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재와 거장 - 위대한 창의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데이비드 W. 갤런슨 지음, 이준호 외 옮김, 박성원 감수 / 글항아리 / 2025년 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창의성의 비밀을 밝힌 경제학자 데이비드 W. 갤런슨의 <천재와 거장>. "천재는 태어나고, 거장은 만들어진다"라는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책입니다.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예술사 속 거장과 천재를 분석하며, 창의성이 꽃피우는 두 가지 전혀 다른 경로를 짚어줍니다. 창의성의 탄생 비밀과 그 적용 가능성을 살펴볼까요.
오늘날 성공 신화는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처럼 20대에 혁신을 이룬 젊은 천재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술계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
피카소는 26세에 「아비뇽의 여인들」을 그려 입체파 혁명을 일으켰지만, 세잔은 평생 자신의 기법을 찾아 노력하다 60대에 이르러서야 후세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걸작을 남겼습니다. 같은 예술가인데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요?

시카고대학 경제학자 데이비드 갤런슨은 우연히 현대 미술에 빠져들면서 예술가들의 작품 가격 변동에 주목했고, 그 안에서 놀라운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예술가들은 젊은 시절에, 다른 예술가들은 인생 후반기에 가장 가치 있는 작품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그저 단순한 우연일까요?
'개념적 혁신가'와 '실험적 혁신가'라는 두 유형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개념적 혁신가는 연역적으로 작업하며,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계획을 세운 후 실행합니다. 반면 실험적 혁신가는 귀납적 접근을 취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점진적으로 목표에 다가갑니다.
한마디로 개념적 혁신가 대부분은 젊은 천재들입니다. 반면 실험적 혁신가들은 보통 인생 후반기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나이 든 거장들입니다. 개념적 혁신가는 단거리 주자, 실험적 혁신가는 마라토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개념적 혁신가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빠르게 구상하고 망설임 없이 실행에 옮깁니다. 이들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이미 머릿속에 완성해 놓고, 이를 단번에 캔버스나 종이에 옮깁니다.
반면 실험적 혁신가들은 끊임없는 관찰과 수정을 통해 서서히 자신의 스타일을 개발해 나갑니다. 이들은 완벽을 추구하며, 결코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저자는 대조적인 두 천재, 피카소와 세잔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피카소는 개념적 혁신가의 전형으로, 그의 예술적 여정은 놀라운 변화와 급격한 스타일 전환의 연속이었습니다.
피카소는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그린 「아비뇽의 여인들」 작품을 위해 단일 그림으로는 미술사 전체에서 유례가 없는 엄청난 양의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입체파의 시작을 알리는 혁명적인 작품으로 인정받으며, 피카소 자신이 말했듯이 "나는 사물을 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그린다"라는 그의 철학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반면, 세잔은 실험적 혁신가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세잔에게 예술은 많은 시간을 들여 힘들게 얻은 능력이었다."라고 말합니다. 세잔은 완벽을 추구하며 작품에 계속해서 손을 대었고, 그의 친구이자 화상인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세잔이 캔버스를 한쪽으로 치워놓을 때는 거의 모든 경우가 완벽성을 기하기 위해 다시 손보기 위해서다"라고 전했습니다.
세잔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자신의 예술적 목표를 명확히 하기 시작했고, 이후 30년 이상 '기법을 찾겠다'는 과제에 매진했습니다. 그는 프로방스에서 은둔자로 살면서 "내가 시도한 결과를 이론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고 느낄 때까지 고요히 일하기로 결심했다"라는 자신의 철학을 실천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경매 시장은 이러한 차이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세잔이 67세에 그린 그림은 26세에 그린 동일한 크기의 작품보다 약 15배 더 높은 가치를 지니는 반면, 피카소의 경우는 정반대로 26세에 그린 작품이 67세 때의 작품보다 4배 이상 가치가 높았습니다.
