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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강준 지음 / 좋은땅 / 2025년 1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투박한 제목이 강렬합니다. 『주먹』은 한국형 종합무술 공권유술(Gongkwon Yusul)의 창시자 강준 관장이 내놓은 책입니다. 주먹을 휘두르는 법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주먹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글로벌 인플루언서이자 47개국에 K-마샬아츠의 씨앗을 뿌린 무도가는 이제 기술의 영역을 넘어 예술과 철학의 경계에서 말을 건넵니다. 이 책은 격투기 교본이 아닙니다. 치열하게 나를 지켜내기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에 가깝습니다.
강준 관장은 전통무예의 고결함과 현대 격투기의 실전성을 결합해 공권유술이라는 독보적인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창시자, 회장, 유튜버 등의 수식어가 붙지만,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발견하는 가장 선명한 정체성은 관찰자이자 예술가입니다.
독일, 프랑스, 호주 등 전 세계를 누비며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싸움이란 결국 타인을 굴복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통제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내면의 언어임을 강조합니다.
주먹보다 무서운 건 선택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싸움의 승패가 근력이나 속도에서 결정된다고 믿지만, 강준 관장은 싸움은 밀려오는 위협 속에서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결정하는 선택의 연속체라고 합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침묵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감정의 주먹을 내지를 것인가. 이 선택의 층위가 쌓여 한 사람의 인격과 강함이 결정됩니다.

『주먹』은 타격과 그래플링의 순간에 드러나는 인간의 본능적인 공포와 자만, 그리고 용기를 가장 솔직한 언어라고 정의합니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것은 결국 상대의 마음을 읽는 일이며, 이는 고도의 공감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저자는 공권유술의 기술 체계를 설명하며 이것이 어떻게 타인과의 깊은 소통의 도구가 되는지 풀어냅니다.
13가지 기술에 투영된 삶의 은유가 매력적입니다. '하이킥은 높이의 싸움이 아니라, 타이밍의 예술이다' 장에서는 유연성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 차느냐인지를 짚어줍니다. 발차기가 유효타가 되기 위해서는 시공간에 대한 탁월한 감각이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인생의 기회 역시 높이 올라가는 것보다 적절한 타이밍에 발을 뻗는 것이 핵심임을 화려한 하이킥의 궤적을 통해 설명합니다.
'주먹은 얼굴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찌른다'라는 말도 인상 깊었습니다. 단 한 번의 스트레이트 펀치가 상대를 쓰러뜨리는 이유는 뼈의 강도 때문이 아닙니다. 상대의 예상을 깨고 들어가는 정직하고도 날카로운 진정성 때문입니다. 저자는 주먹의 목표 지점을 신체가 아닌 영혼으로 설정합니다. 가식 없는 진심 한 방이 백 마디 말보다 강한 타격감을 준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고수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 이는 모든 무도인의 지향점입니다. 삶의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미니멀리즘적 무도를 설파합니다. 낭비되는 에너지를 줄이고 본질에 집중할 때, 비로소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음을 들려줍니다.
속임, 통증, 자만 등 싸움이 가르치는 인간의 취약함에 대해 다룬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속임수는 기만이 아니라 인식에 개입하는 기술로 설명되고, 통증은 감각이 아니라 경고로 해석합니다. 통증의 메시지를 듣고 변화를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말이죠.
『주먹』은 자극적인 승리만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승리 이후에 남는 공허함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패배 이후의 쓰라림을 어떻게 긍지로 바꿀 것인지를 묻습니다. 강준 관장의 13점의 그림은 묵직한 침묵으로 속삭입니다. 당신의 주먹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냐고. 타인을 부수기 위해 움켜쥐고 있느냐, 아니면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단단해지고 있느냐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