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 - 어려운 과학 개념부터 뜻밖의 뒷이야기까지, 술술 읽히는 과학 고전 가이드 ㅣ 지식의 눈 4
박균호 지음 / 지상의책(갈매나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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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수식과 거리를 둔 문과적 시선으로 다시 읽는 과학 고전 가이드북 『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 과학 고전이라는 장벽 앞에서 주춤하는 이들에게 인문학적 사유라는 새로운 사다리를 놓아주는 해설서입니다.


박균호 저자는 30년간 청소년들을 가르쳐 온 교사이자, 어려운 인문 교양서를 쉽고 깊이 있게 소개해 온 북 칼럼니스트입니다. 『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에서는 난해한 수식이나 공식을 이해시키려 들지 않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던졌는가?"라는 질문을 동력 삼아 과학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다채로운 인간적 서사로 재구성합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부터 2003년 도나 해러웨이의 『해러웨이 선언문』에 이르기까지 460년에 걸친 27권의 과학 명저를 다루면서, 과학이란 본래 사람의 고민과 시대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줍니다.





과학 고전을 읽는 새로운 틀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첫째, 과학사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인간과 맥락의 재발견입니다. 과학사의 위대한 장면들 뒤편에 존재했던 미완의 과정, 실패 그리고 수많은 협력자들의 존재를 조명합니다. 둘째, 비유와 상상력을 통한 선명한 장면 연출이 매력적입니다. 일상적인 직관과 비유로 개념의 본질을 설명하고 있어 과학적 현상을 비로소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문·이과의 경계를 넘어서는 하이브리드적 융합이 돋보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책임과 윤리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통찰을 자연스럽게 유도합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서는 이 책의 위대함이 감정적인 환경 운동에 그친 것이 아니라, 생태계의 균형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과도한 화학 물질 사용이 가져올 무서운 미래를 근거로 증명해 낸 점에 있음을 짚어줍니다. 한 장의 편지에서 시작된 작은 의문이 인류 전체의 경각심을 깨우는 고전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화학 제품 논쟁과 맞물려 지금도 유효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는 "방정식을 하나 넣을 때마다 판매가 절반으로 줄 거라는 말을 들었다"라며, 그래서 수식을 거의 걸러냈다고 밝힌 호킹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스티븐 호킹의 대중화 노력은 박균호 저자의 집필 의도와도 일치합니다. 수식을 과감히 배제하고 우주와 시간의 근원을 설명하려 했던 호킹의 태도는 과학이 전문 분야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저도 감명 깊게 읽었던 책입니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 바로 이 책에서 등장했거든요. 일상에서 남발되는 개념인 패러다임의 원류를 추적하며, 과학적 발전이 차곡차곡 벽돌을 쌓듯 선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극적인 인식의 틀 변화(혁명)를 거친다는 통찰을 짚어줍니다. 과학 고전 한 권이 어떻게 학문의 울타리를 넘어 일상의 언어 구조까지 바꾸어 놓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어서 이 주제에 딱 어울립니다.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도 흥미로웠습니다. 분자생물학의 성과를 다룬 서적이 결국 철학적 자아의 근원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은 이 책이 추구하는 문과적 독법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우주가 인류의 목적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할 때, 과학이 건네는 뜻밖의 인문학적 실존 의식과 마주하게 됩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SF 소설도 등장합니다. 상상력에서 시작된 SF 문학의 고전이 유전자 변형 식품이나 인공지능 등 최첨단 기술 비판의 핵심 비유로 기능합니다. 더불어 과학 기술의 편의성과 생명공학적 통제가 결합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와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메커니즘을 파헤침으로써, 과학 발전의 목적지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역설합니다.





