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의 마음 - 도망친 곳에서 발견한 기쁨
정고요 지음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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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오늘도 정해진 속도에 맞춰 숨 가쁘게 달릴 겁니다. 혹시 지금 있는 곳에서 아주 멀리,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없나요? 우리는 도망을 패배자의 전유물로 여깁니다. 하지만 여기, 기꺼이 도망친 곳에서 비로소 진짜 나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한 시인이 있습니다.


정고요 시인은 대도시의 숨 막히는 출근길을 뒤로하고 강원도 강릉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스스로를 강원도력(力)으로 나이를 계산하는 아이라고 소개하는 이 재치 있는 저자는, 강릉의 바다와 솔숲을 걸으며 일상의 문법을 새로 썼습니다.


『산책자의 마음』은 강릉의 명소를 소개하는 여행 에세이가 아닙니다. 생존을 위한 보폭 찾기에 가깝습니다. 정고요 시인이 제안하는 산책자의 철학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봅니다. 산문뿐만 아니라 시와 짧은 소설을 병행하며, 산책자가 느끼는 감각의 층위를 다채롭게 보여줍니다.


강릉이라는 공간에 자신을 불시착시킨 정고요 시인에게 도망은 대책 없는 회피가 아니라, 타인이 설계한 트랙에서 내려와 자신만의 궤도를 만들겠다는 능동적인 선택입니다.





도망친 곳에서 매일 산책하며 비로소 자신이 일상인간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의 날씨에 반응하고 길가에 핀 꽃의 안부를 묻는 소박한 질서가 삶을 어떻게 구원하는지 보여줍니다.


산책자는 풍경을 그저 소비하지 않습니다. 주머니에 조개껍데기를 집어넣는 행위는, 세상의 파편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의식과도 같습니다.


끊임없이 펼쳐진 바다의 어디쯤부터 여기는 안목해변, 여기서부터 저기는 송정해변, 송정해변 다음은 강문해변, 이보다 더 다음은 경포해변…… 인간이 임의로 구분해 놓은 경계의 허무함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바다는 그저 흐를 뿐인데 인간은 이름을 붙여 소유하려 합니다.


산책자는 그 경계 위를 걸으며 이름 너머의 실재를 봅니다. 현대인들이 규정된 직함이나 사회적 지위에 매몰되어 본질을 잃어버리는 세태에 대한 통찰이기도 합니다.


산책은 외부를 향한 발걸음 같지만, 실상은 가장 깊은 내면으로의 침잠입니다. "바다를 산책하는가 싶었지만 결국 내 내면의 광활한 우주의 어느 구석을 산책하고 있었네, 집에 돌아와 신발 속의 모래를 털며 생각하는 것이다. 모래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나와, 오늘 산책한 바다와, 내일 만날 세계가."라는 문장처럼 모래알 하나에도 시선의 깊이가 남다릅니다.


우리는 너무 거대한 목표만을 바라보느라 신발 속의 모래 같은 작은 진실들을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정고요 시인은 그 모래알을 털어내며 오늘 하루 내가 만난 세계의 총량을 가늠해 보라고 합니다.


저자에게 강릉의 나무와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앞서 걸어간 스승입니다. 나무가 계절을 견디는 방식, 바다가 파도를 밀어내는 방식을 보며 시인은 삶의 기술을 배웁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의 뒷모습을 지켜주는 산책자적 관계의 핵심을 짚어줍니다.


하루하루가 쌓여서 인생이 된다고 믿지만, 시인은 그 너머를 이야기합니다. "매일매일의 산책을 모두 더하면 무엇이 될까. 산책을 아무리 더하고 더해도 여행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의 삶을 모두 더하면 무엇이 될까. 매일을 아무리 더해도 인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의 삶이 고스란히 인생이 된다고 믿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어쩐지 아닌 것 같아, 생각한다. 삶은 나날들의 총량보다 모자라거나 때로는 넘치는 것 같아, 생각한다. 그런데도 하루하루 성실히 임하려 노력한다. 하루하루를 넘지 않고서 삶을 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참 오묘합니다.


노력이 반드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허무를 인정하면서도, 하루를 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실존적 성실함을 강조합니다. 결과 중심적인 세상에서 과정 그 자체의 독립적인 가치를 긍정하는 이 태도가 와닿습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시인이 도망친 끝에 도달한 종착지가 어디인지 선명해집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 닮은 풍경이 되는 일입니다. 자기 마음의 텃밭을 가꾸는 텃밭심으로 살아가기로 합니다. 산책은 그 텃밭을 돌보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입니다. 저자는 하루라는 악보 위에 산책이라는 음표를 그려 넣으라고 말합니다.


