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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한정판 스페셜 에디션)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22년 1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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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어른과 세상을 꼬집는 이야기로 어린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익살맞은 이야기꾼 로알드 달 작가, 짝꿍처럼 그의 이야기를 잘 표현하는 퀸틴 블레이크의 일러스트 조합이 빛나는 어린이 동화 <마틸다 (MATILDA)>. 로알드 달이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쓴 동화입니다. 출간 35주년 기념으로 만나는 새로운 표지와 사양의 특별판은 한정판으로만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1988년에 출간된 이후 뮤지컬, 영화로 각색되어왔는데 12월 넷플릭스 오리지널 무비 <로알드 달의 뮤지컬 마틸다>가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35주년 특별 한정판 <마틸다>는 양장본이라 책이 훨씬 더 예뻐졌어요. 독서광 마틸다를 잘 드러낸 표지 그림부터 사랑스럽습니다.
그로테스크한 캐릭터와 말괄량이 삐삐보다 더 센 기발한 응징으로 어린이 독자들을 사로잡는 통쾌함을 맛볼 수 있는 로알드 달의 동화. 권위적이고 부당한 세계를 비판하면서도 반짝이는 위트와 따스함까지 놓치지 않는 매력이 근사합니다.
이 세상엔 두 종류의 부모가 있습니다. 아무리 말썽꾸러기여도 자기 아이는 출중하다고 믿는 주책바가지 부모, 그리고 자기 아이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부모 말입니다. 마틸다의 부모는 두 번째입니다. 정직하지 못하고 속임수를 쓰며 중고 자동차를 판매하는 아빠, 빙고게임에만 빠진 엄마. 웜우드씨 부부는 집에서는 바보상자 TV 앞에서만 머물며 TV 식사를 하는 아둔한 부모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틸다가 책을 읽고 있으면 쓸데없는 짓이라며 호통치고, 마틸다의 총명함과 재능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틸다는 영리하고 비범한 아이입니다. 네 살 때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유산>을 읽어내고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하며 책으로 세상을 여행하고, 인생을 바라보는 눈을 키웁니다. 독서광 마틸다가 읽은 책 목록의 일부를 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일명 세계 명작 고전소설이라 불릴 만한 책들이 등장하지요. 로알드 달 작가는 책의 소중함과 독서의 장점을 마틸다를 통해 들려줍니다. 스마트폰에게 관심을 빼앗긴 채 독서를 하지 않는 요즘 시대에도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자신을 무시하는 부모에게 마틸다는 나름대로 골탕을 먹이기도 합니다. 말하는 앵무새로 유령이 나타난 것처럼 소동을 벌였고, 자랑스러워하는 아빠의 머리카락을 표백시켜버리면서요. 다섯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간 마틸다. 아뿔싸, 학교에도 부모 못지않은 복병이 있었습니다. 트런치불 교장은 사나운 폭군과도 같습니다. 절대로 대들지 말 것, 절대로 말대답하지 말 것! 도대체 어떻게 교장이 되었는지 미스터리할 지경입니다.
"난 작은 인간들이 싫어. 작은 인간들은 자고로 눈에 띄지 말아야 해. 머리핀이나 단추처럼 눈에 안 보이게 상자에 담아 버려야 해. 난 왜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어린것들이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단 말이지."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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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트런치불 교장의 비난과 분노를 한몸에 받는 마틸다. 그 순간 마틸다에게 기이한 능력이 생기는데...
<마틸다>를 읽는 어른이라면 교장의 모습이 불편하게 다가올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선생님으로부터의 폭력과 처벌이 일상화였던 시대가 그렇게 옛일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로알드 달 작가는 권위적이고 불합리한 폭력에 아이들이 대처할 수 있는 (미쳐 버리지 않을) 소소한 방법을 마틸다에게 안겨준 셈입니다.
다행히 마틸다의 영민함을 알아주는 하니 선생님이 있습니다. 마틸다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그 역시 트라우마가 있지만 마틸다와 비밀을 나누며 서로를 돕습니다. 이중적이고 무책임하며 지독한 말을 내뱉는 부모, 교장과 달리 아이들을 사랑과 믿음으로 바라보는 어른도 등장시키니 묘한 안정감을 받게 됩니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도 마틸다의 성장에 한몫했지요.
영리한 마틸다가 바라본 부조리한 어른과 사회. 주눅 든 아이들을 대신해 통쾌하게 한 방 날리며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마틸다>입니다. 로알드 달은 사악한 어른들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악인이 되었다 식의 면죄부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권선징악적 교훈이 찰지게 마무리된 느낌입니다.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이면 읽을 수 있는 수준이고,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기 좋은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