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잠들 때 - 유엔 특별보고관이 전하는 팔레스타인의 목소리와, 우리가 마주해야 할 10개의 얼굴들
프란체스카 알바네세 지음, 최보민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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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국제법과 인간성의 눈으로 읽는 팔레스타인의 진실 『세상이 잠들 때』. 프란체스카 알바네세(Francesca Albanese)는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특별보고관으로, 이 직책을 맡은 최초의 여성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와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 등에서 활동하며 참혹한 현장의 인권 침해를 기록해 왔습니다. 2022년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된 이래,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벌이는 집단학살과 점령 체제의 불법성을 국제법적 근거에 기반해 고발해 왔습니다. 이 공로로 스테파노 키아리니 국제상, 더 라이츠 포럼의 드리스 반 아그트 상, 스페인 정부의 시민공로훈장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잠들 때』는 10명의 삶으로 재구성한 팔레스타인 이야기입니다.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은 사상자 수 같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통계의 그늘에 가려진 개별 인간의 존재감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여섯 살 어린이 힌드 라잡의 비극으로 시작합니다. 차 안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의 위태로운 목소리는, 그저 전쟁의 피해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없는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12일 후, 도와달라고 3시간을 통화했던 그 차 안에서 힌드가 발견되었습니다. 300발이 넘는 총알에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상태로 말입니다.


이런 비극은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점령 체제 아래서 반복되는 구조적 폭력입니다. 저자는 또 다른 아이를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현실의 무게를 일깨웁니다. 열네 살의 와디아는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그게 죽음을 막아주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살아가는 걸 방해할 뿐이죠."라고 말합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두려움과의 투쟁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국제 사회가 과연 어떠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묻게 만듭니다.


『세상이 잠들 때』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오랫동안 이어져 온 감정적 갈등이나 종교적 분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납니다. 점령군이 제도를 통해 어떻게 한 민족의 권리와 존재를 옭아매고 있는지를 짚어냅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조차 엄격하게 적용되는 군사 재판 체제는 점령의 가혹함을 잘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돌을 던졌다는 혐의를 듣고는 바로 형을 2년 징역, 3년 징역을 선고합니다. 팔레스타인인에게는 돌을 던진 행위에 대한 형량이 최대 10년(상해를 입힐 의도가 있었다면 20년)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점령을 인도주의적으로 관리하려 했던 과거 국제기구들의 한계를 지적하며, 점령 자체가 자결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임을 일깨웁니다. 더불어 누가 진정한 토착민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역사적 맥락을 되짚습니다.


『세상이 잠들 때』는 팔레스타인 상황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방관 속에 방치된 불평등한 구도로 파악합니다. 국제 사회가 외면하는 사이, 현장의 의료진과 민간인들은 최소한의 생존조차 위협받는 극단적 상황에 내몰립니다. 외과의사 가산 아부 시타 박사의 증언은 가자 지구의 참상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폭격 피해자들을 수술했던 알시파 병원과 알아흘리 병원에 머무는 동안, 그는 하루에 최대 12건의 수술을 집도했고, 그중 상당수는 어린이 환자였습니다. 분쟁 초기 몇 달 동안 가자에서 약 900명의 어린이가 사지 절단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최소 열 번 이상은 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그럴 여력은 없습니다.


파괴와 폭력 속에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기록하고, 그리며, 이야기하는 행위를 통해 존엄성을 지켜냅니다. 예술가 말락 마타르의 에피소드는 예술이 생존과 저항의 방식임을 보여줍니다. 기록하고 증언하는 행위는 억압에 맞서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저자는 가자 지구 주민들이 글을 쓰는 행위에 담긴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의에 맞서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로 마음의 탈식민지화(Decolonize your mind)를 제시합니다. 다행히도 팔레스타인인 인권을 위해 적극적으로 싸우는 이스라엘 시민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편견과 방관의 벽을 허물고 보편적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호소를 보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의 권리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스라엘 시민의 안전을 부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시민의 안전을 걱정한다고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를 외면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인권의 언어라면 양쪽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걸 짚어줍니다. 오늘 팔레스타인에서 국제법이 무시되는 것을 묵인한다면, 내일 다른 곳에서 국제법이 무너질 때 그것을 비판할 근거 역시 약해집니다.


