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랑과 꽃과
나태주 지음 / OTD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협찬 


평생을 풀꽃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쁜 것들을 기록해온 시인, 나태주.

『사람과 사랑과 꽃과』는 열다섯 살 소년이 짝사랑에게 보냈던 떨리는 연애편지의 심장이 노시인의 숨결로 이어진 생애적 고백록 같은 시집입니다.


‘사람’으로 시작합니다.

관계의 본질을 거창한 말로 꾸미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와 온기를 이야기합니다.


슬퍼할 일을 마땅히 슬퍼하고 괴로워할 일을 마땅히 괴로워하는 사람.

자기 감정에 정직한 사람만이 남의 슬픔 앞에서 교만하지 않습니다.


이 시집의 특별한 점은

시 아래에 독자들의 시평이 함께 실려 있는 겁니다. 시와 독자의 마음이 섞이며 한 편의 시가 또 다른 시로 자랍니다.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은 「아끼지 마세요」입니다. 우리는 소중한 말을 마음속에 저장해 두곤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마음을 나중으로 미루면서요. 아끼다 보면 감정은 박제가 됩니다.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살아 움직이지 못합니다.


어차피 마지막 순간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 아낌없이 나누어 타인의 마음속에 내 흔적을 남기라고 조언합니다.


가장 울림이 큰 시는 「유언시 – 아들에게 딸에게」입니다. 성공도, 부도 아닌 서로 사랑하며 살라는 유언. 진짜 어른의 목소리입니다.


나태주 시인은 시로 우리에게 낮게 사는 법을 가르칩니다.

세상은 내가 자세히 본 만큼만 아름답다고 소박한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령자의 몸과 마음 돌봄 매뉴얼 - 일러스트로 이해하는
Kei(케이) 외 지음, 이지호 옮김, 이나가와 도시미쓰 외 감수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물리치료사가 알려주는 고령자 몸과 마음 사용 설명서 『고령자의 몸과 마음 돌봄 매뉴얼』.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인생 후반전 교과서입니다.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물리치료사인 KEI는 파킨슨병을 앓는 할아버지와의 재택 돌봄 경험을 따뜻한 일러스트로 녹여냈고, 나가시마 가호는 종합병원과 돌봄 시설 책임자를 거치며 현장의 지식 부족을 통감한 베테랑 물리치료사입니다. 한국어판 감수를 맡은 노인의학 전문가 윤종률 교수의 추천사처럼 노인의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어 신뢰를 더합니다.


노인을 잘 모시는 법을 알려주는 매뉴얼을 넘어 노화라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그 안에서 존엄성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를 고민하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늙고, 누구나 돌봄을 받게 됩니다. 이 책은 그 미래가 반드시 비극일 필요는 없음을, 이해라는 도구만 있다면 충분히 함께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먼저 고령자의 신체 변화를 7가지 계통으로 해부합니다. 노인이 느릿느릿 걷거나 자주 넘어지는 것은 단순히 기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고령자의 뼈를 수명이 다한 나무에 비유하며, 우리가 고령자를 대할 때 왜 조심해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깨닫게 합니다. 겉모습이 건재해 보인다고 해서 내부의 밀도까지 청년기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전두엽 위축으로 인한 성격 변화나 측두엽 위축으로 인한 언어 장애를 통해 어르신들의 고집이나 반응 저하가 성격 결함이 아닌 생물학적 변화임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이를 이해하면 왜 저렇게 고집을 부리실까라는 짜증 섞인 의문이 뇌의 지도가 변하고 있구나라는 수용으로 바뀝니다.


고령자의 움직임은 젊었을 때의 메커니즘과 다릅니다. 젊을 때야 바닥에서 일어나는 것이 대수롭지 않지만, 고령자에게는 이것이 고난도의 미션이 될 수 있습니다. 일주일만 누워서 생활해도 근력이 15~20% 약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바닥에서 일어서는 움직임이 불안정해져서 특히 이부자리에서 일어날 때 넘어지는 사례가 많습니다. 돌보는 사람도 힘으로 일으키는 것 외에는 방법을 몰라서 당황합니다. 저자는 일어서는 움직임을 단계별로 나눠 분석해 각 단계마다 필요한 근육과 균형 능력을 알려줍니다. 일러스트는 이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도움됩니다.


게다가 비싼 지팡이를 사드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사용자의 근력과 주거 환경에 맞는 보조기구를 선택하는 맞춤형 전략의 중요성을 짚어줍니다. 낙상 리스크 파악 부분에서는 약물 복용이 평형감각에 미치는 영향까지 세밀하게 짚어주어, 돌봄의 시야를 실내 인테리어 수정에서 복약 관리까지 넓혀줍니다.


