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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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친구와의 여행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삶의 의미와 죽음에 관한 사색 <어떻게 지내요>. 내밀한 감정을 건드리며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 들게 하는 누네즈 특유의 문체가 오랜 여운을 안겨줍니다. 이웃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어떻게 지내요?" 하고 물을 수 있다는 뜻이라는 시몬 베유 글귀로 시작하는 소설. "어떻게 지내요"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를 묻는 것과 같은 것임을 암에 걸린 친구, 이웃 할머니, 심지어 고양이와 지구를 통해 보여줍니다.


암에 걸린 친구를 만나러 온 날, 근처에서 열린 강연을 들으러 간 '나'.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인류문명에 대한 비관적 내용을 토로하는 강연자는 바로 전 애인입니다. 예술과 문화 강연을 하던 사람은 과거지사일 뿐이고, 이제 그는 희망이 없음을, 구원의 힘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고통이 우리 앞에 높여 있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그것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해 봐야 아무 소용 없다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습니다.


암에 걸린 친구는 딸이 "정서적으로 표류난민이다."라는 시를 썼을 정도로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서로 없다고 치는 게 더 쉬운 모녀 관계. 암에 걸린 엄마의 치료에 대해서도 "엄마가 결정한 일이죠."라는 말뿐입니다.


치료를 받으며 달걀처럼 새하얗고 젓가락처럼 빼빼 말라버린 친구는 잘 죽는다는 건 뭘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고통 없이, 침착하게 약간의 품위를 지키며 가는 것이겠지만, 현실은 죽어가는 일이나 죽음에 대한 건 읽고 싶지도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그런 친구를 바라보며 '나'는 무슨 말로 위로를 할 때마다 혹시라도 '얼마 살지도 못하는데'로 이해할까 봐 신경 쓰입니다.


친구와는 이십 대 초반 문학 잡지사에 일하면서 만난 사이로 첫 번째 절친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암에 걸린 친구를 위해 딸 대신 곁을 지켜줄 수는 있는, 토할 것 같으면 머리카락을 잡아주는 친구 사이입니다. 그런데 친구가 뜻밖의 도움을 청합니다. 아름다우면서도 한적한 곳에서 마지막 길을 지켜봐달라고 말이죠. 안락사 약을 구한 겁니다.


누구는 암을 선물이자 정신적 성숙의 기회로 생각하라는 말을 하는 등 살아버티는 한 가능성은 있다 같은 생존자만 영웅이 되는 말 따위는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친구. 죽어가는 사람에게 위로랍시고 하는 말이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 엿볼 수 있는 친구의 고백이 이어집니다. 도대체 왜 암이 한 사람의 패기를 판단하는 시험이 되어야 하는지, 치욕스럽게 고통에 시달리다 가지는 않을 거라고 합니다. 지금 친구에게 필요한 건 이 모두를 이해하고 자기 편이 되겠다고 약속해 줄 사람입니다.


그렇게 일주일 후 둘은 떠납니다. 친구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여행이라니. 새로운 장소에 도착 후 짐을 풀며 미묘한 감정이 뒤섞인 분위기가 이어집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을 위해 식품은 얼마나 사야 할지 장을 볼 때마다 어색합니다.


몸이 건강하면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할까 봐 두려운 친구의 속내를 통해 죽음을 앞둔 자가 할법한 내밀한 감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묘사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작가를 보면서 죽음과 애도에 관한 작가의 경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희망은 없고, 죽음은 임박하고, 정신은 오로지 풀려나길 바라는데, 제 나름의 생각으로 살겠다고 필사적으로 분투하는 몸과 약해져가면서도 매 박동과 함께 안 돼, 안 돼, 안 돼라고 헐떡이는 심장을 생각하는 친구의 모습은 죽음에 대한 생각의 최전선에 놓인 자가 아니라면 쉽게 나오지 않을 것 같거든요.


친구에게 책을 읽어주는 나날을 통해 친구에게 위안을 주려는만큼이나 친구가 내게 위안이 된다는 걸 느끼며, 어쩌면 죽음 역시 하나의 역할극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나'. 나는 무사히 친구가 바란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요.