세계가 눈감은 진실을 깨우는 가장 뜨거운 기록 『세상이 잠들 때』.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미 너무 많은 뉴스가 쏟아진 탓에 우리가 놓쳐버린 사람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입니다. 보편적 양심을 향한 직언, 우리가 마주해야 할 우리 시대의 질문들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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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의 숲으로
아리아나 스퀼로니 지음, 라켈 카탈리나 그림, 이다손 옮김 / 모스그린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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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인생을 시간으로 이야기합니다. 몇 살에 무엇을 했고, 언제 무엇을 했고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다시, 나의 숲으로』는 슬쩍 비틀어버립니다. 시간이 아니라 크기로 인생을 그려냈습니다.


2025년 제18회 콤포스텔라 국제 그림책상을 거머쥔 이 그림책은 아리아나 스퀼로니와 라켈 카탈리나가 함께 만들었습니다. 나탈리아라는 아흔 살 여성의 인생 여정을 담백하게 보여줍니다.


나탈리아는 숲가의 작은 집에서 태어나 그 집이 비좁게 느껴질 만큼 자랐다가, 넓은 도시로 나아갑니다.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배우고, 여행하고, 캔버스 위에 자신의 세상을 그려 넣으며 어른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몸이 늙어가고 마음의 무게가 무거워질 때, 도시는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닌 거대한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이 장면을 작가는 실제로 몸이 작아지는 것으로 그려냅니다. 처음엔 그저 상상력 놀이처럼 다가왔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깨닫게 됩니다. 노년이라는 걸 몸의 언어로 번역해낸 그림책입니다.


청년기의 우리는 세계를 담기 위해 스스로를 확장해야 하지만, 생의 후반부에 이르면 도리어 그 확장이 몸을 짓눌러옵니다. 계단을 오르는 작은 다리, 장바구니를 든 굽은 등, 빗속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나탈리아의 작은 실체는 도시라는 거대한 배경과 대비되며 짠한 울림을 줍니다. 삶이 지쳐갈 때 필요한 것은 더 큰 성취가 아니라, 나를 온전히 보듬어줄 수 있는 본래의 크기로 돌아가는 용기입니다.


아흔 살이 된 나탈리아는 도시를 떠나 숲가의 작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흔히 노년을 쇠퇴나 결핍으로 바라봅니다. 그런데 나탈리아의 작아짐은 퇴보가 아니라,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축소입니다. 세상 속에서 부풀어 올랐던 자아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마침내 나라는 존재의 가장 순수한 알맹이만 남겨두는 과정인 셈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좁고 답답했던 집이 나중에는 가장 편안한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나탈리아가 귀환한 집은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크기의 세계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가장 나다운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나탈리아는 끝까지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도시로 떠난 것도 자신이었고, 그림을 그린 것도 자신이었고, 다시 숲으로 돌아간 것도 자신입니다. 그리고 숲으로 돌아온 뒤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나탈리아가 너무 작아져 이웃조차 그녀의 존재를 잊었을 즈음, 그 작아진 존재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거대한 영감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빈 집인 줄 알고 들어온 젊은 화가와의 이야기가 이어졌기에 이 그림책이 주는 여운이 더 깊어졌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고 가슴이 먹먹해졌던 순간은 뜻밖에도 책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과 끝난 후 만나는 초록 면지였습니다. "작아진 나의 엄마에게", "수고 많았어요. 엄마."라는 이 짧은 한 줄의 문장이 주는 파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평생 산처럼 커 보였지만 어느덧 내 품에 안길 만큼 작아진 엄마의 뒷모습이 겹쳐졌습니다. 나를 위해 세상의 풍파를 막아주고 언제나 내 편이었던 거대했던 존재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작아지고 있어 먹먹함이 밀려왔습니다.


더욱이 저도 근래 앓고 난 뒤라 이 그림책이 더욱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아픔을 겪고 나니 나 역시 언젠가 내 아이 앞에서 세월을 입고 조금씩 작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훗날 내 아이가 작아진 나를 바라볼 그 순간을 상상하면 참 마음이 미묘해집니다. 부모를 돌본다는 건 결국 작아지는 존재를 마주하는 일이고, 언젠가는 저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거라는걸요. 