"흐르는 시간에도 마디가 있다. 연이라는 마디, 월이라는 마디, 하루라는 마디. 시라는 마디. 분이라는 마디. 초라는 마디. 약속된 세로줄들 안에 저마다의 마디를 그려 넣는 것이 각각의 하루일 것이다. (……) 해야 할 일들로 생기는 마디 외에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마디를 그리고 이 안에 음표를 그려 넣을 때 하루라는 곡엔 생기가 돈다. 비로소 변화무쌍해지고 ‘저마다의 하루’라는 표현과 어울린다."라고 말입니다.


시간을 단순히 흘러가 버리는 선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매듭을 짓는 대나무의 마디처럼 바라본 시인의 시선이 참 근사합니다. 저는 이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시인에게 산책은 삶이 꺾이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탱해주는 단단한 마디였던 셈입니다. 마디를 긋는 행위는 단순히 쉬는 것을 넘어 내 삶의 구조를 튼튼하게 설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소음처럼 느껴질 때, 우리가 산책이라는 마디를 만들고 그 안에 나만의 감각을 음표로 적어 넣는다면, 퇴근길의 우울함도 안온한 안식의 선율로 바뀔 수 있다는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이 하루의 마디 속에 그려 넣고 싶은 첫 번째 음표는 어떤 모습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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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강준 지음 / 좋은땅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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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투박한 제목이 강렬합니다. 『주먹』은 한국형 종합무술 공권유술(Gongkwon Yusul)의 창시자 강준 관장이 내놓은 책입니다. 주먹을 휘두르는 법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주먹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글로벌 인플루언서이자 47개국에 K-마샬아츠의 씨앗을 뿌린 무도가는 이제 기술의 영역을 넘어 예술과 철학의 경계에서 말을 건넵니다. 이 책은 격투기 교본이 아닙니다. 치열하게 나를 지켜내기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에 가깝습니다.


강준 관장은 전통무예의 고결함과 현대 격투기의 실전성을 결합해 공권유술이라는 독보적인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창시자, 회장, 유튜버 등의 수식어가 붙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발견하는 가장 선명한 정체성은 관찰자이자 예술가입니다.


독일, 프랑스, 호주 등 전 세계를 누비며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싸움이란 결국 타인을 굴복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통제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내면의 언어임을 강조합니다.


주먹보다 무서운 건 선택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싸움의 승패가 근력이나 속도에서 결정된다고 믿지만, 강준 관장은 싸움은 밀려오는 위협 속에서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결정하는 선택의 연속체라고 합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침묵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감정의 주먹을 내지를 것인가. 이 선택의 층위가 쌓여 한 사람의 인격과 강함이 결정됩니다.





『주먹』은 타격과 그래플링의 순간에 드러나는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와 자만, 그리고 용기를 가장 솔직한 언어라고 정의합니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것은 결국 상대의 마음을 읽는 일이며, 이는 고도의 공감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저자는 공권유술의 기술 체계를 설명하며 이것이 어떻게 타인과의 깊은 소통의 도구가 되는지 풀어냅니다.


13가지 기술에 투영된 삶의 은유가 매력적입니다. '하이킥은 높이의 싸움이 아니라, 타이밍의 예술이다' 장에서는 유연성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 차느냐인지를 짚어줍니다. 발차기가 유효타가 되기 위해서는 시공간에 대한 탁월한 감각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인생의 기회 역시 높이 올라가는 것보다 적절한 타이밍에 발을 뻗는 것이 핵심임을 화려한 하이킥의 궤적을 통해 설명합니다.


'주먹은 얼굴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찌른다'라는 말도 인상 깊었습니다. 단 한 번의 스트레이트 펀치가 상대를 쓰러뜨리는 이유는 뼈의 강도 때문이 아닙니다. 상대의 예상을 깨고 들어가는 정직하고도 날카로운 진정성 때문입니다. 저자는 주먹의 목표 지점을 신체가 아닌 영혼으로 설정합니다. 가식 없는 진심 한 방이 백 마디 말보다 강한 타격감을 준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고수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 이는 모든 무도인의 지향점입니다. 삶의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미니멀리즘적 무도를 설파합니다. 낭비되는 에너지를 줄이고 본질에 집중할 때, 비로소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음을 들려줍니다.


