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흐르는 곳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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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 스릴감 넘치는 초자연 미스터리 공포와 힐링의 빛이 온몸을 휘감는듯한 따스함까지, 스티븐 킹 작가의 팔색조 매력이 담긴 소설 네 편을 만날 수 있는 <피가 흐르는 곳에>. 


묘지에서 전화벨이 울린다는 설정의 <해리건 씨의 전화기>. 스티븐 킹이 어린 시절에 했던 상상이라는데 정말 기막히게 뽑아냈습니다. 한때 통신사, 영화관을 소유했던 갑부 해리스 씨가 은퇴 후 이제는 노트북도 TV도 없이 지냅니다. 해리스 씨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하며 푼돈을 받는 '나'는 그가 보내준 즉석복권이 당첨되는 행운을 누리고, 아이폰을 선물합니다. 새로운 여행길에 나선 노년의 탐험가처럼 신문명을 맛본 해리스 씨.


왜 신문기사와 유튜브 영상에 광고가 없는지 해리스 씨는 의아해합니다. 하지만 곧 내 이메일 주소가 돌아다니고 내가 뭘 검색하는지 추적당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앞으로 이걸로 뭘 할 수 있을지, 어떤 세상이 올지 그 본질을 간파하는 예리함은 녹슬지 않았습니다. 1세대 아이폰 시절의 당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어 신기했어요.


무던한 성장소설처럼 흘러가던 소설은 해리슨 씨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부터 미스터리하게 전개됩니다. 해리슨 씨의 장례식에서 그의 아이폰을 주머니에 넣어둔 '나'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전화를 걸어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해리슨 씨의 번호로 기이한 문자가 옵니다. 게다가 몇 년이 지나도 배터리가 꺼지지 않고 연결됩니다. 죽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건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이후 기이한 사건들은 솔직히 상상만으로도 오싹해집니다. 그래서 결말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막 고마웠어요, 척!으로 시작해 2막 길거리 공연, 1막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설정으로 진행하는 <척의 일생>. 인터넷도 끊기고 전기도 곧 끊기면서 종말을 앞둔듯한 세상. 그런데 온갖 광고판에 "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이라는 구절과 함께 손등에 초승달 모양의 흉터를 가진 남자의 사진이 등장합니다. 대체 누구길래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걸까요. 세계가 기울어가고 있는 이 상황에서 말이죠.


스티븐 킹이 척을 주인공으로 두 편의 단편 3막과 2막을 먼저 쓰고 나서 1년 후 이 모든 걸 하나의 내러티브로 묶는 세 번째 이야기 1막을 썼다고 합니다. 여전히 이 소설의 결말이 의미하는 바가 안개처럼 뿌옇긴 하지만, 라라랜드를 연상하게 하는 분위기와 설정이 마음에 들어 스티븐 킹 소설 중 잊지 못할 소설로 자리 잡을 정도로 저는 마음에 쏙 들었어요.


"한 사람이 죽으면 온 세상이 무너진다고 본다. 그 사람이 알았고 믿어온 세상이." - 척의 일생 


스티븐 킹의 첫 탐정소설 <메르세데스> 3부작에 단역으로 등장했던 홀리 기브니는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후 <아웃사이더>에도 등장시키더니 이제는 홀리를 주인공으로 한 경장편 소설의 탄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전작 <아웃사이더>에서 이방인이라 지칭했던 미지의 괴물이 <피가 흐르는 곳에>서는 더 우리 주변에 파고든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재난이 닥친 곳에 가장 먼저 도착해 특종을 보도하는 기자로 말이죠. 생존자와 유족의 고통, 상심, 두려움, 슬픔을 먹는 그것. 사람의 감정을 먹는다는 설정이 흡혈귀를 떠올리게 합니다. '피가 흐르는 곳에 특종이 있다'는 뉴스업계의 오랜 정설이 초자연 미스터리와 접목되면 이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겠구나 싶어 놀라웠어요.


그것은 오랜 세월 얼굴을 바꿔가며 기자 행세를 하며 배를 채웠습니다. 그동안은 특별히 해로울 게 없는 존재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이전과 다르게 행동합니다. 대학살을 직접 유도합니다. 홀리 기브니의 편집증적 의심이 발휘되면서 그것의 정체를 쫓는 홀리. 이번에도 홀리식 희망은 이뤄질까요.


