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2 : 한국 - 가볍게 시작해 볼수록 빠져드는 한국 현대미술 방구석 미술관 2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양미술보다 낯선 한국미술 세계. 막연히 고리타분해 보이는 선입견으로 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미술에 대한 이런 인식을 말끔히 없애줄 지금까지 만날 수 없었던 유일무이한 한국 예술책 <방구석 미술관 2>.


수많은 미술 햇병아리들을 미술의 즐거움에 입문시키며 독보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방구석 미술관>. 20세기 한국 현대미술가 10인의 작품 150여 점이 수록된 <방구석 미술관 2> '한국' 편은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수다 떨듯 맛깔스러운 스토리텔링이 매력적인 조원재 저자의 입담으로 쉽게 한국미술 세계에 진입할 수 있게 해줍니다.


소를 사랑한 화가 이중섭, 한국 최초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한국 최초 월드 아티스트 이응노,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심플을 추구한 외골수 장욱진,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 김환기, 서민을 친근하게 그려온 국민화가 박수근, 독보적 여인상을 그린 화가 천경자, 비디오아트 선구자 백남준, 돌조각을 예술로 승화한 모노파 대표 미술가 이우환. 20세기 한국미술의 거장들입니다.


한국미술에 그다지 관심 두지 않았던 이들이라면 10인의 한국미술가들 중 생전 처음 듣는 화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름만 알고 작품 세계관은 잘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던 이중섭 화가만 해도 <방구석 미술관 2>에서 들려주는 해설을 보고 작품을 다시 보니 그 감동의 깊이가 확연히 달라지는 걸 느꼈어요. 미처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도 이제는 보이기 시작합니다. 작가의 생을 알고 작품을 이해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었어요. 그 그림이 탄생한 비화는 단순한 썰이 아닌 작품에 담긴 영혼을 읽는 것과 같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독립운동가가 세운 학교 출신에 선배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민족정신이 고양된 이중섭은 민족의 존엄성을 작품에 은밀하게 담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소'라고 해요. 주변에서는 미친 수준이라 할 정도로 소에 집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중섭 화가의 신상 변화에 따라 소 그림이 많이 달라집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와도 깨부수고 돌진할 힘이 엿보이던 소가 비참한 고난으로 심신이 피폐해진 시기에는 작가의 좌절감이 고스란히 담겨 무너져 내리는 듯한 소 그림으로 변합니다. 처음엔 그저 어두워지고 거칠어진 정도로만 느꼈던 그림이 책을 읽고 나서는 작가의 고통이 전해지는 듯 울컥하는 감정이 솟구치게 되더라고요.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은 이중섭뿐만 아니라 원조 신여성으로 불린 나혜석 화가에게도 닥친 일입니다. 올해 읽은 책 <나혜석의 말>에서 나혜석의 글을 통해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었는데, <방구석 미술관 2>에서는 작품에 투영된 나혜석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나혜석이 걷는 길은 최초라는 단어가 계속 붙을 만큼 신여성으로서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실천해나간 인물입니다. 신여성의 길을 가는 지팡이로서의 그림과 여성 운동가로서 자신의 사상을 펼칠 글을 무기로 살았던 나혜석. 하지만 이혼당한 여자라는 사회적 낙인의 무게는 어마어마했습니다. 시대의 비극이 점철된 나혜석의 삶은 힘든 시기의 그림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조화롭게 융합시키는 미지의 길을 개척한 이응노 화가의 이야기도 놀라웠어요. '문자추상'은 키스해링보다 더 참신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월드 아티스트였건만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난 후 그의 예술관은 또 달라집니다.


현대 서양미술 뺨치는 추상화를 선보인 유영록 화가는 한국적 산수의 정서를 접목한 추상화 그림이 정말 멋졌어요. 이런 소중한 화가를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요.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132억이라는 최고가를 기록한 김환기 화가도 이름만 들었지 제대로 알지는 못했던 작가인데 달항아리를 소재로 한 작품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버렸습니다. 예전에 달항아리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관람해서인지 달항아리에 대한 인상이 참 좋게 자리 잡고 있던 차에 만난 그의 작품은 책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어요.


