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방인의 성 城 - Anachronistic Zone - 조선 최대의 스팀펑크
홍준영 지음 / 멘토프레스 / 2017년 11월
평점 :
아날로그 감성을 유지하며 앤티크 풍을 풀풀 풍기는 SF 소설 <이방인의 성>.
사이버틱한 소재의 SF 대신 산업혁명 시대 증기기관의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감성을 만날 수 있는 스팀펑크. 《셜록 홈즈》, 《젠틀맨 리그》, 《황금나침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붉은 돼지》 등에서 만날 수 있었던 스팀펑크를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대체역사소설로 만날 수 있어 신선도 면에선 100점 만점.
<이방인의 성>의 홍준영 작가는 고전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만 낸 게 아니라, 첨단 생명공학과 핵기술은 물론이고 인류 역사상 등장했던 온갖 음모론을 끌고 왔습니다. 불가해한 초능력과 좀비, 키메라 등 SF에 나올만한 소재는 대부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정체불명 성격이 된 것도 아니고 스팀펑크 기조는 유지하면서 이런 것들이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계는 저주받았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방인의 성>. 물리적인 명확한 법칙조차 부숴버리는 주술에 가까운 초월적인 과학이 등장했습니다. 매드 사이언스라 부릅니다. 인간의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기술의 발달만큼 사회상은 변화되지 못한 시대. 기형적인 발달과정에서 과학의 이름으로 테러를 일삼는 자들이 우후죽순 등장했고, 윤리가 없는 기술 발달이 가져온 결과들은 처참했습니다.
테러의 무기로 악용되기 일쑤였던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발명품들 때문에 그들은 세계에서 점차 추방되었지만 조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선기술의 정점인 장영실연구소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이 모인 곳입니다. 조선의 국익을 위한다는 신념 덕분에 조선은 스스로 나라를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을 위협하는 테러 행위를 가차 없이 밟으며 아시아의 맹주국이 된 조선. 6.25 전쟁은 조선이 국제사회 개입 전 스스로 진압해 민란으로 격하되었습니다. (오... 이건 정말 상상만으로도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조선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의 전설인 크룹 하드니스 박사의 [장난감]이 발견되며 묘한 긴장감을 부릅니다. 빅토리아 양식의 대저택이 태엽이 회전하는 체펠린에 달려 공중에 떠다니는 일명 태엽성의 주인 크룹 하드니스 교수. 전형적인 영국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가 만든 [장난감]들은 매드 사이언스계에서도 위험 취급을 받을 만큼 악용하면 지구를 멸망시킬 만큼의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들입니다.
교수의 [장난감]중 위험성 때문에 폐기처분 받은 무기 중 하나가 조선에서 발견되자 교수는 조선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합선대군이 주최한 연회 도중 테러리스트가 난입하면서 일은 더 꼬이기 시작합니다. 테러리스트들이 사용한 무기 역시 교수의 [장난감]입니다. 테러리스트들의 히든카드는 레일이 필요 없는 유령 특급 증기기관차였습니다. 지나가기만 해도 자기장 폭발을 일으켜 문명을 지워버리는 지구를 멸망시킬 수 있는 장치였습니다.
세계 평화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의 개입, 합선대군의 자존심 싸움, 교수의 신뢰 회복 등 각자의 속내는 다르지만 결과는 하나. 이 일의 배후를 파헤치는 것입니다.
인류는 과학에게 저주받았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의 의지를 벗어난 인류과학. 매드 사이언티스트처럼 인간을 넘어선 과격한 과학 발달이 가져올 수 있는 온갖 상상을 <이방인의 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와 가상의 정보를 교묘하게 섞어 활용한 각주도 매력적입니다. 자칫 진짜 정보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을 정도로 설명이 생생합니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유기체로 감염을 일으키는 음모론처럼 온갖 과학 가설이 현실로 등장한 <이방인의 성>.
하수도를 걸어가는 장면에선 조선의 하수시설 역사까지 출동하는 자세한 설명 방식은 자칫 지루할 틈이 생길 수 있다는 단점은 있지만 SF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분명 매력적인 소설일 겁니다. 성격이나 가치관이 정상적이지 않은 뒤틀린 인물들이 메인으로 등장하면서 올곧은 가치관의 부재는 오히려 통쾌한 맛을 줍니다.
전반적으로 오글거리는 문체라든지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듯한 단어가 반복하는 부분은 제가 평소 무척 거슬려 하는 문체라 그 부분만큼은 취향이 전혀 아니었어요. 두툼한 분량이러 더 걱정스러웠지만 초반 감정을 깡그리 없앨 만큼 스토리 라인이 대박 좋았습니다.
존재해서는 안 될 것들을 만들어낸 기계적 유토피아. 수많은 오류를 수정하며 발전하는 인류 문명 대신 인적 오류를 제거한 시스템화된 국가를 꿈꾼 그들의 정의관은 결국 인간을 인간답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것을 볼 수 있는 소설입니다. 독특한 SF 소설 찾으시는 분들께 <이방인의 성> 추천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