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바야시 미키 지음, 박재영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내 남편이 '그 인간'으로 변하면서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무엇이 아내들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제목만으로도 아내들의 폭풍공감을 부르는 책,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실사판과도 같습니다. 책갈피로도 사용 가능한 독특한 책날개에다가, 반대쪽엔 <어쩌면 내 아내도 꾸는 꿈>이라는 기발한 부제가 붙었습니다.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어쩌면 내 아내도 꾸는 꿈. 남편들, 섬뜩해지나요~

 

 

 

격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책 구석구석 자리한 책 속의 한 줄과 일러스트.

 

 

 

경제적 이유든 자아실현을 위해서든 일을 하고 있던 아내에게 찾아오는 위기. 결혼 즉시 퇴사, 임신 해고, 육아휴직 해고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육아는 아내 몫입니다. 사회가 아내들을 버리고 있는데, 남편마저도 아내를 외면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정 내 이혼 상태, 단순한 동거인, 섹스리스 부부 상태가 되는 건 시간문제. 아내를 분노하게 만드는 남편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은 책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에서는 독박육아를 하는 아내들의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 인간아, 나가 죽어!"라는 말을 하면서도 '이런 인간의 도움도 필요하니까 그냥 내가 참자, 참아.'라는 생각을 하는 아내들.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낸다 여기겠지만, 아내 입장에서는 이미 쌓이고 쌓이다 폭발하는 순간입니다.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맞벌이를 하는 직장맘 아내의 분노 사례와 전업주부 아내의 분노 사례를 각각 다룹니다. 워킹맘의 경우 직장에는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퇴근하고, 어린이집 선생님께는 미안하다 고개 숙이고, 아이에겐 엄마가 늦어서 외롭게 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일상의 연속입니다.

 

그나마 가사와 육아를 분담하는 남편의 경우 아주 쉬운 일만 골라 하는 경향이 크다는 걸 통계로 보여주더군요. 아이의 등원이 아니라 하원을 담당하는 쪽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면 이해될 겁니다. 업무에 지장 주는 일은 대부분 아내 몫입니다.

 

 

 

자신이 원해서 전업 주부가 된 경우나 어쩔 수 없이 전업주부가 된 사례에서도 공통된 분노가 느껴집니다.

 

"그러다 잘리면 좋겠어?"

"당신이 원해서 전업주부가 됐잖아."
"나만큼만 벌어 오면 집안일 할게."

 

일하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 애초에 육아와 집안일은 여자 몫이라는 성 역할 구분,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가진 베이비붐 세대의 남편들은 아내의 무상 노동 시간을 무시하고 아내를 '먹여 살리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남녀 연봉 차이로 인해 여자 쪽이 육아휴직하는 실태. 그런데 아내의 임시 전업주부 생활에 익숙해져버린 남편은 아내의 복직 후 닥치는 역할 분담을 오히려 더 힘겨워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남편은 동굴 속으로 숨어들지요. 아내는 숨어들 곳이 없습니다.

 

예전에 비해 깨어있는 남편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어쨌든 육아기에 생긴 부부 분쟁, 온도 차, 오해, 엇갈림을 방치하면 해가 갈수록 부부 관계는 살벌해집니다.

 

퇴직한 남편과 온종일 함께 있는 베이비붐 세대 아내의 원망은 오싹할 정도입니다. 최대의 복수는 남편이 죽었을 때 할 생각이라는 한 아내는 "남편의 유골을 예쁜 상자에 넣어서 야마노테 선 안의 선반에 올려놓고 올 거예요!"라고 합니다. 갑자기 아내가 남편만을 위한 서재를 마련해줬을 때 무조건 좋아하면 안 됩니다. 당신을 버린 거니까. 집 안에서 마주치기도 싫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에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아내의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는 한 남편을 용서하는 일은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보다 먼저 죽으면 남편도 뒤따라 죽을 지경이지만, 남편이 없어지면 아내는 곧 생기를 되찾을 정도지요. 

 

 

 

자, 이제 남편의 입장도 들어봅시다.
육아휴직하고 싶어도, 일찍 퇴근하고 싶어도 회사가 이해해 주지 않는단 말입니다. 기껏 2주간의 육아휴직 내는 것도 눈치 봐야 하니 말입니다. 남자가 육아휴직 쓰면 일을 우습게 여긴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고용 악화 현실이라는 걸림돌, 비정규직과 불안정한 수입. 회사가 법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 한들, 직속 상사가 여전히 옛 사고방식을 가졌다면 한 마디로 찍히게 됩니다.

 

하지만 육아도 매일이 전쟁입니다. 일과 육아의 가치는 그 비중이 다르지 않습니다. 남편과 아내의 가치 역시 동일합니다. 집안일과 육아에 적극적인 남편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런 집을 부러워할 만큼 여전히 현실은 고됩니다. 남편이 죽기를 바랄 정도면 차라리 이혼이 낫지 않을까 싶죠. 하지만 이 사회는 그것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여자 혼자서도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사회인가요? 과감히 새 출발할 수 없는 사회제도는 결국 지쳐버린 아내에게 남편의 죽음을 바라게 만듭니다.

 

 

 

대부분의 남편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릅니다.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를 남편이 읽는다면, 가정 내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좀 하게 될까요. 아내가 살기를 품는 순간은 언제인지, 아내의 살의를 잠재우기 위한 남편의 노하우는 무엇인지. 책에서 소개한 각종 통계와 실사례를 통해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제도라는 걸림돌이 있습니다. 일 가정 양립, 육아휴직 등 사회적 제도가 제대로 뒷받침되어야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통받는 맘고리즘 현상, 독박육아를 근절하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귀가 기억에 남는군요.

 

"그래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말하지 않으면 이 사회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야. 그 '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어?"

 

자칫 자극적인 제목이 사별로 마음을 다친 분 등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지 공감해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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