무엇보다 꼭지마다 붙은 질문과 추천 도서 세 권은 한 권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견주어 읽게 합니다. 한 권의 책을 설명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책에서 파생된 질문을 던지고, 다시 다른 책으로 연결합니다. 책 마지막에 정리된 시대순 목록은 1543년부터 2020년대 교양서까지 이어지는 지적 흐름을 한눈에 보여줍니다. 인류가 던져온 질문의 스펙트럼이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비문학 과학 지문과 논술, 면접을 준비하며 개념의 장면이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는 청소년에게 좋은 입문서가 되어줄 『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 수식 뒤에 숨겨진 과학자들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시대적 맥락을 알면 훨씬 더 술술 잘 읽힙니다. 문과의 눈이란 과학을 얕게 보는 눈이 아니라, 과학이 닿는 곳을 넓게 보는 눈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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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캣 뭉치의 일상 - 따끈따끈 폭신폭신, 뭉치랑 놀 준비 됐어?
수지니 지음 / 북스고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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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귀여움 뒤에는 언제나 다정한 삶의 무게가 있습니다. 인스타툰 작가 수지니의 첫 그림에세이 『말랑캣 뭉치의 일상』은 고양이 뭉치와 함께하며 경험한 묵직하고 따뜻한 일상의 순간들을 담아낸 책입니다.


작가 수지니는 수만 팔로워의 사랑을 받는 ‘말랑캣 뭉치’의 일상툰과 이모티콘으로 널리 알려진 저자입니다. 책에서는 모바일 화면의 짧은 컷컷 속에 다 담아내지 못했던 깊은 속내, 첫 고양이 메시를 떠나보낸 뒤 겪었던 펫로스의 아픔과 새로운 존재를 맞이하며 느낀 미안함, 그리고 마침내 성숙한 집사로 거듭나는 고백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건넵니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집 안의 모든 사물이 새로이 재해석되는 놀라운 경험입니다. 뭉치가 가족들의 삶에 스며들며 일상의 풍경을 어떻게 바꿨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합니다.





무심코 던져둔 복주머니 형태의 가방, 굴러다니는 병뚜껑, 식빵 봉지를 묶던 비닐 끈… 방치되던 일상의 소소한 물건들이 고양이로 인해 추억을 품은 오브제로 탈바꿈합니다. 고양이라는 존재는 지루했던 인간의 공간에 새로운 의미의 결을 입힙니다.


고양이는 서먹했던 가족 간의 대화를 이어주는 무형의 다리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저자의 아버지가 건넨 "동물을 키우면 좋은 점은 웃을 일이 더 생긴다는 것"이라는 대답처럼, 반려동물은 집안의 정서적 기류를 바꾸고 웃음의 물꼬를 터주는 생명체입니다.


저자는 뭉치를 만나기 전, 첫 고양이 메시와의 이별을 겪었습니다. 그 이별이 남긴 슬픔과 죄책감은 새로운 생명인 뭉치가 다가왔을 때 온전히 기뻐할 수 없게 만드는 그늘이 되었습니다.


펫로스를 겪은 뒤 또 다른 반려동물을 맞이할 때 극심한 부채감에 시달립니다. 내가 이전 아이를 잊고 새 아이에게 마음을 주는 것은 배신이 아닐까?, 내가 다시 한 생명을 책임질 자격이 있을까? 하는 끊임없는 자책입니다.


저자는 뭉치와 함께 노는 순간에도, 밥을 먹이고 잠을 자는 순간에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메시의 그림자 앞에 멈춰 섰습니다. 하지만 이 죄책감을 억지로 털어내거나 감추려 하지 않습니다. 그 슬픔조차도 자신이 짊어져야 할 사랑의 한 형태임을 인정합니다.


현재 펫로스의 터널을 지나고 있거나, 또 다른 만남 앞에서 망설이는 이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선사합니다. 떠나보낸 존재에 대한 미안함을 새로 찾아온 존재에 대한 더 깊은 책임감과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사랑은 단순히 상대를 귀여워하는 마음을 넘어, 나 자신의 한계와 두려움을 깨부수는 용기로 발현되기도 합니다. 평소 벌레라면 질색을 하며 멀찌감치 도망치던 사람이, 혹여나 호기심 많은 고양이가 벌레를 덮칠까 봐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직접 벌레를 잡게 되는 변화. "벌레를 잡을 용기는 생겼지만, 무서워하지 않게 된 건 아니었다. 용감한 집사가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라는 유머러스한 혼잣말이 어찌나 공감되던지요.


