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심리 현대지성 클래식 39
귀스타브 르 봉 지음, 강주헌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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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문명을 완전히 새롭게 뒤바꾸는 중대한 변화는 사상, 개념, 신념 안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은 눈에 보이지 않게 일어난 사상의 변화가 낳은 가시적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주역은 군중이었습니다.


세계의 모든 지배자와 종교 및 제국의 창시자, 신앙의 사도들, 저명한 정치인, 소규모 집단의 리더까지 지도자는 모두 군중의 심리를 본능적으로 확실히 하는 '무의식적 심리학자'들이었다고 합니다. 군중심리를 정확히 알았던 까닭에 그들은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인간 집단의 심리와 행동, 그들을 이끄는 리더십 원리에 대한 최고의 분석서 <군중심리 Psychologie des foules>. 1895년에 출간된 이 책은 그전까지 군중에 대해 갖고 있던 상식적인 생각들을 부수는 결과를 내놓습니다. 군중은 엘리트 집단일지라도 예외없이 정신적으로 무척 열등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역사적 사건의 주역은 군중이라면서 열등하다니, 이 무슨 이상한 말일까요.


의학 박사 출신인 귀스타브 르 봉 (1841-1931)은 1870년 보불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해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행동에 대한 성찰을 글로 남기고, 이후 사회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며 <군중심리>를 출간했습니다.


귀스타브 르 봉의 일생을 보니 지적 호기심 수준이 넘사벽입니다. 자신의 관심사를 적극적으로 깊이 탐구하는 태도를 가진 인물이었어요. 낙마 사고를 당하자 말에서 떨어진 이유를 납득할 수 없어 자신의 승마 기술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역시 책으로 나왔고, 기병대의 교본으로 쓰였을 정도입니다.


심리학의 거장 프로이트, 정치인 루스벨트, 전설적 투자자 코스톨라니 등 수많은 석학과 리더들이 <군중심리>를 자신의 분야에 적용해 성과를 거두었고, 오늘날 메타버스 시대에 필요한 심리적 군중의 영향력을 이해하는 데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재조명 받고 있습니다. 19세기 인물이 쓴 책인데도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읽는 데 고전이라는 시대적 차이가 주는 이질감이 전혀 없습니다.


인간의 행동 동기를 추적한 저자는 군중심리를 알기 전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여러 역사적, 경제적 현상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군중심리>에서는 군중의 정신 구조, 군중의 의견과 신념의 형성 과정, 다양한 부류의 군중 특성을 짚어가며 집단정신의 힘을 이야기합니다.


개인이 모인다고 군중이 되는 건 아닙니다. 조직된 군중이 되려면 어떤 자극의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저자는 심리적 군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단지 같은 장소에 모인 무리가 아니라 특정 감정이나 신념에 따라 결합된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군중으로 뭉치면 의식을 가진 개성은 사라지고 감정과 생각이 집단화되어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하게 됩니다. 탁월한 사람이더라도 군중 속에선 모두가 지닌 평범성을 공유하게 됩니다. 군중이 모두 도덕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 아닙니다. 군중으로 뭉치자 잔혹한 주장에 서슴없이 동조하며 모고한 사람을 단두대에 세운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국민공회처럼 개인이 군중의 일원으로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이성적 추론을 하지 않는 군중의 고유한 심리적 특성상 지성과 이성에 호소해서는 풀리지 않습니다.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에게 분노하도록 군중을 선동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브루투스에게 동조하던 군중의 마음을 돌린 건, 유창한 연설 때문이 아니라 카이사르의 유언장을 낭독하고 그의 시신을 보여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군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을 줄 안다면 군중을 지배하는 법을 터득한 것과 다름없다고 결론내립니다.


"군중이 대체로 무의식의 지배를 받고 스스로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고 아쉬워할 것도 없다. 군중이 가끔이라도 이성적으로 사고해서 눈앞의 이익을 따졌다면 이 땅에서 어떤 문명도 꽃피우지 못했을 것이며 인류도 역사다운 역사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 군중심리 


군중의 정신에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는 동기를 이해해야 합니다. <군중심리>에서는 군중의 의견과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확립되는지 간접 요인과 직접 요인으로 구분해 소개합니다. 보불전쟁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른 후에야 독일 군대에 대한 현실적인 위협과 상비군의 필요성을 깨달은 프랑스, 유독 그림자가 엄청 짙게 남은 나폴레옹의 위신, 찬양받던 영웅에서 하루아침에 역적이 된 로베스피에르 사례 등 심리적 군중의 변화를 탐색하며 다양한 동기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더불어 배심원단, 유권자 등 다양한 부류의 군중을 개별적으로 살펴보며 군중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조목조목 짚어봅니다.


과거의 달리 군중의 의견이 변화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19세기에도 저자는 변화를 감지했는데 오늘날은 소셜미디어로 인해 더 빨라졌습니다. 현대인들은 날이 갈수록 무관심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날카로운 분석은 이 시대의 이야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프랑스어 원전을 완역하고 강주헌 역자의 해제를 더한 현대지성 클래식 <군중심리>. 역사적 사건, 문학, 연극, 연설 등의 풍부한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군중은 공간적 결합체 뿐만 아니라 심리적 결합체라는 쪽이 더 익숙할 겁니다. 그렇기에 심리적 군중을 이해하고 마음을 얻는 원리를 분석한 <군중심리>는 기업의 CSR과 관련한 소비자 행동, 특정 이슈에 대한 쏠림 현상 등이 일상화된 오늘날,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책입니다. 집단의 힘을 얻어야 하는 모든 이들의 필독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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