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전연명의향서 - 죽음을 인식하면 삶은 다시 정의된다
김지수 지음 / 북루덴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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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조금 무겁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가벼워질 수 있는 방법 『나의 사전연명의향서』. 김지수 저자는 오랜 시간 대학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삶의 가장자리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생명들을 취재해온 기자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삶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다시 정의된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묻는 듯 보이지만, 실은 어떻게 살아야 후회가 적을 것인가에 대한 기록입니다.


젊은 나이에 중증 우울증이라는 벽에 부딪힌 김지수 저자. 기자로서 치열하게 질주하며 아버지의 몫까지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채찍질해온 결과였습니다. 내면 깊숙한 곳에는 스무 살 무렵부터 목격한 아버지의 투병이 거대한 빙하처럼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정체불명의 희귀 근육계 질환으로 서서히 육체가 감옥이 되어가던 아버지. 저자는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짊어질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그 비극을 외면하고서라도 살아가야만 했던 청춘의 죄책감이 뒤섞인 감정으로 살아냅니다.





이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오프라 윈프리의 고백을 인용하며 무조건적인 행복 강박 대신 행복하지 않아도 존엄할 수 있다는 새로운 선택지에 다가섭니다.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인생을 대충 살진 않는다고 말입니다. 행복이 필수가 아닌 세상, 하지만 나다운 존엄은 포기할 수 없는 세상. 저자는 우울을 통해 비로소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라는 식상한 질문을 버리고, 어떻게 존엄하게 살고 죽을 것인가라는 본질을 마주합니다.


『나의 사전연명의향서』에서는 기자 특유의 정교한 관찰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은 생명을 연장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인간의 정체성이 가장 잔인하게 지워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묘사하는 병동의 풍경은 디스토피아 소설의 한 장면 같습니다.


"‘죽음이 이렇게 신속하게, 효율적으로 처리되는 일인가?’ 이동용 베드가 화물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걸 바라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그가 사용한 병상은 어느새 정리됐고 하얀 린넨이 깔렸다.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을 넋 나간 듯 바라봤고, 다른 환자들의 보호자들도 비슷했다."라고 고백합니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존엄의 거세입니다. 기계적으로 교체되는 하얀 린넨은 한 인간의 우주가 소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은 아무런 동요 없이 돌아간다는 상징입니다.


저자는 목에 관을 꽂고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환자들을 밀랍 인형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명 연장이 실제로는 고통의 연장이자 자기 결정권의 상실일 수 있음을 고발합니다. 우리는 중요한 질문과 마주합니다.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을 삶이라 부를 수 있는가? 나의 가치관과 방식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의 연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죽고 싶은 마음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생을 마칠지, 눈 감는 순간까지 지키고 싶은 당신의 정체성, 당신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정립돼 있다면 삶은 발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삶의 유한함, 그 끝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문제가 쉽게 풀릴 수 있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저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법적 장치를 소개하면서도 여전히 현장에서 벌어지는 콧줄 삽입 같은 고통스러운 관행이 환자의 존엄을 어떻게 훼손하는지  짚어줍니다. 더불어 스위스를 비롯한 해외의 의사 조력사망 제도를 소개하며 우리 사회의 경직된 논의에 균열을 냅니다.


『나의 사전연명의향서』는 우리 개개인이 나다운 얼굴로 마지막을 맞이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호스피스와 완화의료의 강화는 결국 사회가 한 개인의 마지막 자존심을 어디까지 지켜줄 수 있느냐에 대한 척도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닐 때 비로소 질문이 날카로워진다는 사실을 체감합니다. 어머니는 작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소망은 병실에서 딸 고생 안 시키고 잘 가야 한다는 그 마음뿐이셨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연명의료 중단 제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간극이 컸습니다. 병실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죽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게 현재 제도거든요. 저자는 한국 사회가 연명의료 중단의 범위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제도적 사각지대를 짚는 문제 제기입니다. 핵심은 선택권입니다. 누구도 존엄하지 않은 마지막을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상상 속의 재회를 나눕니다. 상상 속 아버지와의 대화는 과거의 아픔에 대한 저자의 뒤늦은 위로이자, 동시에 미래의 자신에게 보내는 약속입니다.


"나의 글이 독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더욱 존중할 수 있는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다. 존엄한 삶의 출발점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며, 존엄한 죽음도 결국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공감했으면 좋겠다." - p221


생의 마침표를 미리 찍어보는 일은 남은 문장들을 가장 아름답게 수놓기 위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나의 사전연명의향서』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구체적인 철학으로 바꿔주는 마법 같은 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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