책 곳곳에 수록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데 필요한 정보를 다루는 집사 노트는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나의 안락함과 취향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배우며 맞추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담아냈습니다. 반려동물 양육이 서로를 알아가는 평생의 대화임을 일깨워 줍니다.


첫 고양이를 맞은 사람은 웃음을 말하고, 이별을 겪은 사람은 웃음의 값을 압니다. 『말랑캣 뭉치의 일상』은 귀여움을 소비하는 책이 아니라, 귀여움의 값을 치러 본 사람이 쓴 책입니다.


짧은 영상 콘텐츠는 대부분 가장 귀여운 몇 초를 담았습니다. 하지만 함께 사는 일은 그 몇 초 바깥의 시간이 훨씬 깁니다. 밥과 화장실, 아플 때의 걱정 그리고 언젠가 오는 이별까지. 위로를 앞세우는 대신 즐거움만은 아니다라고 먼저 말해 주는 책이 오히려 더 믿음직한 위로가 되어줍니다. 웃을 일이 늘어나는 만큼, 마음 쓸 일도 늘어나는 것, 그게 사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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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 - 한글 580년, 팍스 코리아나로 가는 길
이현준 지음 / 해향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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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은 28자였는데 왜 우리가 배우는 한글은 24자일까요? 아래아(ㆍ), 반치음(ㅿ), 여린히읗(ㆆ), 옛이응(ㆁ)은 사라졌습니다. 한글날이 되면 훈민정음해례본 사진은 자주 보지만, 이 글자들을 일상에서 만날 기회는 없습니다. 이 사라진 글자들은 과연 세월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쓸모를 다해 사라진 옛 유물에 불과할까요?


25년간 외국어 교육 현장을 지켜온 이카이스 대표 이현준 저자는 『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에서 한글의 숨겨진 가치를 재조명합니다. 한글이 가진 본래의 소리 기록 능력에 주목했습니다.


"여기서 세종이 붙인 이름을 다시 보자. 훈민정자(訓民正字)가 아닌 훈민정음(訓民正音)이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즉 ‘글자’가 아닌 ‘소리’라고 분명하게 이름 지었다."라며 세종이 창제한 것은 단지 국어를 적기 위한 문자(字)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내는 온갖 음성을 정교하게 담아내는 범용 발음기호(音)였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훈민정음으로 우리말뿐만 아니라 중국 한자음과 외국어 소리까지 기록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우리말 발음에 쓰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네 글자와 각종 병서 표기법을 폐기하면서, 우리는 훈민정음이 가졌던 세계 모든 소리를 적는 위대한 발음기호로서의 기능 중 절반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현대 한국어 표기법에서 F와 P는 모두 'ㅍ'으로, V와 B는 모두 'ㅂ'으로, Z와 S는 모두 'ㅅ'으로 적힙니다. 이로 인해 'Fashion'과 'Passion', 'Victory'와 'Big' 같은 단어들이 한글 표기만으로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한계가 발생합니다.


저자는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였던 순경음(입술가벼운소리)과 사라진 글자 반치음(ㅿ) 등의 체계를 현대 외국어 표기에 다시 활용해 보자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ㅇ을 아래에 붙이면 입술을 완전히 닫지 않고 가벼운 스치는 소리가 됩니다. Fashion -> ᅗᅢ션 / Passion -> 패션으로 말입니다.


한국어 사용을 위한 24자의 문맥은 유지하되, 글로벌 외국어 교육과 한국어의 외국어 표기 영역에서 훈민정음 본래의 28자 체계 및 소리 조합 원리를 적극 부활시키자는 겁니다.