속임, 통증, 자만 등 싸움이 가르치는 인간의 취약함에 대해 다룬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속임수는 기만이 아니라 인식에 개입하는 기술로 설명되고, 통증은 감각이 아니라 경고로 해석합니다. 통증의 메시지를 듣고 변화를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말이죠.


『주먹』은 자극적인 승리만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승리 이후에 남는 공허함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패배 이후의 쓰라림을 어떻게 긍지로 바꿀 것인지를 묻습니다. 강준 관장의 13점의 그림은 묵직한 침묵으로 속삭입니다. 당신의 주먹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냐고. 타인을 부수기 위해 움켜쥐고 있느냐, 아니면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단단해지고 있느냐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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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말의 숲을 거닐다 - 다채로운 말로 엮은, 어휘 산책집
권정희 지음 / 리프레시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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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작가들에게 늘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Show, Don't tell). 소설가 지망생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수만 개의 문장을 허공으로 날려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 유효한 말입니다.


우리는 슬프다, 좋다, 대박이다라는 몇 가지 납작한 단어 속에 자신의 거대한 감정 세계를 억지로 구겨 넣곤 합니다. 감정의 해상도는 4K급인데 이를 표현하는 어휘는 흑백 텔레비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격입니다.


국립국어원에서 <감동을 부르는 말하기>를 강의하며 20여 년간 문학의 뜰을 가꿔온 권정희 저자는 『그대, 말의 숲을 거닐다』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혹은 애초에 이름 붙이지 못해 흘려보냈던 미세한 감정의 결들을 복원해내는 고품격 어휘 에세이를 선보입니다.


우리 내면의 삭막한 황무지에 다채로운 어휘라는 씨앗을 뿌려, 각자의 삶에 울창한 마음의 숲을 조성하도록 돕는 정원사에 가깝습니다.


저자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풍경과 일상적 사건들에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그것들을 비로소 나의 것으로 소유하게 만듭니다. 아침 햇살을 보고 무심코 넘기지만, 저자는 햇귀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치환해냅니다.





새벽녘, 긴 어둠을 지나 해가 막 뜨려고 할 때 서서히 몰려오는 환한 빛이 햇귀입니다. 밤새 날이 밝기를 기다린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반가운 빛인 겁니다. 단순히 어둠이 가시는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간절한 기다림 끝에 당도한 반가운 빛이라는 서사가 부여됩니다. 어휘를 안다는 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관점을 확장하는 일입니다.


강물이나 바다 위에 부서지는 햇살을 뜻하는 윤슬이라는 단어를 통해 일상의 미학을 극대화합니다. 강물 같은 표면에 햇빛이나 달빛이 비쳐 반짝이는 물결을 표현하는 단어가 바로 윤슬입니다. 당신의 퇴근길은 그저 지루한 이동 시간이었나요 아니면 윤슬이 반짝이는 예술의 현장이었나요?


우리는 일상에서 잡박하게(질서가 없이 이것저것 마구 뒤섞여 있다) 뒤섞인 머릿속을 정리하지 못해 우두망찰(정신이 얼떨떨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 서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는개(안개와 비의 중간)같은 모호한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적바림(메모)을 통해 마음을 잡도리(단단히 준비함) 해볼까요?





『그대, 말의 숲을 거닐다』를 읽고나면 우리가 무심코 사용했던 임장 대신 집알이를, 갹출 대신 추렴을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 삶의 온도를 인간적으로 만드는지 깨닫게 됩니다.


관계에서 상처받거나 오해를 살 때, 대개 어휘의 부족으로 인해 본심을 왜곡하곤 합니다. 저자는 포시랍다, 틀거지, 주릅 등 평소 접하기 힘든 생소한 우리말과 방언, 한자어를 통해 관계의 철학을 논합니다.


현대 사회의 관계는 비즈니스적이거나 효율성 위주로 흐릅니다. 하지만 저자는 융숭(隆崇)한 대접이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품격을 높이는 행위임을 짚어줍니다. 미쁘다(믿음직하다)는 확신을 주는 사람, 웅숭깊다(생각이나 뜻이 깊다)는 평판을 듣는 사람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울림이 됩니다.


