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 - 지혜로운 집사가 되기 위한 지침서
진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자가 집사가 되면 이런 주제의 책이 탄생하는구나~!

 

진중권 저자의 반려묘, 루비의 목소리로 이 책의 처음과 끝을 장식합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집사가 간식 먹자 말하고 짝짝 박수 치면 다리 부비부비~ 그다음부턴 다리만 비벼줘도 '조건반사된 집사'가 간식 갖다 준다는 말에서 빵 터졌어요. 아... 이런 파블로프의 인간이 ㅋㅋ 대한민국 집사계에 팽배한 낡은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집사 문화에 새로이 '고양이중심주의'를 확립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는군요.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는 단순히 고양이와의 에피소드를 담은 에세이가 아닙니다.

고양이의 역사, 문학, 철학을 총망라한 교양서입니다. 조금 딱딱하거나 난해한 내용도 있긴 하지만, 지혜로운 집사가 되기 위한 지침서라는 부제처럼 고양이와 인류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습니다.

 

양이 역사 편에서는 고양이가 어떻게 인간 사회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부터 고대 신성의 상징, 중세 사탄의 동맹 등 극과 극의 양상을 보인 고양이 이미지를 다룹니다. 고양이를 좋아한 무슬림과 기독교의 종교 전쟁이 바탕이 되어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지다가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 고양이.
이후 문학, 예술에서 고양이가 소울 메이트로 자리 잡습니다. 부정적 이미지를 부여했던 고양이만의 속성이 이제는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뮤즈로서의 고양이가 되면서 가치 전도된 셈이죠.

 

 

 

한국의 고양이 역사는 5~6세기경 가야토기에 쥐잡이 고양이 모습이 있다는데 정말 앙증맞은 토기더라고요. 조선왕조실톡 웹툰에서도 언급해서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인데 효종 둘째 딸 숙명공주와 숙종이 애묘가였죠. 의외로 옛 문헌 속 고양이 이미지는 대체로 긍정적입니다. 반면 길고양이 천국 일본은 옛날에 묘괴 고양이 이미지가 강했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 비교적 최근에 긍정적 이미지로 변한 거라네요.

 

 

 

 

고양이 문학 편에서는 모든 장르 통틀어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고양이 문학은 8세기 말~9세기 초 아일랜드어로 쓰인 <라이헤나우 독본>이라고 합니다. 수도승이 지은 시에 고양이가 등장하는데, 중세에도 교회 문헌에는 오히려 고양이를 우호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해요. 수도승의 친구격이었죠.

작품 하나하나 제법 깊이 들어가며 살펴보는데 장화 신은 고양이의 경우 왜 장화를 신겼는지 이탈리아 원작, 샤를 페로의 프랑스 버전, 그림 형제 독일 버전을 모두 비교해 분석합니다.  

 

 

 

고양이의 철학 편에서는 동물에 관한 관점 변화를 짚어줍니다.
동물은 사유 없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데카르트, 언어 없이 그저 자극-반응 반사 활동하는 존재라는 라캉, 죽음을 의식 못하기에 진정으로 죽을 수 없다 믿은 하이데거까지는 인간중심주의와 이성중심주의를 바탕으로 한 철학이었다면, 얼굴이 없기에 윤리적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레비나스는 이성중심주의를 무너뜨렸습니다. 이후 데리다는 인간중심주의마저 무너뜨렸는데요, 동물을 인간화하지 않고 대등한 주체로 봤습니다.

 

고양이 특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생각해본다면, 인간중심주의에서 고양이중심주의로 전환하는 것이 고양이와 더불어 산다는 것의 의미가 아닐까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입니다.
팔불출 집사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에피소드도 있고, 읽다 보면 인간은 집사일 뿐이라는 운명이라는 게 절절하게 느껴지는군요.

 

책 가격이 만만찮은데 고양이 역사, 문학, 철학 전반적으로 두루 다룬 책이어서 가격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반려묘 루비의 일상 에피소드라든지 빵빵 터지는 웃음 코드를 원했던 분이라면 생각했던 주제는 아니라는 걸 미리 염두에 두셔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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