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신화력 -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신화 수업
유선경 지음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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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4세기 수메르 길가메시, 기원전 20세기 인도의 우파니샤드, 2천 년 전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북유럽 신화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의 여정 속에 담긴 지혜와 키워드.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신화에서 발견합니다.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인생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그곳에 있습니다. <어른의 어휘력>, <문득, 묻다> 등을 쓴 유선경 저자가 탐색한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에서 만나는 모험 <나를 위한 신화력>. 신화가 보여주는 삶의 지혜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동양신화에 등장하는 전통적인 낙원 도원. 서왕모의 반도원을 가리킵니다. 복숭아를 대접하는 잔치가 열리는 이곳은 곤륜산에서도 '요지'라는 곳입니다. 이 서쪽에는 혼돈의 신이 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 책 <산해경>에는 제강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혼돈이라는 이름답지 않게 날개도 달려있고 노래와 춤을 잘하는 신입니다. 동양신화와 관련해서는 만화로 보는 정재서 교수의 동양신화 책을 접한 바 있어 서양신화에 비해 낯선 동양신화 이야기가 등장해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태초의 카오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함께 저절로 있었고, 북유럽신화에도 긴눙가가프가 있습니다. 원래 모든 민족에게는 원시성이 강한 천지창조 신화가 있었지만, 세월을 거치며 신화적 요소보다 스토리텔링적 요소가 강해졌다고 합니다. <나를 위한 신화력>에서는 그 원형까지도 파헤치고 있습니다. 현실에 없는 낙원을 찾아 헤매고, 내 안의 카오스를 마주하듯 신화에서도 발견되는 의문들을 짚어가며 그 시대에도 꿈꿨던 희망을 건져올립니다.


과거에 '해서' 혹은 '하지 않아서'하는 후회를 하는 우리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신화와 전설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단어를 보면 결정된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는 존재를 악마라고 여겼습니다. 인간은 21세기에 카오스라는 복잡계에 살면서 라플라스의 다이몬이 되려 하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로렌츠의 나비효과처럼 초기 조건의 민감성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듯 인생을 살면서 생길 수 있는 변수는 어마어마한데도 말입니다. 결국 답은 예측 불가능하다입니다.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 원인을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입니다. 잘 된다 해도 온전히 당신 덕이 아니고, 잘못된다 해도 오로지 당신 탓이 아닌 겁니다. 이런 미래를 두고 통제, 지배하려는 의지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거라는 걸 짚어줍니다. 결국 우리는 불확실성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신화 속에서 깨달아갑니다.


전 세계 신화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용에 담긴 의미를 짚어보는 시간도 흥미진진합니다. 악으로 간주해 결전을 치르는 소재로 흔한 서양 신화와 달리 동양의 용은 수호, 제왕의 역할을 합니다. 인도 신화에서는 뱀 아난타를 숭배하기도 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출몰하는 용의 진실을 통해 <나를 위한 신화력>은 인간의 본질을 탐색합니다.


특히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모든 밑바닥에는 굶주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화. 굶주림만 한 형벌은 없습니다. 호메로스 <오디세이아>에는 탄탈로스가 굶주립니다. 물을 마시려 하면 물이 말라버리고, 과일을 따려고 하면 나뭇가지가 멀리 달아나 영원한 굶주림에 시달립니다. 굶주림은 곧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 괴로움입니다. 동양에는 비슷한 의미로 '아귀'가 있습니다. 먹을 것을 두고 죽도록 싸웁니다. 현대인에게는 이 굶주림이 욕망보다 박탈감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씁쓸한 현실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랜 서사시의 주인공이자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난 길가메시는 죽음 너머의 세계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그 스스로는 결국 주어진 수명만큼만 살다 죽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왔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젊음과 장수를 집착하는 현대인은 노화와 죽음의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진정한 불로장생의 의미를 길가메시 이야기와 연결해 들려줍니다.