아이들에게는 성장과 돌봄에 대한 다정한 눈높이의 이야기를 선물합니다. 매일 커다란 어른들을 올려다보며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작아진 나탈리아 할머니는 마치 자신과 비슷한 크기를 가진 친근한 친구처럼 느껴지고, 자라면서 집과 옷이 비좁아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공간과 신체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늘 자신을 돌봐주던 어른도 작아질 수 있음을 보며 약한 존재를 포근히 안아주고 싶어 하는 다정한 마음, 신나고 넓은 세상을 경험한 뒤 결국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품으로 돌아오는 안식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가슴에 담게 됩니다.


장황한 서사보다 정적인 이미지로 감정을 전달하는 『다시, 나의 숲으로』. 작아짐은 슬픔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을 온전히 완주한 이에게 주어지는 훈장이자 숲으로 돌아가는 거룩한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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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가장자리 - 부서진 유년의 파편에서 출현한 신경과학자 이야기
데이비드 수실로 지음, 이충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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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어린 시절이 불우했기 때문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누군가 성공하면 그 사람의 인생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이야기가 이해하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한 인간은 그렇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데이비드 수실로(David Sussillo)는 인공지능과 뇌과학의 접점에서 주목받는 연구자입니다. 구글 브레인과 메타 리얼리티 랩스의 수석과학자로 일했고, 현재 스탠퍼드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이력 뒤에는 어두운 유년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약물 중독에 빠진 부모 아래에서 방임과 폭력을 겪었고, 보육원과 기숙학교 등 여러 시설을 전전하며 자랐습니다.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절망적인 환경에 처했던 소년이 어떻게 살아남아 세계적인 과학자로 도약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과학적 통찰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을 구원하고 재구성했는지를 풀어낸 회고록입니다.


저자의 어린 시절은 무질서(1부)와 카오스(2부) 그 자체였습니다. 부모의 약물 중독과 방임, 그리고 끝없는 가난은 어린 소년에게 세계가 언제든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극심한 불안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혼돈의 한가운데서 그를 일깨운 것은 낡은 보육원 컴퓨터 화면에 찍힌 몇 줄의 코드였습니다.





코딩은 자신이 직접 규칙을 부여하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최초의 질서 영역이었습니다. 컴퓨터라는 기계는 부모처럼 예고 없이 그를 버리지 않았고, 자신이 입력한 기호 그대로 정직하게 답을 내놓았습니다. 가난과 상처로 얼룩진 아이의 존재감이 무한 루프 문장을 통해 증폭되었던 경험은, 그가 훗날 기계와 인간의 지능을 연구하는 계산신경과학자로 발을 내딛게 만든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질서(3부)'에 접어들며 저자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학문의 길로 진입합니다. 7학년 시절 접한 콘웨이의 생명 게임 프로그래밍은 그에게 커다란 지적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2차원 격자판 위에서 세포가 살고 죽는 몇 가지 규칙만으로 우주선이나 진동자 같은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한 패턴이 피어나는 현상을 목도한 것입니다.


이것은 훗날 그가 평생을 바쳐 연구하게 될 창발(Emergence)의 직관적 실체였습니다. 신경세포 하나만으로 인간의 기억이나 사랑, 불안, 의식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수많은 신경세포가 연결되고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훨씬 복잡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저자는 뇌세포 하나하나를 관찰하는 것을 넘어, 이것들이 한데 얽혀 만들어내는 마음의 거대한 숲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개별 요소의 단순한 합을 뛰어넘는 고차원적 패턴, 즉 창발적 현상으로서 마음을 바라볼 때 비로소 인간 존재의 신비에 다가설 수 있음을 들려줍니다.


보통 성공한 사람의 회고록에는 어느 정도의 정리 과정이 들어갑니다. 어린 시절의 고난은 훗날의 성공을 위한 자양분이 되고, 실패는 배움이 되며, 우연한 만남은 결정적 기회가 됩니다. 책을 덮고 나면 "그래서 이 사람이 이렇게 성장했구나"라는 인과관계가 깔끔하게 완성됩니다. 하지만 수실로의 이야기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세계적인 연구자가 되었다고 해서 과거의 트라우마가 의미 있는 경험으로 자동 변환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카오스의 가장자리(4부)'에서 그는 예고 없이 밀려드는 극심한 공황발작과 대면하며 다시 한번 삶의 휘청거림을 경험합니다.


