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 의심을 생산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철학적 대화 실험
리 매킨타이어 지음, 노윤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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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마자 빵 터졌습니다. 우리 아들이요. 음모론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는데 자기도 꼭 읽어야겠다고 합니다. 이해 불가능한 사고방식으로 꼬투리를 잡으며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집단을 봐온 터라 저도 이 책에서 얻고 싶은 목표가 있었고요. 결론은 제목처럼 이뤄질 수 있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다는 거였습니다.​​ 


과학철학자 리 매킨타이어는 <과학적 태도: 과학 부정론과 사기와 유사 과학으로부터 과학을 수호하기>라는 책도 쓴, 과학 부정론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증거보다 감정, 이념을 앞세워 행동하는 과학 부정론자들과 이번에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눕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는 웃지 못할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


1950년대 대형 담배 회사들이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사실을 성공적인 여론몰이로 무력화하면서부터 시작된 과학 부정 현상. 다른 과학 부정론자들마저 불편하게 만든다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부터 진화론, 백신, 기후변화, GMO 문제 등 수많은 이슈에 과학 부정론자들이 생겨납니다. 문제는 이들이 워낙 강경해서, 혹은 단순히 무지해서 과학 부정론자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며 과학계나 주류에서 외면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잘못된 정보가 방치되면 오류가 가속화되면서 이를 바로잡지 않는 것이 결국 가장 나쁜 선택이 된다는 거죠. 이 책은 잘못된 사실을 믿는 이들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한 책입니다. ​


재미있는 건 과학 부정론자들은 예외 없이 다섯 가지 일반 논증의 오류를 범한다고 합니다. 증거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에 집착하고, 논리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믿고 싶은 것과 일치하는 사실만을 선별하는 체리피킹을 하고, 가짜 전문가들에 의존하고, 과학에 대해 불가능한 기대치를 주문하고, 비논리적인 사고를 고수합니다. 누군가의 신념을 바꾼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리 매킨타이어는 다섯 가지 오류를 바탕으로 과학 부정론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보편 전략을 직접 실행해 봅니다. 평평한 지구 국제 학회에 참가하면서 말이죠. 


그곳에는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인종, 계층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확신에 찬 신념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합니다. 몇 명과 대화를 나눈 저자는 능력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그들이 과학적 사유에 전혀 근접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아무도 전향시키지 못하고 아내에게 줄 굿즈만 삽니다. ​​다행히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게 한 건 평평한 지구론을 설파하는 능력을 가진 인물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가 하려는 일이 바로 저자가 하려고 했던 일이니까요. 그는 조용히 들어주고, 존중을 보여주고, 대화에 호응하고, 신뢰를 쌓으며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작동하는 모습을 관찰하게 된 셈입니다. 




과학 부정론은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그들의 사회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작용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사람의 신념이 형성되는 방식을 알아야 했습니다. 단순히 정보만이 아니라 감정, 정체성, 가치 등이 결합되어 신념으로 굳어져 갑니다. 그렇기에 타인의 신념을 그의 의지에 반하는 방향으로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은 변화할 수 있는 기회도 분명 있습니다. 그 사람의 정체성에 도전하는 일이기에 무시하고 창피를 주고 적대시해봤자 얻는 것은 없습니다. 많은 연구 결과에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


오늘날 가장 크고 중요한 과학 부정론의 하나는 기후변화 부정론입니다. 이 역시 증거는 차고 찼으니 결국엔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자신들이 먹는 대부분의 음식이 유전적으로 변형된 식품이라는 걸 모른 채 GMO 반대자가 된 이들도 있습니다. 기후변화 이슈에는 확고한 과학적 주류이지만 GMO는 반대하는 과학자 친구와의 대화도 흥미진진합니다. 과학 부정론의 가장 최신 사례는 코로나19 팬데믹입니다. 백악관이 지휘하는 과학 부정론 캠페인이 어떻게 퍼져 나갔는지 실시간으로 우리는 봤습니다. 저자는 코로나19 부정론과의 싸움에서 유효했던 방법들을 하나씩 짚어보며 교훈을 건져올리기도 합니다. ​​


우리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불편해합니다. 이 책에서 등장한 과학 부정론자들을 보면 단순히 정보를 공유하는 건 효과가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모욕, 창피 주는 일도 무익합니다.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도록 신뢰감을 쌓아 공감과 존중의 자세를 가지고 대화에 나설 때 그들에게 의심의 기회를 만들어주어 다른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도록 할 수 있다는 걸 저자가 직접 실천한 사례로 보여줍니다. ​​