846년 아랍 문헌에 기록된 신라의 풍요로움과 매력처럼 오늘날 K-팝과 K-드라마를 통해 전 세계인이 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세종학당 수강생이 수십만 명으로 급증하고 한국어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이 배우는 언어로 올라선 지금, 세계인은 스스로 한국어와 한글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그려내는 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 타국을 압도하는 패권주의가 아닙니다. 세계인들이 한국의 문화와 언어를 사랑하여 스스로 한글을 익히고, 나아가 문자가 없는 소수 민족이 한글로 자신의 언어와 이름을 기록하는 문화적 공존의 시대입니다. 580년 전 세종대왕이 설계한 스물여덟 자의 소리 체계는 바로 이 소통과 포용의 팍스 코리아나를 가능하게 할 핵심 자산입니다.


알파벳은 일렬로 늘어놓는 나열식 문자이고, 한자는 글자마다 뜻과 모양을 따로 외워야 하는 수천 개의 무거운 체계입니다. 반면 훈민정음은 최소한의 기본 자모를 조합하여 11,172개 이상의 완벽한 소리 음절을 만들어내는 디지털적인 모듈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무한한 음성을 표현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라니, 놀랍지 않은가요?


무작정 외우던 한글 표기의 원리와 사라진 옛 글자의 비밀을 알게 되니 우리 문자에 대한 자부심이 타오릅니다. 외국어 발음에 훈민정음의 순경음과 병서 원리를 적용한 직관적 발음 솔루션은 정말 명쾌했습니다. 『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는 사라진 네 글자를 되찾을 때, 한글은 세계인의 언어를 적는 가장 위대한 발음기호가 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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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 - 하이드리오타피아, 유골 항아리 매장에 관하여
토머스 브라운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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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기억을 향한 디지털 집착의 시대, 17세기 의사가 들려주는 역설의 해방감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


끊임없이 기록하고 저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와 서버에는 우리가 남긴 일상과 사진이 디지털 영원성이라는 이름 아래 쌓여갑니다. 이 거대한 데이터의 무덤 속에서 역설적으로 깊은 피로와 성찰 없는 불안감이 생깁니다. 잊히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오히려 현재의 삶을 짓눌러 오기 때문입니다.


1650년대 중반, 잉글랜드 노퍽주의 한 들판에서 고대 유골 항아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의사였던 토머스 브라운은 죽은 뒤 내가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 무엇을 남길 것인지, 내 이름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것인지에 대한 인간의 집착을 아주 오래된 유골 항아리 앞에 세워놓습니다.


"화장터의 불길이 사그라지고 마지막 고별 의례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땅에 묻은 벗들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하곤 했지. 후대가 망자의 재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캐물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하고, 또 자기 유골이 얼마나 오래갈지 겪어 본 적도 없으니, 그런 뒷날의 일 따위는 아예 생각조차 안 하면서 말일세. 그러나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라는 벗에게 부치는 헌사 속 문장이 흥미롭습니다.





토머스 브라운은 후대가 캐물을 줄 몰랐던 사람들을 말하면서 그 후대인 자신이 지금 그 재를 캐묻고 있다는 사실을 슬쩍 드러냅니다. 옛사람들은 자기 뼈가 수백 년 뒤 들판에서 나와 남의 글감이 될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글을 쓰는 토머스 브라운도 자기 글과 뼈가 어떻게 될지 모르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 예고는 정확히 들어맞았습니다.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는 1658년에 나온 뒤 버지니아 울프, 보르헤스, 제발트 같은 후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라고 물었던 그 자신의 두개골이 먼 훗날 무덤 공사 중 파헤쳐져 지역 병원 박물관에 수십 년간 전시되는 수난을 겪고, 1922년에야 비로소 다시 땅에 묻혔기 때문입니다.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는 인류가 시신을 매장하고 화장해 온 장례의 역사를 살피며, 노퍽 들판에서 발굴된 항아리들의 유래와 시대를 추적합니다. 유물 속 뼈와 재, 소박한 기물들을 다루며 관찰과 상상을 오가는 토머스 브라운 특유의 문학적 문장이 돋보입니다. 특히 electricity(전기), hallucination(환각) 같은 어휘를 영어 문헌에 최초로 등장시켰을 만큼,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고 확장하는 남다른 감각을 보여줍니다.