신화를 탐색하다 보면 냉소, 절망, 불안, 의문의 상당 부분이 해소된다는 저자는 <나를 위한 신화력>을 통해 동서양 신화 속 지혜와 통찰을 65점의 동서양 명화와 함께 보여줍니다. 신화 자체의 스토리텔링을 단순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인간 본질의 궁금증을 담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세계 곳곳의 신화들이 어떤 답을 내놓고 있는지 쏙쏙 뽑아내고 있습니다. 수많은 신화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저자의 해박한 신화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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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나라
이쓰키 유 지음, 김해용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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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요코미조 세이지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데뷔작 <무지개를 기다리는 그녀>로 인상 깊은 여운을 남긴 이쓰키 유 작가의 신간 <은빛 나라>. 전작에서는 자의든 타의든 배제된 인물들이 등장하는 자살 문제를 인공지능과 연결해 펼쳐 보였다면 이번에는 VR (가상현실) 게임과 연결해 오싹한 스릴감이 더 생생하게 전달되는 듯한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습니다.


아르바이트, 공부, 동아리 활동, 인간관계... 조금이라도 싫증이 나면 지속하지 못하고 도망친 시오리. 요령껏 적응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모른 채 도망치기의 달인이 된 시오리는 어느 날 벤처회사 사무직 면접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지만, 그 결과는 납치 감금을 당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시오리를 납치한 인물은 삶에 지친 사람들을 VR 게임 '은빛 나라'에 모여들게 한 다음 자살하도록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졌습니다. 은빛 나라의 가이드 역할로 시오리를 점찍고 그녀를 반 년 이상 감금하며 가이드 안나로 키워냅니다.


한국 자살 사망률은 2020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만 3799명으로 하루에 37.8명꼴입니다. 변변한 도움을 받지 못하고 혼자 고뇌하면서 세상이 외면한 이들입니다. 이쓰키 유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전 자살 방지 대책 현장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고 합니다.


소설 <은빛 나라>에서는 자살을 막기 위해 상담 활동을 하는 단체 '레테'를 운영하는 주인공 고스케를 포함해 상담자들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고스케,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미유키 등이 등장합니다.


상담자가 목숨을 끊게 될 경우 상담원들은 무력감에 빠져듭니다. 자신의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걸까 심란해집니다. 오래전부터 알던 히로유키의 자살로 죄책감에 고통받는 고스케는 히로유키의 죽음이 일반적인 자살 동기와 맞지 않음을 의심하던 차에 그의 누나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자살 충동을 느끼는 영상이 존재할까"라며 히로유키가 죽기 전 사용한 VR용 고글을 보여줍니다. VR 영상이 히로유키의 죽음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걸까요.


평소 자해 습관이 있는 재수생 구루미 사례는 남들이 보면 별것 아닌 고민 같아 보이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피폐하게 만들고 삶의 행복을 현실 세계에서 전혀 찾지 못한 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 인물의 전형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SNS에서 누군가로부터 권유받은 '은빛 나라'. 그곳은 지친 사람들이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안전지대라고 합니다. 아직 실험 단계의 게임이기에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 속에서 구루미는 은빛 나라에 빠져듭니다.


은빛 나라에서는 현실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신세계를 맛볼 수 있습니다. 구루미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이들이 그곳에는 있습니다. 우울감, 고립감으로 점철된 현실 세상을 벗어나 은빛 나라에서는 즐거움과 만족, 행복을 만끽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은빛 나라에서 필요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미션도 있습니다. 사진을 찍어 올리는 단순한 미션으로 시작하다가 점점 미션의 방향이 괴이해지지만, 은빛 나라의 달콤한 행복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미션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은빛 나라의 진짜 목적은 자살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개발자는 고통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면 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죽음의 공포가 두려워 차마 죽지 못하는 이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쉽게 극복할 수 있게 접근한 것이 바로 은빛 나라입니다. 절망에 빠진 채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모인 은빛 나라. VR에서는 누구도 두려움 없이 죽을 수 있기에 반복적으로 연습 시키는 셈입니다.