관계 속에서 우리는 따따부따(딱딱한 말씨로 따지고 다투는 소리) 따지거나 족대기며(볶아치다, 우겨 대다) 서로를 힘들게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침윤(서서히 젖어 듦)되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누군가 삶이 신산스럽게(보기에 힘들고 고생스럽게) 느껴질 때, 풀솜할머니(외할머니)처럼 포근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여유는 풍부한 어휘에서 나옵니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인류 보편의 감정에 대한 단어도 배워봅니다. 사랑은 때로 에피파니(강렬한 깨달음)처럼 오고, 우리는 그 앞에서 바장이며(어쩔 줄 몰라 하며) 혼곤한 사랑에 빠지기도 합니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때 사용하는 모스 솔라(Mors Sola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나 애오라지(오로지) 같은 단어들은 사랑의 언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듭니다. 이별 후 가슴에 더껑이(지저분한 것이 덧붙은 것)가 앉은 것처럼 아플 때도, 저자는 해조음(파도 소리)이 들리는 숲으로 이끌며 위로를 건넵니다.


사랑의 과정에서 우리는 트레바리(이유 없이 남의 말을 반대함)를 놓기도 하고, 에멜무지로(결과에 상관없이 시험 삼아) 고백했다가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과정이 해사한(맑고 깨끗한) 미소를 되찾기 위한 필연적인 산책임을 말해줍니다.


유행어나 축약어, 거친 비속어만 가득한 언어 환경은 황폐한 사막과 다름없습니다. 이 책은 어휘집을 넘어선 인생 수업입니다. 『그대, 말의 숲을 거닐다』는 우리가 잃어버린 감성적 언어를 복원해냅니다.


각 장의 끝에 배치된 책 속의 말 한 줄은 김소월, 백석 등의 문장을 통해 어휘의 실제 쓰임을 보여주며 독서 경험을 심화시킵니다. 맞춤의 비밀 코너도 실용적입니다.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해당 단어가 실제 삶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맥동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어 공감하며 읽게 됩니다.


말을 배우는 것이 결국 마음을 배우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무딘 언어의 칼날을 내려놓고, 권정희 저자가 정성껏 가꾼 말의 숲으로 기분 좋은 산책을 떠나보세요. 그 길 끝에서 한층 더 웅숭깊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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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습관이 되지 않게 - 대화가 풀리고 관계가 편안해지는 불안 다루기 연습
엘런 헨드릭슨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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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아주 오래된 손님처럼 눌러앉은 불안이라는 녀석의 정체를 파헤쳐 보려 합니다. 회의 시간에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심장 박동이 치솟거나, 모임이 끝난 뒤 침대에 누워 '아까 그 말은 하지 말걸'이라며 자아비판의 시간을 갖느라 잠 못 이룬 적 없으신가요?


사회적 에너지가 금방 방전되는 내향인과 프로 걱정러, 멘탈 관리가 절실한 이들에게는 심리적 갑옷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나를 바꾸지 않고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불안이 습관이 되지 않게』의 저자 엘런 헨드릭슨(Ellen Hendriksen)은 이 분야의 끝판왕 전문가입니다. 하버드 의대에서 수련한 임상심리학자이자 보스턴 대학교 불안장애센터의 교수입니다.


놀라운 점은 화려한 이력을 가진 저자 역시 지독한 사회불안을 겪었던 당사자라는 점입니다. 이 책에서 자신이 직접 임상 현장에서 증명한 불안 탈출의 로드맵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불안을 성격 결함이나 사회성 부족으로 생각하지만, 『불안이 습관이 되지 않게』에서는 사회불안이 사실은 사회인식과 행동억제라는 두 가지 훌륭한 생존 기제가 과하게 작동한 결과라고 진단합니다.





타인의 감정을 민감하게 읽어내는 사회인식 능력은 원래 공동체 생활을 원활하게 돕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이 안테나가 너무 예민해지면 상대방의 단순한 무표정조차 나를 싫어하는 신호로 왜곡 해석하게 됩니다.


"결국 가장 좋은 순간을 놓치는데, 바로 타인과 함께하는 순간이다. 이는 그 자리를 피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보처럼 보이지 않았는지, 괜히 당황하지 않았는지 자기 검열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사회불안은 이렇게 우리가 원하는 삶을 방해한다."라는 문장이 남일 같지 않습니다.


불안은 우리를 자기 몰입의 감옥에 가둡니다. 타인을 배려하느라 불안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보일지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정작 눈앞의 대화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겁니다. 이것을 회피의 나비효과라고 합니다. 당장의 편안함을 위해 선택한 회피가 결국 불안의 근육을 키우는 악순환을 만든다고 경고합니다.