<아웃사이더>에서 추상적으로 다가왔던 이방인의 정체가 <피가 흐르는 곳에>서는 좀 더 선명하게 와닿는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이방인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려는 스티븐 킹의 의도가 느껴집니다. 유독 조회수 높은 비극 사건 영상처럼 호기심처럼 비극을 즐기는 인간의 모습 말이지요.


마지막 단편소설 <쥐>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설가라는 소재가 흥미롭습니다. 창작의 고뇌를 이토록 오싹하게 다루다니요. 읽다 보면 신경과민 노이로제에 걸리는 기분입니다. 매번 장편을 쓰지 못하고 단편만 써온 소설가 드류는 어느 날 갑자기 완벽한 장편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거의 받아쓰기에 가깝다고 장담할 만큼 플롯이 탄탄합니다. 가족과 떨어져 몇 주 정도 숲속 통나무집에 머물며 집필하기로 합니다.


처음엔 술술 잘 풀렸지만 이내 독감 증상을 보이며 해롱대는 드류. 폭풍까지 들이닥쳐 떠나지도 못한 채 비몽사몽합니다. 폭풍으로 난장판이 된 창고에서 죽어가던 쥐를 발견한 드류는 집안 난로 앞에 두고 깜빡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세상에, 쥐가 말을 하네요. 게다가 보은하는 쥐인가요? 소원을 들어주겠답니다. 하지만 소원에는 언제나 대가가 필요하죠.


스티븐 킹도 드류처럼 창작의 고통을 겪었을까요. 그럴 때면 원고를 끝내고 싶다는 소원을 지니가 이뤄주는 동화 같은 꿈을 꿀까요. 대가도 감내할 만큼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쥐>까지, 지극히 현실적인 욕망과 꿈을 다룬 소설 네 편은 스티븐 킹 특유의 호러 미스터리가 강약 자유자재로 깔리면서 '역시 킹옹' 소리가 절로 나오는 매력을 듬뿍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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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독서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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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잃지 않도록, 성숙해지도록... 삶은,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삶의 화두가 담긴 책 <걷는 독서>. 시인, 사진작가, 혁명가로 불리는 박노해 작가가 들려주는 한 문장이 길어올리는 사색의 시간을 만끽해보세요.


노동운동가 시절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 문구에서 딴 필명 박노해로 활동하며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은 금서였음에도 100만 부 기록을 세웠고, 군사독재 정권에서 사형을 구형 받고 무기수로 복역하다 7년여 만에 석방된 박노해 시인. 반전평화운동에 전념하며 현장의 진실을 기록해온 그는 고난의 인생길에서도 자신을 키우고 지키고 밀어 올린 것은 '걷는 독서'였다고 합니다.


"'걷는 독서'는 나의 일과이자 나의 기도이고 내 창조의 원천이었다." - 걷는 독서 


책 속의 활자와 길의 풍경들 속에서 '걷는 독서'를 해온 그는 무기수로 독방에 던져졌을 때조차 두 걸음 반짜리의 작은 독방에서 '걷는 독서'를 계속했습니다. 철저히 고립된 공간 속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광활한 정신 작용을 할 수 있게 한 '걷는 독서'. 자유의 몸이 되고서도 그렇게 걷는 독서는 계속되었습니다.


표지를 장식한 걷는 사람 이미지는 2008년 알자지라 평원에서 만난 '걷는 독서'를 하는 소년의 사진이라고 합니다. 선조들의 복장과 걸음과 음정 그대로 낭송하는 '걷는 독서'는 근대 묵독 이전의 전통으로 오래된 독서 행위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휴대폰이나 보면서 걸을 뿐이지 걷는 독서를 해 본 경험이 없는 저는 글쎄요. 언제쯤에나 해볼 수 있을까 싶다가도, 독방에서도 하셨는데 우리집 정도쯤이야. '걷는 독서'가 가진 의미만큼은 이참에 깊게 새겨두려고 합니다.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는 삶의 길잡이가 되어줄 명문장 423편이 수록되었습니다. 20여 년간 직접 찍은 작은 컬러사진이 어우러져 시각적으로도 호강하거니와 짤막한 한 문장을 소리내어 읽기 좋고 필사하기 좋은, 오감을 자극하는 책입니다. 한국문학 번역의 대가 안선재 서강대 명예교수의 영문 번역이 함께 있어 영어로 소리내어 읽었을 때의 색다른 느낌도 받을 수 있습니다.