은빛 나라는 자살 유도 게임인 '푸른고래' 사건을 모티브로 합니다. 러시아에서 시작된 온라인 자살 게임인 푸른고래는 누군가 SNS를 통해 지시를 내리고 참가자는 그 지시를 이행한 뒤 인증해야 합니다. 50일 동안 매일 다른 지시를 이행하는데 처음엔 음악 듣기처럼 단순한 미션이지만 차곡차곡 정신적 대미지를 입히는 미션들입니다. 최종 단계 미션은 바로 건물에서 뛰어내릴 것이었습니다. 2016년 필립 부디컨이 발명한 이 미션 수행 게임은 세계적으로 유사 사건이 발생하며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자살 게임이 모방 자살, 집단 자살 같은 사회적 대참사로 이어지게 된 사례입니다.


자신의 고통은 시시한 문제라고 스스로 자책한 구루미처럼 고통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현실을 버텨낼 무언가를 도무지 찾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가 가슴 아픕니다.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을 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처럼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이 오히려 너무나도 살고 싶어서, 현실을 살아내고 싶기에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은빛 나라'일 겁니다.


게임의 실체를 밝히려는 고스케를 중심으로 게임에 관여된 인물들의 다양한 심리를 보여준 <은빛 나라>. 자살이 그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님을, 차라리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또 다른 표현임을 드러내는 의미 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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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 - 생각보다 인간적인 학명의 세계
스티븐 허드 지음, 에밀리 댐스트라 그림, 조은영 옮김 / 김영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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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의 따개비, 데이비드 보위의 거미, 스펀지밥의 곰팡이, 히틀러의 딱정벌레... 바로 학명입니다. 실제 인물이나 캐릭터 이름을 딴 생물의 공식 이름인 겁니다. 생물에 관심 있거나 각종 곤충, 파충류 등의 반려동물을 키우거나 표본 수집을 하는 이들이라면 평소 읽기 힘든 라틴어로 된 학명을 접하는 일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린네 이전에는 이름이 종의 형태를 설명해야 했기에 엄청나게 긴 학명이 생기기도 했지만, 린네의 이명법 이후 학명 짓기가 편리해졌습니다. 사람 이름을 딴 학명도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존경을 표하는 인물, 애정을 담은 가족, 팬심으로서, 정의나 인권을 피력하면서 그들의 이름을 가져옵니다. 그러다 보니 학명은 과학자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창이 됩니다.


캐나다 뉴브런즈윅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스티븐 허드는 <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에서 학명 속에 숨겨진 비하인드스토리를 소개합니다. 생물들이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살펴보다 보면 과학의 역사, 인물의 배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다 자란 성체도 식빵 한 조각 정도의 무게인 살아 있는 영장류 중 가장 몸집이 작은 베르트부인쥐여우원숭이. 2001년에 정식 기재되어 존재를 인정받은 원숭이입니다. 이 학명에는 베르트 라코토사미마나나 여성의 이름이 사용되었습니다. 마다가스카르 연구, 교육에 큰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신종을 발견한 사람에게 명명의 권리가 주어지는 학명. 동물 / 야생식물, 조류, 군류 / 재배식물 / 세균 / 바이러스에 적용하는 명명규약이 있는데 이 중 타인의 이름으로 지어진 것만도 수십 만개는 될 거라고 합니다. 세계의 모든 학명을 실은 단일 데이터베이스가 현재까지 없다고 하는군요.


생물에 이름을 붙이고 체계적인 목록을 작성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기원전 612년 바빌로니아 점토판에는 약용식물 약 200종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합니다. 신종이 추가되면서 이름이 복잡해지자 린네는 이름의 기능을 분리해 종의 이름을 오로지 식별을 위한 라벨로만 기능하게 정리합니다. 이게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는 학명입니다.