종말에 직면한 문명에서 도덕적이며 의미 있는 방책은 지구에게 지금까지 저질러온 파괴적인 해악에 대해 어떻게 용서를 구하고 아주 작은 차원에서나마 그 보상을 할지 배우는 것이라고 하는 전 애인. 그는 최선을 다해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할지 배워야 한다고 강연해왔지만, 친구와의 마지막을 함께 보내는 '나'를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어떻게 지내요>에서는 암에 걸린 친구 외에도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부인의 불치병을 알게 된 남편이 알게 모르게 기대감과 안도감이 만연한 표정으로 생활하기 시작하더라며 담담해하던 여자의 에피소드, 암에 걸린 언니가 살이 빠졌을 때 나도 암에 걸렸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다며 몸에 대한 공포와 고통을 고백한 피트니스클럽의 여자, 혼자 살고 있는 나이 많은 이웃 할머니가 대화를 원할 거라 믿으며 가끔씩 찾아가 살펴보던 '나'의 경험 등 "여성들의 이야기는 흔히 슬픈 이야기다."로 결론짓게 만드는 이야기들입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관통하면서도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는 적절한 감정 안배가 돋보이는 소설 <어떻게 지내요>. 지구 재난이라는 거시적 죽음과 지극히 개인적인 한 사람의 죽음을 오가며 죽음에 대한 사색을 우리 곁에 가까이 끌어온 구성이 매력적입니다. 언제쯤... 이제 곧... 이제는 언제라도. 친구와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독자에게도 예행연습시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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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우리나라 제주 여행지도 - 지도의 형태로 한눈에 볼 수 있게 담은 제주여행 가이드 지도, 2021-2022 개정판 에이든 가이드북 & 여행지도
타블라라사 편집부.이정기 지음 / 타블라라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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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찾기 정도는 지도앱이 훨씬 간편하지만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낯선 곳의 위치와 거리를 가늠하며 일정 조율하려면 지도만 한 게 없죠. 무엇보다 지도를 펼치기만 해도 그 장소의 핵심을 담은 소개글이 있다면 정보 찾고 위치 찾는 별도의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걸 가능하게한 게 바로 에이든 지도입니다. 1500여 곳의 여행지에 핵심 소개를 곁들여 지도 한 장만으로 당장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제주의 핫이슈 여행지, 인스타여행지, 카페, 맛집 등을 최신 정보로 업데이트한 에이든 우리나라 제주 여행지도 2021-2022 개정판. 여행 지도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타블라라사의 노하우가 집약되었습니다. 타블라라사는 2020년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관광벤처기업으로 선정된 곳입니다.


여행지도는 여행지와 먹을거리, 즐길거리, 계절적 요인을 위치와 함께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많은 여행지와 음식, 계절적 요인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라니. 그동안 여행 계획 세울 때 알게 모르게 일일이 검토해봤던 바로 그 행위들을 지도 한 장에 압축한 셈입니다. 간단하게 루틴을 만들어준 에이든 지도를 만나고서야 얼마나 편리한지 깨닫게 되었어요.


50페이지 정도 되는 제주지도 맵북과 A1 사이즈의 제주지도, 물방울 스티커, 브로셔와 엽서가 담긴 크라프트지 케이스로 구성된 에이든 제주여행지도입니다. 다녀온 곳을 표시하는 물방울 스티커는 반투명이어서 지도에 붙이는데 불편함이 없습니다.


맵북은 제주 지도를 분할해 수록해둔 얇은 책자 형태입니다. 자세히 해당 구역을 보고 싶을 때 맵북이 편리합니다. 대형 지도를 접어서 가져갈지, 맵북을 가져갈지는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될 것 같아요. 여행 계획 세울 때 효율적인 동선이 뭐니 뭐니 해도 최고죠. 인터넷에서 명소 정보, 맛집 정보 등을 개별적으로 찾아 나서기 번거로웠는데 에이든 지도만으로 시간을 완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이 지도를 보니 제주 여행 갈 때 맵북의 페이지 한 장을 집중 공략해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더라고요. 한 달 살기 제주를 하든, 주말에 카페투어를 하러 가든 지도만 갖고 가면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 걱정 없이 보낼 수 있겠어요.