평평한 지구 국제 학회에 참석하고, 석탄 광부들과 식사를 하고, 물에 잠기고 있는 몰디브로 가서 현지인들을 만나고, GMO를 불신하는 친구들과 토론하는 등 오늘날 중요시되고 있는 이슈에 몸소 뛰어들어 그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나간 저자의 여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 책입니다. 과학 부정론자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결국 이 책은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기도 합니다. 온갖 미디어의 가짜 뉴스가 판치고 정치적 왜곡이 일어나는 불신의 문화 속에서 살아남는 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최악의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그저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며 외면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하등 도움 되지 않는 최악의 선택이라고 말이죠.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다면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짚어줍니다. 좌절도 하면서 지난한 여정이 되겠지만, 제목처럼 생산적인 대화를 끌어낼 기회를 맛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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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한정판 스페셜 에디션)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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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조리한 어른과 세상을 꼬집는 이야기로 어린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익살맞은 이야기꾼 로알드 달 작가, 짝꿍처럼 그의 이야기를 잘 표현하는 퀸틴 블레이크의 일러스트 조합이 빛나는 어린이 동화 <마틸다 (MATILDA)>. ​​로알드 달이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쓴 동화입니다. 출간 35주년 기념으로 만나는 새로운 표지와 사양의 특별판은 한정판으로만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


1988년에 출간된 이후 뮤지컬, 영화로 각색되어왔는데 12월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가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35주년 특별 한정판 <마틸다>는 양장본이라 책이 훨씬 더 예뻐졌어요. 독서광 마틸다를 잘 드러낸 표지 그림부터 사랑스럽습니다. 


그로테스크한 캐릭터와 말괄량이 삐삐보다 더 센 기발한 응징으로 어린이 독자들을 사로잡는 통쾌함을 맛볼 수 있는 로알드 달의 동화. 권위적이고 부당한 세계를 비판하면서도 반짝이는 위트와 따스함까지 놓치지 않는 매력이 근사합니다.


이 세상엔 두 종류의 부모가 있습니다. 아무리 말썽꾸러기여도 자기 아이는 출중하다고 믿는 주책바가지 부모, 그리고 자기 아이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부모 말입니다. 마틸다의 부모는 두 번째입니다. 정직하지 못하고 속임수를 쓰며 중고 자동차를 판매하는 아빠, 빙고게임에만 빠진 엄마. 웜우드씨 부부는 집에서는 바보상자 TV 앞에서만 머물며 TV 식사를 하는 아둔한 부모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틸다가 책을 읽고 있으면 쓸데없는 짓이라며 호통치고, 마틸다의 총명함과 재능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틸다는 영리하고 비범한 아이입니다. 네 살 때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유산>을 읽어내고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하며 책으로 세상을 여행하고,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키웁니다. 독서광 마틸다가 읽은 책 목록의 일부를 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일명 세계 명작 고전소설이라 불릴 만한 책들이 등장하지요. 로알드 달 작가는 책의 소중함과 독서의 장점을 마틸다를 통해 들려줍니다. 스마트폰에게 관심을 빼앗긴 채 독서를 하지 않는 요즘 시대에도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


언제나 자신을 무시하는 부모에게 마틸다는 나름대로 골탕을 먹이기도 합니다. 말하는 앵무새로 유령이 나타난 것처럼 소동을 벌였고, 자랑스러워하는 아빠의 머리카락을 표백시켜버리면서요. 다섯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마틸다. 아뿔싸, 학교에도 부모 못지않은 복병이 있었습니다. 트런치불 교장은 사나운 폭군과도 같습니다. 절대로 대들지 말 것, 절대로 말대답하지 말 것! 도대체 어떻게 교장이 되었는지 미스터리할 지경입니다. ​​


"난 작은 인간들이 싫어. 작은 인간들은 자고로 눈에 띄지 말아야 해. 머리핀이나 단추처럼 눈에 안 보이게 상자에 담아 버려야 해. 난 왜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어린것들이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단 말이지." - 책 속에서





하지만 결국 트런치불 교장의 비난과 분노를 한몸에 받는 마틸다. 그 순간 마틸다에게 기이한 능력이 생기는데...