과학 문화와 과학자들의 개성을 보여주는 학명은 현재 공식 기재, 명명된 종 수가 150만에 이른다고 합니다. 미생물은 1조쯤 될 거라는 연구 결과도 있으니 아직 이름이 없는 종도 무척 많습니다. 각기 고유한 형태, 습성, 선호서식처, 필요, 생태적 특성을 가져야 종으로 분류됩니다.


대체로 두 단어로 된 이명식 학명이 대부분인데 한 종안에서 지리적 차이로 변이가 나타난 아종은 삼명식 학명으로 조금 더 길어집니다. 재밌는 건 아종이라는 개념 자체가 다윈 이후 과학자들의 사고방식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린네 시대엔 모든 종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고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면, 다윈 이후 생물 간 지리적 변이를 인정한 겁니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선배 과학자들의 이름을 딴 학명이 많습니다. 스펄링기아 엑셀렌스 달팽이는 2,600종에게 명명한 패류학자 아이어데일이 지었는데, 이 학명 덕분에 잊힐 뻔한 표본 수집가 윌리엄 스펄링을 기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학계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다윈의 이름은 2011년 데이터베이스에서 이미 363종, 26속에서 발견했을 정도이니 역시 다윈입니다.


유명 음악가, 배우 등 대중문화 인사들의 이름도 있습니다. 2008년 말레이시아에서 발견된 헤테로포다 데이비드보위는 가수 데이비드 보위의 이름을, 2011년 추가된 신종 말파리 중 하나인 스캅티아 비욘세아이는 비욘세의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 외 야구선수, 소설가, 영화배우 등 수많은 유명인들의 이름이 학명에 사용되었습니다.


만화가 게리 라슨의 이름은 남방흰얼굴올빼미 깃털에만 기생하는 2밀리미터의 작은 이에게 주었습니다. 학명이 스트리기필루스 게리라스니입니다. 자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향상시키는데 일조한 게리 라슨의 <더 파 사이드>를 재미있게 본 과학자였나 봅니다. 그런데 보잘것없는 생물에게 자신의 이름이 쓰인다면 당사자는 좋아할까요. 다행히 게리 라슨은 흔쾌히 허락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잘못된 명명의 사례도 부지기수라는 겁니다. 아놉탈무스 히틀러라는 학명을 가진 딱정벌레처럼요. 히틀러를 숭배하며 이름을 바친 오스트리아 아마추어 곤충학자 샤이벨이 명명한 학명입니다. 이처럼 폭군, 독재자의 이름이 종종 있다고 합니다. 학명을 통해 불멸의 영광을 누리게 된 셈입니다.


학명은 수정이나 취소가 불가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게 됩니다. 의도적인 모욕을 주려고 경쟁자의 이름을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린네가 여기서 또 등장합니다. 자신의 앙숙에게 매력 없는 잡초에 이름을 넣어 모욕했고 이후 평생 원수로 지냈다고 합니다. 


가상의 인물을 학명으로 삼기도 합니다. 루시우스 말포이라 불리는 말벌의 이름은 해리포터의 등장인물 이름이고, 스퐁기포르마 스퀘어팬치이는 짐작하듯 스펀지밥에서 가져왔습니다.


어쨌든 사람 이름을 빌려 학명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매력적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학명을 짓는다면 영광이겠지요? 그런데 자신의 이름을 딴 학명은 고상하지 못한 행동으로 취급받기에 정말 극소수라고 합니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넣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시 린네가 또 등장합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넣은 학명을 만듭니다. 허영심 강하고 겸손함이 없었던 그의 평판을 거스르지 않는군요.


명명권 경매에 관한 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신종 발견에 쓰이는 연구비 지원을 받지 못하니 명명권을 팔아 연구비를 구하는 지경이 된 상황이 된 겁니다. 씁쓸한 현실입니다.


