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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의 숲으로
아리아나 스퀼로니 지음, 라켈 카탈리나 그림, 이다손 옮김 / 모스그린 / 2026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인생을 시간으로 이야기합니다. 몇 살에 무엇을 했고, 언제 무엇을 했고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다시, 나의 숲으로』는 슬쩍 비틀어버립니다. 시간이 아니라 크기로 인생을 그려냈습니다.
2025년 제18회 콤포스텔라 국제 그림책상을 거머쥔 이 그림책은 아리아나 스퀼로니와 라켈 카탈리나가 함께 만들었습니다. 나탈리아라는 아흔 살 여성의 인생 여정을 담백하게 보여줍니다.
나탈리아는 숲가의 작은 집에서 태어나 그 집이 비좁게 느껴질 만큼 자랐다가, 넓은 도시로 나아갑니다.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배우고, 여행하고, 캔버스 위에 자신의 세상을 그려 넣으며 어른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몸이 늙어가고 마음의 무게가 무거워질 때, 도시는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닌 거대한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이 장면을 작가는 실제로 몸이 작아지는 것으로 그려냅니다. 처음엔 그저 상상력 놀이처럼 다가왔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깨닫게 됩니다. 노년이라는 걸 몸의 언어로 번역해낸 그림책입니다.
청년기의 우리는 세계를 담기 위해 스스로를 확장해야 하지만, 생의 후반부에 이르면 도리어 그 확장이 몸을 짓눌러옵니다. 계단을 오르는 작은 다리, 장바구니를 든 굽은 등, 빗속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나탈리아의 작은 실체는 도시라는 거대한 배경과 대비되며 짠한 울림을 줍니다. 삶이 지쳐갈 때 필요한 것은 더 큰 성취가 아니라, 나를 온전히 보듬어줄 수 있는 본래의 크기로 돌아가는 용기입니다.
아흔 살이 된 나탈리아는 도시를 떠나 숲가의 작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흔히 노년을 쇠퇴나 결핍으로 바라봅니다. 그런데 나탈리아의 작아짐은 퇴보가 아니라,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축소입니다. 세상 속에서 부풀어 올랐던 자아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마침내 나라는 존재의 가장 순수한 알맹이만 남겨두는 과정인 셈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좁고 답답했던 집이 나중에는 가장 편안한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나탈리아가 귀환한 집은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크기의 세계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가장 나다운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나탈리아는 끝까지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도시로 떠난 것도 자신이었고, 그림을 그린 것도 자신이었고, 다시 숲으로 돌아간 것도 자신입니다. 그리고 숲으로 돌아온 뒤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나탈리아가 너무 작아져 이웃조차 그녀의 존재를 잊었을 즈음, 그 작아진 존재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거대한 영감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빈 집인 줄 알고 들어온 젊은 화가와의 이야기가 이어졌기에 이 그림책이 주는 여운이 더 깊어졌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고 가슴이 먹먹해졌던 순간은 뜻밖에도 책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과 끝난 후 만나는 초록 면지였습니다. "작아진 나의 엄마에게", "수고 많았어요. 엄마."라는 이 짧은 한 줄의 문장이 주는 파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평생 산처럼 커 보였지만 어느덧 내 품에 안길 만큼 작아진 엄마의 뒷모습이 겹쳐졌습니다. 나를 위해 세상의 풍파를 막아주고 언제나 내 편이었던 거대했던 존재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작아지고 있어 먹먹함이 밀려왔습니다.
더욱이 저도 근래 앓고 난 뒤라 이 그림책이 더욱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아픔을 겪고 나니 나 역시 언젠가 내 아이 앞에서 세월을 입고 조금씩 작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훗날 내 아이가 작아진 나를 바라볼 그 순간을 상상하면 참 마음이 미묘해집니다. 부모를 돌본다는 건 결국 작아지는 존재를 마주하는 일이고, 언젠가는 저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거라는걸요.
아이들에게는 성장과 돌봄에 대한 다정한 눈높이의 이야기를 선물합니다. 매일 커다란 어른들을 올려다보며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작아진 나탈리아 할머니는 마치 자신과 비슷한 크기를 가진 친근한 친구처럼 느껴지고, 자라면서 집과 옷이 비좁아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공간과 신체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늘 자신을 돌봐주던 어른도 작아질 수 있음을 보며 약한 존재를 포근히 안아주고 싶어 하는 다정한 마음, 신나고 넓은 세상을 경험한 뒤 결국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품으로 돌아오는 안식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가슴에 담게 됩니다.
장황한 서사보다 정적인 이미지로 감정을 전달하는 『다시, 나의 숲으로』. 작아짐은 슬픔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을 온전히 완주한 이에게 주어지는 훈장이자 숲으로 돌아가는 거룩한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