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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게 씁니까 - 글쓰기로 자기 세계를 만든 열두 작가들
강원국 지음 / 디플롯 / 2026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생성형 AI가 수초 만에 매끄러운 단락을 완성해 내는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타인의 진정성 있는 목소리에 더 주린 상태가 되었습니다. 기술이 문장의 형식적 완결성을 손쉽게 흉내 낼 때, 강원국 작가의 신작 『당신은 어떻게 씁니까』는 글쓰기의 본질을 묻습니다.
저자 강원국은 대우그룹 회장과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말과 글을 연설비서관으로서 대신 써왔고, 쉰 살이 넘어서야 비로소 자기 이름이 박힌 책 《대통령의 글쓰기》를 내놓았습니다. 이번에는 쓰는 사람의 눈으로 시인, 소설가, 기자, 웹소설 작가 등 각기 다른 영역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열두 명의 창작자를 찾아갔습니다.
조정래, 김용택, 김진명, 서명숙, 유인경, 정지아, 이영미, 김민식, 김남희, 원태연, 정진영, 천지혜. 소설가와 시인, 기자와 편집자, 여행작가와 방송 PD, 웹소설 작가와 작사가까지 장르가 제각각입니다. 강원국 저자가 열두 명의 작가에게 던진 질문은 제목 그대로 "당신은 어떻게 씁니까"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질문은 "당신의 문장을 만든 것은 어떤 삶이었습니까?"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씁니까』는 글 잘 쓰는 팁을 전수하는 책은 아닙니다. 결핍과 낙방, 번아웃과 실패를 몸으로 통과해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창적인 문체의 근원을 추적하고, 문장 이면에 담긴 삶의 궤적을 만나게 됩니다. 이 책은 글쓰기 책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이 자기 세계를 갖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글의 깊이는 문장 재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품은 질문의 무게에서 비롯됩니다. 거장 조정래 작가의 집필 태도가 그렇습니다. 조정래 작가는 통일되기 전까지는 발표할 수 없는 원고를 쓰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손주에게 너희 때도 통일이 되지 않으면 이 작품을 네 자식에게 대를 물려야 한다고, 당대에 남겨놓고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너무나 쉽게 숫자로 환산됩니다. 조회 수, 좋아요, 구독자, 판매량, 검색 노출, 댓글…. 그런데 조정래 작가의 작품은 당장 독자에게 읽힐 가능성조차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씁니다. 기록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먼저인 사람인 겁니다.
저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며 기술적인 요령을 묻는 질문인 '어떻게'에서 인물의 내면과 삶의 이유를 묻는 질문인 '왜'로 축을 옮깁니다.
"눈을 뜨면 커피를 내리고, 엄마 밥을 챙겨드리고, 고양이 똥을 치우고, 밥을 주고… 그러면서 수시로 밖을 봐요. 아무 생각 없는 것처럼 보여도, 머릿속에서는 몇 개의 소설이 계속 돌아가고 있어요. ‘이 장면 뒤에 이걸 붙이면 되겠구나’ ‘저 인물 다음엔 이 말이 나오겠구나’. 그렇게 산자락이 이어지듯 생각을 붙이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가 완성되어 있어요."라고 말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쓴 정지아 작가.

글쓰기가 책상 앞에서의 절박한 작업 이전에 일상 그 자체여야 함을 보여줍니다. 구례의 적막한 풍경 속에서 일상을 조용히 집필의 리듬으로 흡수한 그의 문장은 힘을 뺀 끝에 비로소 깊은 유머와 해학을 얻었습니다.
정지아 작가의 말에 강원국 저자는 깨닫습니다. "나는 글을 쓸 때 주로 '어떻게'를 먼저 생각한다. 어떻게 설명할까, 어떻게 표현할까. 그런데 정지아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왜'를 너무 적게 묻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는 기술의 문제지만, '왜'는 이야기의 씨앗이다. 좋은 문장은 '어떻게'에서 나오지만, 좋은 이야기는 '왜'에서 시작된다."라고 말이지요.
이 책에 등장하는 창작자들은 결코 탄탄대로만을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문장은 오히려 고통과 낙방, 번아웃 같은 뼈아픈 실존적 한계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단단해졌습니다. 정진영 작가는 고시 낙방과 오랜 기자 생활을 거쳐 마흔에 전업작가가 되었습니다. 김민식 작가는 망한 인생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시기에 글을 만났습니다. 김남희 작가는 전 재산 3,000만 원을 들고 중국행 배에 오른 뒤 100여 개 나라를 걸었습니다. 원태연 작가는 난독증을 가진 채 시와 노랫말을 썼습니다.
웹소설 스타 작가 천지혜는 줄글 대신 네모, 동그라미, 표를 적극 활용하는 독창적인 플롯 도식화 방식을 구축했습니다. 마케터 출신으로서의 직관과 번아웃을 극복하며 쌓아 올린 철저한 기획력은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서사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AI가 초안을 쏟아내는 환경 속에서 인간 작가는 어떤 위치에 서야 할까요? 인터뷰어 강원국 저자 본인의 솔직한 고백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잘 쓰는 일은 AI 때문에 의미가 없어졌지만, 내 글은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못 쓴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그도 AI를 조연출로 활용합니다. 바탕을 깔아주는 역할로 말이죠.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사례들을 넣으며, 글쓰기 훈련을 더 해서 글쓰기 근력을 키우는 겁니다. 저자는 스스로 느끼는 창작의 불안감마저도 펜을 놓지 않게 만드는 훌륭한 엔진으로 전환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씁니까』는 기교가 아닌 태도를, 결과물로서의 문장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열두 명의 작가가 내놓은 답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궤를 달리하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잘 쓰기 위해 버둥거리기보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정직하게 살아낼 것. 그 삶의 고통과 기쁨을 오롯이 통과해낸 문장만이 타인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글 쓰는 태도와 습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데다가, 거장들의 작업 방식을 통해 창작의 슬럼프를 극복할 용기를 얻게 되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