얼마전 친정어머니 집에 센서등을 여기저기 달아드렸습니다. 밤에 잠에서 깨어 화장실을 다녀올 때 야간 시야 확보가 예전처럼 되지 않아 주변 가구에 부딪힌 경험이 있어 조치했는데, 이 작은 센서등 몇 개로 불편해하던 부분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고령자의 몸과 마음 돌봄 매뉴얼』은 고령자에게 흔한 질환들을 다룹니다. 뇌졸중의 전조 증상을 포착하는 매의 눈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고,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부정맥에 대해서도 짚어줍니다. 그리고 파킨슨병 환자가 어떤 특정 동작을 힘들어하는지, 당뇨 환자의 혈당 관리가 왜 고령층에서는 더 까다로운지를 물리치료사의 시각으로 재해석합니다.


고집스럽고 신경질적인 고령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벽을 넘는 법, 입원·입소 중 우울 증상을 방지하는 법 등 물리적 돌봄만큼 중요한 정서적 돌봄에 관한 내용도 큰 도움됩니다. 문제 행동으로 보이던 것이 사실은 불안의 표현이라는 것을 읽어내며, 커뮤니케이션의 벽을 넘는 지혜를 전수합니다.





갑작스러운 퇴원, 혼자 사는 고령자의 안전, 휠체어 나들이, 근처 외출, 병원 진료 등 현실적인 문제들도 다룹니다. 돌봄 독박에 지친 가족들에게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예비 돌봄 종사자들에게는 현장의 리얼리티를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돌봄이 단순히 보살핌이 아니라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익숙한 공간에서, 가능한 한 오래 자립적으로 살아가는 것. 이를 위해서는 고령자 본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적절한 지원이 필수라고 합니다. 이 책은 그 적절한 지원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갑자기 거동이 불편해진 부모님을 뵙고 당혹감을 느끼는 가족, 현장에서 어르신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어 지친 돌봄 종사자, 나이 듦에 따른 신체 변화를 미리 알고 싶은 액티브 시니어에게 추천합니다. 준비 없는 돌봄은 고통이지만, 지식 있는 돌봄은 동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 혼자 시작하는 행복한 손그림 : 드로잉 기초
김충원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 벽지나 바닥을 가리지 않고 무언가를 끄적이던 타고난 아티스트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잘 그려야 한다는 압박과 정답 중심의 교육이 우리 손에서 연필을 빼앗아 갔습니다. 빈 도화지를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막막한 공포는 고질적인 창의성 결핍 증상 중 하나입니다.


『나 혼자 시작하는 행복한 손그림: 드로잉 기초』는 대한민국 미술 교육의 대부이자, 수백만 명의 똥손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김충원 저자의 워크북입니다.





거창한 유화 물감이나 디지털 태블릿은 필요 없습니다. 연필, 펜, 종이, 지우개만 있으면 됩니다. 선의 느낌에 따라 연필을 쥐는 위치와 각도도 다릅니다. 우리가 숨을 쉬듯 선에도 호흡이 있습니다.


책을 펼치면 처음엔 겨우 이런 기초를 시키나 싶을 겁니다. 하지만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는 기초 스트로크 연습을 통해 손 근육의 긴장이 풀어집니다. ASMR처럼 종이 위를 지나가는 연필의 질감을 느끼는 과정 그 자체가 명상이 되기도 합니다.





드로잉이란 대상을 관찰하고 손의 움직임으로 감각을 번역하는 훈련입니다. 기초를 다졌다면, 이제 눈앞의 대상을 관찰하고 이를 선으로 옮기는 윤곽선 연습 단계로 넘어갑니다. 초보자가 범하는 실수는 내가 알고 있는 이미지를 그리려 한다는 점입니다. 김충원 저자는 보이는 그대로의 형태를 포착하는 법을 훈련시킵니다.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길가의 잡초나 베란다의 화분이 드로잉의 소재가 되는 순간, 우리의 일상은 비로소 예술적 배경으로 탈바꿈합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들을 기하학적인 기본 구조로 분해한 뒤, 점진적으로 세부 묘사를 더해가는 과정이 돋보입니다. 명료한 선으로 정돈하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인물 그리기에 특히 취약한 저는 인물 파트가 유용했습니다. 유려한 곡선의 예술에 감탄하게 됩니다. 밑그림이 있어 따라그리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습니다.


윤곽선이 대상의 뼈대를 만든다면, 톤 조절과 명암 표현은 그 뼈대에 생명력과 입체감을 불어넣는 작업입니다. 수직이나 사선으로 짧게 긋는 선들이 모여 하나의 면을 이루고, 그 밀도에 따라 빛의 강약이 결정되는 해칭의 리듬감을 배우게 됩니다.