펼치면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841mm * 594mm) A1 지도는 촉감이 독특하더라고요. 보들보들하면서도 짱짱한 재질이어서 손에 쥐었을 때 느낌이 정말 좋아요. 돌가루로 만들어진 친환경 종이라는데 물에 젖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자주 접었다 펼쳤다 하면 접힌 부분이 해져서 찢어지게 되는데 에이든 지도는 그렇지 않다고 하니, 마음 놓고 들여다볼 수 있겠어요.


1500개 여행지가 한 장에 담겨 있습니다. 놀랍지 않나요. 우도와 마라도는 별도로 더 쉽게 볼 수 있게 확대 표기되어 있어요. 꽃 여행지, 카페, 인스타 성지, 올레길, 오름 등 요즘 핫한 여행지도 표기해뒀습니다. 광고 없는 생생한 정보를 위해 에이든 지도팀과 컨텐츠팀이 직접 뛰어다닌 최신 정보를 수록했다니 마음 놓고 달려갈 수 있습니다.


에이든 방수 지도는 양면입니다. 한 쪽엔 제주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다른 면에는 해변 중심으로 더 세부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애월 카페거리, 주요 해수욕장 주변, 중문관광단지, 성산일출봉 주변, 제주 오름지도 등이 인쇄되어 있어요.


에이든 우리나라 제주 여행지도 외에 해당 장소 사진이 들어간 핵심 정보, 숙소 등 더 다양한 정보를 원할 땐 가이드북 형태로 별도로 출간된 에이든 제주여행 가이드북과 함께하면 금상첨화입니다. 국내여행지 제주의 가치가 한층 더 높아지는 요즘, 제주 여행의 필수템으로 갖춰야 할 에이든 우리나라 제주 여행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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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5 : 최초·최고 편 가리지날 시리즈 5
조홍석 지음 / 트로이목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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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지날이란 오리지날이 아님에도 오랫동안 널리 알려져 이제는 오리지날보다 더 유명해진 것을 의미하는 조홍석 저자의 용어인데요. 익히 알고 있던 상식이 가리지날이라는 것을 짚어주는 이런 사람이 내 주변에 있었다면 인기만점이었을 것 같아요.


역시나. 가리지날을 혼자만 알기는 아까웠던지 지인들에게 폭로(?)하기 시작합니다. 10년간 지인들에게 보낸 메일과 칼럼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2018년부터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으로 시리즈를 출간하게 됩니다. 일상생활, 과학 경제, 언어 예술, 한국사 분야에서 대다수가 모르는 놀라운 사실을 밝힌 그의 다섯 번째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최초, 최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상의 근원 우주 탄생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100년 전만 해도 우주는 한결같이 안정된 상태 그대로라는 '정상우주론'이 대세였습니다. 이후 우주가 한 점에서 대폭발해 탄생했다는 빅뱅 이론이 등장했는데요. 아인슈타인조차도 처음엔 이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상수를 넣은 사건은 유명하죠.


빅뱅 이론은 우주에 대한 이해가 진화론적인 우주론으로 바뀌는 패러다임 대전환을 이룬 사건입니다. 그럼, 여기서 가리지날이 등장할 차례입니다. 미국인들이 최초라며 우주의 기원을 밝힐 우주망원경을 '허블 망원경'이라 이름 짓고 지구 위 600여 km 궤도에 올릴 정도로 자부심을 가진 빅뱅 이론의 증거가 된 스토리에서 진짜 이야기를 알려줍니다.


천문학자 허블이 알아낸 은하계 후퇴 현상만 알고 있었겠지만, 그보다 2년 앞서 벨기에 천문학자이자 가톨릭 신부인 조르주 르메트르가 팽창 우주론을 처음 제안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2018년 국제천문연맹 투표를 통해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바꿔 부르도록 권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빅뱅 원조를 두고 국가 간 자존심 경쟁은 우주 탄생 이야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는데요. 사실 빅뱅 이론 창시자는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라고 할 수도 있다는데?! 1848년 그의 수필집에 실린 글에는 어마무시하게 시대를 앞선 빅뱅이론이 버젓이 실려있었다고 하네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공룡 세계 한 번쯤 거치지요. 우리 아이는 화석 수집으로까지 취미 확장이 된 바람에 아주 죽을 맛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강력한 티라노사우루스에 매혹될 법한데요. 트리케라톱스 화석과 함께 그 뿔에 박혀 죽은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이 발견되면서 초식 공룡 트리케라톱스의 인지도가 급상승했다고 합니다.