10인의 한국미술 화가 이야기마다 팟캐스트로 이동할 수 있는 QR코드가 있으니 조원재 저자의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예요. 이우환 작가의 작품은 QR코드로만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거장들의 작품인 만큼 저작권 문제로 신중하게 작업된 책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끊임없이 고뇌하며 자신과 시대의 고민을 작품에 녹여낸 예술가들의 삶에 초점 맞춰 소개한 <방구석 미술관 2> 한국 편. "한 사람의 삶이 미술을 낳는다"라는 통찰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미술가의 삶에서 나온 예술을 가슴으로 공감하며 만나는 시간이 됩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빠져읽게 될 거장들의 삶을 통해 우리 역사, 우리 정서가 담긴 한국미술의 세계에 빠져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김은진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술 작품의 생명 연장술 보존과학을 아시나요. 아픈 그림을 치료하는 미술품 의사 보존가와 보존과학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담은 책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에쿠니 카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인공 준세이를 통해 보존가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보존가의 모습은 어떨까요.


미술 작품의 생명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시작되지만, 그 긴 생명은 보존가와 보존과학자의 손길로 지켜진다. -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보존이란 현재와 미래 세대가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도록 미술품을 보호하기 위해 예방보존, 치료보존, 복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치와 행위를 말합니다.


여행 중 우연히 마주한 미술품 복원 현장에 매료되어 그 길로 회화 보존을 공부하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는 김은진 저자는 이 책에서 보존가의 철학과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잘 보여줍니다. 왜 복원해야 하는지, 어떻게 복원해야 하는지, 누가 가장 잘 할 수 있는지 윤리적, 기술적 고민을 철저히 해 유일무이한 문화유산을 다루는 일에 대한 책임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보존가의 직업적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다양한 복원 사례를 통해 뭉클한 감동, 웃픈 이야기, 가슴 아픈 실패 사례 등을 다룹니다. 압도적인 크기에 중앙에 그려진 대장이 실제 사람의 키만큼 커 그림 속 사람들의 무리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렘브란트의 작품 <야간 순찰>은 숱한 수모를 당했습니다. 구두수선용 칼, 빵칼, 산성 액체 등 온갖 테러를 당한 이 작품은 최소 25회 복원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현재는 복원 처리 과정이 공개되어 미술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을 선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하나의 학문이 된 미술품 보존. 과학적 분석과 연구 기능을 강화해 보존가를 정식 채용하고 보존 처리에 대한 기록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원래 그림 그대로의 모습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수천 년이 지나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복원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합니다. 과학 기술 발전에 따라 복원 기술과 유행하는 기술이 시대별로 달랐습니다. 스펀지에 포도주를 적셔 닦아내거나 빵을 문질러 닦아내는 게 다였던 클리닝 기술도 이제는 많이 발전했습니다.


클리닝에 대한 논쟁도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밝아진 그림에 대한 거북함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누군가는(그 유명한 곰브리치라든가) 세월의 흔적이 그림에 가치를 더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요소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해외 작품 외에도 우리나라 그림에 대한 사례도 등장합니다. 과거에는 일본으로 복원 기술을 공부하러 많이 갔었고, 당시 배워온 획기적인 최신 기술로 보존 처리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본응이 친구 이상을 그린 작품 <친구의 초상>은 복원 과정을 거치며 이상의 창백한 아픈 얼굴이 생기 넘치는 얼굴로 바뀌어버린 겁니다. 이처럼 복원 과정에서 많은 논란과 분쟁이 생길수록 미술관에서 과학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온습도에 민감한 나무판, 캔버스, 종이라는 재질, 켜켜이 쌓여 있는 물감의 재료 등 겉으로 보이는 표면적인 그림 외에도 굉장히 신경 쓸 게 많았습니다. 복원용 물감이 따로 있고, 복원할 때 사라진 색을 단순히 색칠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과학적 메커니즘을 연구해 변색된 색의 원래 색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도 보존가의 역할입니다. 빛에 의해 발생한 손상은 회복되지 않고 누적된다니 미술관의 조명 하나도 유심히 살펴보게 될 것 같습니다.


