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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
김나랑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10월
평점 :
10년 넘게 잡지 기자 생활을 하다 30대 중반에 병가 겸 퇴사한 김나랑 저자. 당시엔 쉬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기에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로 결심한 곳이 바로 남미였습니다.
남미는 더운 나라인 줄 알고 성급히 떠났다가 얼어 죽을 뻔. 누구도 남미의 가을이 이렇게 춥다고 하지 않았다며 추워서 오들오들 떠는 장면이 꽤 자주 나와요. 남들은 라마 스웨터라도 샀는데 ㅎㅎ.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나를 불확실성의 세계로 밀어 넣고 싶었다. - 책 속에서
"이렇게 힘들다고 왜 아무도 말을 안 해줬지?"
예쁘고 멋지고 설렘 가득한 시작... 따윈 없습니다. 6개월 동안의 남미 여행 첫 코스부터 제대로 고생입니다. 페루 북쪽 고산지대 트래킹. 백두산이 2,750미터인데 69호수는 4,600미터. 무거운 배낭조차 적응되지 않은 초짜의 발악은 과연 남미 여행이 아무 탈 없이 진행될까 싶을 정도입니다.
볼리비아 명소 우유니 소금사막은 기사 속 사진 같은 분위기 대신 수증기 낀 욕실 거울처럼 뿌옇기만 하더라며 실망하다가, 다음 날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의 모습을 잠깐 목격할 수 있었다 합니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날씨 영향을 많이 받으니 한 번 가보는 것으로 끝내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줍니다.
여행 중 어려움이 닥칠 땐 긍정의 기운들로 극복하고 싶은, 어쩌면 멋지고 강인한 여행자 강박이 있었던 건 아닐까 고민하는 장면에선 일상의 불안과 나약함을 남미 여행 중에 떨쳐버리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강박도 여행이 일상이 될 때 그제서야 조금 느슨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볼리비아 숙소에서 기타를 만지작거리며 작곡하던 청년을 보며 몰두할 작은 예술을 로망하게 되고, 칠레의 항구도시 발파라이소에서는 젊음과 예술에 대한 욕망을 깨우기도 합니다. 사랑하고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시간을 제대로 보내는 방법이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타인의 인정과 상관없이 온전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말이죠.
세상엔 안 해서 후회되는 게 더 많다. - 책 속에서
일정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여행에서 우연은 축복이 되곤 합니다. 남미의 다채로운 풍경은 그곳에 간 자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김나랑 저자는 '행복이란, 휴식이란, 삶이란 이런 거구나, 이렇게 살아야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감정을 만끽합니다.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 책에는 유명 관광지 사진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제가 유독 좋아한 사진들을 모아보니 유적지나 관광지 사진이 아니라 일상의 풍경이더라고요. 빛깔이 수채화 물감을 푼 것처럼 정말 아름답죠~
여행 후반엔 여행 레임덕으로 '에라' 모드가 발동해 택시도 과감히 타면서 남미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심신이 지쳐있다 그곳에서 그제야 행복하다, 아름답다, 좋다란 말이 나오더라고 하네요. 하고 싶은 대로 시간과 돈을 투자했던 6개월간의 남미 여행. 그동안은 원하지도 않고 딱히 관심도 없는 곳에 시간과 돈을 쏟아왔었다며 보고 싶은 것, 믿는 것 하나를 위해 남미로 떠났던 그녀.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잡지 에디터로 다시 일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행의 끝에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지만, 떠나기 전과 돌아온 후의 마음은 달라져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여행을 꿈꾸는 것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