공룡의 진화 과정을 식물 진화와 함께 설명하며 공룡의 역사를 짚어보기도 하고, 최애 영화 쥬라기공원의 벨로키랍토르는 오히려 데이노니쿠스 이미지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기똥찬 궁금증을 풀어주기도 합니다. 공룡 고기의 맛은 어떨지 상상해보셨을까요. 비둘기 고기나 닭고기 맛과 비슷할 거라는데 왜 그런지도 합리적으로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를 거치고 나면, 본격 인간 세상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의식주와 관련한 최초, 최고 이야기에서는 우리 역사상 최고의 산업 스파이 문익점의 목화씨 밀수 성공 스토리가 가리지날임을 밝힙니다.


진실을 알려면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하는데요, 공민왕 시절 혼란스러운 정치 국면을 이해하면 당시 말단 관리였던 문익점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해되더라고요. 어쨌든 진실은 사절단으로 갔을 때 개량형 목화 종자를 가지고 들어올 수 있었는데, 사실 아무 제재 없이 그냥 가져온 게 진실이라는 겁니다. 목화에서 실 뽑는 기술도 원나라에 살던 고려인이 많아 잘 알려진 상황이었고요. 결과적으로는 의복 혁신을 이룬 공이 컸기에 후대의 칭송이 이어지며 살이 붙은 이야기라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밀수로 추앙받은 사례들을 더 소개하는데 이런 번외 이야기도 참 재미있습니다.


인상, 홍삼의 최고로 우리는 고려인삼을 당연시 여기고 있는데, 해외에서는 미국 인삼을 최고로 친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정말 우리 고려인삼의 질이 떨어지는 건지 저자는 역사를 통해 팩트체크해봅니다. 결과적으로는 경제적 가치로 연계하지 못한 우리 인삼의 슬픈 이야기라는 게 팩트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대규모 감염병에 대한 역사적 교훈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스페인 독감 이름 자체가 가리지날이라는 것, 대규모 감염병의 유행이 정치, 경제면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촘촘히 짚어줍니다. 40일간의 격리 제도를 처음 시행했던 베네치아 이야기는 섬뜩해지더라고요. 이방인 거주 제한 시행령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터키인들을 건물에 감금했고, 이는 암암리에 유대인 거주 제한하던 일을 공식화하는 계기가 됩니다. 감염병의 격리 제도가 게토 탄생으로 이어진 겁니다. 활발한 경제 활동하던 유대인이 사라지니 스페인 경제는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과학소설의 기원을 다룰 때 언급되는 1886년 프랑스 작가 오귀스트 빌리에 드 릴라당이 쓴 소설 <미래의 이브>. 최초로 안드로이드라 부른 인조인간이 등장하는 소설입니다. 로봇이란 용어는 이후 1920년 체코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등장합니다. 로봇 탄생의 배경이 된 체코의 문화적, 산업적 특징을 알면 독특한 골렘 신화의 확장이 로봇으로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식 기록과 관련한 필기구의 역사, 한글 타자기의 탄생, 한글 점자 훈맹정음의 탄생 이야기를 비롯해 시네마 천국을 이야기하며 시칠리아 역사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여정이 이어집니다. 일본어로 된 시력검표를 한글로 처음 바꾸고, 최초로 하드렌즈 시술을 도입하며 국산화 과정에 참여한 공병우 박사. 안과의사로서 엄청난 업적을 남긴 그는 한글 기계화에도 앞장선 선각자입니다. 공병우 타자기는 획기적 기술이 들어가 엄청난 빠르기를 자랑해 6.25 전쟁 이후 공식 문서는 모두 3벌식 타자인 공병우 타자기를 이용했을 정도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손목 통증 증후군을 겪으며 쓰는 컴퓨터 키보드의 2벌식 자판식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음악계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 이야기에서 가리지날은 무엇일까요. 영화 시네마 천국의 메인 음악 '러브 테마'는 모리꼬네의 최대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실은 둘째 아들 안드레아 모리꼬네가 만들고(데뷔 음악이었다고) 엔니오 모리꼬네는 편곡을 한 작품입니다.