이어서 우리 마음속에서 24시간 쉬지 않고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내면의 비판자에 대해 들려줍니다. 이 비판자는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작가입니다. 너 아까 말실수했어, 사람들이 속으로 비웃고 있을걸? 같은 대사들을 끊임없이 내뱉습니다. 중립적인 상황도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이 비판자를 이기는 법은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주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호한 불안을 구체화하여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을 계산해 보고, 나 자신을 엄한 교사가 아닌 지지해 주는 코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자신감이 생기면 그때 시작하겠다고 말해본 경험 있으시죠? 저도 그렇게 미룬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불안이 습관이 되지 않게』에서는 시작하면 자신감은 따라온다는 것을 명확히 일깨워 줍니다. 불안은 생각으로 지우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덮어쓰는 것입니다.


사회적 버킷리스트를 만들라고 조언합니다. 아주 명확하고 구체적인 도전 과제들을 수행하는 겁니다. 모임에서 즐겁게 놀기 같은 모호한 목표 대신 모르는 사람 한 명에게 질문 하나 하기처럼 성취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과제를 부여하는 겁니다.


첫 번째 대화, 첫 번째 독서 모임, 첫 번째 소프트볼 연습처럼, 첫 시도가 가장 어렵지만, 첫 번째 시도에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또 시도하고, 계속해서 시도하라고 합니다. 시도할 때마다 불안의 강도와 지속 시간은 차츰 줄어든다고 말이죠.


게다가 우리가 가진 치명적인 착각 하나를 꼬집습니다. 내가 느끼는 불안이 겉으로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를 투명성 착각이라고 합니다.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지만, 상대방은 내가 조금 긴장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발표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보라고 합니다. 영상을 확인한 사람들은 대개 생각보다 멀쩡해 보여서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상상 속의 괴물(불안)과 현실의 나 사이의 괴리를 확인하는 명확한 순간입니다.


또한 완벽주의라는 함정도 경계해야 합니다.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이 오히려 관계를 경직시킵니다. 사람들은 완벽한 로봇보다 조금은 서툴더라도 진솔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불안이 습관이 되지 않게』는 관계의 본질을 꿰뚫습니다.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완벽한 상태로 발견되는 보물이 아니라, 어색한 대화와 사소한 공유를 거치며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짚어줍니다.


사회불안을 겪는 이들은 나는 원래 혼자가 편하다며 벽을 쌓지만, 사실 그 안에는 누구보다 깊은 연결을 원하는 소망이 숨어있습니다. 사회불안은 타고난 운명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익혀온 불안이라는 습관을, 이제는 자신감이라는 습관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선사합니다.


사회불안을 가진 이들이 흔히 듣는 "그냥 편하게 네 모습을 보여줘"라는 조언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지 저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선의의 조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들으면 어처구니가 없고 신경질이 난다는 걸 숱하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에는 그 일이 불가능하게 느껴지니까요.


『불안이 습관이 되지 않게』는 나를 뜯어고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마음 다잡기 책과는 결이 다릅니다. 불안을 극복의 대상이나 제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불안을 길들일 수 있는 반응이자 다시 배울 수 있는 행동 패턴으로 다룹니다.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제때 반응하는 기본적인 능력을 불안이 어떻게 앗아가는지 불안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자는 불안이 있어도 삶을 미루지 않는 법을 안내합니다. 같은 길을 걸어본 선배로서 손을 내미는 다정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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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컷 ONE CUT - 이미지로 설득하는 비주얼 브랜드텔링 전략
홍우림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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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살아남는 브랜드의 이미지 생존법 『원 컷』. 오늘날 우리는 이미지의 해일 속에 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우리의 망막을 스쳐 지나가는 브랜드의 개수는 수천 개에 달합니다. 하지만 그중 우리의 엄지손가락을 멈추게 하고, 뇌리에 잔상을 남기는 브랜드는 과연 몇 개나 될까요?


한국인 최초로 IPA 국제사진공모전 올해의 에디토리얼 작가로 선정된 홍우림 저자는 찰나의 순간 브랜드의 운명을 결정짓는 이미지의 힘을 해부합니다. 카네기홀에 서고 세계 메이저 공모전에서 50회 이상 수상한 이력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시각 언어의 마스터임을 증명합니다.


브랜드가 1초 안에 시선을 사로잡지 못하면 그대로 스킵 된다며 이제 브랜딩은 '말'의 영역을 넘어 '보는' 영역으로 완전히 넘어왔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철학을 가졌어도 시각적으로 즉각 소통되지 않는다면, 그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똑같이 콘텐츠에 공을 들였는데도 누구는 사람들에게 좋아요, 공유, 팔로워가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나의 이미지는 그렇지 못합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저자는 우리가 흔히 빠지는 무색무취형이나 광고형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고객과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비주얼 브랜드텔링형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관점의 문제입니다.