타이타닉 영화에서 디카프리오의 그림이 80년이 넘도록 바닷물 속에서 그대로 있을 수 있었던 까닭이나 백발의 할머니가 된 주인공이 진흙을 걷어내고 깨끗한 물속에 그림을 다시 두는 이유에도 과학적인 고증이 담긴 장면이라는 걸 알게 되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에는 미술품 보존을 공부해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조언도 있습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직업이지만 전달자로서의 보존가의 일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앞으로는 이 작품은 어떤 손길을 받아왔을까 하며 작품 속 숨은 스토리가 궁금해질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라운드 업 - 스타벅스 하워드 슐츠의 원칙과 도전
하워드 슐츠.조앤 고든 지음, 안기순 옮김 / 행복한북클럽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스타벅스 명예회장 하워드 슐츠 회고록 <그라운드 업>. 스타벅스 경영철학에 관한 이야기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번 책에서는 공개한 적 없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독한 가난과 무력함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고, 스타벅스의 사회적 역할 이념에 그 시절의 고민이 반영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야망도 의지도 완전히 꺾인 아버지, 우울증을 앓은 어머니.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 빚쟁이들. 하워드 슐츠에겐 그들이 살던 임대 아파트의 계단이 피난처였습니다. 계단에서 작은 세상 너머를 상상하며 보냈다고 합니다. 그에게 '제3의 장소'는 단순히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고방식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상상을 펼쳤던 어린시절 그 계단은 일상이자 휴식의 공간, 집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제3의 장소가 되는 스타벅스에 반영됩니다. <그라운드 업>에서는 어떻게 계단에서 벗어나고 자신이 알던 세상을 넘어서 다른 미래를 상상하며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서게 했는지 어릴 적 경험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어린 시절 내 머릿속에 새겨진 이념의 핵심이기도 하다." - 그라운드 업


1971년 설립된 스타벅스에 근무하며 출장차 간 밀라노에서 에스프레소 바의 충격적인 경험을 한 하워드 슐츠. 당시 스타벅스는 품질 좋은 원두를 판매하는 정도였고, 그의 아이디어는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스타벅스에서 나와 직접 일지오날레를 설립해 커피하우스 경험을 미국 문화에 뿌리내리게 됩니다. 이후 일지오날레가 스타벅스를 인수하게 되었으니 참 인연이란 게 신기하네요.


1987년 스타벅스 CEO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스타벅스의 경영철학을 실천해나갑니다. 어린 시절 경험한 것들이 사명에 반영됩니다. 직원에게는 자신이 일하는 기업과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 맺을 자격이 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부모님은 무엇 하나 소유하지 못했었기에 당시 그 누구도 하지 않던 파트타임 직원에게도 포괄적인 건강보험과 스톡옥션을 제공합니다. 직원들을 위한 혁신을 스타벅스에서 실천한 겁니다.


바리스타를 통한 기업과 고객의 연결은 스타벅스가 추구하는 사업 모델에 필수였습니다. 직원이 진심이어야 가능했습니다. <그라운드 업>에서는 스타벅스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을 살펴봅니다. 사소해 보이거나 기업이 해서는 안 될 행동처럼 보이는 것들도 많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스타벅스 문화 형성에 기여했고, 오늘날 스타벅스가 되었습니다.





회사가 위기에 빠졌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도 했습니다. 대변혁기를 거치고 회사를 성장모드로 돌려놓기까지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스타벅스가 가진 수단을 활용해 선에 기여하고 진정한 가치를 드러낼 기회만큼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매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참여의식을 불러일으킨 겁니다. 구태의연한 정책에 지친 대중의 심정을 반영해 스타벅스가 시민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스타벅스는 어떤 기업인가, 어떤 기업이 되고 싶은가, 오늘날 스타벅스는 어떻게 시민에게 기여할까를 꾸준히 고민합니다. 기회를 차단하는 현재의 사회에서 학생, 청년, 난민, 유색인종 등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자 애씁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상처 입고 가슴 아픈 일도 많았습니다. '모든 인종이 함께' 캠페인도 그중 하나입니다. 실패한 노력으로 인식되었더라도 불완전하지만 시도하는 것이 제쳐놓는 것보다 낫다는 걸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스타벅스는 그 바탕에 언제나 진지한 자기반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교훈을 얻고 긍정적인 활동을 벌일 기회로 바꾸려는 노력으로 스타벅스의 역사가 하나둘 쓰였습니다.