항일 투쟁 최초의 영웅 안중근 의사와 관련해서는 청소년 시절부터 20대, 30대의 안중근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방정환 선생님과 어린이날 이야기, 해방 후 우리 민족의 농업기술 혁명을 이끈 우장춘 박사 등 우리 근현대사에서 최초와 최고를 찾아봅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유명한 말씀은 안중근 의사께서 하신 말이 아니다?! 물론 그 구절을 붓글씨로 써서 남기긴 했지만, 옛 명언 문구 중 하나라고 합니다. 조선 후기 사대부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던 격언이었다고 합니다.


교과서나 교양서를 읽으며 알게 되었던 지식이 가리지날이라는 걸 알게 되기도 하면서 배신감도 진하게 들었습니다. 몇 년 전에 과학자가 쓴 책에서 읽은 이야기조차 결국 허구로 판명되었다는 정보를 이 책으로 알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효용성에 주목하게 됩니다.


많은 자료 사진과 핵심이 잘 드러난 일러스트를 이용해 시각적 효과가 탁월한데다가 군데군데 귀여운 아이콘을 넣어 가독성을 높인 편집이 돋보인 책입니다. '걸어 다니는 네이버', '유발 하라리 동생, 무발 하라리'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유쾌한 지식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조홍석 저자가 풀어주는 천문학, 역사와 과학, 예술 등의 분야에서 최초이자 최고의 이야기를 만나는 시간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가끔 옆길로 새기도 하지만 그 옆길조차 너무나도 흥미진진한 지식들이어서 비범한 상식으로 재탄생하는 가리지날 시리즈의 매력이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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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와이프
JP 덜레이니 지음, 강경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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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스릴러 <더 걸 비포>로 전 세계 41개 이상 나라에 번역 출간된 베스트셀러 작가 JP 덜레이니의 2019년 소설 <퍼펙트 와이프>. 영상화된다는 소식에 원작소설 마니아로서 꼭 읽어보고 싶었던 소설입니다. 달콤한 초콜릿의 맛 뒤에 남는 씁쓸한 맛이 꽤 진하게 남는 소설이랄까요. 무서운 공포 요소는 없는데도 오싹한 스릴감을 안겨주는 결말이 인상 깊습니다.


꿈을 꾸는 여자를 묘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인도 여행 중 청혼 받은 순간입니다. 가슴 벅찬 감정은 꿈에서 깨자마자 들이닥친 극심한 통증으로 정신이 혼미합니다.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는 건가 싶었는데 남편 팀이 눈물을 글썽이며 이상한 말을 합니다.


"당신이 꾼 건 꿈이 아니야. 업로드였어." 여자의 정체는 애비 컬런의 코봇. 5년 전 사별한 아내 애비의 기억을 업로드한 인공지능 로봇인 겁니다. 코봇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뒤 상실의 고통을 덜어주고, 위로와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는 동반자 로봇을 말합니다. 코봇은 공감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소셜미디어 기록과 문자를 비롯한 자료를 통합해 그 사람의 특성과 개성을 반영한 신경파일이 창조된 코봇.


코봇 애비는 충격에 휩싸입니다. 남편 팀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면서 악몽에 갇힌 충격입니다. 모든 걸 기억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처리 용량 부족으로 업로드할 때 선택적으로 취합한 일부 자료만 업로드하기 때문입니다. 빈틈은 딥 머신러닝으로 메워집니다.


애비에 대한 팀의 절절한 사랑의 결과물인 코봇.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팀은 마이크와 함께 스콧 로보틱스 창업자입니다. 실리콘밸리의 누구누구를 떠올리게 하는 성격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대단한 카리스마 소유자로 선지자, 신동으로 불리는 팀이 애비를 만나 결혼에 이르러 아이 대니를 낳아 키우는 과정까지의 시간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줍니다. 회사에서는 거침없이 채찍질을 가하던 성격의 팀이 예술가 애비를 만나 애비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면서 푹 빠져드는 과정이 흥미진진합니다.


팀과 애비 사이에는 대니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후발성 자폐를 앓게 되면서 특수학교에 다니고, 입주 돌보미가 아이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코봇 애비는 대니를 보자마자 강렬한 모성애를 느낍니다. JP 덜레이니 작가 본인도 자폐증을 가진 아들의 부모이기에 그 경험이 고스란히 잘 담겼습니다.