홍우림 저자는 세계적인 브랜드들의 성공 사례와 본인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비주얼 브랜딩을 위한 5가지 핵심 요소를 소개합니다. 욕망, 스타일, 스토리, 공명, 일관성입니다.


사람은 정보를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통해 변화될 자신의 모습을 삽니다. 저자는 제품의 상세 스펙을 나열하는 방식 대신, 고객이 느끼는 변화된 상태를 시각화하라고 조언합니다. 특히 비포-애프터 이미지의 심리적 기제를 분석하며, 그것이 단순히 전후 비교가 아니라 고객의 결핍을 해결해 주는 희망의 이미지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틱톡 광고 모델이 된 시니어의 사례를 통해, 나이라는 결핍을 열정이라는 욕망으로 치환하는 이미지의 힘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스타일은 예쁜 장식이 아니라 인지의 설계입니다. 톤앤매너, 프레이밍, 컬러 시스템은 브랜드의 성격을 규정하는 기초 공사입니다. 저자는 로고를 가려도 이 브랜드임을 알아보게 하는 힘이 진정한 스타일의 완성이라고 말합니다. 미세한 디자인 오류나 일관성 없는 이미지 배치가 브랜드의 신뢰도를 어떻게 갉아먹는지에 대한 분석은 날카롭습니다. Less, but better 원칙 아래, 복잡함을 덜어내고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를 극대화하는 비주얼 시스템 설계법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스펙보다 스토리에 더 열광합니다. 저자는 파타고니아가 왜 제주 해녀 다큐멘터리를 찍었는지, 스타벅스가 왜 매장 벽면에 브랜드의 역사를 전시하는지를 분석합니다. 그것은 제품을 파는 행위를 넘어, 브랜드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과정입니다.





저자가 국가보훈부와 함께 진행했던 6·25 참전용사 프로젝트 사례는 감동적입니다. 제복 입은 영웅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이 어떻게 대중의 인식을 바꾸고 국가적 자부심을 일깨웠는지 설명하며, 이미지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과 스토리의 힘을 실증합니다.


과거의 브랜딩이 일방적인 선포였다면, 지금은 상호작용의 시대입니다. 고객이 스스로 브랜드를 촬영하고 공유하게 만드는 구조, 즉 팬들의 놀이터를 구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저자는 이를 PUSH & PULL 전략으로 설명합니다. 브랜드가 메시지를 밀어내는 것(PUSH) 만큼이나, 고객이 스스로 다가오게 만드는(PULL) 시각적 유혹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브랜딩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저자는 핫셀블라드나 슈나이더 크로이츠나흐 같은 전설적인 브랜드들이 어떻게 수십 년간 자신들의 비주얼 자산을 축적해 왔는지 분석합니다. 일시적인 트렌드를 좇는 반짝 이미지는 결코 브랜드의 유산을 만들 수 없습니다. 시그니처 시리즈를 만들고, 브랜드 아카이빙을 통해 꾸준히 자기다움을 노출할 때, 고객은 비로소 그 브랜드를 신뢰하게 됩니다.


저자는 브랜딩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결과 중심의 거대 담론(A의 세계)과 인본주의와 공감을 지향하는 서사(B의 세계)로 나눈다면, 진정한 브랜딩은 B의 세계에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수많은 브랜드가 유행을 따라 옷을 갈아입을 때, 끝까지 살아남는 브랜드는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본질을 이미지로 기록한 이들입니다.


저자 홍우림은 사진가로서의 정체성을 브랜딩 전략과 결합하여 비주얼 브랜드텔링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읽는 통찰에서 시작됨을 이야기합니다. 『원 컷』은 단순히 사진을 잘 찍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닙니다. 현대 마케팅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시각 언어를 어떻게 전략적으로 다룰 것인가에 대한 인문학적 보고서이자 실전 지침서입니다. 세계 무대에서 검증된 저자의 미적 감각과 수많은 기업 컨설팅을 통해 축적된 전략적 데이터가 만나 비주얼 브랜드텔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오히려 이미지 때문에 고통받는 수많은 브랜드에게 이 책은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1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당신의 진심을 전하고 싶다면 5가지 설계도를 따라가 보세요.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픽셀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사람을 향한 진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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