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들 중 흑인들에 대한 시선에는 가시지 않는 경멸이 담겨져 있다. 심지어 백인 빈곤층들조차 흑인들이 빈곤해진 것은 그들이 게으르고 멍청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인종주의의 각축전은 생활수준이 하위에 속하는, 소위 “잘 못 사는” 사람들의 주거지에서 자주 발생하며, 이는 영국의 경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민할 당시 경제적으로 윤택해질 수 있는 교육조건을 만족시켰던 인도계, 아프리카 인도계, 혹은 중국계 이민자들은 그렇지 못한 이민자들보다 훨씬 높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개 그렇지 못하고, 특히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민자들의 60% 정도는 일자리가 없다. 경제적 제약이 크면 사회에서 받는 불평등의 감도가 훨씬 강하게 느껴지기 마련이고, 그런 분위기의 주거지에서는 백인 사회와 이민자 사회 사이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이들은 소위 ‘기 싸움’에 밀리지 않기 위해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일부 흑인 아이들과 유사한 폭력성을 지니기도 한다.


  제도 상 인종차별은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냉전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제 3세계 운동, 학생운동, 여성운동 등 민권운동의 영향을 받아 인류는 서로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법을 알게 되었고, 좋은 실천사항들도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공익광고나 공교육개선, 봉사활동 등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 안정 뒤에는 열대야처럼 기승을 부리는 인종주의의 폐단이 남아있다. 우리나라도 이슬람 혐오증이 꽤 강한 나라 중 하나이다. 직접적인 테러의 위협을 받은 횟수가 타국들에 비해 현저히 적으면서도 우리는 미국과 밀접한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말미암아 그들의 칼날을 느낀다. 이슬람교와 무슬림들의 삶에 대해 아는 바가 적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슬람 혐오증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무슬림들은 다 테러리스트이다.”라는 편견을 갖는다. 편견이라는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문화의 이미지가 그 편견을 조장한다. 집단을 ‘전형화’시키기 때문이다. 문화에도 마치 공식이 있는 듯 말이다.


  집단 간의 반목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인종의 개념은 18세기에 등장했다고 알리는 역설한다. 과연 그 집단과 인종 사이에 필연적인 연관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과학과 심리학이 오용됐던 실수의 역사가 있다면, 아니면 일조한 잘못된 사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필연적 연관관계’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알아본 것처럼 ‘인종’처럼 애매모호한 개념은 없다. 탈(脫)인종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단어에 집착해선 안 된다. 해결책 역시 모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알리는 낙관하자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제도적인 노력들이 현재까지 거둔 성과 때문이다. 그러나 극우주의가 팽창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알리와 같은 낙관은 금물이다. 더군다나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실패를 운운하고 있고, 그것을 극복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이론적, 혹은 실천적 행동들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최악의 경제상황은 극우세력의 성장을 돕고 있다. 그들은 자국에서 이민자들을 몰아내 ‘순수성’을 회복하면 자국민들의 경제적 형편이 더욱 나아질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주목하는 사람들도 매우 많다. 그 외의 경우에 있어서도 낙관보다는 비관이 앞서는 이유가 여럿 있다. 국가 간 전쟁이 첨예한 곳에서는 인종차별이 ‘인종공포’의 수준으로 비약되어 있다. 알리도 말한다.
  “인종주의를 넘어서는 데에 장애가 되는 것은 많다. 생물학적 결정론,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문화적, 생물학적 순수성을 현실로 만들고픈 욕망, 서로 다른 문화와 민족들 간에는 변치 않는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신화는 언제나 모습을 바꿔가며 새로운 강령과 관행인 양 다시 포장돼 나타나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그의 말마따나 현대사회는 초국적 디아스포라의 시대이다. 우리나라는 그런 것이 덜한 편인데, 다민족 국가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국가가 아닌 “장소, 문화, 성별 등 여러 정체성”에 두고, 그것에 굳건한 충성을 바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전통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주류가 탄생한다. 사실 그것이 더 오래된 문화적 전략이기도 하다. 일부 강경한 이슬람 사회는 서구에서 들어온 세속사회에 반대한다. 신도들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 일부 서구에서 들여온 TV프로그램 방영을 금지하거나 코카콜라, 맥도날드와 같은 유명 수입품 판매를 조기에 차단하기도 한다. 전통과 서구 문화가 공존(사실 주류는 후자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우리’라는 뿌리 깊은 개념이 민족을 휘어잡는다.)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알리가 가장 경계하는 것을 인종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인종의 개념을 끌어다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 그 자체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센서스 조사원인 A가 B의 집에 찾아가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탈인종주의를 위해 너의 인종을 조사해야 돼. 너는 인도계이니, 아니면 아프리카계 인도계이니?” 같은 맥락으로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혼혈(mixed)’이라는 말에도 탈인종주의를 지향하는데 방해가 되는 어폐가 들어 있다.


  저자가 누차 강조한 바인데, 인종주의는 매우 부실한 이데올로기이다. 하지만 인간은 마치 많든 적든 인종주의자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설명되며, 인종은 실제로 존재하고, 그것은 합리적인 과학의 비호를 받는 것처럼 광고된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시작된 인종주의가 20세기에 들어서는 점차 쇠퇴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진실’이 아닌 ‘편견’일 뿐이며, 다양한 이해관계와 무지한 대중들의 지지를 얻어 연명하고 있는 고대의 악마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알리 라탄시는 말한다. 인종은 없다. 인종‘주의’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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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3-03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종주의는 매우 부실한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평소 제가 생각한 것과 같아요. 오히려 저는 저랑 다른 인종이(그런 게 있다면 말이죠;) 더 신기하고 알고 싶고 그렇다는 점에서 나름의 인종 이데올로기를 실행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어요.

탕기님, 그동안 뭐했어요? 오랜만이에요.
프란츠 파농이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어요. ^_______^

탕기 2012-03-03 16:56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아이리님. 독서도 지지부진하고, 개강 준비 전에 축 늘어졌죠.
어제 개강했어요. 머리도 생기를 찾았는지 남은 분량 다 읽고 오늘 독후감 썼습니다.
프란츠 파농 읽을 준비해야겠어요. 내달에 살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