책을 '읽었다'와 '읽어버렸다'의 차이를 아시나요. 읽어버리는 순간 소멸의 자리만큼 진정한 나를 마주하고 새로운 삶을 잉태하는 하나의 성소가 된다고 합니다. 온 삶으로 읽고, 잃어버린 것을 살아내야만 한다고 합니다. 독서의 완성은 '삶'이니까요.


참된 독서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박노해 시인은 책을 읽지 않는 것만큼이나 사람을 버리는 것이 책을 많이 읽는 거라고 합니다. 머리로 외우고 익힌 지식은 쉬이 잊히기에 창조성을 깨어나게 하려면 조금 더 심심해져야 한다는 거죠. "경험은 소유하고 쌓아가는 것이 아니다. 체험 속에 나를 소멸해가는 것이다."처럼 이쯤 되면 "따사로운 햇살은 파릇한 밀싹을 어루만지고, 그는 지금 자신의 두 발로 대지에 입 맞추며 오래된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걷는 독서'의 가치를 짐작하게 됩니다.


"진정한 독서란 지식을 축적하는 '자기 강화'의 독서가 아닌 진리의 불길에 나를 살라내는 '자기 소멸'의 독서다." - 걷는 독서 


"삶은 짧아도 영원은 사는 것. 영원이란 '끝도 없이'가 아니라 '지금 완전히' 사는 것이다."처럼 일상을 살아내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걷는 독서>. 그렇다고 해서 일상을 이벤트처럼 살아내는 것은 안된다고 합니다. 지나치게 다른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으로 충분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만을 위한 나가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쌓아올려 온몸으로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한 문장이 가득합니다.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사회 문제를 고뇌하며 깨달은 한 문장, 내면의 상처를 바라보며 치유에 이르는 한 문장, 실수를 후회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성찰로 이끌어내는 한 문장, 자기 자신을 찾는데 도움되는 한 문장 등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으며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기로 한 박노해 시인.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내 삶의 수많은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머리 굴리지 말고 욕심 세우지 말고 겉멋 부리지 말고 단순하게 그냥 가기. 본질로만 승부하기.", "나 어떻게 살 것인가 막막할 때는 어떻게 살지 말 것인지를 생각하라." 등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은 사색의 시간을 안겨줍니다. "여행은 편견과의 대립이다.", "패션은 사상이다."처럼 짧은 한 문장만으로 사상의 정수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사전을 보는 듯한 압도적 두께감을 자랑하지만, 앙증맞은 판형에 하늘빛깔을 담은 시원시원한 편집이 부담스러움을 덜어줍니다. 사유의 밀도가 함축, 응축된 한 문장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는 <걷는 독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특별히 마음을 사로잡는 한 문장은 달라질 테지만, 언제 어디에서나 페이지를 펼쳤을 때 쏟아지는 삶의 기본 원칙이 되는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루 한 문장씩 낭송하며 필사하기 좋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사유를 끌어내는 소중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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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역사 4 - 진실과 비밀 땅의 역사 4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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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문기자 박종인의 인문 기행서 <땅의 역사> 시리즈 4권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거짓이었으며, 거짓이라 치부했던 것이 진실인 우리 땅의 진실과 비밀을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역사의 명암을 조명하는 이 시리즈 덕분에 과거의 새로운 이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흥선대원군이 선친 남연군의 묘를 이장한 충남 예산으로 간 박종인 기자. 남연군 묘와 관련해서는 2명의 천자를 낳을 명당을 찾아 전 재산을 털어 급히 이장했다는 이야기로 전해져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남연군묘는 용단승설이라 알려진 명차의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묏자리를 보러 갔다가 고려 옛탑에서 700년 된 송나라 때 명차인 용단승설 네 덩이를 얻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중 하나가 추사 김정희에게 갔다고 해요. 이 명차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참 재밌습니다.


명나라 때 금지령 내려진 용단승설은 말차라고 부르는 일명 가루차입니다. 제조 과정에서 백성의 노동력이 과중되었기에 금지령을 내렸고, 이후 찻잎을 우려내는 엽차로 차 문화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지령에 내려지자 나비효과처럼 집착이 생기기 마련이지요. 기록으로만 내려오던 말차를 맛본 전적이 있는 추사 김정희도 마침 용단승설 한 덩이를 얻게 되자 자랑하기에 이릅니다.