저자는 어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빛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명암 표현은 기술적인 숙련도를 당연히 요구하지만, 이 책 덕분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게 됩니다.


연필 한 자루로 일상의 소소한 기록을 남기고 싶은 분들, 나만의 감성 노트를 완성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필요한 책입니다. 드로잉을 하루를 정리하고 감정을 환기하는 생활의 기술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
키코 야네라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엘 파이스》의 데이터 저널리즘 팀을 이끄는 키코 야네라스의 『직관과 객관』. 직관의 늪에서 당신을 구원할 8가지 이성의 규칙을 소개합니다.


2024년 〈비센테 베르두 언론 혁신상〉을 수상하며 그 실력을 입증한 저자는 수치 속에 숨겨진 뜨거운 인간의 삶을 읽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 책에서 그는 데이터는 지루한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낡은 사고 회로를 최신 데이터 리터러시 엔진으로 교체할 시간입니다.


복잡한 사건이 터지면 즉각적으로 범인을 찾거나 단일한 원인을 지목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거든요. 『직관과 객관』은 세상이 그렇게 명쾌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객관성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특히 기후 위기나 사회적 갈등 같은 문제에서 우리는 책임의 분산이라는 함정에 빠지곤 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연루된 탓에 책임을 가볍게 넘겨 버리기 쉽다고 말이죠.





우리가 마주한 시스템의 복잡성을 정확히 꼬집습니다. 만물은 변덕스럽고, 원인은 또 다른 원인을 낳으며 순환합니다. 이를 창발성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개별 요소들의 합보다 더 큰, 예측 불가능한 결과가 나타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명료한 정답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본질을 꿰뚫어 볼 준비가 되는 거라고 말입니다.


데이터는 현대의 새로운 언어입니다. 저자는 숫자를 세상을 해석하는 강력한 문해력으로 정의합니다. 게다가 숫자를 다루는 기술이 거창한 고등 수학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정보의 한가운데서 수치 놀음 뒤에 숨겨진 맥락을 읽어내는 감각이 핵심입니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가장 큰 오류 중 하나는 내가 본 것이 전부라고 믿는 것입니다. SNS 피드에 올라오는 화려한 일상들이나, 특정 커뮤니티의 여론이 마치 세상의 전체 의견인 양 착각하는 선택 편향에 대해 경고를 보냅니다.


결국 낙관과 의혹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면, 우리가 보고 있는 데이터가 과연 세상의 축소판이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는 것은 데이터 분석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늘어나면 살인 사건도 늘어난다는 통계가 있다면, 아이스크림이 살인을 유발하는 걸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여름이라는 공통 원인이 있을 뿐입니다.


리처드 맥엘리스는 어떠한 통계 기법도 원인 추론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통계 기법은 연관성만을 이해할 뿐이라고 말입니다. 무엇이 어떠한 결과를 유발할 수 있는가를 가정하고, 이에 따라 타당한 인과 모델을 구성하는 일이 인간의 몫인 겁니다.


숫자는 현상을 보여줄 뿐, 그 이면의 '왜'를 설명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통찰력입니다. 우리는 반쪽짜리 관점에 매몰되지 않도록 인과관계의 복잡성을 기꺼이 수용하는 태도를 갖춰야 합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노력을 강조하지만, 저자는 운이라는 변수를 무시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합니다. 스포츠 경기에서의 핫핸드 신화(한 번 슛을 성공하면 계속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나 소수의 법칙이 낳는 착각은 우리가 우연을 필연으로 오해하게 만듭니다.


성공과 실패의 경계에서 실력과 운을 분리해낼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객관성입니다. 우리는 행간의 공백을 읽어내야 하며, 때로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합쳐져 제로가 되는 우연의 장난 속에서 겸허함을 배워야 합니다.


미래를 예측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스타 예언자들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정해진 결말을 원하지만, 사실은 안개 자욱한 확률의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과 같습니다.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현대적 이성의 정수입니다.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따르며, 최선의 선택이란 결국 상충하는 가치들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과정임을 시사합니다.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아주 빠르게 결론을 내리도록 진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직관적 오류를 범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이유는 잘못된 확신이라도 있어야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묻는 저자의 질문이 인상 깊었습니다.


