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 (양장)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백승길.이종숭 옮김 / 예경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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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전 직후 1950년에 초판 발행 후 서양 미술 입문서, 미술의 역사 개론서로 자리 잡은 벽돌책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미술과 그다지 친하지는 않은 저로서는 굳이 미술사 개론서 격인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있을까 싶었는데,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비밀독서단 2>에서 셀럽들의 추천도서로 선정된 이유가 있더라고요. 미술 입문자는 물론 일반인에게 필요한 인문교양서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회화 외 건축, 조각 등 넓은 의미의 미술을 시대 흐름에 따라 풀어낸 <서양미술사>는 미술 양식의 변화를 세계사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서양미술사> 서론은 특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같은 주제의 다른 그림을 나란히 소개하며 취향으로 인한 편견의 위험성을 짚어줍니다. 개인적인 습관과 편견을 버리려고 하지 않는 태도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됩니다.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 작품처럼 인습적인 관념을 깨뜨려 거절당한 작품과 관념을 준수해 다시 그린 작품 두 개를 비교한 부분은 제가 봐도 작품의 성의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릇된 이유 때문에 작품의 호불호가 갈리는 피해 사례를 작품으로 직접 보여 줍니다.

 

이것을 통해 곰브리치가 하고자 하는 말은 미술가가 추구하는 바를 우리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화폭 위에서 수백 가지 색조의 농담과 형태를 조화시킨 제대로 된 완성. 취향에 관한 문제 대신 우리가 작품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미술가들이 이룩하려고 고심해온 그런 조화에 대한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이야말로 즐기는 감상을 하게 되는 겁니다.

 

"미술은 그 자체의 불가사의한 법칙과 모험을 가지고 있는 가슴을 설레게 하는 자주적인 세계"로 모든 암시를 포착하고 숨겨진 조화에 감응하려는 참신한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조언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미술 세계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딱 좋은 책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취향에만 집착했던 그 시간들이 후회됩니다.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벽화,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의 원시 미술로 시작해 전통의 고리 역할이 된 이집트 미술, 미술사상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그리스 미술, 그리스의 것을 응용한 로마 미술 그리고 혼돈의 암흑시대 중세 미술을 거쳐 미술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변화를 초래한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기까지. 전쟁, 종교, 기술 등 어떤 조건들이 미술가들을 개화시킬 수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시대 상황에 따라 미술의 성격도 변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6세기 초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명한 작품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에 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데요. 곰브리치는 이 그림에 관해 아는 것이나 안다고 믿었던 것을 다 잊어버리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에 소개한 수많은 작품들 하나하나에 개인적인 취향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미켈란젤로의 바티칸 시스타나 예배당 천장화에서는 저자의 놀라움이 좀 더 짙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고전적인 건축의 규칙을 무시한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거쳐 프랑스 대혁명 이후 미술에 대한 관념도 변화하기 시작한 18세기 이후는 끝없는 변혁과 새로운 규범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위기가 있을 때마다 미술가들은 새로운 종류의 주제를 찾아내며 점점 전통으로부터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20세기 실험적 미술 시기의 현대 미술도 과거의 전통을 완전히 깨뜨리고 이제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하는 미술은 아니었어요. 한 시대의 특정한 문제에 대한 반응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 이런 현상은 과거에서도 계속 보여줬습니다.

 

 

 

이 책에 언급된 사건, 작가들을 시대적 흐름과 연관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연표, 서유럽과 지중해 연안 지도를 보여주며 공간적 연관성을 가시화 한 지도를 끝으로 서양미술사를 정리합니다.

 

문학이 아닌 인문교양서에서 첫 문장이 주목받는 경우도 드물 겁니다. "미술이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미술가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유명한 첫 문장은 <서양미술사>가 어떤 식으로 쓰였는지 저자의 관점을 보여줍니다.

 

건축, 회화, 조각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에서 미술가들이 왜 그렇게 했을까 하는, 미술 작품을 보는 눈을 날카롭게 하면서 그와 동시에 미묘한 차이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게 하는 <서양미술사>. 책 전반을 관통하는 '참신한 눈'을 강조합니다. 어설프게 알거나 잘못 감상하는 함정을 피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처음엔 그저 시대별 작품과 미술가 소개 수준인 줄 알았는데, 설익은 지식과 속물근성의 위험성을 지적한 곰브리치의 말에 감명받았어요. 나는 그림을 감상하는지, 아니면 지적 유희를 즐길 뿐인지를 알아차리게 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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