명차와 관련한 이야기는 조선 다기로 이어집니다. 조선 다기 원천 기술자들을 일본에서 납치해갔다고만 알려진 도공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남연군묘가 있는 충청도 내포에서 실타래처럼 풀려나가는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땅의 역사> 시리즈를 읽다 보면 역사와 관련한 가짜뉴스가 꽤 많다는 걸 알게 됩니다. 대통령도 믿을 정도인 목민심서와 관련한 이야기는 진실을 알게 되니 꽤 허탈해집니다. 호찌민의 목민심서 애독설은 가짜뉴스라고 합니다. 48권 16책으로 방대한 분량의 한문본인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호찌민은 읽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여전히 대중이 혼동하게끔 언급되고 있는 출판계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 외 인터넷에 떠도는 우쭐한 이야기의 대표 사례로 이순신을 찬양했다는 도고 헤이하치로 이야기인데요. 역시 그릇된 신화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잔혹한, 권력이 권력을 잡아먹는 이야기는 아찔합니다. 병자호란과 관련해서는 <땅의 역사> 시리즈에서 꽤 주요 주제로 다뤄왔는데, 파란만장한 비하인드스토리를 마주할 때마다 놀라게 됩니다. 국난에 대처하는 자세의 명암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치욕을 씻어낼 정신승리를 위한 희생양이 되었던 인물들에게 우리는 간신이라 낙인찍기도 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합니다.


조선 정치 엘리트 집단을 집단 감염시킨 사대는 정조 이후까지도 이어집니다. 사실 정조 시대 이야기는 꽤 반전과도 같은 충격을 주기도 합니다. 망국 때까지 벌어졌던 무법천지 막장 형벌제도를 펼친 영조의 탈법과 무법 행위, 세도정치로 조선왕조 국정의 100년 공백기를 만든 단초를 제공한 정조의 정실 인사 등 텅 빈 시대의 진실을 들춰냅니다.


기미년 그날 고종은, 안중근은, 왕족들은, 조선은 무엇을 했는가라는 주제로 써 내려간 위기의 시대를 다룬 마지막 장도 인상 깊습니다.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면서 강제 병합과 10년간의 무단 통치가 이어졌지만, 만약 그때 처단하지 않았다면 달콤한 사탕에 홀린 조선이 지금도 일본어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고 있었을 거라는 저자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당시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 근대화, 황제권 존중을 통해 조선이 일본에 자발적인 친밀감을 갖도록 계획 세운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사건이 어떤 영향을 낳고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이어지는지 촘촘하게 연결한 <땅의 역사>. 이제까지 잘못 알려졌거나 은폐됐거나 혹은 전혀 몰랐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껍데기를 벗겨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왜곡, 과장, 선입견으로 점철된 역사를 재조명하는 의미 있는 책입니다.


"흔적이 사라지고 기억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역사가 사라지겠는가."- 땅의 역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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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과학이다 - 하버드 행동 과학자 겸 데이트앱 개발자가 분석한 연애의 과학
로건 유리 지음, 권가비 옮김 / 다른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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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할 때 왜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내 연애는 왜 자꾸 실패하는지 궁금하다면 꼭 읽어야 할 책, 하버드 행동 과학자이자 데이트앱 개발자 로건 유리가 들려주는 연애 코칭 <사랑은 과학이다>.


사랑은 타고난 본능이 맞지만 연애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좋은 인연이란 '만드는 것'이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랑을 만나고 관계를 지속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배워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튼튼한 관계를 만들려면 의도적인 사랑을 해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습니다. 우리가 취한 일련의 선택에서 비롯된 결과로서의 '의도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연애하는데 있어 나쁜 습관을 인식하고, 데이팅 테크닉을 교정하고, 관계를 결정지을 중요한 대화에 도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랑은 과학이다>. 어떻게 사랑을 찾아내고 오래 지속시킬 수 있을지 연애학과 행동 과학을 이용해 알려줍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연애를 가로막고 있는 나의 성향을 파악해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 성향이 연애 생활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면 그동안 실패한 연애 패턴이 이해될 겁니다. 내가 무엇의 의욕을 느끼는지, 무엇에 헷갈리는지, 무엇에 꺾이는지를 연애 성향 테스트로 발견하게 됩니다.