저자는 신경과학적 지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삶의 공포나 정신적 통증에서 완전히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여기서 그가 던지는 질문은 "어떻게 역경을 극복했는가?"가 아니라 "왜 여러 조건이 서로 얽힌 결과로 지금의 내가 나타났는가?"에 가깝습니다. 자신을 짓누르는 공포와 분노는 개인의 의지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환경과 유전적 요소, 뇌의 복잡한 신경망이 상호작용하며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파괴적 패턴이었습니다.


그는 이 절망의 순간에 삶을 포기하는 대신, 치료사와의 상담과 달리기 그리고 규칙적인 루틴을 통해 신경계의 신호들을 조금씩 재조정해 나갔습니다. 무질서와 완전한 질서 사이, 바로 '카오스의 가장자리'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터득한 것입니다.


마지막 '창발(5부)'에 이르러 저자는 같은 비극적인 유년기를 공유했음에도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간 누나 에스터의 죽음을 마주합니다. 똑같이 파괴적인 환경에서 자랐지만, 누나는 트라우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고 저자는 과학자로 살아남았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차이를 흔한 신화인 개인의 뛰어난 재능이나 강인한 노력 덕분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은 원인과 결과가 명확히 일치하는 직선 형태의 방정식이 아닙니다. 부모의 중독, 시설에서의 경험, 우연히 만난 멘토, 컴퓨터와의 만남, 유전적 소질, 그리고 수많은 순간의 선택들이 거대한 인공신경망처럼 복잡하게 얽혀 작용한 끝에 출현한 결과물이 바로 현재의 '나'라는 깨달음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깔끔하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억은 평생 남고, 어떤 관계는 흔적을 남기며, 어떤 상처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살아가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관심을 발견하고,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그 과정이 창발입니다.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역경을 극복한 한 과학자의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 삼아, 과학적 통찰이 어떻게 삶의 비극을 다루는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계산신경과학의 핵심 개념인 창발과 인공신경망을 한 학자의 생생한 삶의 서사와 결합해 쉽고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됩니다.


상처받은 과거나 불행한 환경은 결코 나라는 존재의 전모를 규정하지 못합니다. 수많은 신경세포가 충돌하고 연결되며 생각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내듯, 우리 삶 역시 무수한 상처와 방황, 뜻밖의 만남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언제든 새로운 가능성으로 출현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파편에 갇혀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예측 불가능한 가능성과 새로운 출현을 다정하게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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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게 씁니까 - 글쓰기로 자기 세계를 만든 열두 작가들
강원국 지음 / 디플롯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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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가 수초 만에 매끄러운 단락을 완성해 내는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타인의 진정성 있는 목소리에 더 주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기술이 문장의 형식적 완결성을 손쉽게 흉내 낼 때, 강원국 작가의 신작 『당신은 어떻게 씁니까』는 글쓰기의 본질을 묻습니다.


저자 강원국은 대우그룹 회장과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말과 글을 연설비서관으로서 대신 써왔고, 쉰 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자기 이름이 박힌 책 《대통령의 글쓰기》를 내놓았습니다. 이번에는 쓰는 사람의 눈으로 시인, 소설가, 기자, 웹소설 작가 등 각기 다른 영역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열두 명의 창작자를 찾아갔습니다.


조정래, 김용택, 김진명, 서명숙, 유인경, 정지아, 이영미, 김민식, 김남희, 원태연, 정진영, 천지혜. 소설가와 시인, 기자와 편집자, 여행작가와 방송 PD, 웹소설 작가와 작사가까지 장르가 제각각입니다. 강원국 저자가 열두 명의 작가에게 던진 질문은 제목 그대로 "당신은 어떻게 씁니까"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질문은 "당신의 문장을 만든 것은 어떤 삶이었습니까?"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씁니까』는 글 잘 쓰는 팁을 전수하는 책은 아닙니다. 결핍과 낙방, 번아웃과 실패를 몸으로 통과해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창적인 문체의 근원을 추적하고, 문장 이면에 담긴 삶의 궤적을 만나게 됩니다. 이 책은 글쓰기 책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이 자기 세계를 갖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글의 깊이는 문장 재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품은 질문의 무게에서 비롯됩니다. 거장 조정래 작가의 집필 태도가 그렇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통일되기 전까지는 발표할 수 없는 원고를 쓰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손주에게 너희 때도 통일이 되지 않으면 이 작품을 네 자식에게 대를 물려야 한다고, 당대에 남겨놓고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너무나 쉽게 숫자로 환산됩니다. 조회 수, 좋아요, 구독자, 판매량, 검색 노출, 댓글…. 그런데 조정래 작가의 작품은 당장 독자에게 읽힐 가능성조차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씁니다. 기록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먼저인 사람인 겁니다.


