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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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작품이지만 걸작으로 평가받는 책 <명암>.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마지막 <명암>은 수제 책 분위기. 실제 천을 사용해 고급스러움이 더해졌어요.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4권 <명암>은 1916년 5월부터 12월까지 아사히 신문에 연재하던 중 병으로 사망한 나쓰메 소세키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미완이어서 찝찝한 마음이 들기보다는 오히려 '여기서 끝나는 것도 괜찮구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 열네 권을 쭉 읽어왔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이 가장 기력 소모시키더라고요.

복잡한 원인들이 얽혀 우연한 사건을 만들어내는데,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무엇보다 치밀한 묘사가 아주 끝없이 나옵니다. <갱부>에서 의식의 흐름을 묘사한 장면들을 참 좋아했었는데, <명암>에서는 주인공 한 명이 아닌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을 그런 방식으로 하고 있어 읽는 내내 같이 정신작용을 한 건지 책장을 덮었을 땐 머리가 빙글빙글~

 

 

 

<명암>의 주인공은 신혼부부인 쓰다와 오노부.

남편 쓰다는 아버지에게 경제적 원조를 받으며 살고 있었고, 허세가 좀 있는 편입니다. 알게 모르게 여자를 얕잡아보는 건 소세키 소설이니 어김없이 나올 거라 예상했고요.

아내 오노부는 그간 소세키 소설에 등장한 여성 인물의 성격과는 많이 다른 편입니다. 자존심도 있고, 남편을 사랑하는 것과 동시에 남편에게 사랑받기를 적극적으로 원하죠. 현대 여성관에서 보면 지금 시대에서는 아주 흔한 타입이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오해받기 쉬운 타입이었습니다.

 

 


 

이번 소설에서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에서 그간 만날 수 있었던 인물 유형을 모두 만나는 느낌입니다.

부부, 시누이와 올케, 남편의 숙부네, 아내의 숙부네, 숙부와도 같은 존재인 또 다른 집안, 매번 곤혹스럽게 하는 친구, 그리고 남편의 옛 여인까지. 주변 인물들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들과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이야기가 풍성해요. 줄거리 자체는 사실 별것 없습니다. 돈과 사랑이 얽힌 그냥 흔한디흔한 이야기인데도 막장 드라마급 전개를 펼치는 소세키 작가의 글발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습니다.

 

 

 

다른 소설과의 차이를 크게 보인 부분은 아내 오노부의 생각을 신경 써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내 오노부는 '남편이라는 존재는 그저 아내의 애정을 빨아들이기 위해서만 생존하는 해면동물에 지나지 않는 걸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남편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고 싶어 합니다.

 

오노부는 처음부터 쓰다에게 호감을 갖고 직접 남편감으로 선택해 결혼했기에, 결혼 후 마음의 공허함을 겪는 것 자체가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죠. 남들 앞에서는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남편을 가진 아내로서 자신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기도 하고요. 한 마디로 결혼 전과 후가 다르더라! 이걸 견디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노부의 이런 생각과 행동은 다른 이들의 눈에 좋게 비치지 않았어요.

쓰다의 여동생은 쓰다 부부에게 아주 제대로 한방 먹이기도 했고, 시누와 올케 둘의 대화에서도 대립하는데... 읽는 독자로서도 왠지 모르게 한 쪽을 응원해줘야 할 듯한 느낌이었어요.
 

이러저러해도 남편과 아내 둘의 마음만 견고하다면야.

문제는 쓰다의 마음입니다. 아내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잃지 않으려는 쓰다. 허세, 허영심, 약간의 거짓말과 그로 인해 숨겨진 불편함 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노부와 결혼하기 전 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쓰다는 그 일에 미련이 남아있었던 겁니다. 결국 옛 여자가 머무르고 있다는 온천으로 찾아가 재회한 것에서 이 작품은 끝이 납니다.

 

 

 

남편의 비밀을 알고 싶은 아내와 감추는 남편. 우발적인 변명이 우연히 적중하기도 하면서 득의양양해하는 쓰다의 모습을 보면 좀 짜증 나기도 했어요. 완전한 사랑을 원하는 오노부의 사고방식에도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어쨌든 오노부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명암>이라는 제목은 지옥불로 가는 듯 묘사한 온천행 장면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데, 오노부가 있는 명明의 세계와 옛 여인이 있는 암暗의 세계, 두 세계를 뜻한다고 해요. 소세키식 연애관이라면 완성되지 못한 이 소설의 결말은 쓰다가 온갖 갈등을 겪은 후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오노부에게로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 / 현암사> 책에서도 소설이란 이야기가 끝날 수는 있어도 소설은 끝나지 않는다고 했듯, 부부 관계를 통한 사랑과 행복의 실체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존재의 위협을 받는 쓰다의 친구 고바야시를 통한 실존 문제 등 <명암>은 미완성이지만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100년 전 그들의 고민이 지금 이 시대의 고민과 다를 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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