저자는 개념적 혁신가들이 나이가 들면서 창의성이 감소하는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나의 감정에 많은 것을 요구했다... 이제 그것은 사라졌고 나는 여러분과 같아졌다"라고 말했듯 재능의 소진 이론이 전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개념적 혁신가들의 진정한 적은 고정된 사고 습관의 확립과 전문 분야의 복잡성에 대한 인식 증가라고 짚어줍니다. 개념적 혁신의 핵심은 오래된 문제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고 단순화하는 데 있는데, 한 가지 접근 방식에 너무 오래 몰두하거나 세부 사항과 복잡성에 매몰되면 새로운 혁신을 이루기 어렵게 됩니다.
물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있습니다. 피카소처럼 개념적 혁신가들은 이러한 함정을 피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문제나 스타일로 전환했습니다. 개념적 혁신가들의 중요한 전략입니다. 문제를 더 급진적으로 바꿀수록 새로운 혁신의 가능성이 커지는 겁니다.
반면 실험적 혁신가들에게는 완벽주의가 종종 발목을 잡습니다. 저자는 세잔이 실험적 동료인 모네에 비해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그만 손을 놓는 게 정답임을 더 느리게 인식했다고 설명합니다. 저자는 실험적 혁신가들이 불확실성을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미해결 작품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세잔의 말년 편지는 이러한 과정의 어려움과 성취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자네가 우리 집에서 보았던 지난 연구에서 다소 느리지만 더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해. 그러나 그림을 통해 자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표현 수단은 발달했지만, 노화에 따른 신체적 약화를 동반한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는 게 매우 고통스럽군."이라고 말이죠.
저자는 세잔의 사례를 통해 실험적 혁신가들이 느린 속도에 좌절하더라도 꾸준히 자신의 연구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저자의 개념은 조각, 시, 소설, 영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천재와 거장>은 각 분야의 대표적 혁신가들을 분석하며, 이 두 가지 패턴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는 걸 보여줍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후기에 가장 뛰어난 작품을 남긴 실험적 혁신의 거장들, 짧은 기간 내에 혁명적인 작품을 창조하며 개념적 혁신을 보여준 젊은 천재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천재와 거장>은 창의성의 본질이 무엇이고, 나이와 창의성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안겨줍니다. 젊은 나이에 혁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창의성이 없는 것이 아니니, 일찌감치 패배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많은 예술가들이 창의성이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고갱은 노트에 "예술가는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예술가"라는 신념을 기록했지만, 동시에 "예술가에게는 더 뛰어난 능력이 발휘되었던 어떤 시기, 어떤 순간이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불안마저도 개념적 혁신가와 실험적 혁신가에게 다르게 나타난다는 걸 발견합니다. 개념적 혁신가들은 자신의 혁명적 아이디어가 소진될까 두려워하고, 실험적 혁신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충분히 완벽해지기 전에 시간이 다할까 걱정합니다.
기술 혁신, 비즈니스 전략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도 창의성은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천재와 거장>은 현대 사회에서 창의성을 이해하고 증진하는 데 유용한 아이디어를 안겨줍니다.
모든 창의성이 젊은 나이에 나타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이죠. 실험적 혁신가들의 사례는 지속적인 노력과 경험 축적이 때로는 급진적 혁신보다 더 깊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교육 시스템과 기업 문화에서 다양한 창의성 유형을 인정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걸 짚어줍니다. 개념적 접근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할 수 있는 기회를, 실험적 접근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자원을 제공해야 합니다.
창의성은 단일한 형태로 발현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창의성 유형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환경과 습관을 개발해야 한다는 걸 잘 보여준 책입니다. 개념적 혁신가들은 새로운 도전을 지속적으로 찾아야 하고, 실험적 혁신가들은 꾸준한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고 완벽주의의 함정을 피해야 한다는 걸 일깨웁니다.
재능의 탄생과 성장을 둘러싼 신화를 해체하고, 창의성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천재와 거장>. 창의성 연구의 새로운 고전이 될 책입니다. 창의성이란 각자의 방식과 속도로 꽃피울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