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잠들 때 - 유엔 특별보고관이 전하는 팔레스타인의 목소리와, 우리가 마주해야 할 10개의 얼굴들
프란체스카 알바네세 지음, 최보민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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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국제법과 인간성의 눈으로 읽는 팔레스타인의 진실 『세상이 잠들 때』. 프란체스카 알바네세(Francesca Albanese)는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특별보고관으로, 이 직책을 맡은 최초의 여성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와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 등에서 활동하며 참혹한 현장의 인권 침해를 기록해 왔습니다. 2022년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된 이래,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벌이는 집단학살과 점령 체제의 불법성을 국제법적 근거에 기반해 고발해 왔습니다. 이 공로로 스테파노 키아리니 국제상, 더 라이츠 포럼의 드리스 반 아그트 상, 스페인 정부의 시민공로훈장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잠들 때』는 10명의 삶으로 재구성한 팔레스타인 이야기입니다.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은 사상자 수 같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통계의 그늘에 가려진 개별 인간의 존재감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여섯 살 어린이 힌드 라잡의 비극으로 시작합니다. 차 안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의 위태로운 목소리는, 그저 전쟁의 피해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없는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12일 후, 도와달라고 3시간을 통화했던 그 차 안에서 힌드가 발견되었습니다. 300발이 넘는 총알에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상태로 말입니다.


이런 비극은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점령 체제 아래서 반복되는 구조적 폭력입니다. 저자는 또 다른 아이를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현실의 무게를 일깨웁니다. 열네 살의 와디아는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그게 죽음을 막아주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살아가는 걸 방해할 뿐이죠."라고 말합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두려움과의 투쟁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국제 사회가 과연 어떠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묻게 만듭니다.


『세상이 잠들 때』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오랫동안 이어져 온 감정적 갈등이나 종교적 분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납니다. 점령군이 제도를 통해 어떻게 한 민족의 권리와 존재를 옭아매고 있는지를 짚어냅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조차 엄격하게 적용되는 군사 재판 체제는 점령의 가혹함을 잘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돌을 던졌다는 혐의를 듣고는 바로 형을 2년 징역, 3년 징역을 선고합니다. 팔레스타인인에게는 돌을 던진 행위에 대한 형량이 최대 10년(상해를 입힐 의도가 있었다면 20년)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점령을 인도주의적으로 관리하려 했던 과거 국제기구들의 한계를 지적하며, 점령 자체가 자결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임을 일깨웁니다. 더불어 누가 진정한 토착민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역사적 맥락을 되짚습니다.


『세상이 잠들 때』는 팔레스타인 상황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방관 속에 방치된 불평등한 구도로 파악합니다. 국제 사회가 외면하는 사이, 현장의 의료진과 민간인들은 최소한의 생존조차 위협받는 극단적 상황에 내몰립니다. 외과의사 가산 아부 시타 박사의 증언은 가자 지구의 참상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폭격 피해자들을 수술했던 알시파 병원과 알아흘리 병원에 머무는 동안, 그는 하루에 최대 12건의 수술을 집도했고, 그중 상당수는 어린이 환자였습니다. 분쟁 초기 몇 달 동안 가자에서 약 900명의 어린이가 사지 절단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최소 열 번 이상은 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그럴 여력은 없습니다.


파괴와 폭력 속에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기록하고, 그리며, 이야기하는 행위를 통해 존엄성을 지켜냅니다. 예술가 말락 마타르의 에피소드는 예술이 생존과 저항의 방식임을 보여줍니다. 기록하고 증언하는 행위는 억압에 맞서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저자는 가자 지구 주민들이 글을 쓰는 행위에 담긴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의에 맞서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로 마음의 탈식민지화(Decolonize your mind)를 제시합니다. 다행히도 팔레스타인인 인권을 위해 적극적으로 싸우는 이스라엘 시민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편견과 방관의 벽을 허물고 보편적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호소를 보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의 권리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스라엘 시민의 안전을 부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시민의 안전을 걱정한다고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를 외면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인권의 언어라면 양쪽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걸 짚어줍니다. 오늘 팔레스타인에서 국제법이 무시되는 것을 묵인한다면, 내일 다른 곳에서 국제법이 무너질 때 그것을 비판할 근거 역시 약해집니다.


세계가 눈감은 진실을 깨우는 가장 뜨거운 기록 『세상이 잠들 때』.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미 너무 많은 뉴스가 쏟아진 탓에 우리가 놓쳐버린 사람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입니다. 보편적 양심을 향한 직언, 우리가 마주해야 할 우리 시대의 질문들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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