동화 속 사랑의 힘을 믿는 낭만형, 확실한 사람을 찾았다는 확신이 들기를 기다리는 극대형, 연애할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하는 주저형. 세 가지 연애 성향의 특징을 설명하고,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목조목 짚어줍니다.


이때 행동 과학의 마인드셋 개념이 등장합니다.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태도와 기대가 우리가 할 경험의 맥락이 되고, 그 경험은 다시 우리가 정보를 해석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연애의 단계마다 이 마인드셋이 파급력을 발휘합니다.


심리학자 르네 프라니욱은 소울메이트 마인드셋과 문제 해결 마인드셋이라는 연애와 관련한 마인드셋을 소개합니다. 낭만형 사람들은 소울메이트 범주에 속하는데, 올바른 짝을 찾으면 관계가 만족된다는 마인드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기다리려고'하지, 사랑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게 됩니다. 기대감으로 초반엔 관계를 빠르게 진척시키다가도, 난관을 만났을 때 문제를 극복하려고 애쓰느니 차라리 관계를 포기해버리고 맙니다.


반대로 문제 해결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은 연애를 훨씬 잘 해나갑니다. 관계가 부진해지면 포기하는 대신에 관계 회복에 필요한 일을 합니다. 자신이 낭만형 연애 성향인데 연애를 오래 하고 싶다면, 문제 해결 마인드셋을 갖춰야 가능해집니다.


왜 특정 유형 사람들에게 매료되는지, 지난 연애가 왜 제대로 안됐는지, 왜 특유의 나쁜 습관이 생겨서 고통을 겪을까요. 불안 애착형, 안정 애착형, 회피 애착형으로 설명하는 애착 이론이 적용됩니다. 밀착감을 갈망하지만 진전은 안 되는 불안형은 안정형을 만나면 따분하게 느끼는 탓에 무던한 안정형과의 연애에 실패하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짧은 연애가 아닌 인생 반려자를 만나고 싶은 사람이 이 책에 관심이 있겠죠? 함께 삶을 가꿀 사람을 선택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겪는 경우 대부분 편파적이고 왜곡된 평가를 내린다고 합니다. 돈, 외모, 비슷한 성격, 공동 취미를 우선시하며 평가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특징이나 공동 관심사에 집중하는 겁니다. 표면적인 특징이라든지 상대를 처음 만난 순간 쉽게 식별되는 자질보다 더 중요한게 따로 있는데 말입니다.


안정된 정서와 친절함, 의리, 성장 마인드셋, 나의 긍정적인 면을 드러나게 하는 성격, 잘 싸우는 기술, 어려운 결정을 함께 내릴 수 있는 능력 등이 더 중요하다고 해요. 연애 중에 혹은 적어도 몇 차례는 더 만나야 드러나는 것들입니다.


자신이 원하는게 뭔지, 오래 지속되는 연애에서 뭐가 날 행복하게 해 줄지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몇 장으로도 사람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이제는 이해하게 됩니다. 표면적인 프로필로 평가 내리며 연애 쇼핑하는 디지털 데이팅의 함정을 피하는 대신 이점을 누리도록 돕는 제대로 된 데이트 앱 사용법을 익혀야 합니다.


저자는 앱을 보고 사람의 특성을 읽는 작업이 과학이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깝다고 합니다. 진짜 짝을 만나면 바로 그 순간 불꽃이 튈 것이다, 스파크는 언제나 좋은 거다, 스파크가 있다면 그 관계는 성장 발전한다는 대표적인 연애 미신이 왜 틀렸는지 짚어줍니다. 괜찮은 상대를 골라내는 데이팅 기본값을 설정하는 방법과 마인드셋 전환을 통해 더 나은 선택으로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도와줍니다.