스스로는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플라스틱 덩어리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대니를 생각하면서 이 가족의 품에 스며드는 코봇 애비. 애비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검색해 보려 했지만 애비와 관련한 정보는 차단되는 상황에 오히려 불안함이 밀려듭니다. 애비의 물건에서 겉면을 가짜 책으로 씌워 감춘 아이패드도 발견합니다.


의식을 지닌 AI를 만들 만큼 애비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한 채 과거에 매달려온 팀. 디지털 흔적으로부터 구성된 기억만 업로드되었지만, 팀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던 비밀은 없었을까요. 그 와중에 친구라는 발신자로 수상한 문자가 도착합니다. 스냅챗처럼 읽으면 잠시 뒤 저절로 사라져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팀과 애비는 평범하고 건강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던 걸까요. 게다가 애비는 사망 판정이 아닌 여전히 실종 상태라고 합니다. 애비가 사라진 시점에는 이미 관계가 깨지기 시작했던 걸까요. 애비가 사고를 당한 건지 아니면 스스로 떠났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대니를 두고 혼자 떠났을 거라 생각되진 않지만,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 정신이 무너졌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온갖 의심이 들지만 그럼에도 팀의 사랑을 믿는 코봇 애비 앞에 또 다른 현실이 닥칩니다. 아이패드에 담긴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고, 팀의 치명적인 악습관을 발견하게 됩니다. '피그말리온은 이 여자들의 행동을 보고 자연이 여성에 불어 넣은 많은 결함에 혐오를 느꼈고 잠자리를 함께할 아내 없이 오랫동안 독신으로 지냈다.'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등장하는 유명한 피그말리온 이야기로 팀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조각상을 사랑한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창조물과 사랑에 빠집니다. 머릿속의 이상을 조각상만 실현할 수 있었으니까요. 완벽한 결혼, 완벽한 자녀, 완벽한 아내라는 환상을 갈라테이아 증후군으로 설명합니다.


<퍼펙트 와이프>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독자도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면서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팀의 맨스플레인이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이 감정이 꽤 찝찝하게 남더라고요. 코봇이 어쩌면 진짜 애비보다 팀의 환상에 잘 들어맞는 짝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애비의 생각, 의식, 감정을 갖고 있는 코봇은 애비일까요, 아닐까요. 공감, 연민, 도덕을 기준으로 인간성을 판단한다면 자폐아 대니는 인간이 아닌걸까요.


숭배하는 성녀 이미지로서의 아내와 그렇지 않은 여성을 대하는 방식, 성차별과 여성 혐오가 점철된 직장의 현실 등 감성 지능을 가진 로봇이라는 SF적 요소를 통해 가족 심리 스릴러를 끌어가는 방식이 놀랍습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은 짜릿할 정도의 오싹함에 몸서리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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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이나경 옮김, 코리 브렛슈나이더 해설 / 블랙피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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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전 미국 연방 대법원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타계 1주년입니다. Notorious (악명 높은) RBG라는 별명으로 유명할 만큼 미국 진보 여성의 상징으로 떠오르며 헌법 자유 수호에 앞장선 법조인입니다.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는 판결문, 의견서 등의 기록에서 그가 꿈꾼 희망과 의지를 건져올립니다. 재판에서 이기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감명 깊은 소수 의견을 내며 왜 잘못되었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미국 전체에 여성 법학과 교수가 20명도 안 되던 당시, 긴즈버그 역시 남성 교수보다 낮은 연봉을 받으며 부당한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헌법 내 성차별이 흔했던 시절을 관통한 긴즈버그. 전면에 나서는 운동가는 아니었지만, 법조인으로서 공헌합니다. 성평등에 대한 견해를 헌법 해석과 판결에 반영합니다. 헌법 해석시 어떻게 노력했는지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긴즈버그는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꾸준히 의견을 개진하며 법적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회적, 문화적, 법적 성차별이 만연한 시대에 성차별도 인종차별처럼 임의의 불평등한 처우임을 증명합니다.


ACLU(미국시민자유연맹) 변호사들과 함께 여성 인권 사업을 추진하며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항소인 의견서에 긴즈버그의 목소리가 담긴 1971년 리드 대 리드 사건은 그 시대의 차별을 어떻게 정의하고, 평등을 위해 어떻게 목소리를 높였는지 볼 수 있습니다.