<마틸다>를 읽는 어른이라면 교장의 모습이 불편하게 다가올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선생님으로부터의 폭력과 처벌이 일상화였던 시대가 그렇게 옛일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로알드 달 작가는 권위적이고 불합리한 폭력에 아이들이 대처할 수 있는 (미쳐 버리지 않을) 소소한 방법을 마틸다에게 안겨준 셈입니다. ​​


다행히 마틸다의 영민함을 알아주는 하니 선생님이 있습니다. 마틸다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그 역시 트라우마가 있지만 마틸다와 비밀을 나누며 서로를 돕습니다. 이중적이고 무책임하며 지독한 말을 내뱉는 부모, 교장과 달리 아이들을 사랑과 믿음으로 바라보는 어른도 등장시키니 묘한 안정감을 받게 됩니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도 마틸다의 성장에 한몫했지요.


영리한 마틸다가 바라본 부조리한 어른과 사회. 주눅 든 아이들을 대신해 통쾌하게 한 방 날리며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마틸다>입니다. 로알드 달은 사악한 어른들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악인이 되었다 식의 면죄부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권선징악적 교훈이 찰지게 마무리된 느낌입니다.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이면 읽을 수 있는 수준이고,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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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 따뜻한 위로의 말
손정필 지음 / 월넛그로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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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상담심리학 교수로 국내 최초 NLP 심리학을 바탕으로 강의와 코칭을 하는 손정필 교수의 따뜻한 위로의 말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건강한 동기부여와 변화를 이끄는 NLP 심리 상담 기법 중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전개를 실천적으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짧고 좋은 글귀를 읽으며 기적 같은 말 한마디 "괜찮아"의 위로를 받아보세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불안과 두려움. 문득 주저앉고 싶을 때, 슬픔이 차오를 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아가고 싶을 때, 내 안의 잠든 나를 깨우고 싶을 때, 희망의 출구를 만들고 싶을 때 "괜찮아"라는 말이 안겨주는 위로의 힘은 큽니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작은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마음의 위로, 평안, 용기, 치유의 메시지를 건져 올립니다. 인생의 길을 걷는데 꼭 필요한 말들입니다. 그림과 글을 활용한 드로잉명상으로 마음 챙김을 하는 손정필 교수의 따스한 그림도 만날 수 있는 힐링 에세이입니다. 


자동차 경주의 승패는 직선구간이 아니라 위험한 곡선구간이 좌우하듯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걸 일깨웁니다. 늘 맞이하는 평범한 일상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 성장의 기회가 생깁니다. 변화를 원하고, 새로운 도약을 하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지금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면 그것은 성공으로 향하는 인생의 곡선구간을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고 합니다. 나무도 성장 과정에서 상처의 흔적인 옹이가 생기는 것처럼 견딤의 시간이 성장이라는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걸 기억하자고 말이죠. 수많은 좌절과 시련이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그 견딤의 시간을 잘 살아낼 수 있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여줍니다. 




소중하고 귀중한 내 에너지를 부정적인 마음으로 낭비하는 대신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를 사랑하는 데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내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오늘 하루의 만족도가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감정을 잘 다루면 행동이 된다는 저자의 조언은 마음 챙김과도 연결됩니다. 억누르고 회피하기보다는 알아차리고 관심을 가지며 자기 성찰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위로는 더 이상 고개를 떨구면서 살아갈 필요 없이 희망을 향해 고개를 위로(look-up) 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도 위로를 통해서 고개를 위로(look-up) 보면서 살아갔으면 합니다." - 책 속에서


성인이 되어도 책임감을 지지 않는 사람을 심리학에서는 '미성숙'된 사람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자기 삶에 책임감을 가진 당당한 사람으로 서기 위해서는 인생을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원하는 목표와 꿈을 현실이 되게 하려면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보라고 조언합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애쓰다 지치고 힘들어하기 전에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인생의 숙제를 잘 해낼 수 있도록 응원하는 책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직면한 현실에 주저앉지 않도록 마음의 근력을 튼튼히 해주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 나가면서 지혜로운 하루하루를 쌓아올릴 수 있게 도와줍니다.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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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 - 진화인류학자, 사랑의 스펙트럼을 탐구하다
애나 마친 지음, 제효영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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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구, 사랑의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이뤄져왔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을 경험하는 개인으로서는 물음표일 때가 참 많습니다. 그만큼 사랑은 복잡합니다. 


