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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 씨, 오늘 수영장 물 온도는 좀 어때요? - 스토아 철학으로 배운 이 세상을 수영하는 법
정강민 지음 / 들녘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정강민 작가의 독특한 철학 에세이 『세네카 씨, 오늘 수영장 물 온도는 좀 어때요?』. 새벽 5시 수영장이라는 특별한 무대에서 스토아 철학과 만납니다. 수영장과 철학이라는 조합 자체가 뜬금없어 보이지만 읽고 나면, 이보다 완벽한 조합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속에서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경험이야말로, 세네카와 아우렐리우스가 강조한 평정과 통제의 철학과 연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수영장에서 가라앉지 않는 삶의 비결을 배웠다며 단순히 호흡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삶 전체를 다시 배우는 과정이었던 겁니다. 600일 넘게 수영장을 오가며 몸으로 체득한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수영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새벽마다 수영장으로 향하는 길에서 왜 이런 고생을 스스로 사서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행복이란 결국 움직임 속에서만 발견된다는 깨달음에 도달합니다. 몸을 움직이는 행위 자체가 내적 평온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아타락시아(Ataraxia), 즉 마음의 평정상태를 수영장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첫 수업에서 저자는 물을 잘못 들이켜 고통을 겪습니다. 그 순간조차 철학적 깨달음의 시작이었습니다. 물속에서의 호흡은 단순한 생존 기술이 아니라, 불안과 공포를 다루는 훈련이 되었습니다.
수영의 초반은 허우적거림의 연속입니다. 저자는 세네카의 말을 인용하며 "우연히 지혜로워지는 사람은 없다. 삶이 멈추면 배움도 멈추고, 배움이 멈추면 삶도 정지한다."라고 말합니다. 스토아 철학의 핵심인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가르침과 연결합니다.
저자는 자유형 호흡을 익히는 과정을 통해 몸소 깨닫습니다. 잘 되지 않는 결과에 집착하는 대신, 그 순간 할 수 있는 행동에 집중합니다. 한 번 더 팔을 저어보고, 다시 숨을 고르는 겁니다. 그 과정이 결국 삶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로 확장됩니다.

『세네카 씨, 오늘 수영장 물 온도는 좀 어때요?』는 수영장 레인을 오가며 얻은 깨달음을 철학적 사유와 연결합니다. 평영은 저자가 가장 삶과 닮았다고 말하는 영법입니다.
빠르게 앞서 나가지는 못하더라도, 천천히 꾸준히 나아가는 것.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는 것. 깊이 있는 삶은 효율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조급함이야말로 수영에서도, 인생에서도 가장 큰 적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회복하는 것이 곧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메시지와 맞닿아 있습니다.
깊은 물속은 두려움을 불러옵니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은 두려움이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첫 배영 수업에서 몸이 뻣뻣하게 굳는 경험을 하며, 세네카의 말을 떠올립니다. "그 일이 어려워 보여서 감행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감행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워 보이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말이죠.
완전히 소진해야만 충만해진다는 역설적 표현은 스토아 철학의 핵심을 관통합니다. 진정한 만족은 적당한 노력이 아닌 전력투구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새벽 수영을 앞두고 이불 속에서 일어나는 결심조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과 연결됩니다. "나는 이불 속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태어난 존재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가치 있는 삶을 향한 매일의 선택을 요구하는 철학적 물음이었습니다.
수영장은 삶의 축소판입니다. 저자는 수영장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참담하고, 무례하고, 거짓된 사람을 오늘도 만날 것이다. 그러나 그중 누구도 나를 해치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타인의 무례함에 반응하기보다는 내면의 평정을 지켜내는 연습이야말로 진짜 수영 훈련이었던 것입니다.
플립턴(flip turn)을 배운 경험은 삶에서 벽을 두려워하지 않고 방향을 전환하는 용기와 다름없었습니다.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장애물은 단순히 넘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방향을 새롭게 잡을 기회임을 알려줍니다.
『세네카 씨, 오늘 수영장 물 온도는 좀 어때요?』는 수영을 통해 삶은 단순해야 평온해진다는 진리를 몸으로 체득한 저자의 기록입니다. 서양의 이성적 철학이 한국인 특유의 몸으로 배우는 학습 방식과 결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실용 철학을 선보였습니다.
"수영은 내 안의 소음을 가라앉히고, 스토아 철학은 나를 다시 세우는 훈련이다. 삶은 명확성과 결단력, 반복되는 훈련이 더해질 때 비로소 단순해진다." p184
600일간의 수영 여정을 통해 스토아 철학이 어떻게 일상의 지혜로 체화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버겁고 무거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 저자가 수영장에서 건져 올린 가장 값진 보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