그 사건은 남성이 여성보다 유산 집행인으로 더 적합하다는 사법적 판단에 대한 항소 재판이었습니다. 아들과 함께 살던 엄마가 아들이 사망하자 자신이 재산 집행인이 되지 못하고, 전 남편이 아들의 재산 집행인이 된 사건입니다. 뿌리 깊은 남성 선호 체제를 보여주는 사례지요. 미국은 주 법이 저마다 있는데 젠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법이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긴즈버그는 '어떤 주 정부도 관할구역 내 사람에게 동등한 법의 보호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수정 헌법 14조 평등 보호 조항을 이용합니다. '남자'가 아닌 '사람'이라는 표현에 주목해 인종차별에 적용되었던 것을 확대한 겁니다.


1996년 미국 대 버지니아주 재판도 긴즈버그가 세운 큰 공적 중 하나입니다. 여성에게도 사관학교의 문을 열어야 한다는 내용의 소송이었습니다. 성별에 근거해 권리나 기회를 박탈하는 공적 행위를 비판하며 "남녀 간의 본질적 차이는 존중받을 요소지 어느 쪽이든 폄하당하거나 기회를 제한받을 요소가 아니다."라고 판결문에 명시합니다.


1972년 스트럭 대 국방부의 재판은 임신 중지권 재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공군 직업군인인 대위의 임신이 즉각적인 제대 명령으로 이어진 겁니다. 커리어를 이어가려면 여성은 아이를 갖지 말아야 하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임신 중지 사안을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변호한 긴즈버그의 주장은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겠지만, 당시엔 큰 주목을 끈 사건이 됩니다.


"여성의 위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새장일 때가 많다. 우리는 성별 분류가 의심스러운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이후 1973년 로 대 웨이드 재판은 프라이버시 권리에 근거해 임신 3개월 이내에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확립하게 했습니다. 이 재판과 관련해서는 다큐멘터리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2007년 곤잘러스 대 카하트 재판이 부분 출산 임신 중지 금지법을 지지하며 긴즈버그는 이전 판례를 무시하는 이 결과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본인은 대법원 입장에 반대한다."며 소수의견을 내놓은 겁니다. 임신 중지 권리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글로 남은 긴즈버그의 소수의견으로 유명합니다.


젠더 평등에 집중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종식시키는 데만 집중한 건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관한 재판에서는 국가가 장애인을 과도하게 시설 격리하는 차별을 지적하기도 했고, 백인보다 월등히 적은 숫자로 소방관에 채용되는 소수 인종의 현실을 짚어주기도 합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대법원장과 8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긴즈버그는 여성으로서는 샌드라 데이 오코너 이후 두 번째로 임명된 대법관이었습니다. 모든 판결이 긴즈버그의 희망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 다수 의견에 반대 의견을 제기하는 소수 의견을 내놓은 긴즈버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세요. 긴즈버그의 신념과 원칙은 언제나 인간의 보편적 평등에 기반합니다. 소수 의견을 내놓으며 패배한 와중에도 세상을 바꾼 사례가 많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뒤집고 긴즈버그의 견해를 받아들여 국회에서 공정 임금법이 통과한 사건처럼 말이지요.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 임신 출산의 자유, 선거권과 시민권에 대한 자유와 평등과 관련한 13개 사건의 기록을 담은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40년의 세월이 담겼습니다. 젠더에 근거한 차별이 위헌임을 법정과 사회에 알리고 설득하며 호소한 긴즈버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아이러니에 서글픈 마음을 비추기도 하면서 권리란 무엇인지, 온전한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삶에 대한 긴즈버그의 고민이 담겼습니다.


일반인이 판결문을 접하면 딱딱한 느낌은 들 테지만 브라운대학교 교수 코리 브렛슈나이더의 해설이 관련 사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 됩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 긴즈버그가 차곡차곡 쌓아온 판례들은 지금의 사회 문제를 다루는 데에도 큰 울림을 줍니다. 영화, 다큐멘터리로도 그의 삶을 만날 수 있을 만큼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친 긴즈버그. 지배적 견해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발휘해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시대를 앞서간 차별 정의의 여정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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