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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마음 - 도망친 곳에서 발견한 기쁨
정고요 지음 / 엘리 / 2025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오늘도 정해진 속도에 맞춰 숨 가쁘게 달릴 겁니다. 혹시 지금 있는 곳에서 아주 멀리,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없나요? 우리는 도망을 패배자의 전유물로 여깁니다. 하지만 여기, 기꺼이 도망친 곳에서 비로소 진짜 나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한 시인이 있습니다.
정고요 시인은 대도시의 숨 막히는 출근길을 뒤로하고 강원도 강릉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스스로를 강원도력(力)으로 나이를 계산하는 아이라고 소개하는 이 재치 있는 저자는, 강릉의 바다와 솔숲을 걸으며 일상의 문법을 새로 썼습니다.
『산책자의 마음』은 강릉의 명소를 소개하는 여행 에세이가 아닙니다. 생존을 위한 보폭 찾기에 가깝습니다. 정고요 시인이 제안하는 산책자의 철학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가봅니다. 산문뿐만 아니라 시와 짧은 소설을 병행하며, 산책자가 느끼는 감각의 층위를 다채롭게 보여줍니다.
강릉이라는 공간에 자신을 불시착시킨 정고요 시인에게 도망은 대책 없는 회피가 아니라, 타인이 설계한 트랙에서 내려와 자신만의 궤도를 만들겠다는 능동적인 선택입니다.

도망친 곳에서 매일 산책하며 비로소 자신이 일상인간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의 날씨에 반응하고 길가에 핀 꽃의 안부를 묻는 소박한 질서가 삶을 어떻게 구원하는지 보여줍니다.
산책자는 풍경을 그저 소비하지 않습니다. 주머니에 조개껍데기를 집어넣는 행위는, 세상의 파편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의식과도 같습니다.
끊임없이 펼쳐진 바다의 어디쯤부터 여기는 안목해변, 여기서부터 저기는 송정해변, 송정해변 다음은 강문해변, 이보다 더 다음은 경포해변…… 인간이 임의로 구분해 놓은 경계의 허무함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바다는 그저 흐를 뿐인데 인간은 이름을 붙여 소유하려 합니다.
산책자는 그 경계 위를 걸으며 이름 너머의 실재를 봅니다. 현대인들이 규정된 직함이나 사회적 지위에 매몰되어 본질을 잃어버리는 세태에 대한 통찰이기도 합니다.
산책은 외부를 향한 발걸음 같지만, 실상은 가장 깊은 내면으로의 침잠입니다. "바다를 산책하는가 싶었지만 결국 내 내면의 광활한 우주의 어느 구석을 산책하고 있었네, 집에 돌아와 신발 속의 모래를 털며 생각하는 것이다. 모래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나와, 오늘 산책한 바다와, 내일 만날 세계가."라는 문장처럼 모래알 하나에도 시선의 깊이가 남다릅니다.
우리는 너무 거대한 목표만을 바라보느라 신발 속의 모래 같은 작은 진실들을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정고요 시인은 그 모래알을 털어내며 오늘 하루 내가 만난 세계의 총량을 가늠해 보라고 합니다.
저자에게 강릉의 나무와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앞서 걸어간 스승입니다. 나무가 계절을 견디는 방식, 바다가 파도를 밀어내는 방식을 보며 시인은 삶의 기술을 배웁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의 뒷모습을 지켜주는 산책자적 관계의 핵심을 짚어줍니다.
하루하루가 쌓여서 인생이 된다고 믿지만, 시인은 그 너머를 이야기합니다. "매일매일의 산책을 모두 더하면 무엇이 될까. 산책을 아무리 더하고 더해도 여행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의 삶을 모두 더하면 무엇이 될까. 매일을 아무리 더해도 인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의 삶이 고스란히 인생이 된다고 믿을 때도 있었다. 이제는 어쩐지 아닌 것 같아, 생각한다. 삶은 나날들의 총량보다 모자라거나 때로는 넘치는 것 같아, 생각한다. 그런데도 하루하루 성실히 임하려 노력한다. 하루하루를 넘지 않고서 삶을 사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참 오묘합니다.
노력이 반드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허무를 인정하면서도, 하루를 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실존적 성실함을 강조합니다. 결과 중심적인 세상에서 과정 그 자체의 독립적인 가치를 긍정하는 이 태도가 와닿습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시인이 도망친 끝에 도달한 종착지가 어디인지 선명해집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 닮은 풍경이 되는 일입니다. 자기 마음의 텃밭을 가꾸는 텃밭심으로 살아가기로 합니다. 산책은 그 텃밭을 돌보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입니다. 저자는 하루라는 악보 위에 산책이라는 음표를 그려 넣으라고 말합니다.
"흐르는 시간에도 마디가 있다. 연이라는 마디, 월이라는 마디, 하루라는 마디. 시라는 마디. 분이라는 마디. 초라는 마디. 약속된 세로줄들 안에 저마다의 마디를 그려 넣는 것이 각각의 하루일 것이다. (……) 해야 할 일들로 생기는 마디 외에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마디를 그리고 이 안에 음표를 그려 넣을 때 하루라는 곡엔 생기가 돈다. 비로소 변화무쌍해지고 ‘저마다의 하루’라는 표현과 어울린다."라고 말입니다.
시간을 단순히 흘러가 버리는 선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매듭을 짓는 대나무의 마디처럼 바라본 시인의 시선이 참 근사합니다. 저는 이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시인에게 산책은 삶이 꺾이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탱해주는 단단한 마디였던 셈입니다. 마디를 긋는 행위는 단순히 쉬는 것을 넘어 내 삶의 구조를 튼튼하게 설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소음처럼 느껴질 때, 우리가 산책이라는 마디를 만들고 그 안에 나만의 감각을 음표로 적어 넣는다면, 퇴근길의 우울함도 안온한 안식의 선율로 바뀔 수 있다는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이 하루의 마디 속에 그려 넣고 싶은 첫 번째 음표는 어떤 모습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