인간을 관찰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별난 행동이나 해부학적으로 기이한 특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설명하는 인류학자 애나 마친(Anna Machin) 저자도 오랜 세월 사랑 스펙트럼을 탐구해왔습니다. <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 (원제 Why We Love)>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유전학, 약학, 신경과학 등 자연과학과 심리학, 철학, 사회인류학, 신학까지 과학적, 사회학적으로 설명한 것들을 모조리 살펴봅니다. 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와 방식, 사랑의 정의와 대상에 관해 다루는 이 책은 사랑의 어두운 이면까지도 파헤칩니다. 


사랑의 출발점은 생존을 위한 사랑에서 시작합니다. 다음 세대로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는가가 달려 있는 생존입니다. 그런데 태어나 수년 동안 돌봐주는 사람들이 필요한 인간의 아기. 사피엔스는 생존을 위한 협력이 필요해집니다. 사회성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로빈 던바 교수와 함께 인간관계에 대해 탐구해온 애나 마친 저자. 사랑 주제에 등장하는 협력과 관련해 로빈 던바가 제안한 사회적 네트워크의 유효한 범위인 150명을 일컫는 던바의 수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더불어 각종 신경화학물질에서 비롯되는 면역 기능 촉진 등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생물학적 뇌물로서의 사랑을 이야기하며 협력이 가능한 인간의 특징이 사랑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줍니다. 


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는 말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화학작용은 강력합니다. 연인과의 깊은 사랑에서만 나타나는 뇌 활성 패턴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가족, 친구, 자녀에게 느끼는 사랑 역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합니다. 역사가 깊은 모성애는 그 역사가 짧은 부성애보다 더 활발하다는 증거도 흥미롭습니다. 부모와 자녀 간에 익숙한 애착. 애착은 우리가 느끼는 가장 강력한 사랑의 바탕이 되는 깊고 강한 심리적 상태라고 합니다. 이 애착 개념은 연인, 친구 그리고 반려동물의 관계로까지 확장됩니다. 애착관계에서 가장 깊고 강한 사랑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생물학적, 심리학적, 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애착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과소평가되고 있는 친구들과의 사랑에 관해서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오늘날 연애나 결혼이 줄면서 친구 간에 느끼는 사랑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친구는 우리의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건강, 행복, 삶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다른 곳에서 채울 수 없는 깊은 친밀감과 편안함, 유머를 얻습니다. 


강력한 애정을 바탕으로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인간. 우리의 사랑이 놀라운 이유 중 하나는 종이 다른 존재도 포함된다는 데 있습니다. 반려동물과의 관계처럼 말이죠. 종을 넘어선 유대는 다른 형태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생리학적, 신경화학적 메커니즘에 의해 구축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개를 사랑하는 것처럼 개도 우리를 사랑하는지 개의 뇌를 스캔한 재미있는 연구도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신에 대한 사랑은 어떨까요. 대상이 누구이든, 무엇이든, 인생을 살면서 사랑을 통해 얻는 진정한 가치인 건강과 삶의 만족도는 비슷하다고 합니다. 신과의 관계도 다른 대인관계와 같은 쌍방향 관계로 생각하며, 사랑을 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 활성화되더라는 연구 결과를 보여줍니다. 준사회적 관계인 유명인과 팬과의 관계도 흥미롭습니다. 아이돌에게 홀딱 반하는 열성팬의 사랑 역시 애착관계의 특징이 그대로 반영된다고 합니다. 유명인사가 사망하게 되면 우울감, 상실감 등을 안게 됩니다. 





<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은 인간의 진화가 성공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도록 인체의 모든 메커니즘이 동원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개개인이 느끼는 감각과 경험에는 차이가 큰 사랑. 유전학적, 심리학적, 생물학적 특징과 문화, 인생 경험, 수수께끼 같은 X가 뒤섞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연애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고, 다자간 연애를 하는 사람도 있고, LGBTQ+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개념이 생긴 것 자체가 사랑은 사회가 정한 규칙에 묶여 있다는 걸 반증합니다. 