의사였던 토머스 브라운은 시신의 부패와 화장 과정을 과학적인 시선으로 관찰합니다. 거대한 삶의 무게를 지녔던 인간도 뜨거운 불길을 지나면 불과 몇 파운드의 유기 물질과 염으로 축소됩니다. 하지만 허무주의로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오열과 애통함을 지나 육체의 물질적 한계를 직시할 때, 비로소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경건함과 숙연함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유골 항아리는 중요한 상징처럼 작동합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보여주는 물건입니다. 우리는 기록되는 것과 중요한 것을 같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명한 사람은 검색되고, 많은 사람이 공유한 콘텐츠는 더 오래 노출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드러내고 기록하는 일에 점점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기록의 역설입니다. 많이 남긴다고 반드시 오래 남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오래 남는다고 해서 반드시 본래의 의미까지 보존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름이 남아도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사라질 수 있고, 물질이 남아도 그것이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잊힐 수 있습니다. 저자가 바라본 뼈와 재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존재했다는 강력한 증거이지만, 그 사람의 삶 전체를 복원해 주지는 않습니다.


후반부에 이르러 이 책의 무게 중심은 죽음을 대하는 인간의 내면적 신념으로 이동합니다. 종교적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영혼의 지속을 믿는 사람과 죽음을 무의 상태로 보는 사람은 죽음을 전혀 다르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사후 세계를 맹신하는 이에게 이승의 삶은 조속히 끝내야 할 과제이자 순교처럼 무겁고, 반대로 소멸을 두려워하는 이에게 죽음은 완전한 무(無)로의 추락이라는 공포로 다가옵니다. 토머스 브라운은 인간이 죽음이라는 불확실성 앞에서 창조해 낸 신념의 스펙트럼을 기이하면서도 숭고하게 관조하며, 내세에 대한 강박이나 완전한 소멸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는 사유의 길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려 하고, 너무 오래 흔적을 남기려고 하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평가까지 미리 걱정합니다. 그런데 유골 항아리를 보면 그렇게까지 남으려고 애써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남기려는 흔적의 의미는 결국 내 손을 떠난 뒤에 만들어집니다.





『누가 자기 뼈의 운명을 알겠는가』는 죽음 이후에도 나라는 존재가 계속 의미 있기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기억되고 싶어 하는 동안 지금의 삶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지를 짚어줍니다. 내가 남길 유산을 지나치게 계산하지 않고, 평가받을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언젠가 잊힐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살아가는 습관이 오래도록 몸에 깊이 밸수록 우리는 오히려 죽음에 서툴러진다. 더 오래 살고 싶은 탐욕이 우리를 죽음에 서툴게 만든다."라는 문장으로 브라운은 불멸이라는 헛된 야망을 비워냄으로써, 불확실한 미래와 기억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오늘이라는 현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삶의 정서적 자유와 내면의 평온을 선사받는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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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링 & 씨댄스 - 매일매일 쓰는 영상 생성 편집 AI ㅣ 매일매일 AI 시리즈 5
전은재 지음 / 생능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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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프롬프트 한 줄로 하이엔드급 영상을 출력하는 AI 엔진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콘텐츠 창작의 진입장벽은 그 어느 때보다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정작 결과물은 천차만별입니다. 어색한 움직임과 제각각인 캐릭터 인상에 좌절하곤 맙니다.


무엇보다 가장 난감한 순간은 그럴듯한 영상은 나왔는데 내가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장면과는 전혀 다를 때입니다. 프롬프트는 무엇을 입력할 것인가의 문제지만 영상 제작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영상 문법이 들어가야 하고 배워야 하는 부분입니다.


전은재 저자의 『매일매일 쓰는 영상 생성 편집 AI 클링 & 씨댄스』는 실무 중심 가이드북입니다. 저자는 Zach King Studio에서의 VFX 디자이너 경험을 바탕으로 삼양, FILA, 투썸플레이스, 현대카드 등 국내외 유수 브랜드 광고와 아이유, VIVIZ 등 탑 아티스트의 뮤직비디오 비주얼을 담당했던 베테랑 현장 전문가입니다. AI 도구를 처음 접하는 입문자조차 감독의 시선으로 이끌어줍니다.





