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 -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에서 찾은 자본주의 문제와 해법
김근배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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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던 애덤 스미스의 경제사상은 틀렸다?
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에 대해 잘못 알려진 기존 통념을 비판하는 책,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

 

 

 

 

애덤 스미스의 사상은 사실상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원래 의도와 달리 왜곡된 상태라면? 자칭 스미스주의자 김근배 교수님의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은 애덤 스미스의 대표 저서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을 하나로 통합해 그의 사상을 소개합니다. 애덤 스미스의 사상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오늘날 경제위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며 21세기 자본주의의 해법을 고민하는 책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기업의 목적은 이윤 극대화. 달달 외우다시피 한 이런 경제 개념이 모조리 왜곡된 것이었다니. 이데올로기에 악용된 과학 사례 못지않게 경제도 그랬군요.

 

 


우리는 애덤 스미스를 자유방임주의자로 알고 있습니다. 능력과 이기심이 있으면 누구나 큰돈을 벌 수 있고, 시장에 맡겨두면 잘 돌아간다는 보이지 않는 손을 인용하며 국가는 간섭하면 안 된다고 알고 있죠. 그런데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기능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것. 이 단어가 사용된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을 제대로 읽어보면 그제야 알게 됩니다.

애덤 스미스 경제사상의 핵심은 이기심의 자본주의가 아닌 동감의 자본주의라는 것. 이 사상은 <국부론> 출간 이후에도 개정을 거듭했던, 젊은 시절에 쓴 <도덕감정론>에 나와 있어요.

 

 

 


공감, 동정, 동료애 의미로서의 동감. 동감을 추구하는 인간 본성에 기초해 도덕의 일반준칙을 이야기한 <도덕감정론>에서는 자신을 타인의 처지에 두어 시인될 수 있는 행위는 하고, 부인될 수 있는 행위는 피하라고 합니다. 이런 도덕감정을 타락시키는 것은 만족하지 않는 부의 욕망이 있는데요. 부의 욕망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간 마음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애덤 스미스는 최소한의 부, 그 이상은 인간 행복을 높여주지 않으니 최소한의 부 그 정도가 동감도 얻고 도덕감정을 타락시키지도 않는 바람직한 부(富)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손'이 등장하는데요. 부의 기반이 의도하지 않게 사회적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로 나오고 이것이 <국부론>과 연결됩니다. 현대경제학은 이 손을 자유롭게 놓아두면 스스로 조정이 되는 시장이라고 해석하고 있어요. <도덕감정론>을 보면 전혀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애덤 스미는 '신의 섭리'에 대한 비유였을 뿐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오늘날 경제이론의 토대가 된 이론을 담고 있는데, 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생애를 살펴봐야 하더라고요. 18세기 만능지식인이었던 애덤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국부론> 탄생 당시 스코틀랜드는 후진국이었고 정치경제적 소수자에 해당했습니다. 적대적 관계의 잉글랜드에 흡수되는 상황에서 정치제도는 포용적, 경제제도는 착취상태였기에 중상주의를 비판하고 작은 정부를 주장하며 자연적 자유주의 체제를 성토한 애덤 스미스. 그 당시엔 엄청난 진보주의자였어요.

 

김근배 교수는 경제민주화와 경제불평등 문제 방안을 애덤 스미스의 기본 사상에서 찾습니다. 후대에 의해 왜곡된 것이 아닌 원래의 애덤 스미스 사상으로 말이죠. 사회적 통념에 의해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우리가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을 제대로 읽어보길 권하면서요. 현대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포장되어 있고 그걸 벗겨내면 애덤 스미스 사상 대신 자유방임주의가 들어있다고 해요. 문제는 애덤 스미스는 자유방임주의자가 아니라는 것.

 

 

 

<국부론>의 '자연적 자유주의'는 타인이나 사회에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 자유입니다. 자유방임의 자유가 아니라, 신중과 정의의 범위 안에서의 자유를 말해요. 정부 간섭없이 시장에 맡긴다는 것은 오늘날 자유주의자들과는 다른 입장이었습니다. 이건 당시 시대 상황을 알고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을 해석해야 알 수 있고요.

 

기본적으로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자가 아닌 도덕철학자였어요. 경제학이란 건 <국부론> 출간 후 130년이 흘러서야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대 경제학 관점으로 그의 책을 읽으면 도덕철학자로서의 윤리성 부분을 간과해버린다는 겁니다. 그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독점이익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상인, 제조업자의 폐해가 커 애덤 스미스는 남에게 동감 얻는 범위에서, 법을 어기지 않고 신중히 정의롭게 부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김근배 교수는 애덤 스미스의 중상주의 비판 주장은 오늘날 한국경제에 의미 있다고 해요. 소비자인 가계가 어려워 경제위기가 와도 생산자인 기업의 이익이 우선인 현실이니까요.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경영자란 물질적 이윤 동기 외에 비이윤적 동기는 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경영자들은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니 그런 줄 알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 책 속에서

 
기업의 목적은 이윤 극대화라는 명제 역시 애덤 스미스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기업이 이윤을 추구한다고 했을 뿐. 이윤 극대화는 현대 경제학자들의 영향으로 나타난 개념이라네요. '자기이익'이란 단어는 이기심으로 번역해 애덤 스미스를 이기심의 옹호자로 만들기도 했고요. 애덤 스미스가 말한 '자기이익'은 타인과 동감하며 이익추구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을 읽어내려 갈수록 애덤 스미스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새삼 깨닫습니다. 서민 교육 의무화 주장도 100년이나 앞선 진보 사상이었고요. 마케팅이라는 학문 탄생 훨씬 전에 명품브랜드가 비싸게 팔리는 이유를 최초로 설명한 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이 갖는 동감 본성을 이해했기에 설명 가능했다고 해요.

 

현대의 경제학은 과학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애덤 스미스의 정치경제학에서 분리된 셈입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합리적이라 가정해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이윤극대화 원칙을 만들었고요. 그로인해 우리 자본주의는 이기심의 자본주의가 되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현실에선 소수를 위한 탐욕의 손이 되었습니다. 공기업도 이익의 극대화만 추구하고 부의 양극화는 심각해졌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에서 따뜻한 손이란 바로 동감의 손, 정의의 손입니다. 경제성장 정체, 심각한 경제불평등, 청년실업 등의 문제는 애덤 스미스의 기본 사상으로 돌아가야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중국은 이미 애덤 스미스식 경제발전 중이라고 해요. 애덤 스미스의 사상은 공자의 사상과 유사한데 이대로라면 중국식 시장경제의 앞날이 기대되기도 한다는 것을 슬쩍 비추기도 합니다.

 

애덤 스미스의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경제 젬병인 제가 읽어도 이 책은 좀 알아듣겠더라고요. 그만큼 쉽고 편하게 풀어가고 있는 책입니다. "타인이 설파한 자의적 해석에 의지하지 말고 직접 읽어봐야 안다."고 <도덕감정론>, <국부론>을 읽고 싶게 만들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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