커플이 다음 단계로 넘어설 때 확고한 결단으로 진행하거나 반대로 어물쩍 넘어가기로 진행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관계를 규정하고 동거 문제를 다루는 법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하는 법을 배운다면 계속 나아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누군가에겐 동거가 결혼을 보증하는 분명한 신호로, 누군가에겐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대화를 하지 않으면 균열을 알아차릴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연애가 불만스러울 때 자가 진단을 할 수 있는 테스트, 헤어지기로 결정 내리는 과정, 연민 어린 이별을 하는 법,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는 법 등 이별 컨설팅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결혼해도 될까 고민처럼 중대한 결정은 서둘러 할 이유가 없다고 단언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다양한 대화를 하면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부분을 확인하며, 각자 원하는 바가 달라도 기꺼이 타협할 마음이 있는지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책에서는 6개월 정도 하룻밤에 한 가지 대화를 나누는 사례를 소개합니다. 어떤 때는 대화가 잘 통하지만 어떤 때는 벽이 생긴 것 같을 때도 있을 겁니다. 관계는 항상 변하는게 본질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우리의 성장과 변화 역시 멈추지 않음을 안다면 유연한 관계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언제 사람을 만나러 나갈지, 누구와 데이트할지, 잘못된 상태라면 어떻게 인연을 끊을지, 제 짝을 만났다면 언제 정착할지 등 그때그때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랑은 과학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사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의도하며' 사랑해야 가능하다는 걸 일깨워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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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사람
문기현 지음 / 작가의서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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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사라져도 모를 시간 앞에서 하염없이 살아가는 틈의 이야기들 <하얀사람>. 문기현 작가의 전작 <감정일기>에서 깊은 감정의 소중함을 들려주며 매번 느끼는 감정들 속에서 추억하는 삶의 시간을 이야기했다면, <하얀사람>에서는 틈으로 표현한 삶을 들려줍니다.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자리를 뜻하는 '틈'. 나의 틈, 타인의 틈, 현실의 틈, 슬픈 틈, 변하지 않는 틈처럼 수많은 틈에서 살아가는 우리. 어떤 틈은 보호막이 되지만, 어떤 틈은 자아를 파괴하는 틈이 되기도 합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끼여 버렸다. 어느 틈인지 모를 정도로 나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 - 하얀사람 


틈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하얀사람>. 살아오면서 겪어온 삶의 무게가 가벼운 이는 없을 겁니다. 틈 사이에서 헤매면서도 여전히 어느 틈에나 껴 있는 저마다의 삶. 조금 더 나를 잘 살아내지 못했던 현재에게 미안해하기도, 과거를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지 못해서 슬퍼하기도 하면서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였기에 괜찮은 오늘이라고 말할 수 있기까지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슬퍼하는 틈의 기록이 펼쳐집니다.


하얀사람이라 일컫는 '그녀'의 틈 안에서 살아갈 때 따스한 기운을 얻는 작가. 궁색한 기억이라지만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과 감정이 오롯이 숨 쉬고 있습니다. 그녀는, 엄마입니다. 가끔은 누나도 등장하고, 돌아가신 이모도 등장합니다.


외면했던 것들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음을 깨달으며, 그로 인해 다시 나를 찾고 있는 작가는 엄마와 누나의 걱정이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깨달으며 그녀들의 틈에서 잘 살아내려고 노력합니다.


늘 어딘지 모를 갈림길에 서 있는 틈 사이에서 헤매는 것 같은 불안함. 불안한 감정에 지배당하느라 스스로도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힘듦을 잘 살아내면 결국 그렇게 살아왔던 삶이 나의 무기가 된다는 믿음을 안겨준 그녀의 말처럼 짙은 감정의 결을 오롯이 바라보며, 재생과 치유의 시간을 가집니다.


글을 쓰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고, 그것은 온전치 않은 자아를 꺼내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은 틈이 만들어 놓은 인간적인 선물"이라며 마음이 불안해지고 생각이 짧아질 때면 세상의 흐름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는 책을 펼쳐듭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그들의 장단에 맞춰서 살아가야 하는 틈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익숙해져 버리면서 나의 틈이 사라짐을, 자아가 파괴당하는 시간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나의 백지에 타인의 흔적이 남는 겁니다. 하얗게 모든 것을 다시 백지화시켜버리며 하얀 사람이 되려고 애를 써도, 여전히 나의 백지에는 '하얀 한 줄'이 남겨져 있습니다. 


반대로 하얀 백지이기 때문에 더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시간을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됩니다. 하얀 백지에 무엇을 채울지 말입니다. "살아갈 것인가 혹은 살은 채 죽어 갈 것인가". 무수한 고뇌와 함께 어떠한 삶을 살아낼지 고민합니다. 산다는 건 어느 틈에 껴있다는 의미입니다. 틈은 나의 시간이자, 나의 이유입니다.


나라는 자아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잘 맞추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얀 백지 위에 크고 작은 선을 그려가는 삶. 나와 당신, 세상의 틈을 성숙한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하얀사람>. 여전히 불현듯 불안한 감정이 찾아와 아파하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매만진 전작 <감정일기>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게 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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