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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여정 - 빅뱅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우주 탄생부터 생명의 기원을 넘어 인류 진화의 과정이라는 주제는 과학과 철학, 종교에서 숱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 대세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죠. 그런데 <사피엔스>의 한국판이라 불릴만한 저작을 만났습니다.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의 책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생존 전략에 담긴 인류 진화의 여정을 들여다봅니다. 솔직한 심정을 밝히자면, 기독교적인 책일 거라 곡해하고 미뤘던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무척 흥미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호모 하빌리스부터 현생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요.
기획하고, 불을 다스리고, 달리고, 요리하고, 배려하고, 의례하고, 공감하고, 조각하고, 영적이고, 묵상하고, 그림 그리고, 교감하고, 더불어 사는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구하고 내면의 소리를 듣는 종교적 인간으로 나아갑니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인간'이라 부를 수 있게 된 정신적인 혁명에 초점 맞춥니다. 유인원이 현생 인류로 가는 위대한 여정, 인간을 뜻하는 '호모'라는 이름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260만 년 전 원시인류인 호모 하빌리스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어떤 과정으로 발견되었고 명명되었는지, 그리고 각 인간의 특징을 명료하고 이해 쉽게 설명하고 있어 어떤 교양 과학서보다 더 흥미진진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 용어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게 되었네요.

도구 제작을 이유로 최초로 '호모'라는 지위를 획득한 호모 하빌리스. 인위적인 무언가를 하는 행위는 의도된 목적이 있는 창작 활동인 겁니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이미 사라진 인간 종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관찰과 공감 능력이 예술로 표현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생존과 상관없는 '상상'은 인간의 정신적 혁명을 보여줍니다. 상상의 표현은 역시 예술이죠. 인류의 조상이 남긴 작은 조각품부터 동굴에 남긴 벽화들은 생존을 위한 사냥을 하면서도 동물이 지닌 위엄과 용맹성을 흠모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책에 소개하는 인간 본성의 특징은 대개 좋은 쪽입니다. 딱 하나 부정적인 면으로 폭력성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긴 하는데요. 최초의 살인 사건에 대한 증언이 된 두개골. 구약성서 <창세기>에서도 카인의 살인이 나오듯 폭력성은 인간의 본성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한편 기형인 아이가 5년간 보살핌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도 있습니다. 배려 문화의 사례로 등장합니다. 배려, 공감 능력이라는 것은 인간 생존의 원동력, 인간 본성의 핵심을 이타심에서 찾는 이 책의 줄기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관찰과 상상이 표현된 예술 작품들을 통해 단순히 살해하는 인간을 넘어 묵상하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타심으로 이어집니다. 잘못 이해하고 의도한 이타심의 발현이 극악하게 드러난 역사적 사례가 숱하게 있긴 하지만, 어쨌든 핵심은 이타적 유전자입니다.

장례 문화는 인간 내면의 무의식을 자극하고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합니다. 사회적이고 영적인 열망을 드러내는 모습 속에도 이타심이 있습니다.
종교의 기원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추측함으로써 시작한다고 합니다. 호모 하빌리스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인간 여정에서 등장한 흔적들은 결국 자신 내면의 소리를 들어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미 우리는 종교적 인간이라는 겁니다. 원시종교의 탄생이 농업혁명과 다른 문명을 일으키는 단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배철현 교수는 이 책에서 '과학자들은 ~ 주장한다' 혹은 '추정한다'로 줄곧 이야기하는데요. 현재의 과학지식은 일시적으로 가변적일 뿐 절대 진리는 아니라는 원칙이 잘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물론 과학근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종교근본주의도 경계합니다.
우주의 시작, 생명의 시작, 인류의 시작처럼 '처음'에 관해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저 역시 이 책은 그간 발견된 흔적을 통해서 인간의 여정을 탐색한 하나의 해석, 납득할만한 주장으로 접한 셈입니다.
종교학자가 이 주제를 다룬 점이 신선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일화와 유물 발견 당시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에 관한 2017년 6월 최신 학설까지 이 책에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진화 주제에 관심 있거나 영적인 인간에 관심 있는 분들 모두가 만족할만한 책일 거라 생각합니다.
인류 조상들이 남긴 것들을 통해 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을 한데 모으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는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우리는 누구인가, 존재 의미를 갈구하는 인간에게 주는 인류학적 답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