1987년 매장 여섯 개와 100명이 안 되는 직원으로 시작한 스타벅스는 현재 우리나라에만 천사백여 개가 넘는 매장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다국적 커피 전문점이 되었습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얼마나 하워드 슐츠의 신념이 잘 반영되어 실천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지 사실 궁금하긴 합니다.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도전을 게을리하지 않은 하워드 슐츠. <그라운드 업>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인사이트를 줍니다. 동시에 부의 양극단에서 살아본 그의 삶은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 일단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김시옷 지음 / 채륜서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때때로 걷기도 했지만, 열심히 달려왔고 멈춘 적은 없었던 이십대를 보내고 서른이 되니... 백수가 되었다?! 불확실한 현실과 미래에 압도되어 무력한 삶을 사는 이 시대 흔한 청춘들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은 위로 대신 힘 뺀 농담으로 함께 고민을 나눕니다.


소소, 서른, 소심, 사랑이라는 시옷이 들어간 단어를 사랑하는 저자는 필명도 김시옷입니다. 머리 모양도 시옷이에요. 저 머리 스타일이 미용실 한 번 다녀오면 짜리몽땅한 시옷이 되는 장면도 있어 빵 터졌었답니다. 무심한 듯 보이는 소박하고 간결한 그림이 일상의 군더더기를 싹 걷어내는 느낌이어서 읽는 내내 편안했답니다.


학자금 대출은 아직 다 갚지도 못하고, 고시원만큼 좁은 원룸에서 살며 쉬지 않고 일을 했는데 돌아온 건 갑상선 악성 종양이었습니다. 회복까지 긴 시간이 걸린 탓에 이 길이 맞는지 고민하고 허우적대던 직장 생활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에 든 생각은 그 길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여전히 특별한 재능도, 가진 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리셋 버튼은 없어도 언제든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면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드는 생각은 '이제 어쩌면 좋지?'입니다. 동경하던 일을 관두고 할 줄 아는 건 없고.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싶은 생각에 빠져듭니다. 이참에 하루 종일 '나'에 대해서 생각해봤다고 해요. 행복할 때,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꿈 많고 의욕 넘치던 시절엔 무조건 버티기만 할 줄 알았지만, 이제는 일기 쓰기와 운동하기를 꼬박꼬박 챙깁니다. 그림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지만 일상을 그려보기로 합니다.


분명 무척 좋아하는 건데도 항상 아끼기만 했던 버릇도 고쳐보려고 노력합니다. 행복, 사랑… 언젠가 그걸 느낄 여유가 생기는 그때 행복하면 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되겠지 하며 살아왔던 시간은 이제 그만.


지금까지는 행복의 순간을 미루고 미루기만 했다면 이제는 지금 아쉬움 없이 행복하자고 다짐합니다. 행복한 내일 같은 건 없을지 모른다는 뼈 때리는 통찰까지 등장합니다. 남들이 보기에 위태로워 보일지 몰라도 사실 요즘 평화롭고 행복하다고 고백합니다.


나름대로 무언가 하고 있지만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닌 백수 생활. 열정이 없으면 시간만 흘려보내게 됩니다. 잉여력이 높은 만큼 최선을 다해 딴짓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때 죄책감이 슬며시 솟아나지만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백수도 자질이 필요하더라고 말합니다.





백수의 시간이 흐를수록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커졌다가도 내 주제에 무슨... 셀프 고문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기가 뜻밖의 도움이 됩니다. 백수로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직장 생활 시절의 기억이 미화되더라고 합니다. 다닐 만은 했다 식으로 말이죠. 그때 20대에 쓴 일기에 적힌 전혀 행복하지 않은데 꾸역꾸역 하고 있는 심정을 읽고서는 정신이 퍼뜩 듭니다.


