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 기상천외한 공생의 세계로 떠나는 그랜드 투어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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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솔 세균이니 변기 세균이니 하면서 일상생활 속 세균 덩어리로 등장하며 불결을 상징하는 미생물. 하지만 대부분의 미생물들은 병원균이 아닌 데다가 우리를 병들게 하지 않는다는데?!

 

평균적인 인간들은 식품 1그램을 섭취할 때마다 약 100만 마리의 미생물을 삼키고, 우리 피부와 체내는 물론 세포 안에도 사는 미생물.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별보다 한 인간의 소화관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개체 수가 더 많다고합니다. 우리는 공생자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놀라운 우주'. 왜 우리는 미생물과 동반자 관계가 되었을까요. 미생물이 미치는 영향과 미생물 세계를 탐구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 책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미생물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소수파인 병원균에만 집중하고, 다수파인 정상 미생물총 공생 세균에 관한 이해는 뒷전이었던 현실이었잖아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을 수제 현미경으로 세계 최초로 관찰한 레이우엔훅. 350년 전 인간은 처음으로 미생물을 보게 됩니다. 이후 기술 발달과 다양한 연구 결과 덕분에 동물과 미생물의 공생 관계를 하나씩 파헤칠 수 있었어요.

 

 

 

공생이라는 개념도 그저 한 몸에 산다는 개념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넓게 확장할 수 있었어요. 단순히 사는 장소 문제가 아니라 동물의 발생을 유도하는 공생 세균도 있었습니다. 자기 몸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고 다른 종에게 외주를 주는 겁니다. 동물보다 먼저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던 미생물인 만큼 상호작용하며 진화했던 겁니다. 게다가 공생 세균은 동물의 신체를 유지시키기 위해 일을 계속하는데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면역계입니다.

 

뇌에도 영향을 줍니다. 장내미생물이 면역계에 영향을 주면 행동 증상에도 영향이 나타나더라는 연구 결과는 사회적 태도, 행동, 스트레스 대처 능력 등에 결국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까지 되는 겁니다. 이 부분은 솔직히 으스스 해지더라고요. 숙주의 마음을 조종하는 기생충 이야기처럼 말이죠.

 

이처럼 공생 파트너이자 기생충이라는 미생물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로 볼바키아 세균이 있습니다. 숙주의 생식을 교란하는 세균인데 균주와 숙주에 따라 기생자-상리공생자 관계를 오간다는군요. 그런데 이런 양상을 많은 세균들이 보여줍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위궤양, 위암을 초래하는 나쁜 균으로 알고 있었지만, 대신 식도암과 천식을 예방한다고 합니다. 소화관에 머무는 장내미생물이 혈류로 침투하면 패혈증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공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줍니다.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사는 게 공생이지, 대립과 갈등을 쏙 빼고 협동과 화합만으로 이뤄진 게 다가 아니라는 거죠.

 

 

 

미생물은 이처럼 우리 삶과 건강에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알레르기와 염증 질환의 위험이 높아졌습니다. 도시화로 착한 미생물, 환경 속 미생물, 기생충이 사라지면서 장내 미생물 다양성이 뚝 떨어졌습니다. 여전히 오지에 사는 수렵 채취인, 개발도상국 시골 주민들은 다양한 마이크로바이옴을 보유하고 있다는 걸 비교하면서 미생물 변화가 질병을 초래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 개체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미생물 군단입니다. 모든 동물들은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에 의존하고 있지만 의식하지 못하며 살아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가공식품, 항생제 등 다양한 원인으로 우리와 동반자 관계를 이뤘던 미생물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미생물이 사라진다면 먹이사슬이 붕괴되고 인간은 불과 1년 안에 사회 붕괴를 경험할 거라 합니다. 종의 멸종은 물론, 생존 종 개체군 규모도 줄어들게 됩니다.

 

무척 신기한 공생 세균이 소개되는데요. 길이 1밀리미터 몸 중 절반이 공생 세균인 해양 침전물 속에 사는 편형동물 '파라카테눌라'는 몸이 조각나면 완전한 성체로 재생됩니다. 그런데 공생 세균이 들어있지 않은 유일한 곳인 머리만 가지고서는 꼬리를 만들지 못한다는 거예요. 꼬리만으로는 머리가 재생되는데 말입니다. 그만큼 공생 세균과 동물과의 관계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미생물이 있었기에 진화의 기회도 가능했고, 반대로 동물이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진화 기회를 신속히 포착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미생물과 동반자 관계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정복자 인간이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신의 손이 작용합니다. 동반자 관계를 '조작'할 수 있는 힘을 가지려고 합니다.

 

인간 기술로 미생물과 숙주 간의 의도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세균 칵테일이라 부르는 프로바이오틱스, 엽기적이지만 대변 미생물총 이식술 등 미생물의 불균형을 고치려 합니다. 성공 사례의 경우 일회성 신화일 수도 있습니다. 장기적 영향에 대한 연구는 미진하지만 이 또한 극복할 겁니다.

 

미래 의학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합성생물학이 가세해 이젠 GM 미생물들까지 등장했습니다. 미생물의 잠재력을 이용해 맞춤 미생물 처방을 알약 하나로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는 인간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생물의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정적이거나 하찮게 대했던 미생물 세계의 진실을 알고 나면 자유의지를 가치 있게 여기는 독립적이고 우월한 인간 종의 의미까지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여러 종으로 구성된 집합체이며 하나의 세계'이자 '내 몸은 놀라운 우주'라는 말이 그저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말이 되네요. 저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나'라는 개념은 버리고, 늘 '우리'라는 개념을 생각하라."

 

미생물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준 책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우리는 미생물에게서 진화했고,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계 전체를 아우르는 미생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은인인 미생물이 배신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 몸의 숨은 생태계, 앞으로 파헤쳐야 할 미생물 연구는 무궁무진합니다.

 

생각보다 사진 자료가 없어 아쉬웠습니다. 등장하는 세균의 현미경 관찰 사진이 궁금했어요. 글자가 빼곡한 데다 언뜻 보기엔 낯선 단어만 눈에 띄어 어려운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핫한 과학 저널리스트 테드 용 작가의 유쾌한 문체 덕분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최고 수준의 과학 저널리즘이라는 빌 게이츠의 찬사를 받은 책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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