<생물의 이름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누군가의 이름을 따서 학명을 지을 수 있게 된 이후 그 생물에게 왜 그 이름이 사용되었는지 들려줍니다. 명명자와 그 이름이 기념하는 사람, 그 이름을 가진 생물 간의 연관성이 얽히고설킨 매혹적인 비하인드스토리입니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추잡한 의도가 담긴 학명의 세계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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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편집 - 결국 생각의 차이가 인생의 차이를 만든다
안도 아키코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출판미디어그룹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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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생각을 편집한다는 매력적인 제목에 끌려 읽은 책입니다. 영상 편집처럼 기능의 이미지를 넘어선 편집. 온갖 형태의 정보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우리가 잡다한 정보를 일상으로 받아들여 쉴 새 없이 편집하는 행위를 편집공학이라고 합니다. 엄청난 속도와 양의 정보가 쏟아지는 현실에서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의식하든 안 하든 매 순간 편집이라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일본 최고 지성집단 편집공학 연구소에서 개발한 편집공학의 10가지 사고법을 담은 책 <생각의 편집>. 편집의 구조를 하나하나 밝히면서 사람과 사회의 힘으로 응용해 나가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낯선 용어가 많아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직접 실천해 볼 수 있는 워크시트도 수록되어 있어 이론과 실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구성의 책입니다.


언어학습에서 한 문장이 아닌 최소한 필요한 단어를 묶음으로 기억하는 청킹. 의미의 덩어리화는 평소 전화번호를 3~4개로 끊어 기억하듯 자연스럽게 사용해오던 것입니다. 청킹을 자유자재로 분절하는 것이 바로 편집력이 발동되는 첫걸음이라고 합니다. 이미 세상은 여러 장르로 나뉘어 있지만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새롭게 묶으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긴다는 걸 이야기하는 겁니다.


편집의 기본은 정보가 다면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조합을 통해 얼마든지 새로운 관점으로 탄생되는 겁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 위한 발상을 이끌어 내는 생각법인 셈이지요. 나라마다 개그 코드가 다르듯 스키마, 프레임이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인식의 틀인 프레임을 넘나들면서 사고해야 흔히 말하는 상상력, 창의성이 발현됩니다.


<생각의 편집>에서는 고정관념 탈피를 위한 다양한 스킬을 소개하는데, 특히 비슷한 것을 추론하는 아날로지의 힘에 주목합니다. 이것은 ~같은 것이야 하는 것들이 바로 아날로지입니다. 개인의 경험과 기억의 데이터베이스를 조합해야 움직입니다.


조금만 관점을 벗어나면 지금 보이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관계 발견의 원동력이 되는 아날로지는 누구에게나 잠재된 능력이라고 합니다. 결단력 있는 가설로 비약하는 어브덕션, 환경이 부여하고 제공하는 의미나 가치를 유연하게 다시 파악하는 어포던스까지 고루 갖추면 우리의 편집력이 탁월해집니다. 편집공학에서는 아날로지, 어브덕션, 어포던스를 3A라고 부르며 어떤 사실을 바탕으로 다른 일을 짐작하는 3A의 힘을 강조합니다.