생각해보면 청소년 시절부터 사회 초년생, 삼사 십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우리는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삽니다. 진짜 내 마음과 현실에서의 선택의 간극이 클수록 행복에서는 멀어지는 것 같아요. 돈벌이가 되는 일을 하고 살아야지 싶다가도 도무지 타협이 안 되는 시점이 닥치게 되면 번아웃 되면서 무력해지게 됩니다. 조금 더 일찍 내 마음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자신은 없어도 일단 꿈꾸고, 가능성이 없어도 일단 바라고, 결국엔 안될 거라고 의심하면서도 모른 척 용기를 내어보는 각오. 마음도 인생도 시소처럼 오르락내리락하지만, 나만의 균형을 찾아가는 노력만큼은 잊지 않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입니다.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에 신경 쓰겠다는 주제의 에세이는 많지만, 김시옷 작가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합리화와 변명이 없어서 유독 편히 읽히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궁 컬러링북 우리가 사랑했던 순정만화 시리즈
박소희 지음 / 용감한까치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소설, 드라마, 뮤지컬, 웹툰으로 콘텐츠 확장하며 오랜 세월 인기를 얻고 있는 만화 궁.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연재된 꽤 장수한 만화입니다. 28권이라는 대장정으로 이어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저는 드라마 나올 때까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만화로 봤었던 것 같아요.


용감한 까치 출판사에서 이번에 출간된 '우리가 사랑했던 순정만화' 시리즈 덕분에 추억의 만화를 소환해봅니다. <궁> 외에도 <아르미안의 네 딸들>, <레드문>, <비타민> 컬러링북도 함께 나와있으니 입맛대로 골라보세요.


드라마에서 황태자 이신 역을 맡은 주지훈 배우에게 꽂힌 이후 지금까지도 애정하는 배우여서 '궁'은 특히 기억에 남는 만화입니다. 요즘 카카오페이지에서 컬러 웹툰 '궁'이 연재 중이니 궁 애독자라면 새로운 느낌으로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네요~





원작 만화는 흑백으로 접했기 때문에 당시엔 상상하며 읽는 맛이 있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 나왔을 때 원작의 상상력이 시각화되어 컬러풀한 색채감을 만났을 때의 감동이 꽤 컸었던 기억도 납니다. 이제 <궁 컬러링북>으로 내 손에서 탄생하는 알록달록한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데렐라 스타일은 좋아하진 않지만 역사물에 가까워 읽기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입헌군주제라는 가상의 배경이 무척 신선했어요. 현대물이면서 전통 의복과 신분 제도가 혼합되어 조화를 이룬 게 참 매력적이었는데, 그 멋들어진 의복이 <궁 컬러링북>에서 선보입니다.


전체가 다 컬러링 페이지만 있으면 부담스러웠을 텐데, 다행히 컬러 버전의 그림이 꽤 많이 수록되어 있어요. 추억 소환이라는 목적에 걸맞게 컬러를 입힌 그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뭉클해집니다.


설렘 가득한 장면이 새록새록 생각나기도 해요. 궁 컬러링북을 펼쳐드는 순간, 얼른 원작 만화를 다시 펼쳐봐야겠다는 조바심이 날 정도입니다. 그때 가슴 콩닥였던 그 감정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다시 겪으니 정말 기분이 묘해지더라고요. 궁 원작 만화의 명장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몇몇 페이지에서는 대사까지 나오니 이 얼마나 반가운지. 55가지 스케치가 수록되어 마음껏 색칠할 수 있습니다. 사실 궁 마니아라면 망칠까 봐 색칠하는데 손이 발발 떨리는 부작용도 있을 법하지만, 나만의 색을 입혀주는 것으로 애정을 듬뿍 더해보자고요.


저는 정작 <아르미안의 네 딸들>과 함께 성장한 세대이긴 해요. 그러다 만화는 잊고 있다가 직장생활하던 시기에 우연히 <궁>을 만나고선 다시 만화의 세계에 푹 빠졌거든요. 성인이 되어서도 콩닥거리는 감정을 무한히 안겨줬던 만화여서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아요.


추억 소환하며 그 시절 감성을 되살려준 용감한 까치 출판사의 컬러링북 시리즈 정말 사랑스러워요. 고질병인 손목 때문에 컬러링북을 접은 지 꽤 되었는데, 이번엔 한두 컷만이라도 색칠해보고 싶더라고요. 모두가 왕세자빈을 꿈꾸며 읽었던 추억의 만화 '궁'. <궁 컬러링북> 덕분에 그 시절의 감성을 마주하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