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 의심을 생산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철학적 대화 실험
리 매킨타이어 지음, 노윤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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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자마자 빵 터졌습니다. 우리 아들이요. 음모론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는데 자기도 꼭 읽어야겠다고 합니다. 이해 불가능한 사고방식으로 꼬투리를 잡으며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집단을 봐온 터라 저도 이 책에서 얻고 싶은 목표가 있었고요. 결론은 제목처럼 이뤄질 수 있다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다는 거였습니다.​​ 


과학철학자 리 매킨타이어는 <과학적 태도: 과학 부정론과 사기와 유사 과학으로부터 과학을 수호하기>라는 책도 쓴, 과학 부정론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증거보다 감정, 이념을 앞세워 행동하는 과학 부정론자들과 이번에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눕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는 웃지 못할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


1950년대 대형 담배 회사들이 흡연이 폐암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사실을 성공적인 여론몰이로 무력화하면서부터 시작된 과학 부정 현상. 다른 과학 부정론자들마저 불편하게 만든다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부터 진화론, 백신, 기후변화, GMO 문제 등 수많은 이슈에 과학 부정론자들이 생겨납니다. 문제는 이들이 워낙 강경해서, 혹은 단순히 무지해서 과학 부정론자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며 과학계나 주류에서 외면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잘못된 정보가 방치되면 오류가 가속화되면서 이를 바로잡지 않는 것이 결국 가장 나쁜 선택이 된다는 거죠. 이 책은 잘못된 사실을 믿는 이들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한 책입니다. ​


재미있는 건 과학 부정론자들은 예외 없이 다섯 가지 일반 논증의 오류를 범한다고 합니다. 증거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에 집착하고, 논리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믿고 싶은 것과 일치하는 사실만을 선별하는 체리피킹을 하고, 가짜 전문가들에 의존하고, 과학에 대해 불가능한 기대치를 주문하고, 비논리적인 사고를 고수합니다. 누군가의 신념을 바꾼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리 매킨타이어는 다섯 가지 오류를 바탕으로 과학 부정론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보편 전략을 직접 실행해 봅니다. 평평한 지구 국제 학회에 참가하면서 말이죠. 


그곳에는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인종, 계층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확신에 찬 신념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합니다. 몇 명과 대화를 나눈 저자는 능력의 한계를 절감합니다. 그들이 과학적 사유에 전혀 근접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아무도 전향시키지 못하고 아내에게 줄 굿즈만 삽니다. ​​다행히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게 한 건 평평한 지구론을 설파하는 능력을 가진 인물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가 하려는 일이 바로 저자가 하려고 했던 일이니까요. 그는 조용히 들어주고, 존중을 보여주고, 대화에 호응하고, 신뢰를 쌓으며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작동하는 모습을 관찰하게 된 셈입니다. 




과학 부정론은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그들의 사회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작용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사람의 신념이 형성되는 방식을 알아야 했습니다. 단순히 정보만이 아니라 감정, 정체성, 가치 등이 결합되어 신념으로 굳어져 갑니다. 그렇기에 타인의 신념을 그의 의지에 반하는 방향으로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은 변화할 수 있는 기회도 분명 있습니다. 그 사람의 정체성에 도전하는 일이기에 무시하고 창피를 주고 적대시해봤자 얻는 것은 없습니다. 많은 연구 결과에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


오늘날 가장 크고 중요한 과학 부정론의 하나는 기후변화 부정론입니다. 이 역시 증거는 차고 찼으니 결국엔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자신들이 먹는 대부분의 음식이 유전적으로 변형된 식품이라는 걸 모른 채 GMO 반대자가 된 이들도 있습니다. 기후변화 이슈에는 확고한 과학적 주류이지만 GMO는 반대하는 과학자 친구와의 대화도 흥미진진합니다. 과학 부정론의 가장 최신 사례는 코로나19 팬데믹입니다. 백악관이 지휘하는 과학 부정론 캠페인이 어떻게 퍼져 나갔는지 실시간으로 우리는 봤습니다. 저자는 코로나19 부정론과의 싸움에서 유효했던 방법들을 하나씩 짚어보며 교훈을 건져올리기도 합니다. ​​


우리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불편해합니다. 이 책에서 등장한 과학 부정론자들을 보면 단순히 정보를 공유하는 건 효과가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모욕, 창피 주는 일도 무익합니다.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도록 신뢰감을 쌓아 공감과 존중의 자세를 가지고 대화에 나설 때 그들에게 의심의 기회를 만들어주어 다른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도록 할 수 있다는 걸 저자가 직접 실천한 사례로 보여줍니다. ​​


평평한 지구 국제 학회에 참석하고, 석탄 광부들과 식사를 하고, 물에 잠기고 있는 몰디브로 가서 현지인들을 만나고, GMO를 불신하는 친구들과 토론하는 등 오늘날 중요시되고 있는 이슈에 몸소 뛰어들어 그들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나간 저자의 여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 책입니다. 과학 부정론자에 대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결국 이 책은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기도 합니다. 온갖 미디어의 가짜 뉴스가 판치고 정치적 왜곡이 일어나는 불신의 문화 속에서 살아남는 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최악의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그저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며 외면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하등 도움 되지 않는 최악의 선택이라고 말이죠.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다면 대화를 계속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짚어줍니다. 좌절도 하면서 지난한 여정이 되겠지만, 제목처럼 생산적인 대화를 끌어낼 기회를 맛보고 싶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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