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와이다 준이치 사진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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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의 거인이라 불리는 일본의 대표지성 다치바나 다카시는 독서광이자 애서가로 익히 알려져 있다. 책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다는 고양이 빌딩은 관광명소가 될 정도로 유명한데, 그동안 고양이 빌딩 외관을 사진으로 보면서 내부에 가득한 책이 궁금했던 게 사실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설마? 했던 심정이 맞아떨어졌을 때의 그 기쁨이란! 고양이 빌딩 내부를 전격 공개한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분명 천상의 책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른 이의 서재를 탐색하는 행위는 관음증과 같은 흥분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극히 내밀한 사적인 공간을 훑는 기분이다.

 

 

 

먼저 두툼한 분량과 상당한 수의 컬러판 사진이 눈을 현혹시킨다. 무슨 도해집을 보는듯한 기분이다. 고양이 빌딩은 3층 건물에 지하 2층, 그리고 옥상이 있는 건물이다. 사진 촬영 시 책장 한 단씩 촬영하는 기술 덕분에 얼추 계산해보니 20만 권 가까이가 아닐까 예상할 정도로  고양이 빌딩의 보유 장서는 상당하다. 책탑이나 박스 속 책은 별도 촬영하지 않았다니 실제 보유 장서는 더 많을 테다. 고양이 빌딩뿐만 아니라 산초메 서고와 릿쿄 대학 연구실의 책장도 소개된다.

 

 

 

빌딩 내부를 공개한 덕에 이제 그곳 분위기는 파악이 되었고, 이제는 그가 어떤 책을 보관하고 있으며 왜 그런 책들을 읽었는지 궁금해진다. 이 책에서는 전체 사진과 부분 컷을 보여주면서 서가를 쭉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특별한 책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함으로써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시킨다.

 

 

 

서가를 보면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보인다는 다치바나 다카시. 어떤 책이든 그것을 산 이유는 분명 있다. 분노와 고민이 담긴 책들을 보며 그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해 추억을 되살려본다. 고양이 빌딩 안에서 오랫동안 자리 이동 없이 변화가 거의 없는 서가가 있다는데 그곳에는 어떤 책이 꽂혀 있을까? 안락사와 존엄사 같은 '죽음'에 관한 책, 종교 책, 그리고 놀랍게도 고전 걸작 빨간책들이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이 책에서 성에 관한 교양지식 수준을 넘어 외설적인 책도 언급하는데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소장할 가치가 있음직하다는 설득을 당할 정도이다.

 

 

 

재밌게도 원숭이학에 한때 푹 빠졌다는 그는 원숭이 연구는 인간 연구와 겹치는 게 많아서 흥미가 있었다 하고, 라틴 아메리카를 파고들다 보니 종교까지 두루두루 섭렵해야 했고, 석유에 관한 조사를 하다 보니 이스라엘과 중동 쪽으로 공부해야만 했고, 질병에 대해 알려니 생물학 자체도 알아야 했다고 한다. 이처럼 한 가지 주제의 관심이 가지를 뻗어나가면서 문제의식이 점차 확대되는 독서 경험을 이야기한다.

 

서가에 책을 정리하는 기준은 대체로 주제별로 꽂는데, 이때 주요 키워드가 여러 가지 혼재한 책은 그 당시 관심 기울였던 키워드에 맞춰 꽂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세월이 흘러 서가를 들여다보면 "어라! 이 책이 왜 여기 있지?" 하며 갸우뚱하는 일도 있다고. 이 책에서도 "아, 이거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계속 찾았던 건데..." 하는 책들이 몇 권 등장했다.

 

 

"진짜 가르쳐야 할 것은 현대의 역사입니다."
책 이야기 중 나온 말이다.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 현대사 쪽은 시간 부족으로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먼저 가르치고 역순으로 밟아간다고 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그의 독서 폭은 정말 놀라울 정도다. 춘화도 있고, 신비현상 같은 책들도 많다. 향토사, 공산당 등 특정 분야에 집중하기도 하고, 과학과 수학 분야도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다. 철학과 출신답게 인문 분야는 기본이다. 전작 독서를 하기도 했는데 프리먼 다이슨과 리처든 도킨스 같은 과학 책 분야는 특히 그런 현상이 짙었다. 흥미 끄는 것을 조사하다 보면 결국 작은방 하나 정도의 분량만큼 책을 읽게 되는 것 같다. 도대체 다치바나 다카시가 파헤쳐 보지 않은 분야는 무엇일까 되려 궁금해질 지경이다. 참고로 소설 같은 문학작품은 이번에 거의 언급되지 않았는데, 이 부분은 그의 다른 저서를 참고해야 할 것 같다.

 

 

 

"서가는 역사의 단면이다." - 책 속에서.

 

독서가, 애서가라면 '환장'할 만큼 좋아하는 일인 남의 책장 들여다보기.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그런 호기심을 충분히 해소해준다. 일본 서적이어서 일본어를 모르는 나에게는 그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 책장 속 책을 사진으로 봐도 알아챌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이 책에서 소개한 책은 별도로 목록화해서 소개해뒀는데, 국내 번역서는 생각보다 적었다.

 

 

 

이 책은 일본에서 OO의 서재 시리즈의 한 권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 지성들의 서재도 이런 방식으로 정밀 탐색해서 보여주는 책이 시리즈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아! 내 서재도 이렇게 훑으면서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싶었다. 내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스스로 들여다보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책은 책 그 자체로 퀄리티가 상당하다. 와이다 준이치 사진작가의 서가 정밀 촬영술이 빛을 발휘했다. 고양이 빌딩 외관은 그의 전작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 소개된 바 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책에서 고양이 빌딩 외관 사진이 없다는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고양이 빌딩 서가를 소개하는 책인 만큼 외관도 나왔더라면 만족도가 더 높았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눈을 즐겁게 하고, 방대한 교양지식을 내뱉는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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