편집공학에서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부분도 인상 깊었는데요. 창의성 없이 판에 박힌 생각인 스테레오 타입, 일반적 개념에 의해 나타나는 프로토 타입에서 벗어나 장벽 뒤에 숨은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 아키 타입의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카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스테레오 타입은 스타벅스 같은 것이라고 대답하고, 프로토 타입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조금 멋진 가게로 대답하지만 아키 타입은 휴식을 취하는 곳 혹은 사무 공간, 독서실 등의 다채로운 답변이 튀어납니다. 생각해 보니 이 아키 타입과 같은 생각은 아이들이 무척 잘 하지 않던가요. 기막히면서도 기발한 말을 내뱉는 아이들의 사고방식을 어느 순간 잃어버린 채 살아온 어른의 사고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인간의 편집력에 크게 관여되어 있는 다양한 기법을 소개하는 <생각의 편집>. 이 모든 것은 단단히 고정화된 프레임으로부터 밖으로 나가는 기술들입니다. 친숙한 것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편집력을 발휘하도록 재능을 열어주는 편집사고의 10가지 방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정보와 정보 사이에서 관계성을 발견하고 다양한 편집 기법을 직접 실천해 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세계관을 유연하게 다시 파악하는 접근법이니 만큼 친숙한 사고로부터 벗어나는 건 아무래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고착된 사고방식을 건드리는 만큼 이 책의 이야기가 꽤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고 낯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워크시트 활동을 몇 차례 이어가다 보면 일상 속에서 폭넓게 활용해 볼 수 있는 사고법이라는 걸 곧 깨닫게 됩니다. 수많은 생각 중 내 삶을 지탱할 진짜 생각을 찾아내도록 생각의 넓이와 깊이를 확장시키는 인문교양 도서 <생각의 편집>. 편집공학 세계관을 기반으로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편집의 모험을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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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쑥쑥 종이 오리기
일본 보그사 지음, 정숙경 옮김 / 생각의집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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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성장 시기에 종이가 보이는 족족 가위질하는 시기 한 번쯤 있죠. 종이접기 폭풍 심취 시기도 겪고 말이죠. 색종이 묶음이 떨어질 날 없도록 갖춰뒀던 시절이 이제는 추억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종이 오리기 책 <창의력 쑥쑥 종이 오리기>로 추억 소환해 봅니다.


접고 오리고 펼치면 완성되는 종이 오리기. 간단한 도형부터 심혈을 기울여 오려냈던 눈송이까지. 가끔은 아이 맘대로 필 가는 대로 오려보고 펼쳤을 때 탄생하는 기이한 문양에 환호하기도 했던 그 시절! 당시 종이 오리기 도안을 접했더라면 더 다채로운 놀이 활동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싶을 정도로 <창의력 쑥쑥 종이 오리기>에 소개된 도안의 종류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다양하네요.

아이들의 소근육 발달에 가위질이 큰 도움 되는 건 부모라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안전가위로 오려낼 수 있는 크기의 쉬운 도안부터 시작해 보세요. 종이 오리기를 할 때 포인트를 사진으로 잘 보여주고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2면 접기만 했던 저는 10면 접기도 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주름 접기를 하면 연결된 모양으로 조르륵 완성되어 독특한 재미가 있습니다. 6면 접기로 완성한 둥글게 둥글게 손을 서로 맞잡은 판다 작품은 귀염 그 자체더라고요.

책에 소개된 도안이 작다 싶으면 확대 복사를 하거나 도안을 참고해 자유롭게 직접 그려도 좋습니다. 저는 트레이싱지가 있어 거기에 그려봤어요. 색종이에만 한정하지 말고 버리는 종이백, 한지, 무늬 종이, 달력 등 자유롭게 이것저것 접하는 게 더 재미있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계절의 자연과 곤충 종이 오리기는 언제나 인기만점이죠. 오려낸 완성품은 도화지에 붙여 재미있는 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습니다. 카드나 엽서 장식용으로도 좋습니다. 

<창의력 쑥쑥 종이 오리기>에는 이런 무늬도 종이 오리기로 가능하구나 싶은 도안이 가득했어요. 도안 안쪽에 도려내야 하는 부분은 조금 난이도가 올라가지만 연령대에 맞게 도려내는 대신 그림을 그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십이간지, 별자리처럼 만들어 놓으면 근사해지는 도안은 정말 탐나더라고요. 아이를 위한 종이 오리기 책이었는데 엄마가 더 신납니다. 특히 인테리어 모빌로 활용되는 장면은 놀라웠어요. 그저 단면 종이로만 생각했다가 같은 도안의 종이 오리기를 4장 같이 붙여서 입체적으로 표현한 노하우는 기대 이상입니다. 레이스 도안을 겹쳐서 만든 로즈 윈도 스타일의 모빌도 근사합니다. 

도안 289개가 수록되어 있는 <창의력 쑥쑥 종이 오리기>. 우리 아이들과 조금 특별한 종이 오리기에 도전해 보세요. 스스로 무늬를 만들어내는 폭풍 가위질을 선보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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