AI 영상 생성을 전혀 접해보지 않은 입문자라면 도대체 클링과 씨댄스가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클링 AI (Kling AI)는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내는 차세대 AI 영상, 이미지, 사운드 생성 도구입니다. 이미지 3.0 Omni 및 비디오 생성 엔진을 통해 한 장의 스틸컷에서 시네마틱한 영상으로 확장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드리미나 씨댄스 (Seedance)는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AI 도구입니다. 캐릭터의 얼굴과 공간 분위기를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최대 15초 길이의 스토리 샷을 구성할 수 있어 콘티나 숏폼, 드라마 연출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덕트 테이프 (Duct Tape / GPT Image 2.0)에 대한 파트도 있습니다. 디자인과 한글 텍스트 표현에 특화된 포토샵급 이미지 생성 모델로, 정확한 그래픽과 텍스트가 포함된 비주얼을 쉽게 만들어내 클링이나 씨댄스의 기초 원천 소스로 활용됩니다. 기존 생성형 AI에서 한글 깨짐으로 좌절해 본 경험이 있다면 눈이 번쩍 뜨일 겁니다.





이 세 가지 도구는 저마다 장점을 지니고 있어, 『클링 & 씨댄스』 책으로 세 도구를 결합하는 방식을 익히면 초보자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콘텐츠를 손쉽게 제작할 수 있게 됩니다.


AI 이미지나 영상을 처음 만들어보면 한 번쯤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 이미지에서는 멋진 캐릭터가 등장했는데, 두 번째 이미지를 만들자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옷이 달라지고 얼굴이 달라지고 헤어스타일까지 달라집니다.


AI가 영상 제작을 쉽게 만들어준다는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AI는 영상을 만드는 과정의 여러 물리적 장벽을 낮춰주지만, 무엇을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사람의 역할까지 없애지는 않습니다. 기술이 쉬워질수록 콘텐츠의 질문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클링 & 씨댄스』는 현실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3D 모델링 프로그램 없이도 텍스트만으로 정면, 측면, 후면의 다각도 캐릭터 이미지를 일정하게 확보하는 기법을 다룹니다. 단순히 예쁜 그림을 뽑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외형과 특징을 유지하는 주체 등록을 통해 이후의 연속된 영상 연출까지 연결하는 프레임워크를 훈련시킵니다.





후반부의 덕트 테이프와 씨댄스 활용도 재밌습니다. 덕트 테이프에서는 디자인과 한글을 지원하는 이미지 생성 기능, 텍스트 생성, 이미지 수정 등을 살펴보고, 생성된 이미지를 클링 AI와 드리미나 씨댄스로 확장하는 흐름이 이어집니다. 서로 다른 도구를 제작 과정에서 연결하는 방식도 짚어주고 있어 유용합니다.


『클링 & 씨댄스』는 VFX 디자이너로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온 저자의 정교한 프레임 설정 능력과 시각적 연출관이 AI라는 새로운 도구와 완벽하게 결합한 실전 연출 지침서입니다.


처음에는 로그인부터 시작합니다. 이미지 하나를 만들어보고, 이미지를 수정하고, 인물을 유지해 다른 구도를 만들고, 제품 이미지를 활용합니다. 이후 영상으로 넘어가 행동과 카메라를 설정하고, 여러 장면을 연결합니다. 씨댄스로 넘어가서는 대화와 영화적 장면, 광고와 타임랩스 등을 만들어봅니다. 마지막에는 다른 AI 도구와 편집 프로그램까지 연결합니다.


초보자도 막힘없이 따라 할 수 있는 예제와 직관적인 설명 덕분에, 텍스트가 어떻게 하나의 생생한 장면으로 변모하는지 그 경이로운 과정을 쉽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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