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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되어버렸는걸
모리시타 에미코 지음, 김지혜 옮김 / 재미주의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마스다 미리 만화에세이풍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책도 추천해드려요. 지금 독신이라면, 나이만 먹어가는 것 같고 뭐 하나 이룬 것 없는 기분이 든다면, 무엇보다 40대 전후라면 내 얘기만 같을 공감백배 만화에세이 <마흔이 되어버렸는걸>.
아홉수만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고 하죠. 저는 스물아홉에서 서른 초입 때는 무척 설렜어요. 이제 정말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더 컸는데 그때는 멋모르고 룰루랄라 했던 시절이었죠. 그러다 서른아홉에서 마흔 초입에 이르렀을 땐 작가처럼 비교적 담담함을 가장한 우울 모드가 찾아오더라고요. 마흔이 되도록 뭘 이뤘을까 싶어 허무한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독신인 저자는 혼자 살고 있다고 말할 때 남들의 시선을 신경 많이 쓰는 편이었어요. 남들과 같은 코스를 밟지 않는 것이 그녀의 자존감을 흔듭니다.
모리시타 에미코 작가는 알바와 투잡 정도는 기본인 생활에, 무직이었던 시기도 겪었고요. 일명 정통 코스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왔습니다. 나만 빼고 다 성공한 것 같고, 나만 빼고 행복한 것 같고. 그런데 정통 코스라는 건 이제는 정말 꿈처럼 여겨지는 사회입니다. 예전엔 그런 꿈이라도 꿀 수 있었고, 될 수 있는 기회도, 동기도 충만했는데 말이죠. 오히려 스스로의 즐거움과 보람을 위해 정통 코스를 일부러 벗어나기도 했던 것이, 이제는 원하지 않았는데도 저 멀리 떠밀려버립니다. 나도 너도, 모두가 힘든 세상입니다.
이런 생각이 유난히 훅 치고 들어오는 시기가 마흔 초입인 것 같아요. 아등바등하다가 힘이 빠지는 시점인 것 같아요, 이때가. 표류하는 40대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뭔가를 희망 삼아 제각각 삶을 이어나갑니다. 포기한 듯 아닌 듯 어떨 땐 한탄하다가도 어떨 땐 마음을 내려놓으며 달관의 경지를 보여주기도 하고. 표류하듯 마음과 컨디션이 갈팡질팡인 이런 모습이 현실 속 내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좀처럼 피로가 풀리지 않는 40대라는 말이 어쩜 그리 딱 맞는 말인지. 신체적으로는 요통, 어깨결림, 피부 트러블은 기본, 기온과 기압에 따라 컨디션이 좌우되고 정신적으로는 다시 시작하기 힘든 나이라고 생각하는 데다가 노후자금 걱정 등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걱정이 끊이질 않습니다.
저자는 사소한 일에도 인생을 연관 지어 마흔이 되도록 어떻게 살아왔나 반성하는 소심함을 보이다가도, 동경하던 도쿄로 이사 올 때 20년간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후다닥 결정을 내려버리는 극단적인 면을 가지고 있기도 했어요. 불안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담담하게 흘려보내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직은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지만 언제까지고 방향치 탓만 할 수는 없습니다. 부족한 건 부족한 대로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불안해도 괜찮다고 합니다. 어차피 불안감은 어떤 선택에서건 들기 마련입니다. 같은 불안감이라도 새로운 것에서 느끼는 게 좋다는 모리시타 에미코 작가.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꿈일 수도 있지만, 동경하던 꿈을 그저 꿈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그녀는 결국 실천했습니다. 도쿄로 이사한 이유를 자신조차 똑 부러지게 답하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열심히 해보고 싶어서라고.
이제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의미하는 게 옛말 같지 않죠. 뭔가를 다 이뤄냈어야 할 마흔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뜻하는 마흔으로 만들려면 내 안의 꿈을 끄집어 내세요. 아주 사소한 꿈이건 황당무계한 스케일의 꿈이건. 잊고 묻힌 그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작은 두근거림이 피어오릅니다.
지금껏 살아오며 길을 잃는 데 익숙해졌고 대부분 항상 걷다 보면 도착하게 된다는 나 나름의 '목적지에 도착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니... - 책 속에서
<마흔이 되어버렸는걸> 너무 진지한 만화에세이는 절대 아닌데 쓰다 보니 진지모드만 나왔네요 ^^.
재미와 감동 둘 다 잡은 만화에세이입니다.
마흔. 용케 여기까지 왔구나... -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