저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며 기술적인 요령을 묻는 질문인 '어떻게'에서 인물의 내면과 삶의 이유를 묻는 질문인 '왜'로 축을 옮깁니다.


"눈을 뜨면 커피를 내리고, 엄마 밥을 챙겨드리고, 고양이 똥을 치우고, 밥을 주고… 그러면서 수시로 밖을 봐요. 아무 생각 없는 것처럼 보여도, 머릿속에서는 몇 개의 소설이 계속 돌아가고 있어요. ‘이 장면 뒤에 이걸 붙이면 되겠구나’ ‘저 인물 다음엔 이 말이 나오겠구나’. 그렇게 산자락이 이어지듯 생각을 붙이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가 완성되어 있어요."라고 말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작가.





글쓰기가 책상 앞에서의 절박한 작업 이전에 일상 그 자체여야 함을 보여줍니다. 구례의 적막한 풍경 속에서 일상을 조용히 집필의 리듬으로 흡수한 그의 문장은 힘을 뺀 끝에 비로소 깊은 유머와 해학을 얻었습니다.


정지아 작가의 말에 강원국 저자는 깨닫습니다. "나는 글을 쓸 때 주로 '어떻게'를 먼저 생각한다. 어떻게 설명할까, 어떻게 표현할까. 그런데 정지아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왜'를 너무 적게 묻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는 기술의 문제지만, '왜'는 이야기의 씨앗이다. 좋은 문장은 '어떻게'에서 나오지만, 좋은 이야기는 '왜'에서 시작된다."라고 말이지요.


이 책에 등장하는 창작자들은 결코 탄탄대로만을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문장은 오히려 고통과 낙방, 번아웃 같은 뼈아픈 실존적 한계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단단해졌습니다. 정진영 작가는 고시 낙방과 오랜 기자 생활을 거쳐 마흔에 전업작가가 되었습니다. 김민식 작가는 망한 인생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시기에 글을 만났습니다. 김남희 작가는 전 재산 3,000만 원을 들고 중국행 배에 오른 뒤 100여 개 나라를 걸었습니다. 원태연 작가는 난독증을 가진 채 시와 노랫말을 썼습니다.


웹소설 스타 작가 천지혜는 줄글 대신 네모, 동그라미, 표를 적극 활용하는 독창적인 플롯 도식화 방식을 구축했습니다. 마케터 출신으로서의 직관과 번아웃을 극복하며 쌓아 올린 철저한 기획력은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서사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AI가 초안을 쏟아내는 환경 속에서 인간 작가는 어떤 위치에 서야 할까요? 인터뷰어 강원국 저자 본인의 솔직한 고백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잘 쓰는 일은 AI 때문에 의미가 없어졌지만, 내 글은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못 쓴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그도 AI를 조연출로 활용합니다. 바탕을 깔아주는 역할로 말이죠.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사례들을 넣으며, 글쓰기 훈련을 더 해서 글쓰기 근력을 키우는 겁니다. 저자는 스스로 느끼는 창작의 불안감마저도 펜을 놓지 않게 만드는 훌륭한 엔진으로 전환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씁니까』는 기교가 아닌 태도를, 결과물로서의 문장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열두 명의 작가가 내놓은 답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궤를 달리하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잘 쓰기 위해 버둥거리기보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정직하게 살아낼 것. 그 삶의 고통과 기쁨을 오롯이 통과해낸 문장만이 타인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글 쓰는 태도와 습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데다가, 거장들의 작업 방식을 통해 창작의 슬럼프를 극복할 용기를 얻게 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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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과학 - 집파리에서 인공지능까지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쓰레기의 모든 것
곽재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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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는 하루가 끝나면 사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종량제 봉투에 담아 집 밖에 내놓고, 분리수거함에 넣고, 음식물 통에 버리면 내 삶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2024년 통계치에 따르면 한국인 1인이 하루에 배출하는 생활 폐기물은 약 1.2kg, 전국적으로 매일 6만 톤에 육박하는 엄청난 양의 부산물이 쏟아져 나온다고 합니다. 1분당 무려 41.7톤에 달하는 비유용한 부산물들은 우리의 눈앞에서 빠르게 사라지기 때문에,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시스템을 잊고 살아갑니다. 쓰레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것이며, 우리가 외면한 순간부터 오히려 훨씬 복잡한 과학과 산업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SF 소설가이자 공학자인 독보적인 이야기꾼, 곽재식 교수의 신작 『쓰레기 과학』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이 더럽고 하찮은 대상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버려지는 미시적인 물성에서부터 최첨단 인공지능과 우주산업에 이르기까지, 현대 인류 문명이 어떻게 자원의 순환과 과학기술의 협력을 통해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쓰레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인간이 만든 풍요의 뒷면을 책임지는 성숙한 시민으로 거듭나는 통로입니다.


