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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의 세계 A.C.10 - 코로나 쇼크와 인류의 미래과제
JTBC 팩추얼 <A.C.10> 제작진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11월
평점 :
대중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팬데믹은 변화의 과정을 빠르게 일어나게 하는 위기"라며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을 분석하고 반성할 점과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팬데믹 이후의 세계 A.C.10>은 팬데믹 이후의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10년 뒤 인류에게 다가올 미래사회를 생각하며 세계 석학 18인이 예측한 미래사회에 대한 탁견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기원전 B.C와 기원후 A.D.를 이제는 코로나 이전 B.C.(Before Corona)와 코로나 이후 A.C(After Corona)로 써야 할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펜데믹 이후의 세계 A.C.10>에 참여한 석학들의 의견에도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B.C는 가고 A.C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A.C.1년으로 기록될 수 있는 현시점에서 10년 뒤의 세상을 예측해 보는 A.C.10은 그렇게 기획되었습니다.
JTBC 화제의 다큐멘터리 <A.C.10>. 프리젠터 조진웅이 소개하는 코로나19 이후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2030년 팬데믹이 다시 선언된다는 가상 시나리오로 긴장감을 높입니다. 18인의 석학을 비대면으로 인터뷰해야 했기에 다양한 특수기법과 가상 현실 기술을 사용해 스튜디오 촬영인데도 영화를 보는 듯 현실감 높은 시각적 영상미를 높인 방식이 인상 깊었습니다. 방송 시간상 편집된 부분이 많았다는데, 미처 방송되지 못한 것들까지 모두 이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석학들이 총출동되어 이것만으로도 기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자크 아탈리, 원톄쥔, 장하준, 슬라보예 지젝 등 글로벌 석학과 전문가 18인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A.C.10>은 코로나 쇼크 이후 인류가 당면할 3가지 미래과제를 정리합니다. 첫 번째로 백신이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되고 공급되는지 살펴보며, 백신과 바이오 패권전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두 번째로는 비대면 사회의 모습을 집중 조명하며 인간의 노동이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하는지 짚어줍니다. 마지막으로 팬데믹 상황에서의 국가의 통제와 감시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지요.
코로나19로 인해 선진국들의 허상이 드러났습니다. 특히 유럽처럼 선진국이라 불린 곳에서 오히려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9·11 테러로 3,000여 명 넘게 사망하자 전쟁이 났었는데, 코로나로 30만 명이 사망해도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이처럼 K방역처럼 방역에 모범적으로 대처한 나라도 있고, 방역에 실패한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는 메르스와 사스 때문에 위기의식이 있었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돈 걱정없이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방역은 권위주의적 정부에서 성공하는 게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은 시민들이 어떻게 자신과 타인을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규칙들을 잘 지켰을 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걸 짚어줍니다. 하지만 방역과 의료는 다르다는 부분도 중요합니다. 병상 부족 사태로 인한 공공의료 문제 및 비대면 의료 합법화 문제 등 이번 일로 의료체계 재정비의 과제를 받은 셈입니다.
역사상 유례없이 빨리 개발된 코로나 백신. 솔직히 백신 접종 완료하면 더 이상 코로나 걱정은 안 할 줄 알았는데, 몇 개월 후 백신 효력이 떨어진다니 말 그대로 위드 코로나의 현실화가 실감됩니다.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은 변종 바이러스가 방역 실패한 곳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세계가 긴밀하게 얽혀있다 보니 그렇게 또 전 세계에 퍼집니다. 국제적인 집단 면역은 세계 공동체의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문제는 바이러스 확산보다 백신을 최대한 빨리 전 세계로 공급하는 게 힘들다는 겁니다. 백신국수주의의 등장으로 나라 간 백신 공급 불균형이 발생했습니다. 코로나 백신 원천 기술을 가진 기업이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를 거부하는데, 이익 추구하는 기업이라며 이해할 게 아니라 이런 상황을 왜 비판해야 하는지 석학들이 조목조목 짚어줍니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의 발달과 AI 기술 발전은 노동의 형태를 바꾸게 됩니다. 불필요한 대면 만남을 줄였을 때 얻어지는 긍정적 효과를 실감하기도 합니다. 국가 차원의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코로나19가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도 줬습니다.
마주치지 않아도 마주치는 효과를 내는 메타버스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로봇의 수요는 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곳까지 침투할 거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주시해야 합니다.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일의 개념과 형태의 변화. 과연 인간의 노동은 어떻게 변할까요.
불안정하다는 뜻의 프레카리오와 노동자를 뜻하는 프롤레타리아를 합성한 프레카리아트라는 용어가 눈에 띕니다. 인간의 노동이 대부분 AI로 대체될 미래사회에서 임시 계약직이나 프리랜서 형태의 단순노동에 종사하며 저임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계층을 뜻합니다. 0.001%는 플랫폼 소유자, 0.002%는 플랫폼을 이용해서 거대한 비즈니스를 하는 슈퍼스타, 그리고 나머지 99.997%는 일반 대중 및 프레카리아트로 계층을 나눈 부분이 확 와닿더라고요.
코로나19를 겪으며 프레카리아트가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보면 소득 재분배 체계에 변화 요구의 목소리가 높아질 겁니다. 통제 불능의 불균형 속에서 이 상황을 위협으로 볼 것인지, 개혁의 기회로 볼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방역 관리를 위해 코로나 확진자에 대한 정보가 중요해지면서 확진자의 동선 정보와 관련해 초기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했었죠. 요즘은 QR코드를 꺼내 단말기에 대어 내가 이곳에 다녀갔다는 기록을 남겨야 합니다. 현재 확진자 한 명의 이동경로 파악하는 데 드는 시간은 단 10분이라고 합니다.
감염병 위기에 맞서 공동체의 건강과 안위를 보호하는 가치와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가치의 충돌. 우리는 불편을 감수하며 규칙을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어느 선까지 규제할 수 있을까요. 팬데믹 이전부터 이미 감시사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듯, 디지털 발자국은 강압적인 감시의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한번 시작된 것을 팬데믹 이후에 멈출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석학들이 제기합니다. 개인정보 보호와 국가 통제의 대립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투명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더불어 AI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그 어느 시대보다 미디어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우리를 현혹시킵니다. 팬데믹은 그저 보건의료 위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 경제적 파장이 큽니다. 코로나와 공생하는 빅 뉴노멀 시대는 전에 없던 문제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혐오, 백신 국가주의 등 우려되는 상황 속에서 코로나19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틈을 메울 방법과 디지털 사회에서 새로운 통제의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 책임감에 대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팬데믹 이후의 세계 A.C.10>. 글로벌 윤리의식이 살아 있는 사회를 위한 석학들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