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1930년대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당시 백인과 흑인 간의 인종차별 문제와 연쇄살인을 다룬 서스펜스 소설 <밑바닥>.


여든이 넘은 해리가 요양원에서 칠십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여동생 톰과 숲에 갔다가 발견한 시체. 가시철사에 감겨 참혹하게 살해당한 흑인 여자였습니다. "뭐 깜둥이 계집 하나 줄었다 한들 세상에 손해될 일 없겠지."하며 당시 흑인 살인 사건은 거들떠도 안 보는 시기여서 지역 경관 일을 하던 아버지만 관심을 가지죠. 
 

해리네는 백인이지만, 흑인에 대한 당시 일반적인 편견에서 벗어난 집안이었어요. 개인적인 신념이 있었고 인종 문제에서 흑인을 걱정하는 집이었습니다.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해리 아버지에게 마을 사람들은 못마땅한 시선을 보냅니다.

 

링컨이 흑인들을 해방시킨 지 한참 되었지만 당시 흑인들의 삶은 남북전쟁 이전과 별다르지 않은 시기. 흑인과 백인이 악수하는 것조차 드문 일이었고, 낮에는 평범한 이웃들이 밤에는 하얀 두건을 쓴 KKK단이 되어 마음에 안 드는 흑인을 무차별 살해하는 것이 일상인 시절이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흑인을 감싸는 백인 역시 표적이 될 수 밖에요.

 

이 사건과 비슷한 살인 사건이 이전부터 있어왔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연쇄살인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백인 피해자가 나오며 사건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피해자의 지갑을 주웠다가 용의자가 되어버린 흑인 남자. 기력이 쇠한 노인에 불과했지만, 흑인이라는 것 때문에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단죄합니다. 흑인의 목숨을 거둬버리는 것을 사냥하듯 쉽게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흑인 노인은 결국 목숨을 잃게 되지만, 그럼에도 연쇄살인은 이어집니다.

 

마을 사람들의 추악한 행동을 몸소 겪은 아버지는 폐인처럼 살기도 했지만,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번 믿어봅니다. 그래도 사건 해결의 진척은 없었어요. 그러다 해리의 여동생 톰이 납치되면서 급 긴박하게 진행되네요. 소설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범인의 행방이 오리무중이어서 결말이 무척 궁금했는데, 후반부 몇 페이지가 아주 제대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네요.

 

 

 

소설 <밑바닥>은 백인과 흑인 이분법적 사고방식, 백인과 흑인 간의 아이가 겪는 정체성 혼란 등 인종 문제의 뿌리 깊은 갈등을 보여줍니다. 주변에 무조건적으로 동조하는 사람, 믿고 싶어 한 대로 믿어버리는 사람 등 다양한 인간 유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인종 문제가 불쑥 튀어나옵니다.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는 차별을 안고 사는 인간. 우리가 동남아시아인을 바라보는 태도에서도, 남녀 문제에서도. 묻지마 살인과 KKK단의 그 시절 행동이 다른 건 없어 보입니다. 아닌 척 숨겨도 혹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불쑥 솟아오르는 무시, 증오, 분노. 

 

그 증오와 분노의 깊은 뿌리 그 어딘가쯤을 그린 소설 <밑바닥>. 흑인과 백인은 근본부터 다르다는 인식에 흑인에게는 법을 적용할 필요조차 없던 시절. 피부색은 선악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신념 따위 펼치기 힘든 사회를 겪으며 인간의 추악한 모습을 알게 된 해리의 감정선이 돋보였습니다. <밑바닥>은 그런 시절을 감당해낸 해리의 성장기이기도 합니다.


"나는 알던 사람들이, 혹은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고 삶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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