건강한 사랑은 놀라울 정도로 유익하지만, 모든 중독이 그렇듯 사랑에도 어두운 면이 있다는 걸 짚어주기도 합니다. 물리적, 심리적 중독성이 있습니다. 의존성이 착취, 강압, 학대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겁니다. 바로 통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평소에는 통제를 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대체로 건강과 행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인간의 사랑과 다른 동물이 경험하는 사랑의 차이점은 인간은 사랑을 조종과 통제에 활용할 수 있고 때때로 그 목적으로 이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질투는 번식을 위해 맺는 관계의 안정성이 위협을 받을 때 나타나도록 진화한 반응이라고 합니다. 관계를 유지하는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는 이 질투는 애착의 종류에 따라 강박적인 사고, 분노, 통제하려는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저자는 어둠의 3요소라고 부르는 마키아벨리즘, 사이코패스, 나르시시즘이라는 성격 특성을 통해 이로운 방식보다는 상대를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인간이 타인과 맺는 모든 친밀한 관계 가운데 가장 통제할 수 없는 관계가 사랑이다." - 책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존재와 사랑을 경험하는 인간. 위대하고 강렬한 경험으로서의 사랑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능력의 경이로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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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학 필독서 50 - 플라톤부터 마이클 샌델까지 2500년 철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2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이시은 옮김 / 센시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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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토대인 철학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친 철학 명저 50권을 담은 갓성비 책 <세계 철학 필독서 50>.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시사점을 안겨주는 고대 철학은 물론이고, 2020년 출간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까지 다루고 있어 현대 정치 사회 트렌드를 반영한 책입니다. 


주요 철학자와 핵심 사상을 정리해 바쁜 현대인에게 2500년 철학사를 한눈에 보기 쉽게 보여주는 철학 입문서로 활용하기 좋습니다. 이 책은 일상 속 철학 즉 심리학, 정치, 경제 등에 통용되는 개념 흐름을 익히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책입니다. ​​


그동안 철학은 너무나도 거창한 학문으로 여겨져 일상과 동떨어진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요, 연대별로 진행하는 철학사를 접한 일반인이라면 더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세계 철학 필독서 50>은 철학이 다른 모든 주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메타 학문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의 질을 올려주고 세상 속에서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주며, 우주 내에서 우리가 서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 철학에 초점 맞춥니다.


저자는 철학 자체가 개개인의 세계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합니다. 개인적 정신의 투영물인가 그럼에도 보편적 핵심에 도달하고 있느냐를 고민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개인적 삶의 원칙에 필요한 철학으로 접근합니다. 개개인의 철학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토대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


플라톤, 칸트, 헤겔, 비트겐슈타인 등 정통적으로 철학자라고 인식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새로운 미디어 기술 환경에서 태어난 사상가들까지 인물과 대표 저작을 소개하는 <세계 철학 필독서 50>. 완전한 삶을 원한다면 끊임없이 자신을 가다듬고 기술을 연마하며 행동과 미덕을 겸비해 도덕적인 길을 걸어야 한다고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오늘날로 따지면 자기계발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좋은 삶의 비결을 제시하는 고대, 중세 철학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분입니다. ​​





현대의 인물들로 올수록 심리학, 경제학, 사회 분야 등에서 대중적 인기를 잡은 현대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흥미진진했습니다. 소비 사회와 맞물려 시사점을 안기는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주류가 아닌 '타자'로서 여성뿐만 아니라 소수자 차별을 다룬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 등 세대별 지성계의 스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


철학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앙리 베르고송의 <창조적 진화>, 헤겔의 <정신현상학>,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파스칼의 <팡세>,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등 제목이 난해하거나 어려워 보인다는 선입견으로 결코 읽지 않았을 법한 책도 이번 기회에 그 가치를 알게 되니 이 또한 즐겁습니다. 어떤 새로운 시각을 안기는지,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화두의 의미를 짚어주는 <세계 철학 필독서 50>입니다. 


반면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끄는 책도 많았습니다. '톨스토이의 역사관에 대한 고찰'이란 부제가 붙은 이사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는 인간이 지식에 접근하는 방법을 톨스토이의 작품을 통해 기술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한국어판으로 겨우 96쪽에 불과한 짧은 책이지만 수많은 책에서 인용되고 있는 해리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 행동경제학의 통찰을 만나는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 노력하면 된다는 신화에 파문을 일으킨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자기 최적화에 대한 담론을 꺼낸 슬로터다이크의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등 오늘날 철학 명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현대 작품이 가득합니다. 과거에는 신학자, 성직자가 곧 철학자였던 시대가 있었던 만큼 오늘날에는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심리,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세상과 인간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각 시대마다 고유한 사고 편향이 있지만 그럼에도 세계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과 그들의 저작들을 만나는 시간이 주는 의미는 큽니다. ​​


함께 읽기 좋은 책을 소개하고 있어 주제별로 사고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자기계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철학서의 매력을 안겨주는 책 <세계 철학 필독서 50>. 철학은 생각하는 방법을 다룹니다.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생각해왔는지를 아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개념들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입니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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