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푼의 시간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위저드 베이커리>, <파과> 구병모 작가의 신작 소설 <한 스푼의 시간>.
인공 로봇이 나오는 소재여서 조금 가볍게 생각했다가 눈물 뚜욱~ 감동 한가득 받은 소설입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아들을 몇 개월 전 사고로 잃은 세탁소 주인 명정. 생전 아들이 회사에서 샘플로 만든 무엇인가가 택배로 도착하는데 바로 사람을 꼭 닮은 인간형 로봇이었어요. 17세 아시아인을 모델로 한 로봇. 열일곱 살 무렵의 아들이 생각나는 바람에 로봇을 버리거나 기증하기도 힘들어 은결이란 이름을 붙이고 가족처럼 데리고 삽니다. 

구병모 작가 특유의 경쾌한 유머감각을 엿볼 수 있어요. 엄청 비싼 이 로봇을 세-탁-. 옷 수거하는 데 부려먹네요 ^^ 기초 설정이 완료되면 외부 자극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스스로 판단하는 자동 프로그래밍. 스스로 학습하며 인간 세상에 익숙해져가는 은결.

 

"세상은 한 통의 거대한 세탁기이며 사람들은 그 속에서 젖은 면직물 더미처럼 엉겼다 풀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닳아간다. 단지 그뿐인 일이다." - 책 속에서

 

은결은 한다와 하지 않는다만 아는 상태. 거기에 명정은 은결에게 '해보겠다, 하고 싶다,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다,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한다' 같은 미묘한 감정의 의미를 숙제로 내주는데.

한편 세탁소를 드나들던 시호와 준교는 은결과 친구가 됩니다. 초등 6학년 때 처음 은결을 만난 이후 그 아이들이 중학생, 대학생이 되는 과정 내내 그들은 함께 하지요. 시호와 준교가 버스 탈 때 은결을 그저 수화물이 아닌 사람 요금을 내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런 일들이 하나둘 더해져 은결의 인공 심장은 꼭 기계 오류가 난 것 마냥 찌르르한 순간을 겪기도 합니다. 


 

 

 

슬픈데 웃는 심정, 장례식을 다녀온 시호 옷에서 맡은 슬픈 냄새...

은결에게 감정을 느끼는 기관은 없을지라도 감정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겪는 모습, 취침 모드 시간을 자율적으로 변경할 수도 있게 되는 등 사소한 변화들이 감지됩니다. 인간의 충동, 인내, 변덕, 왜곡은 조합 분석하기 힘들지만 그걸 알고 싶어 하는 은결의 모습이 놀랍기도 하고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한 스푼의 시간>에서 인간에 대해 아는 게 없던 로봇 은결이 하나둘 알아가는 과정을 보며 그동안 당연히 받아들였던 습관, 행동, 무의식, 가치관 등 하나하나가 새삼스럽게 느껴졌어요.

늙지 않는 로봇 은결과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 엄청나게 오래된 우주와 지구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다는 의미의 제목처럼 은결에게도 주인 명정의 죽음이 찾아옵니다.

자의적 사고 없이 지시된 입력대로 움직여야 하는 로봇 은결은 주인의 마지막 지시를 거부하게 되는데... 어떤 보수 유지 관리 없이 지내 온 로봇 은결은 명정의 죽음 이후 어떻게 될지. 끝을 향해 갈수록 독자 역시 은결을 지금까지 명정의 둘째 아들처럼,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한 스푼의 시간>에서 명정과 은결의 관계는 물론이고 시호와 준교의 궁합도 참 좋았어요. 대학생이 된 시호는 알바 세 개를 뛰면서 등록금을 모아 한 학기 해결하면 다시 휴학하기를 반복하고, 형편상 지방대로 들어가 장학금과 기숙사를 제공받으며 자신의 꿈을 향해 가는 준교. 둘 간의 심리 상태나 은결과의 우정을 나타내는 장면은 굳이 말로 드러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묘사가 참 좋았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