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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 아침을 - Breakfast On The Moon ㅣ 스토리잉크
이수연 지음 / 웅진주니어 / 2026년 4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그림책의 형식을 빌려 우리 사회의 방관 구조를 해부하는 『달에서 아침을』. 이 책은 이수연 작가가 우연히 접한 기사 속 한 학생의 마지막 편지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무게감은 책 전체에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그림 속 캐릭터들은 동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주고받는 침묵과 외면은 지극히 인간적입니다.
이야기는 여름 방학의 어느 날, 토끼가 곰의 옆집으로 이사 오며 시작됩니다. 이들은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집까지 나란히 걷고, 밤늦게까지 문자로 수다를 떠는 사이입니다. 토끼는 오래된 영화 음악과 만화책을 즐기고, 곰에게 고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연대는 '둘만 있을 때'라는 전제 조건하에서만 유효합니다. 학교라는 공적 공간으로 진입하는 순간, 이들의 관계는 기묘한 뒤틀림을 겪습니다.
"야, 왕따 지나간다. 쟤 아까 보니까 너한테 알은척하는 것 같던데?" "아, 옆집 산다고 그랬나? 너도 진짜 짜증 나겠다."
학교라는 공간이 개인의 순수한 유대를 어떻게 난도질하는지 보여줍니다. 곰은 토끼를 알지만, 타인의 시선 앞에서는 그 친밀함을 부정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비겁한 목격자가 됩니다.
학교에서 토끼는 철저히 섬이 됩니다. 말이 없어서 건방지다거나, 피부색이 노랗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합니다. 여기서 작가는 가해자보다 무서운 방관자의 심리를 곰의 시선을 통해 보여줍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비둘기들은 내가 토끼를 싫어한다고 생각할 테니까.'라고 말입니다. 곰은 악의가 있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편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도 타깃이 될까 두려워 침묵을 선택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면서도 나의 안위를 위해 모르는 척을 매뉴얼화한 우리들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곰의 침묵은 단순한 방관을 넘어 토끼의 존재를 지우는 암묵적인 동의로 기능합니다.
길고양이 에피소드는 토끼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확장합니다. 어둠을 틈타 고양이를 괴롭히는 정체불명의 그림자는 학교 내의 보이지 않는 폭력과 닮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가던 길을 재촉합니다. 다들 자기 일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곰은 고양이를 괴롭히는 그림자를 보며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앞에 서면 공포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무력감을 정당화하기 위해 피해자인 토끼를 비난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너는 그게 문제야. 왜 그렇게 쌀쌀맞아? 애들한테 좀 더 친근하게 대해 봐."라고 말이죠.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의 성격 결함으로 돌려버리는 전형적인 가해자 중심적 논리입니다.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닌데도, 우리는 저 사람은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더라는 판단으로 외면을 정당화합니다. 곰은 너도 비둘기들과 다를 것 하나 없다는 토끼의 일침을 듣고 나서야, 친구들 뒤에 숨어있던 자신의 비겁한 민낯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달에서 아침을』의 토끼는 말이 없습니다. 토끼의 침묵은 무력함이 아니라, 상처받은 자존이 택한 방어 형식에 가깝습니다. 〈문 리버 Moon River〉를 들으며 달을 상상하는 토끼의 생존 방식이 아릿하게 다가옵니다. 이 세계가 너무 좁고 아플 때, 토끼는 음악을 타고 달로 탈출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혼자 아침을 먹습니다. 그 이미지는 쓸쓸하지만 동시에 눈부십니다.
"이 노래는 나를 우주 한가운데 어딘가,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주는 것 같아. 어쩌면 달로 갈 수도 있을 것 같고."라며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주인공처럼, 지금의 남루하고 아픈 시간을 지나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멋진 어른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겁니다.
영화 속 주인공 홀리가 화려한 보석 상점 티파니의 쇼윈도 앞에서 아침을 먹으며 현실의 결핍을 잠시 잊듯, 학교라는 지옥을 견뎌야 하는 토끼에게도 자신만의 티파니가 필요했습니다. 작가는 중력이 닿지 않는 공간인 달을 선택합니다.
타인의 시선과 비난, 비겁한 침묵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는 결코 온전한 아침을 맞이할 수 없다는 비극적 인식이 토끼로 하여금 가장 먼 곳인 달을 꿈꾸게 만든 겁니다.
이수연 작가의 그림은 묘하게 매력적입니다. 수채화 특유의 번짐과 여백이 교실 장면에서는 위태로운 느낌을, 달 위의 장면에서는 몽환적인 해방감을 만들어냅니다. 그래픽노블과 그림책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구성 방식도 남다릅니다. 컷 분할과 페이지 연출이 영화적 리듬감을 갖고 있어, 읽는 속도가 자연스럽게 조절됩니다. 그림이 박자를 쥐고 있는 느낌입니다.
침묵의 공범에서 연대로 나아가는 성장 서사 『달에서 아침을』. 학교 안에서 혹은 직장 안에서 '편하게 모른 척' 해본 모든 어른들에게 권합니다. 10대 청소년에게는 자신이 토끼인지, 곰인지, 비둘기인지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