먼저 600년 전 조선시대로 안내합니다. 세종대왕 시절, 청계천을 둘러싼 신하들의 논쟁은 오늘날 매립지 갈등이나 환경 정책 수립 과정과 닮았습니다. 도시라는 공간이 형성된 이래 오물과 폐기물의 처리가 늘 정치적, 사회적 메커니즘의 중심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쓰레기는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이 모여 도시를 이루고 살아온 순간부터 발생했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먹고 남은 것, 만들고 남은 것, 부서진 것들이 쌓입니다. 결국 쓰레기는 문명이 생겼다는 증거이면서 문명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기도 합니다.


현대에 이르러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벌어진 정치적 파행과 매립지 부재가 불러온 쓰레기 대란은 치워지지 않은 폐기물이 어떻게 한 현대 도시의 일상을 마비시키고 사회적 폭동으로 분출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1부 ‘땅에 묻기’에서는 버려진 것들이 모이는 장소들의 거대함과 그 속에 숨은 기술적 도전을 파헤칩니다. 남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니모 지점(Point Nemo)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합니다.


인적이 드물어 사람이나 시설에 피해를 줄 가능성이 적고, 수심이 깊어 그 잔해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작은 곳에서 안전하게 처리해야 하는 특별한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라고 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지상으로 눈을 돌리면 위생매립 방식을 만나게 됩니다. 쓰레기를 흙으로 덮는 행위는 직관적이고 쉬워 보이지만, 집파리의 번식을 막고 침출수를 차단하며 매립 가스를 수집해 에너지를 재생산하는 고도의 생물학적·지질학적 공학 기술이 숨어 있습니다. 매립지를 파내려 가는 중장비의 유압 기계학부터 오염물질을 분석하기 위해 빛과 원자를 다루는 양자 이론까지, 땅 아래에는 현대 기초과학의 정수가 숨 쉬고 있습니다.


2부 ‘재활용하기’에 들어서면 매립지에서 자원으로 시선이 이동합니다. 알루미늄, 철, 희귀 금속, 배터리, 종이, 플라스틱, 음식물 쓰레기, 건설 폐기물, 소각까지 이어집니다.


여기서 재활용 =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공식은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재활용하려면 수거해야 하고, 선별해야 하고, 운송해야 하고, 가공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와 비용이 들어갑니다. 재활용한 소재의 품질이 충분히 좋아야 시장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원순환은 폐기물 문제만 해결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너지 생산 방식, 산업구조, 국가별 자원 조건까지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책 곳곳에서 곽재식 특유의 스토리텔링 솜씨가 드러납니다. 종이 재활용 과정에서 먹이나 잉크를 제거하는 탈묵 공정을 설명하며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는 옛 가요를 들어 유쾌하게 해설하는 부분이나, 소각장의 열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펭귄 발의 이류열교환 원리를 응용하는 공학적 지혜가 재미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소각장의 불길과 연기 성분을 센서로 파악해 최적의 연소 상태를 유지하고 오염물질을 자동 제어하는 알고리즘은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아닌 기술과 환경이 공존하는 길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환경문제가 물리학, 화학, 재료공학, 경제학, 행정학이 하나의 용광로처럼 융합될 때 진정한 자원순환 사회가 구축될 수 있음을 짚어줍니다. 『쓰레기 과학』을 읽어 내려가며 깨달은 건 '비움'과 '버림' 역시 철저히 계산된 과학적 메커니즘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와 문학, 영화, 최첨단 기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곽재식 저자의 유쾌한 입담이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하찮은 폐기물 속에 숨겨진 위대한 과학의 세계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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