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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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최고의 현역 대세 작가 테드 창의 중단편 소설 8편을 모은 작품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개정판으로 나왔습니다. 1990년부터 2002년에 발표했던 소설을 모은 작품집입니다.

 

벌써부터 기대되는 건 이게 1탄이란 거예요. 2005년부터 2015년까지의 미발표 신작 포함 중단편 7편이 수록된 작품집은 2017년 2탄 출간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책과 출간 예정인 그 책은 과학소설 좋아하는 분이라면 무조건 소장해야 할 책으로 강추!

 

SF계 주요상을 휩쓴 테드 창은 데뷔 후 열다섯 편의 중, 단편을 내놓았는데 단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밋밋함이나 아쉬움 같은 건 그의 소설에서 볼 수 없습니다. 짧은 분량이어도 과학 이론과 기똥찬 상상력이 합쳐진 탄탄한 스토리가 넘사벽 수준이에요. 물리학, 수학, 생물학, 언어학 등 분야를 막론한 폭넓고 깊은 지식에 감탄사가 절로 나올 지경입니다.  

 

바빌로니아 신화에서 아이디어 얻은 단편소설 「바빌론의 탑」은 명화로만 알고 있던 바빌탑 이야기를 이렇게도 만들어낼 수 있구나 하며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인간과 신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인간. 무엇이든 그 이상을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결말이 정말 엄지 척!

 

「이해」 편은 뇌손상을 입은 사람이 신약을 먹고 기억력 향상이라는, 어쩌면 인간이 고대하는 형태로 부작용이 나타난 거예요. 초지능 인류라니 한 번쯤 상상해봄직한 소재인데 문제는 일부러 뇌를 산소 결핍 상태로 만들어 신약 처방을 하는 식의 악용 문제까지 생길 수가 있다는 걸 지적합니다. 그리고 초지능 상태가 된 주인공을 이용하려는 집단도 있고, 물론 스스로도 그걸 악용할 수도 있고요. 이 소설도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스펙터클합니다.

 

온갖 과학, 수학이 등장하는 SF 과학소설을 읽으며 슬픔, 아련한 감정까지. 테드 창의 소설에선 그런 일이 흔합니다. 「영으로 나누면」과 「네 인생의 이야기」 편이 특히 그랬습니다.

 

1은 2와 같을까. 수학 대부분이 오류라는 것을 증명해버린 수학자 르네. 줄곧 믿어왔던 것이 통째로 부정되어버리자 혼란에 빠져버린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중편 「네 인생의 이야기」는 2016년 말 개봉 예정인 영화 <컨택트>의 원작소설입니다. 언어학자 루이즈가 지구에 온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면서 나타난 세계관의 변화를 그린 이야기인데 언어학, 물리학, 수학, 컴퓨터 등의 이론이 이해가 정확히 되지 않으면서도 스토리 자체는 이해되는 요상한 소설이었어요.

루이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와 외계 언어 습득 과정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데 처음엔 문장 시제가 넌~하게 될 거야 하며 과거인지 미래인지 왔다 갔다 해서 의문 상태로 읽어나가다가... 앞 부분이 이해되는 결정적인 순간이 오는데 그때의 희열이란. 

헵타포드라고 부르는 외계인들의 세계관은 인간의 것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그들의 언어, 문자 체계를 습득하게 된 루이즈의 사고관도 변화하게 됩니다. 세상을 인과적으로 보느냐 목적론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세계관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걸 보여주는 방식이 정말 신선하고 놀라웠어요. 100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으로 벅찬 기분과 애잔함을 제대로 안겨 준 멋진 소설이었습니다.

 

「일흔두 글자」는 인간이란 종의 한계, 복제 등의 소재를 버무려 이 소설에선 점토로 만든 자동인형이지만, 미래 로봇 세상과 기술 발달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게 하는 주제였습니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했던 「인류 과학의 진화」는 메타인류라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역시 로봇 사회 같은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미래 모습을 그 시점에서 논평한 독특한 글이었어요.

 

「지옥은 신의 부재」는 천사강림으로 아내가 천국으로 간 후 남겨진 남편 닐의 이야기입니다. 철저히 기독교 세계관 SF 소설이라 개인적 취향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수작으로 호평받은 작품이라는군요.


마이클 무어 다큐멘터리를 연상하게 하는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도 독특합니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주제가 페미니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인종차별, 성차별과 다를 게 없는 외모 지상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정책으로 마련된 칼리. 칼리 의무화 논쟁을 다루며 다양한 의견을 담았는데 찬반 논쟁이 아주 팽팽했어요. 읽을 때마다 이 말도 공감되고, 저 말도 공감되고... 어쨌든 보편적 미의 기준이란 과연 무엇인지, 겉모습 가치에 관한 부분은 이 시대에 필요한 토론이란 것만큼은 분명하더라고요.

 

테드 창의 소설은 영화로 치면 할리우드식 대작 스타일은 아니지만 우수한 독립영화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그의 이야기는 매력적입니다.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사고실험을 SF 소설이란 형태로 보여주는 데 있어서는 정말 최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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