키코 야네라스의 지적 탐험이 닿는 종착역은 인본주의입니다. 데이터는 그 자체로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을 찾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가장 정교한 지도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저자는 도구적 이성의 비정함을 경계하며, 정량적 분석이 인간 소외가 아닌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직관과 객관』은 정보 과잉의 시대에 나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생존 지침서입니다. 누구나 데이터 리터러시를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합니다. 직관이라는 달콤한 유혹에서 한 걸음 물러나, 데이터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다시 바라보세요. 그 안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복잡하겠지만, 동시에 훨씬 더 경이롭고 인간적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사전연명의향서 - 죽음을 인식하면 삶은 다시 정의된다
김지수 지음 / 북루덴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조금 무겁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가벼워질 수 있는 방법 『나의 사전연명의향서』. 김지수 저자는 오랜 시간 대학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삶의 가장자리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생명들을 취재해온 기자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삶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다시 정의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묻는 듯 보이지만, 실은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적을 것인가에 대한 기록입니다.


젊은 나이에 중증 우울증이라는 벽에 부딪힌 김지수 저자. 기자로서 치열하게 질주하며 아버지의 몫까지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채찍질해온 결과였습니다. 내면 깊숙한 곳에는 스무 살 무렵부터 목격한 아버지의 투병이 거대한 빙하처럼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정체불명의 희귀 근육계 질환으로 서서히 육체가 감옥이 되어가던 아버지. 저자는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짊어질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그 비극을 외면하고서라도 살아가야만 했던 청춘의 죄책감이 뒤섞인 감정으로 살아냅니다.





이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오프라 윈프리의 고백을 인용하며 무조건적인 행복 강박 대신 행복하지 않아도 존엄할 수 있다는 새로운 선택지에 다가섭니다.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인생을 대충 살진 않는다고 말입니다. 행복이 필수가 아닌 세상, 하지만 나다운 존엄은 포기할 수 없는 세상. 저자는 우울을 통해 비로소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라는 식상한 질문을 버리고, 어떻게 존엄하게 살고 죽을 것인가라는 본질을 마주합니다.


『나의 사전연명의향서』에서는 기자 특유의 정교한 관찰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은 생명을 연장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정체성이 가장 잔인하게 지워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묘사하는 병동의 풍경은 디스토피아 소설의 한 장면 같습니다.


"‘죽음이 이렇게 신속하게, 효율적으로 처리되는 일인가?’ 이동용 베드가 화물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걸 바라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그가 사용한 병상은 어느새 정리됐고 하얀 린넨이 깔렸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을 넋 나간 듯 바라봤고, 다른 환자들의 보호자들도 비슷했다."라고 고백합니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존엄의 거세입니다. 기계적으로 교체되는 하얀 린넨은 한 인간의 우주가 소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은 아무런 동요 없이 돌아간다는 상징입니다.


저자는 목에 관을 꽂고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환자들을 밀랍 인형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명 연장이 실제로는 고통의 연장이자 자기 결정권의 상실일 수 있음을 고발합니다. 우리는 중요한 질문과 마주합니다.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삶이라 부를 수 있는가? 나의 가치관과 방식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의 연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죽고 싶은 마음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생을 마칠지, 눈 감는 순간까지 지키고 싶은 당신의 정체성, 당신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정립돼 있다면 삶은 발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삶의 유한함,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문제가 쉽게 풀릴 수 있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저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법적 장치를 소개하면서도 여전히 현장에서 벌어지는 콧줄 삽입 같은 고통스러운 관행이 환자의 존엄을 어떻게 훼손하는지  짚어줍니다. 더불어 스위스를 비롯한 해외의 의사 조력사망 제도를 소개하며 우리 사회의 경직된 논의에 균열을 냅니다.


『나의 사전연명의향서』는 우리 개개인이 나다운 얼굴로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호스피스와 완화의료의 강화는 결국 사회가 한 개인의 마지막 자존심을 어디까지 지켜줄 수 있느냐에 대한 척도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닐 때 비로소 질문이 날카로워진다는 사실을 체감합니다. 어머니는 작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소망은 병실에서 딸 고생 안 시키고 잘 가야 한다는 그 마음뿐이셨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연명의료 중단 제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간극이 컸습니다. 병실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죽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게 현재 제도거든요. 저자는 한국 사회가 연명의료 중단의 범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도적 사각지대를 짚는 문제 제기입니다. 핵심은 선택권입니다. 누구도 존엄하지 않은 마지막을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상상 속의 재회를 나눕니다. 상상 속 아버지와의 대화는 과거의 아픔에 대한 저자의 뒤늦은 위로이자, 동시에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약속입니다.


"나의 글이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더욱 존중할 수 있는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 존엄한 삶의 출발점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며, 존엄한 죽음도 결국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공감했으면 좋겠다." - p221


생의 마침표를 미리 찍어보는 일은 남은 문장들을 가장 아름답게 수놓기 위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나의 사전연명의향서』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구체적인 철학으로 바꿔주는 마법 같은 힘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